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김의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친 바위 위에 한 젊은이가 홀로 앉아 있다. 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깊은 침묵에 잠겨 있다. 사랑했던 여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한 남자가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성소聖召라는 거룩한 운명 앞에 섰다. 상실감과 두려움이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나 고개를 든 젊은이의 얼굴에는 눈물 대신 미소가 번진다. 포기한 자의 허탈함이 아닌, 길을 찾은 자의 평온함이 영혼을 감싼다. 훗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아버지가 될 프란치스코 교황, 청년 호르헤 베르골리오의 모습이다.

영화 <두 교황>의 이 장면은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있었다. 사랑을 잃고도 웃을 수 있는 저 초연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회한과 상실로 남은 기억 앞에서 주저앉은 내게, 그 미소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신비였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싶은데, 현실은 냉혹했다.
상처 없이 완전한 삶, 남들이 부러워하는 '특별한 삶'을 원했다. 그것이 행복이라 여겼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부정하면서.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솔직히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의무감으로 선택한 책이었기에. 제목부터 <행복론>이라니. 펼치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 '마음을 비워라' 같은 말들만 가득하겠지. 분명 좋은 말이지만, 마음을 울리지는 못하는 클리셰들.
그저 그런 '도덕 교과서' 같은 위로를 예상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내심 당황했다. 교황님은 뜬구름 잡는 영적 통찰이나 어려운 신학 용어로 가르치려 들지 않으셨다.
'상처'를 언급하고 '고유함'을 이야기했다. 그 단순하고 소박한 구절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어떠한 상황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어쩌면 자신의 과거를 '리셋reset'하여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잊을 권리를 주장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가 없는 성인은 없고, 미래가 없는 죄인도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진주는 조개의 상처에서 탄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치유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p.75

이 문장을 읽는 순간, 2008년 겨울이 떠올랐다. 거의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도통 지워지지 않는 기억.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었다. 웹 소설 주인공처럼 회귀할 수 있기를. 그래서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망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삶의 얼룩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 하지만 교황님은 그 얼룩을 '진주가 될 상처'라고 부르셨다. 어쩌면 인간 각자의 고유함은 '상처'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역사에 새겨질 수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을 열망하는 이들의 희망이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하나뿐인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p.85

이제 나는 영화 속 젊은이, 호르헤 베르골리오의 미소를 이해한다. 그가 웃을 수 있었던 건 세속의 행복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가장 나다워지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고유함은 거룩한 삶으로 이어져 상처를 품어낸 진주처럼 뚜렷한 생의 무늬가 된다는 걸, 교황님은 당신의 삶으로 몸소 증명하셨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또 넘어질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고,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니까. 하지만 교황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매번 아버지가 일으켜 세워줘야 하는 아이들(p.148)'이라고. 넘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아버지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다. 그러니 넘어져도 괜찮다. 그 상처 또한 나의 고유함이 될 테니까.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과거의 얼룩은 백지가 될 수 없다. 상처가 진주가 된다는 건 고통의 소멸이 아니라, 고통을 감싸 안은 흔적이 나만의 결로 거듭난다는 의미가 아닐까. 상실의 아픔을 품고 하느님께 나아갔던 젊은 시절의 호르헤처럼, 나 또한 그렇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편, 기도의 언어 -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지음, 이기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바흐의 장대한 독주곡 <샤콘>은 짧은 베이스 패턴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곡이다. 동일한 화성 진행이 수십 번 거듭되지만, 이 반복은 감각을 무디게 하는 지루함에 머물지 않는다. *되풀이될수록 감정은 더욱 응축되고, 확신은 깊어지며, 지금 이 순간은 과거의 굴레에서 조금씩 해방된다.*
이러한 '반복을 통한 자유와 확신'의 역설은 독실한 신자였던 바흐의 음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매번 우리에게 영감을 건네는 시편의 언어에서도 동일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장피에르 프레보스티의 <시편, 기도의 언어>는 바로 이 '반복'되는 마흔 가지 핵심 어휘 속에 담긴 시간을 초월한 생명력과 영적 메시지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히브리어의 구조와 의미, 그 안에서 맞물린 영성적 리듬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밝힌다. 시편의 반복이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신학적 장치이자 영혼의 호흡이라는 것을.

