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 여자..." 그 남자만 그 여자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송우현도 그녀와의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 그 여자를 보고 시선을 멈추었다. "아는 사람이야?" "어." 그 남자가 묻자, 송우현이 시선을 거두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그 커플은 중간 중간 사람들과 만나고 있었고, 그 여자는 소개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 여자의 얼굴은 그 남자가 만난 지금까지의 여자들과는 사뭇 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현승아, 나 잠깐 갔다올께." 송우현은 그녀에게조차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린 듯 급히 걸어갔다. 그는 조금 전 그 커플과 인사를 나눈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저래, 저 사람?" 그녀가 묻자 그 남자는 그제야 그녀를 보았다. "응...몰라."그가 고개를 젓자, 그녀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렇게 안 봤는데, 싱거운 사람이네." 그녀의 말에 그 남자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남자도 송우현이 알려고 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자기야, 우리 그만 가자. 나 배도 고프고 좀 힘들어." "어? 어... 그래..." 그 남자는 다시 그녀의 가방을 든다.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그 남자에게 바싹 붙어버린다. 같이 걸으면서 그 남자의 눈은 송우현을 주시한다. 다행인지, 송우현은 돌아서서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표정이 밝다. 송우현은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곧장 그녀에게 사과를 한다."죄송해요, 갑자기 자리를 떠서." 그녀는 '아니'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그런데, 뭐가 알고 싶으셨던 거예요? 아까 봤던 그 커플 중의 여자, 아는 사람이에요?" 그 남자는 그녀가 현승에게 그렇게 물어봐 준 게 정말 고마웠다. "네, 사실 제가 얼마 전부터 마음에 두던 여자인데...." 그러더니 말을 끊는다. "하다 보면 긴 이야기거든요. 듣고 싶으시면 밥 한 번 사주시죠." 정말 송우현은 못 말리겠다 싶다. 그 남자는 그녀가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좋아요, 제가 궁금한 건 못 참거든요." 라며 함께 식사하는 데 동의한다. 송우현은 가면서도 여전히 그녀와 농담을 주고 받았고 그 남자는 곁에서 말이 없었다.  

 그 여자와 그녀의 오빠는 함께 학교 안을 거닐었다. "오빠 나한테 학교 구경 시켜주려고 오자고 한 거였어?" 그 여자가 묻자 오빠는 그냥 웃는다. "웃기는...." 오빠는 그 여자와 함께 어느 건물 앞에 멈춰섰다. "오늘이 나 많이 도와주신 교수님 생신이라서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려고..." 오빠는 다시 앞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여자도 뒤따른다. "교수님!" 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 반백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했고, 오빠는 그 여자를 소개했다. 오빠의 교수님은 그 여자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보았다. 그 여자는 왜 이 분이 자기를 그렇게 볼까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 분은 휴대폰 문자로 누군가를 부르는 듯 보였고, 곧 차를 들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어? 선배." 큰 키에 마른 듯 보이는 그 사람은 성격도 서글서글했다. 교수는 그에게도 앉으라고 권했다. 오빠는 그와 그 여자를 서로 소개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이대원 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김 서원입니다." 그들은 모두 함께 나가 점심을 들기로 했으나 교수는 다른 약속이 있다고 했다. 오빠는 그에게 준비해 간 구두 상품권을 드리고 좋은 구두를 사 신으시라고 권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나왔다.  그 여자는 이 모든 상황이 점점 어렵고 어색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귀고 싶다고 했죠." 송우현은 자신이 그 여자를 어떻게 만나고 거절받았는지를 낱낱이 얘기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간간이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그런 행동이 점점 더 어색해지고 있었다. "그랬더니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친구로도 안되겠냐고 했죠... 그랬더니..." 그러면서 그는 소주잔을 들어 한 입에 마셔버렸다.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에 그녀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게 그렇게 웃을 일인가? 순간 그녀의 행동이 그 남자는 불쾌하게 느껴졌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대요?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죠?" 그 남자는 말없이  소주잔을 들어  송우현처럼 한 입에 마셔버렸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 송우현의 말은 의외였다. "생각해보세요. 친구처럼 지내다 결국 남자쪽에서나 여자쪽에서 먼저 좋아지던가, 흐지부지 깨지던가 뭐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요?" 그녀는 순간 말이 없어졌다. 갑자기 정색을 하는 송우현의 말이 불쾌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는 송우현이 그 여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예상했던 것 보다 더 깊었다는 걸 알았다. "분위기 갑자기 왜 이래? 술 잘 먹다가. 어서 술이나 먹자고" 그 남자는 그 여자와 송우현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아, 그래요. 그냥 한 말이니까 신경 쓰시지는 마세요." 송우현의 말에 "네..." 하며 그녀는 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를 풀으려고 하는 동안 세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심결에 돌아본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여자였다. 김 서원. 그리고 서원도 그를 알아보고 무심결에 목례를 했다. "뭐야, 자기 아는 사람이었어?" 그녀의 물음에 그 남자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이번에는 송우현도 그를 보고 있었다. "유현승, 너 아는 사람이었어?" 그의 얼굴빛은 의외의 것이 있었다는 듯 놀람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아, 그게..." 입을 채 열기도 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가버렸다. 그 남자는 그녀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어쨌든 따라나갔다.  

 "아는 사람이야?" 오빠가 그 여자에게 물었다. "어... 외국에서 만난 친구분이 있어. 그런데 그분을 앞서 만났던 한국분이 저 분이셨거든. 선물을 전해 달라셔서 전해드렸거든. " "그래? 우리 학교 다니는 사람 같은데?" 오빠가 다시 그들을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그 남자도 따라 나갔다. 그 곁에 같이 있었던 송우현만 그들 쪽을 보고 있었다. "식사 어떤 걸로 하실래요? 여기는 삼겹살이랑 주물럭이 제일 괜찮아요." 이대원은 그들에게 식사를 권했다. 그 여자는 잠시 송우현을 돌아보고 옆의 동행에게 눈치채지 않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송우현의 시선이 자꾸 부담스러웠다.  

그녀는 붙잡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차로 들어가 버렸다. "도데체 왜 그래?" 그가 차문을 잡은 채 그녀에게 묻자 그녀는 자꾸 그의 손을 뿌리쳐댔다.  "몰라서 물어?" "뭔데?" "자기랑 끝이야." "야!" 그는 더더욱 힘을 주었다. "너, 지금 이렇게 가면 음주운전이야. " 그 말에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니까 나와. 택시태워 보내줄테니까 제발 나와. 무엇 때문에 화났는지 지금 말 안 할거면 나중에 해도 돼. " 그러나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발 나와." 그러나 그녀는 고개만 돌려 그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정말이야... 이제 자기랑은 끝이야...그러니까 이대로 가게 내버려둬." 그녀의 말에 그 남자도 잠깐 숨을 참는다. "왜?" 그녀는 그와 눈을 맞추었다. "현승씨는... 한 번도 내게 마음을 준 적이 없었어. 우린 그저 육체적으로만 놀았지.... 그런데 현승씨 마음이 누구에게 가 있었는지 오늘 알게 됐거든." 그 남자는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그녀를 더 지켜보게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의 팔을 뿌리치고 차문을 닫고 그렇게 가버렸다. 그 남자는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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