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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 하루의 리듬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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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추적추적 비 내리는 파리 거리를 걷는다. 닿을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두 눈 가득 슬픔을 담아 노래한다.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마리우스를 떠올리며 부르는, 뮤지컬 <레미제라블> 속 에포닌의 넘버 <On My Own>은 그렇게 시작된다. 애절한 목소리로 사랑을 갈구하지만, 마리우스의 마음은 이미 코제트에게 향해 있다.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소녀 코제트.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그녀 옆에서, 에포닌은 그저 초라한 배경에 불과하다. 어딜 가나 눈에 띄지 않는, 지극히 평범하고 밋밋한 존재감의 나처럼. 코제트처럼 사랑받고 중심에 서고 싶지만, 바깥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는 에포닌. 나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게 괴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감정선에 공명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나는 오랫동안 자문했다. 나는 왜 코제트가 될 수 없나? 주목받고, 사랑받는 삶을 간절히 원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도 내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어디서나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은데, 하느님께서는 왜 내게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으실까. 불신과 원망만 키우던 나는 끝내 번아웃에 빠졌고, 결국 주말마다 찾던 성당마저 발길을 끊게 됐다.
신앙과 멀어진 채 무기력에 잠겨있던 그 무렵, 한 권의 책이 내 앞에 놓였다.
은은한 담청색 바탕에 푸른 잉크 몇 방울을 떨어뜨린 듯한 표지. 그 위에 새겨진 <리추얼, 하루의 리듬>이라는 제목을 가만히 손끝으로 더듬으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알게 되었다. '리추얼'이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매일 새롭게 하는 거룩한 시간이라는 것을. 안셀름 그륀 신부님이 정의한 '리추얼'은 그렇게 잔잔히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이제 당신은 하느님께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드러내기를 바라십니다. (중략) 당신은 자신이 꿈꾸는 그런 이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강함과 약함을 지닌 평범한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p.122
매 순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인정욕구와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내 삶이, 그 구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항상 코제트의 뒷전에 머무르며, 가슴속 외로움과 슬픔을 홀로 삭혀야 했던 에포닌. 나는 그런 그녀가 답답하고 불편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그녀에게 감정이입하는 순간마다, 애써 부정했다. 그래서 혼자 다짐하듯 되뇌었다. '나는 에포닌이 되지 않을 거야.'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속삭이셨다. 괜찮다고, 그 모습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그날 이후 나는 나만의 작은 리추얼을 만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성경을 펼치고, 마음에 와닿는 구절 하나를 수첩에 적었다. 하루 동안 그 말씀을 품고, 짧은 기도를 드리며 묵상했다.
세상의 기준에서 에포닌은 그저 초라하고 볼품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그 믿음이 내 안에서 겨자씨처럼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코제트를 부러워한다. 인형처럼 예쁜 그녀의 얼굴, 보석처럼 눈부신 존재감. 마리우스의 사랑을 받는 그녀를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나만의 작은 리추얼을 통해 나는 알게 됐다. 하느님께서는 코제트의 화려한 미소보다, 에포닌의 눈물을 더 아끼신다는 것을.
그리고 그분의 손끝에서, 그 눈물은 진주의 영롱함으로 빛난다는 것을.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아. 안심하여라. 두려워 말고 힘을 내어라. 힘을 내어라.
-다니엘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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