어휘의 관점에서 시편집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데, 바로 반복이다. 시편 기도의 어휘가 광범위하지는 않아서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p.12

어근 중심의 히브리어는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단어들이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된다.
예를 들어, ḥesed(자비), yasha(구원), barakh(찬미) 같은 어근은 형태를 달리하며 시편 전체에 여러 차례 언급되면서 시편 기도의 신학적 기둥을 이룬다. 반복은 결핍이 아니라 심화이자, 성령의 변주다. <샤콘>이 반복 위에 쌓아 올린 변주처럼 시편도 순환되는 어휘에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변주한다. 반복을 통해 끝없이 상승하는 <샤콘>과 같은 결을 공유하며, 시편은 영혼을 고양시킨다. 심연을 뚫고 끝없이 비상하는 새처럼.

인간은 단조로운 일상과 반복되는 기도 앞에서 무뎌지기 쉽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과 신앙은 그 되새김의 자리에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독실한 신자였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샤콘>에서 발견된 진리와, 시편의 마흔 가지 핵심 어휘가 그렇다. <샤콘>이 단순한 네 마디 화성 위에서 수많은 변주를 견뎌낼 때 벅찬 희열이 솟아오르듯 , 시편 역시 그렇다. 기도의 누적은 우리를 영적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날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인도한다. 결국 반복의 궤적은 지루함이 아닌 시간을 견디는 힘이며, 익숙한 고통이 아닌 영원한 자유와 확신의 길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 그 숭고한 변주의 길 위에 홀로 또 함께 걸으며, 쉼 없이 호흡하고 있다.

그분께서 불어넣어주신, 성령의 숨결로.


*내털리 호지스의 '엇박자의 마디'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번 읽어 봅시다! 가톨릭 신학과 교리 해설
조한규 지음 / 생활성서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999년 4월, 수녀님 손에 이끌려 나는 예비자 교리를 듣기 시작했다. 성호 긋는 법부터 각종 기도문, 그리고 십계명까지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숙지하며 조심스럽게 가톨릭 신앙에 입문했다. 세례를 받은 뒤엔 주일 미사를 거르지 않았고, 고해소에도 정기적으로 들리며 나름대로 ‘신앙인답게’ 살아가려 애썼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교리 시간에 들었던 내용들은 어느새 휘발됐고 나는 점점 성당과 멀어졌다. 그 시절 나는 신앙의 깊이를 헤아리기엔 너무나 어리고, 그 무게를 감당하기엔 너무 미숙했다. 몇 번의 냉담 끝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 그 감각은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오래전 들었던 교리 수업을 다시 가슴에 새기고 싶었다. 하지만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미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한 권의 책이 찾아왔다. 홀로 추억 속에 잠겨 있던 나를 일깨우듯.

예수님의 탄생에서 죽음, 부활에 이르는 여정을 교리적으로 풀어낸 책은 많다. 하지만 그 사건들을 신학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실존으로 확장시킨 책은 드물다. 조한규 신부님의 <한 번 읽어봅시다!>라는 책은 단연 후자에 속한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깊이 와닿았던 구절은 ‘인간은 스스로 완성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늘 타인과 비교했으며 과거의 실수에 집착했고, 인정욕구에 휘둘려 매 순간 위태롭게 비틀대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흔들리던 내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란 신앙의 본질을 다시 가르쳐 주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손길 없이는 나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인간은 한편으로는 무한하고 긍정적인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완성에 이를 수 없고, 절대자의 도움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p.216

또한, 삼위일체가 머리로 이해하는 공식이 아니라 사랑의 구조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성부는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성자는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밝혀주며 성령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내 마음 깊은 곳을 사랑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인간은 이 삼위일체의 ‘흐름’ 안에서만 완전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동시에’ 존재하는 신비로서.

삼위 하느님은 같은 분이시고, 세 위격 모두 한 번 하느님이십니다. p.222
성부의 계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어집니다. p.223
성령의 활동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연관되고,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모든 답은, 모든 게시에 대한 답인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p.240

신앙은 단 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넘어지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긴 여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느님께 닿을 수 있다.

