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짐!
그동안 잘 지냈나? 아들하고는 어때?지금도 간간이 너와 있었던 그 며칠을 떠올리고 있어.
많이 늦었지만 지난 번 너의 선물 고마웠어. 처음에는 같은 남자한테 조각상을 보낸 게 이해가 안 되더라구. 솔직히 너와 난 만나지 얼마 안 됐잖아? (웃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진짜로 내게 보냈던 건 눈에 보이는 그 조각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란 걸 알았어. 네가 그 조각상을 보냈던 메신저... 서원과의 인연 말이야...지금은 딱히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야.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그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거야.사실, 두렵기도 해. 무언가에 많이 오염된 듯한 내게 그녀는 순수함 그 자체라서.
"밤에 일하고 그러면 힘들지 않아요?"
수저를 챙겨주면서 현승이 물었다.
"힘은 드는데,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안 힘든 일 없잖아요."
서원이 미소 띤 얼굴로 대답하자 현승도 같이 미소 짓는다.
"그래도 찾아보면, 낮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 "
"여러 가지 찾아는 봤는데, 여행 가고 책 사서 보고 저축도 좀 하려면, 이 일이 제일 나았어요."
현승은 서원의 한결같은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초승달이 되는 그녀의 눈이 정말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많이 가나봐요?"
현승이 물었다.
"여행 가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많지 않아요. 여름하고 겨울 비수기 때 가는 여행인데, 가 봤자죠. 그런데, 앞으로 꾸준히 가면 가 본 곳도 여러 곳 되겠지요 뭐."
서원의 말에 현승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여행, 나랑 같이 갈래요?"
국물을 떠마시던 서원의 숟가락이 흔들리고 국물이 옷섶에 흘렀다.
"어머, 어떡해~"
허둥대는 그녀에게 현승이 냅킨을 주었다.
"괜찮아요? 데인 데는 없어요?"
현승이 묻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녀가 좀 진정된 듯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죄송해요.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현승의 사과에 서원은 괜찮다고 한다. 서원은 다시 숟가락을 든다. 앞섶에 묻는 국물 자국이 신경 쓰이는 듯 자꾸 시선을 그 쪽에 둔다.
"그런데...."
현승은 분위기를 전환 시키고자 화제를 바꾼다.
"김 서원씨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그 말에 서원은 다시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그럼, 유 현승 씨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제가 먼저 물었잖아요?"
현승이 대꾸하자, 서원은 짓꿎은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얘기해주세요. "
현승의 표정이 좀 더 환해진다.
"저는, 지금 공부하고 있는 거 전공 살려서 일하면서 사회 복지 재단 같은 데를 설립하려구요. 빌 게이츠가 그랬던 것처럼..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그냥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
현승은 자신의 얘기에 얼마만큼의 현실성이 있을까 늘 고민했었다. 사람끼리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고 했지만, 자신의 한 말이 정말로 진심에서 나온 이야기일까 순간 자신에게 되물었다.
"와~ 멋진데요. "
이 여자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 혹시 눈치 채지는 않았을까?
"저도 유 현승씨랑 조금 비슷해요. "
"정말요?"
"네. 저는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거든요. 그래서 제 책의 인세가 나오면 세계 오지 여러나라에 학교가 없는 곳에 학교를 세우는 일을 하려고 해요. 만약 학교를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제 글 솜씨가 형편 없다면 어떤 곳이든 가서 그곳에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려구요. 어떤 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아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갖고 글을 안다면, 그 아이들이 변화시킬 세상은 대단하지 않겠어요?"
고민하는 자신과 반대로 서원의 눈은 반짝 반짝 빛이 났다.결코 밤새 일하고 나온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자그마한 여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꿈의 크기에 현승은 진심을 넘어 압도당하는 희망을 느낄 수가 있었다. 현승은 그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과 붉은 빛이 도는 두 뺨과 웃음을 머금은 입술, 그녀의 모든 것이 즉석 사진기에서 뽑은 것처럼 조각조각 오버랩 됐다.
이제 알겠어, 짐? 그녀의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지... 단지 좋아하는 감정에 매여 혹시 내가 그녀의 꿈을 방해할까봐,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모든 목적의 방향키를 내가 바꿔버릴까봐 나는 그게 두려운거야.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내 자신을 순결히 지켜온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주고 따를 만큼 박애 정신이 강한 사람도 아니야. 철저히 이기적이지. 오직 그녀만을 원하는... 짐, 어떻게 생각해? 그녀의 꿈을 위해, 내가 내 마음을 접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 내 감정에 충실해야 하는 걸까? 심지어 그녀를 보지 못하는 하루 반나절 동안에도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행복감을 느껴. 그런데, 만약, 이대로 그녀를 보지 못한다면... 고민하고 있어. 그리고 너의 조언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해. 사실,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도 모르는데 이러는 게 좀 웃기기도 해. 나... 정말 우습지?
아들에게 안부 전해줘. 또 메일 보낼께.
한국에서
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