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치기 전 말씀 한 구절을 묵상해본다.‘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마르 6,34-가톨릭 신앙의 본질이 누군가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보는 마음, 연민이란 감정에서 기원한다는 걸 안다면 인간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고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 한 켠 내놓을 여유조차 없던 시절, 순수하게 베풀었던 친절이 외려 생각지 못한 상처로 돌아와 인간에 대한 환멸만 키워갔던 내 마음엔 도저히 연민이란 감정이 스며들지 못했다. 윤해영 수녀님의 <연민, 사랑으로 가는 길>이란 책은 마음의 빗장을 단단하게 걸어 잠근 채 사람들과 소통 자체를 거부했던 과거를 반추하며 상처에 매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주었다.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나뿐만이 아니라 남도 보이기 때문이지요. (중략) 인간에 대한 연민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만이 이 세상을 살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p.134~p.135이 구절에서 몇 달 전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이 떠올랐다. 퇴근길 버스 안은 승객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피로로 지쳐있었다. 아무도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동안 누적된 스트레스 때문에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할 여유가 나에겐 없었다. 하지만 내 앞에 서계신 할머니의 구부정한 등과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지친 눈빛, 손잡이를 잡고 겨우 몸을 지탱하고 계신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자리를 양보했다. 고맙다며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하시는 할머니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잔상이 되어 내 가슴에 자리 잡았다.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을 때마다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나는 매일 똑같은 생각만을 반복했다.“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내가 그렇게 호구 같은가?” 부당한 처사에 목소리를 높일 수 없던 처지를 한탄하며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과거. 상처에 매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했던 내 시야에 하느님의 빛이 닿기 시작했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순간, 내 마음 한 귀퉁이를 물들이며 영혼을 휘감던 따스한 물결은 나를 세상으로 이끄는 그분의 손길이었다.사람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오죽했으면 너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이렇게 네 곁에 있기를 원했겠느냐? p.1686월 도서는 고전 문학을 읽으려고 생각했지만 ‘연민’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 책을 선택 했는데 소소한 일상의 순간마다 관여하시는 하느님의 섬세함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했다. 인간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매 순간 우리를 향하시는 그분의 뜻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단 하나의 진실만이 선명한 울림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연민은 가톨릭 신앙의 단초이며 그분을 닮아가려는 사랑의 몸짓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