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의 내면 심리 들여다보기 - 중독의 늪, 충동과 유혹의 심리
아놀드 루드비히 지음, 김원.민은주 옮김 / 소울메이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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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코올중독은 치료에 실패했을 때 환자 개인을 탓하는 특이한 병이다. 이는 알코올중독뿐 아니라 모든 중독 치료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치료를 받던 중독자가 다시 술을 마시면, 치료 팀은 치료 자체의 한계보다는 그 사람이 단주하려는 의지나 도움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 입원치료중인 알코올중독자가 치료에 비협조적이거나 술을 끊으려는 의지가 없을 때, 또는 이 때문에 다른 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될 때 많은 병원이 즉시 환자에게 퇴원 조처를 내린다. 병원 안에서 술을 마시거나 취한 채 발견될 때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앓고 있는 병은 음주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인데, 그런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치료 대상에서 제외하는 셈이다. 알코올중독자는 치료를 받으려면 반드시 증상이 없는 상태, 즉 단주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놓인다.


• 알코올중독이라는 질병의 핵심은 술을 조절해서 마시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치료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음주를 중단하고 나서 다시는 ‘첫 잔’을 마시지 않는 일에 집중한다. 음주를 조절할 힘을 되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 알코올중독자는 병에 걸려 ‘아픈 환자’다. 적어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논할 때는 환자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들이 술을 마시고 아픈 상태에서 저지른 잘못이나 범죄에 대해 사회는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 알코올중독의 특징적인 증상은 술에 대한 갈망이다. 갈망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예를 들면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술 생각이 간절해지지만 일할 때나 교회에 있을 때는 갈망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환자의 증상이 심리나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중독 질환은 내과 질환과는 다르다.


• 중독 회복에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동료 중독자를 꼽는 사람이 많다. 몸에 다른 병만 없다면, 중독을 앓은 적이 없는 의료전문가보다는 직접 중독을 경험한 사람이 더 큰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알코올중독은 직접 그 병을 앓다가 회복한 사람이 의사보다 그 병에 관해 더 잘 안다고 여겨지는 유일한 질병이다.


• 알코올중독은 그 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되어버리는 유일한 병이다. ‘알코올중독자’라는 호칭을 지울 수 없는 낙인이나 도덕적 비난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병상련인 사람들 모임에 회원 가입 자격을 부여하는 명예 훈장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알코올중독은 진단받는 순간 그 사람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암이나 고혈압, 혹은 다른 내과 질병과는 다르다. 일단 진단을 받으면 개개인의 특성은 무시된 채, 모두 똑같은 알코올중독자로 취급된다. 설령 술을 끊더라도 ‘중독자’라는 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도덕적 관점에서 알코올중독은 부도덕함의 소치이고, 그릇된 심성이나 악덕이 겉으로 드러난 결과다. 문제의 근원은 자기탐닉·향락주의·무기력·무책임·게으름·부도덕함에 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나약하다는 증거이므로 완치하려면 강한 의지력이 필요하다. 중독자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에 일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중독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도덕적 관점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알코올중독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취된 상태로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면 유치장이나 감옥에 가두고 벌을 준다. 대다수 사회 구성원뿐만 아니라 의사를 포함한 의료 전문가들도 알코올중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중독자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자도 이런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아 폭음 후 술에서 깨면 자신을 비난하고 책망하며 혐오하고 절망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술을 끊겠다고 다짐한다. 실제로 많은 중독자가 개인의 책임감과 의지력을 강조하는 도덕적 관점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단주를 결심한다. 한심한 자신의 모습을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마침내 술을 멀리하기로 결심하고 ‘단주 서약’을 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알코올중독은 몸에 생긴 ‘병’이다. 이 병은 생화학적 이상이나 알레르기, 영양 결핍, 신체적 취약성, 유전적 소인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중독자가 벌인 어떤 행동을 이들이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몸에 발생한 생리적 압박으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알코올중독자는 병에 걸린 ‘아픈’ 사람이므로 그 병 때문에 저지른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알코올중독은 도덕적으로 실패한 것도 아니고 몸에 생긴 질병도 아니다. 이들의 행동을 비행이나 악행으로도 볼 수 없다. 고의로 선택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다양하다. 과거에 겪은 일 때문일 수도 있고, 그렇게 학습되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 상황에서 술을 마시도록 길들여진 결과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자아상이나 잠재적인 긴장감, 우울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심지어 갈망을 조절할 능력이 없으니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술을 마시기도 한다.


