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80호 - 2014.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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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차피, 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고백을 해보자.
4월 16일 이후로 많은 날들에 나는 세계가 존나 망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무력해서 단념하고 온갖 것을 다 혐오했다. 그것 역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여유라는 것을, 나는 7월 24일 서울광장에서 알게 되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백 일이 되는 날, 안산에서 서울광장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온 유가족을 대표해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녀는 말했다. 엄마 아빠는 이제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고, 싸울 거야. _447~448쪽

나는 그것을 듣고 비로소 내 절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다 같이 망하고 있으므로 질문해도 소용없다고 내가 생각해버린 그 세상에 대고, 유가족들이 있는 힘을 다해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공간, 세월이라는 장소에 모인 사람들을, 말하자면 내가 이미 믿음을 거둬버린 세계의 어느 구석을 믿어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뭘 할까.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와 꼭 같은 정도로 내가 망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의 처음에 신뢰를 잃었다고 나는 썼으나 이제 그 문장 역시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_4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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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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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심각하고 중대한 결정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계발하는 도구를 제공한다. 우리를 회의장 테이블과 의회로 초대하고, 거기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납득할 수 없는 지연과 이상한 타협과 사람을 미치게 하는 책임 회피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그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이에 우리는 마치 친한 친구가 익사하는 광경을 판유리 창문 뒤에서 매일매일 무력하게 지켜보도록 초대받은 기분을 느낀다. 64쪽

분노는 겉보기에 어떤 상황에 대한 비관적인 반응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징후다. 집 열쇠를 잃어버릴 때마다 소리를 질러대는 남자는 열쇠가 절대로 분실될 일이 없는 어떤 우주에 대한 아름답지만 무모한 믿음을 불현듯 내보이는 것이다. 66쪽

정치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정치의 핵심 영역에서 한 사람이나 한 정당이 단숨에 성취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뉴스 순환 속도가 요구하는 것만큼 빨리 상황을 변화시켜내는 건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어떤 문제의 경우 소위 유일한 '해결책'은 메시아적 리더, 국제회의 혹은 신속한 전쟁에 기대는 게 아니라, 100년 혹은 그 이상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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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인문잡지 삐라 2호 - 죽음
삐라 편집부 / 노트인비트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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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이렇게 나 자신을, 나의 이해를 초과하는 사랑을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의 소설을 인용해 죽음을 가져오는 병La Maladie de la mort”이라 부른다. 사랑에 빠진 자는 항상 미리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죽음이 삶의 시간에 적힐 수 없듯, 사랑 역시 삶의 과정에 포함될 수 없는 과도한 삶이 된다.

 

 

나는 나의 온 힘을 그녀에게 주었으며 그녀는 내게 모든 그녀의 힘을 주었다. 그리하여 이 너무 큰 힘, 그 무엇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힘이 우리를 어쩌면 한없는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이 불행, 나는 그것을 기꺼이 짊어지고 무한히 그것을 즐기며, 그녀에게 나는 영원히 말한다. “이리 와.” 그리고 영원히 그녀는 여기에 있다.

*모리스 블랑쇼 _죽음의 선고

 

그리하여 사랑, 동시에 죽음은 기쁨도 증오도 아닌, 고독의 향락, 고독의 눈물, 자신 너머로 향하게 하는 준엄한 압력으로서 우리를 맴돈다. (-)이 지긋지긋한 애착들이 어떠한 영광도, 어떠한 위안도, 어떠한 구원도 주지 않을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헛된 접촉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결국 어떠한 다른 목적도 갖지 않는 시도를 반복한다.

_다제이 서문_퀴어인문잡지 삐라 02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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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 노들장애인야학 스무해이야기
홍은전 지음 / 까치수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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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는 없는 신기한 동사, ‘노들야학하다’
http://beminor.com/news/view.html?no=7000§ion=1&category=82&loctype=m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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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79호 - 2014.여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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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의 가정법, 장황한 문장들이 끌어당기는 이곳 아닌 저쪽의 풍경은, 불가능이라는 표적에 명중해야 했던 화살이 일시적으로 빗겨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장황한 동안' 유지되는 가수假睡의 상태. 이게 <정창희에게>에서 박솔뫼 문장이 갖는 모호함이고 나를 애타게 하는 근거이다. 지속할 수 없음을 아는 안타까움. 쏟아지는 문장들 속에서 깨고 싶지 않은 꿈속 장면이 잠깐, 지금 존재할 수 없는 창희의 형상이 언뜻 비치는 그때 나는 초조하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기만으로서의 꿈의 형상이 깨어질 거라는 조바심. 나는 작가가 쏟아내는 방언으로부터 분리된 타인이었다가, 작가가 꾸는 꿈에 대한 목격자로서 그의 그럴 수밖에 없음에 대해 알게 된 자로서 책임을 요구받는다. 나는 보고 있지만 그 상황에 대한 권리가 없다. 이것이 작가가 독자인 나에게 주는 느낌이다. 겸손해질 것. 무력해질 것. 소용없음을 인정할 것. 이 무력감은 익숙하다. 그것은 내가 이별이나 죽음 등에서 체험했던 것이다. 결국 그 문장과 장면에서 내가 상기하는 것은 그 고비의 감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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