현승은 서원이 앉은 자리 옆에 그녀의 책들을 놓아둔다.  낯이 익다.  "뭐 좀 마실래요?" 그의 말에 잠시 고개를 들고 메뉴판을 훑는 그녀의 눈길이 재빠르다. "유 현승 씨는요? 뭐 마셨어요?" 그 녀는 책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자신의 가방 앞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든다. "아, 아니요. 저는 오시면 같이 마시려고..." "그래요? 그럼 제가 사드릴께요. 뭐 드실래요?" 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자도 일어선다. "제가 살게요, 서원씨 뭐 드시고 싶으세요?" 일어나서 보니 이 '김 서원'이라는 여자, 정말 작구나 싶다. "전 바닐라 라떼 좋아해요." 그 남자는 서원에게 앉아있으라는 뜻으로 어깨를 잠시 잡는다. 무심결에 한 행동이었으나 서원이 흠칫 놀라는 것 같아 카운터로 걸어가던 그 남자는 잠깐 그녀를 돌아본다. 그녀의 어깨가 참, 작다 싶다.  그 여자는 앉아서 책을 정리한다. 마음에 드는 책들을 이것저것 고르다보니, 비용은 그렇다치고 들고 갈 일이 걱정이다. 더구나 알바가 끝나고 밤을 샌 아침이라니...잠시 깊은 숨을 내쉰다. 괜찮아, 김서원. 언제나 있는 일은 아니잖아. 커피를 든 현승이 돌아오자 그녀의 생각이 멈춘다.  "바닐라 라떼, 맞죠?" 현승이 컵을 건넨다. "네, 감사합니다." 그 여자는 뚜껑을 열어 한 모금을 마신다. "아, 참... 이거요." 서원이 그제야 짐이 준 물건을 그에게 건넨다. "짐 아저씨가 보냈어요." 짐에 대한 그녀의 표현이 참 친근하다. "네..." 그 남자는 백 속에 든 물건을 꺼내 포장을 뜯어낸다. 상자 속에 든 타지마할 모형이었다. "타지마할이네...." 서원의 말에 현승이 그녀를 본다. 시선이 마주치자 서로 말없이 웃는다. 현승은 타지마할을 보며 그 밤을 생각하고, 서원도 자신이 방문한 그 때를 떠올린다. 그 남자의 휴대폰이 울린다. 그녀다. 그 남자는 불현듯 서원을 바라본다. 커피컵이 서원의 얼굴 반을 덮었고 그녀의 눈만 손톱 달처럼 웃고 있다. 그 남자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불과 만난지 30분도 되지 않은 이 작은 여자가 그 카트녀와의 만남보다 더한 행복을 느끼게 했다. 외려 지금 전화를 주고 있는 그녀가 갑자기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감정이 일어섰다. 그러나 그 남자는 전화를 받았다. "응..."  서원은 타지마할 모형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현승의 시선은 그런 서원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서원은 손도 작았다. 도데체 작지 않은데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이따가 보자..응...." 현승의 통화가 끝나자 서원이 시계를 본다. "이제 짐 아저씨 심부름도 했으니까 가볼께요. " "벌써요?" 서원은 말없이 상자 속에 모형을 넣어준다. "좀 있다 알바가 있어서요. 커피 잘 마셨습니다." "알바요?" 현승이 되묻자, "편의점이요, 야간..." 답변을 하며 가방을 메던 그녀의 말이 끊어진다. 잠시 두 사람은 몇 초동안 뚫어져라 서로를 본다. "혹시..."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말을 한다. "그 알바..."  "그 손님..." 언어는 다르지만 또 같은 순간 말을 내놓는다. 그러더니 소리내서 웃어버린다. "아, 그 분이셨구나..." "아, 거기 계시는구나..." 현승은 그녀의 담배를 사러 들렀던 편의점의 그 머리젖은 소녀를 떠올리고 좀 챙피한 생각이 든다. 서원도 비를 맞고 걸어가던 그의 생각이 나 좀 챙피한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승이 애인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서원은 조금 쓰게 웃었지만 현승은 이 작은 여자로 인해 이상한 평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다. 어느새 이 작은 여자가 현승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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