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알기 - 이 시대에 왜 브뤼기에르 주교인가? 브뤼기에르 주교 시리즈
조한건 지음 / 생활성서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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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제주도에서 사목하는 외국 신부님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지긋한 나이의 신부님은 할머니들과 제주 방언까지 구사하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셨는데 자연스레 신자들 사이에 스며들어 그들과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외모 뿐 아니라 언어, 문화적 가치관 모든 것이 우리들과 대조적인 서양인 성직자가 한국, 그것도 작은 섬 제주도에서 선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인종과 언어, 문화를 초월하여 현존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이국의 땅에 사목하며 신자들과 하나를 이루는 성직자들의 순명엔 분명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목자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양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간직한 채 조선을 향한 거룩한 여정을 감행했던 브뤼기에르 주교의 짧은 생애 역시 하느님 뜻에 맞갖은 순명과 사랑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총명함과 남다른 신앙심,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까지 겸비했던 브뤼기에르 주교는 26세란 젊은 나이에 교수와 학장직을 역임했으며 절제와 인내, 희생을 통한 금욕적인 삶을 추구했던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였다.
평생 존경과 명예를 한 몸에 받으며 성직자로서 최고 지위까지 오를 수 있는 역량을 소유했음에도 주교는 사적인 야망을 품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탄탄대로의 인생을 스스로 거부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냈던 주교의 가슴엔 오직 목자의 부재로 방향을 잃어버린 조선대목구에 대한 연민과 사랑만 가득했다. 서양 문물에 대한 거부감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천주교를 박해했던 조선 왕실과 세간의 눈을 피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믿음을 키워갔던 신자들.
목자 없이 방황하는 가련한 양들을 향한 주교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져갔고 결국 조선 선교를 향한 여정으로 이어진다. 선교사와 자금 부족, 폐쇄적이며 전근대적인 조선 왕실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드러내며 주교의 결심을 꺾으려 했던 파리외방전교회의 간곡한 서한에도 꺾이지 않았던 열망, 그 마음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알리실 때 우리는 그 계획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주저함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p.63)

하느님의 계획은 때론 지극히 초라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진정한 순명은 그분의 계획에 동참할 때 이루어진다는 걸 주교는 자신의 생애로 증명한 것이다. 열악한 교통수단과 갈증과 배고픔, 가톨릭 성직자라는 정체성을 철저히 숨겨야 했던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바라보셨던 브뤼기에르 주교. 1832년 페낭을 시작으로 긴 여정을 감행했던 주교의 삶은 안타깝게도 조선 땅을 밟기도 전에 중단되고 만다. 열병으로 인해 악화된 건강 상태 때문에 잠시 체류했던 마가자 교우촌에서 주교는 급작스런 선종을 맞게 된다. 숨을 거두기 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남겼던 마지막 말은 유언이 돼버렸다. ‘예수 마리아 요셉.’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은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것, 그 고독한 여정을 브뤼기에르 주교는 완수하고 하느님 품에 안긴 것이다. 비록 중단된 선교였고, 그토록 염원하던 조선 사목에 대한 열망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간직했던 주교의 생애는 땅에 떨어진 한 톨의 밀알을 연상시킨다. 추락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결국엔 풍부한 결실을 이뤄내는 밀알. 브뤼기에르 주교는 한 번도 본 적 없고 대화조차 나눈 적 없는 우리에게 신앙의 신비를 열어준 것이다. 하느님의 신비스런 중개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낯선 이국땅에서 묵묵히 사목하시는 외국인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에게 브뤼기에르 주교의 은총과 사랑이 스며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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