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은 자전거를 달려 서원의 집까지 왔다. 온 몸이 비맞은 듯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조금 있으면 서원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초인종을 누를까 하다가 대신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짐의 선물 이후 두 사람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현승이 그녀를 찾아가는 그 시간에 서원은 편의점에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했었다. 그녀가 편의점에서 퇴근하는 그 시간부터 그녀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너무 애틋해지는 데 어리둥절해 자신의 마음을 아꼈다. 그러나 그건 서원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여보세요?"

"......"

분명히 신호음이 갔고 전화를 받는 기척도 있었지만 건너편에서는 침묵만이 돌아왔다. 현승은 휴대폰 액정을 확인하고 다시 물었다.

"...여보세요? 서원씨?"

"....네...."

현승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돌았다. 그녀였다. 김 서원.

"...잘 지냈어요?"

그리움이 북받혔다. 그러나 내색할 수 없었다. 어차피 목소리뿐인 지금인 걸...

"....네..."

그렇게 말없이 잠시 침묵이 돌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걸었다.

"...편의점은 계속.."

"...그동안 잘 지내..."

그리고 두 사람은 웃었다. 분위기가 조금 편안해 졌다.

 "어디세요?"

현승이 물었다.

"저요?"

"네."

서원은 다시 말이 없었다.

"...서원씨?"

현승이 재차 묻자 그제야 목소리가 들렸다.

"... 여기요..."

"네?어디요?"

"...현승 씨 뒤요..."

현승이 돌아보자 100미터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 서원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보는 서원의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여긴 어쩐 일로...?"

서원의 말에 현승은 그저 웃었다. 참 어색했다. 그러나 싫지 않았다.

 "...생각이 나서..."

현승의 말에 서원도 웃었다. 서원의 손에는 책이 든 가방이 들려있었다.

"책 사셨어요?"

"네..."

"들어 드릴께요."

현승은 서원이 뭐라 말 할 새도 없이 가방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과 그녀의 손이 닿았다. 그의 손은 땀에 젖어 있는지 끈적끈적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의 손은 역시나 작고 찬 기운이 돈다고 그는 생각했다. 두 사람은 또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서원은 그의 모습과 자전거를 보고 방금 전까지 떠올랐던 꿈을 떠올렸고, 현승은 지금의 상황이 주는 떨림과 행복에 겨워 서 있는 것도 신기할 정도였다. 만약 꿈이라면.... 깨기 전에 말하자...

 "할 말이..."

 서원의 눈이 그를 주시했다.

 "할 말이... 있어서..."

 그제서야 서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눈 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늘이 깊이 진 터라 벤치는 시원했고, 공원 울타리를 점령한 장미는 이제 막 봉우리를 터뜨리는 참이라 장미향이 은근히 풍겨왔다. 그리고 진녹색 잎을 배경으로 빨간 장미가 대조를 이루어 진풍경을 이루었고, 엄마따라 산책 나온 꼬맹이들이 아장 아장 걷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앉아 있으며 같이 웃고, 같이 그 시간을 즐겼다.

 "....만약에..."

현승이 입을 열었다.

 "..만약에...서원씨랑 내가요..."

서원이 현승을 돌아봤다. 현승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애써 태연한 척 그녀와 눈을 맞췄다.

"이렇게...인사만 하는 사이에서...쪼금 더 가까워지면..."

서원의 눈빛도 흔들린다. 현승은 더이상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어나간다.

"그럼...부담스러우세요?"

일순 그들 사이에서 묘한 침묵이 흐르고 그들은 약간 긴장한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현승은 그 순간의 침묵이 꼭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그들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또다시 장미향이 그들을 중심으로 진동하는 듯 했고 서원은 현승의 귓전에서 흐르는 맑은 땀방울을 보았다.

"...아니요..."

서원은 짧게 한 마디를 했고 천천히 고개를 드는  현승과 눈을 맞췄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현승은 가만히 서원을 안았다. 서로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를 편안히 받아들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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