성인들은 죄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인간이었지만, 하느님 선택과 은총을 통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부르심에 응답한 후에도 자주 걸려 넘어졌지만, 그래도 끝까지 하느님께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p.28

결국 이 책은 지식의 단편적 나열이 아닌, 세상과 존재의 경계를 허무는 '사유의 흐름'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을 마주 보게 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게 한다. 더는 과거에 얽매여 본질을 왜곡하지 않고 새로운 신앙의 첫 장을 펼치도록.
삶의 무게중심이 위태롭게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 오른편에 계신 그분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앙 안에서 맥동하는 나의 가장 단단한 심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 - 그리스도인의 묵상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서명옥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세기 가톨릭 신학의 거장이자, 철학과 신학을 통합한 독창적 사유 체계를 세운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추상적 이론이 아닌 하느님의 드라마로 해석한 신학자다. 그에게 신앙은 하느님을 멀리서 관망하는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시선 안에서 그분의 이야기에 동참하는 주체적 행위였다.

<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는 말씀(Logos)을 관념적 세계관에 가두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추상적 원리가 아닌 구체적 인격이며, 신앙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한 편의 드라마다. 발타사르는 단언한다. 그리스도는 관찰과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변화는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나,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바라보시는 그분의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다. p.66

말씀은 단순한 활자들의 배열이 아니다. 신앙 또한 복잡한 이론이나 관념의 흔적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말씀 안에서 그분의 얼굴을 마주 보고, 끊임없이 그분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분과 일치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가.
매일 성경을 읽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습관적으로 성호를 긋지만, 내 신앙은 여전히 문턱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물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리고 눈먼 이에게 빛을 찾아주셨던, 그분의 기적 앞에서도 반신반의했던 바리새인.
그 냉담한 관찰자의 그림자를 나는 내 안에서 발견한다. 입으론 줄곧 믿음을 외치면서도, 타성과 관념의 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올 때마다 성모님을 바라보라고. 말씀을 온몸으로 품으셨던, 그분의 순종을 본받으라고.

오히려 마리아처럼, 자신에게 혼란스럽고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길을 기도하면서 따라갈 것이다. p.113

성모님은 아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믿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루카 2,19-) 성모님의 응답(Fiat)은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영혼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였다.
요셉을 잃고 가난한 과부로서 삶을 이어가며 어린 아들을 키웠던 성모님. 장성한 아들이 나자렛을 떠났을 때도 그저 말없이 지켜보셨다. 의심과 불안 속에서도 하느님을 놓지 않으셨던 천주의 모후.

성모님은 신학자가 아니었다. 화려한 언변도, 학식조차 없던 평범한 나자렛 여인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사랑했기에, 하느님은 그 사랑에 응답하셨다. 한 여인의 순수한 믿음이 하느님 구원 드라마의 중심이 된 것이다.
하느님을 믿었지만 반쪽짜리 신앙에 머물렀던 바리새인, 관념에 사로잡혀 말씀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 그들, 그리고 그들의 전철을 밟고 있던 나에게 저자는 속삭인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라. 너는 이미 말씀 안에 있으며, 그분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 이해와 논리로 신앙을 분석하지 말아라. 그저 함께 머물러라. 십자가 아래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일치된 삶을 살면서도 결코 신앙을 추상적 관념으로 이해하지 않으셨던 성모님. 의심과 불안 속에서도 묵묵히 걸어가셨던 성모님을 통해, 발타사르는 신앙의 본질을 밝혀낸다. 십자가는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나는 표지이자, 인간의 나약함과 어둠이 그리스도라는 형상과 하나되는 자리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정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신앙의 신비를 배워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 있는 기도
안토니 블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통상적으로 기도는 자신보다 큰 존재에게 비는 행위로 정의된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지 20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런 내게 안토니 블룸의 <살아있는 기도>는 기도를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느님과 일치하는 여정으로 보여준 책이었다.

기도란 위험한 것이며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p.14

블룸은 기도를 '위험한 행위'라 말한다. 처음엔 낯설었다. 나는 기도를 언제나 평화를 주는 행위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말한다. 기도가 늘상 따스한 도피처에 머문다면 그것은 온전하지 않다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집착과 안온함을 내려놓고, 온 존재를 내맡기는 순간에야 비로소 기도가 시작된다고.

나는 여기서 성경 속 밀알을 떠올렸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듯, 기도하는 인간도 매 순간 죽고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럴 때 기도는 더 이상 도피가 아니라, 생과 사를 초월하는 거룩한 여정으로 거듭날 수 있다.

기도는 위험하다. 익숙한 세상과 결별을 고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투신하는 일은 어리석은 도박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매 순간 망설인다. 마치 거대한 바다 앞에 선 소금인형처럼, 나약한 모습으로. 그럼에도 하느님께선 기다리신다. 천천히 그분의 깊이에 스며들어, 바다와 우리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과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