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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in 말 - 예수님처럼 말하기
로랑 데볼베 지음, 권새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0년 7월
평점 :
며칠 전 매일미사를 구입하러 바오로딸에 들렸다. 아침부터 저조한 컨디션 때문에 누가 말이라도 걸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기에 내 표정은 어두웠고 시선은 바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탁자 위에 매일미사를 올려놓고 지갑을 꺼냈을 때 수녀님 한 분이 웃으며 말을 건네셨다. “산책하다 들리신 거예요?” 순간 어둠으로 막혀있던 시야가 환해지며 짜증과 불안으로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씩 평정을 찾기 시작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에 누군가 작은 촛불을 켜놓고 다정한 온기로 나를 위로하는 느낌. 지극히 단순한 말 한 마디에 내 마음이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수녀님의 표정과 말투에서 나는 예수님의 온화함과 사랑을 느꼈다. 수녀님께선 당신 안의 그리스도를 내게 내어주신 것이다. 말씀으로 육화하시어 매 순간 현존하는 그리스도, 그분의 신비를 묵상하며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 로랑 데볼베의 <마음 in 말>에서 권장했던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 법률이란 딱딱한 분야에 재직하고 있는 변호사지만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자신의 삶에 투영시켰던 저자는 구체적 사례와 법조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에 대한 깨달음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에게 말이란 단순한 소통 차원을 초월하여 내면의 그리스도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행위였으며, 더불어 삼위일체의 신비를 구현하는 지극히 거룩한 신앙의 표현이기도 했다. 순간을 넘어 영원으로 회귀하는 말, 공중에 휘발되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말이란 대체 무엇인가. 진심을 담은 말의 힘과 본질은 대체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가. 저자의 대답은 단순하다. 예수님을 롤모델로 삼을 것. 인류의 구세주였지만 절대 권력으로 사람들을 압박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로 소외되고 약한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셨던 예수님. 풍부한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타고난 달변가였고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 머무르시며 오직 본질에 충실하셨던 분이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을 날카롭게 꿰뚫어보시며 거짓과 기만을 경계하시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만을 전달하셨던 예수님. 저자는 예수님의 공생활 이면에 존재했던 ‘침묵’을 누차 강조한다. 가끔 제자들을 떠나 홀로 외딴 곳에 머무르셨던 예수님. 침묵은 경청의 원천이며 우리의 말이 태동하는 곳(p.180), 침묵은 말의 자궁과도 같다는 것을 예수님께선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바라보셨기에 십자가의 고통까지 감수하셨던 예수님은 침묵 또한 자신의 사명이라는 걸 깨닫고 계셨다. 하느님의 아들을 품고도 침묵으로 순명하셨던 성모님의 자세가 그대로 예수님께 이어져 온 것이다. 그분에게 침묵이란 절대고독의 요새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기거하는 영혼의 성전과도 같았다. 예수님이 건네시는 말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신비가 담겨있었으며, 군중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었다. 하늘로부터, 하늘을 찾아, 하늘을 향해 말하시는(p.125) 예수님은 군중과 서로 일치를 이루었고 소중한 친구에게 말을 건네듯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셨다. 청자를 존중하되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고 상대가 사용하는 말과 내가 사용하는 말을 조율하여(p.134)하느님의 뜻을 관철하셨던 예수님. 눈높이에 맞게 말을 건넨다는 건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갈 때,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p.170)
순간을 영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작은 존재 안에서 큰일을 이루어내시는 하느님에 대한 확신(p.147)을 가지고 눈앞에 당면한 어려움과 연약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나 자신의 공허, 결핍,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 내 안의 사막을 하느님께 내어드리고 그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을 때 말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말은 사람의 혀끝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안의 사막을 가로질러 그리스도에게 닿으려는 열망이 하느님께 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권위가 부여되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진심이 드러나지 않는 말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감언이설로 포장된 말들에 순간 미혹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알게 된다. 온기를 담아 건넨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는지. 매 순간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르며 그분의 사랑을 내어주려는 시도가 있을 때, 내가 건네는 말은 은총과 축복이 되어 사람들에게 닿는다. 내면의 공허와 결핍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수많은 결점과 상처를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했던 날들, 그럴수록 점점 위축되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가 두려워 소통 자체를 거부했던 과거가 떠올라 괴롭고 사람들 틈에서 열패감에 시달릴 때마다 나는 이 책을 펼치며 힘과 위로를 얻을 것이다. 온화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건네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어주셨던 수녀님을 떠올리며.
당신은 당신의 약점과 결핍을 알고 있지만 주님을 믿는다. 자신의 말을 통해 초라해지는 것은 ‘하느님의 부유함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가난함은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은 오로지 하느님 안에서 쉬며, 나의 안녕은 그분에게 있다. 오로지 주님 안에.’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