문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으므로 알코올중독은 질병이 아니라고 본다. 문제 해결의 답은 개인의 사고방식과 감정, 행동에 있다. 그 외에는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따라서 치료법은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마시는 계기와 감정상태, 행동패턴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는 일에 중점을 둔다. 알코올중독자는 치료를 통해 술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단서를 찾아내서 피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술을 마시도록 충동질하는 잘못된 생각과 불합리한 사고방식을 바로잡고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음주를 대체할, 다른 효과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익혀야 한다. 이들이 새롭게 깨우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알코올중독은 환경이 개인에게 끼치는 악영향 때문에 생긴다. 알코올중독자는 주변 사람이나 살아온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술을 구할 방법이 전혀 없거나 술을 마시면 처벌받고, 술값이 너무 비싸 마실 엄두가 나지 않는 사회에서 자란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런 사람이라면 알코올중독자가 되기 힘들다. 그러므로 알코올중독자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속한 넓은 의미의 사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독자의 배우자와 가족, 중독자가 속한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음주를 억제하기 위한 사회정책에는 주류세나 주류 판매 제한 법률, 공공장소에서 만취한 사람에 대한 구금이나 벌금 부과 등이 있다. 범위를 더욱 좁혀 치료의 측면에서 보면 주 관심대상은 가족 간의 역학관계다. 사회적 관점에서 알코올중독은 중독자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함께 사는 가족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지닌 병적인 정서가 한 사람의 알코올중독으로 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알코올중독자는 가족 전체의 희생양인 셈이다.



영적 관점에서 알코올중독은 ‘위대한 힘’과 같은 어떤 신성한 존재에게서 멀어져서 생긴다고 본다. 알코올중독자가 저지르는 죄는 교만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데도 이들은 자신에게 통제력이 있다는 자만에 빠져 있다. 그리고 이런 자만심 때문에 오히려 유혹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이들이 잘못된 자만심을 내려놓고 외부에 필요한 도움과 지도를 요청할 마음가짐을 가지려면,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술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산산조각내야 한다. 이때가 중독자에게는 계시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이 순간에 중독자는 새로운 무언가를 깨닫고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면서 자신보다 위대한 힘과 교감을 나눌 준비를 마친다. 여기서 말하는 위대한 힘이란 개인적으로 믿는 신일 수도 있지만, 자연법칙이나 신앙 공동체일 수도 있다. 같은 고통을 겪는 다른 중독자와의 동료애가 위대한 힘이 될 수도 있다. 위대한 힘을 무엇으로 여기든 간에 그 위대한 힘과 자신 사이의 관계 단절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알코올중독의 치유를 기대할 수 없다. 이는 A.A. 같은 단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전제이기도 하다.



• 알코올중독이 질병이라고 해서 중독자 자신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 중독자는 일단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첫 잔을 마실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은 가지고 있다.


• 자기탐닉이라는 심리적 특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중독자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에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과음할 성향을 더 많이 지니고 태어났을 수도 있다.


• 알코올중독은 중독자 자신의 책임이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역할을 떠안기는 가족관계 역시 문제일 수 있다.


• 알코올중독자가 절박한 심정으로 도움을 청했다고 해서 치료받을 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기만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끊지 않는다고 해서 낫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 많은 사람이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만으로 회복에 이르지만, 영적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다.



어떤 의도나 행동은 내면에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의도와 행동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스스로 설명하고 안심하는 것이다. 이런 합리화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잭 런던의 자전적 소설 『존 발리콘John Barleycorn』의 등장인물인 존 발리콘의 마음속에도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를 내세우고 편리한 핑계를 대면서 보고 싶은 현실만 골라서 보는 식이다. 잭 런던은 이 부분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존 발리콘은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그냥 마시고 싶어서’라고 담백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잔 마실 만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운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한 잔 정도의 보상은 받을 자격이 있으니 마신다고 말한다. 때에 따라 ‘몸을 좀 녹이기 위해서’나 ‘해장이 필요해서’ 위스키를 조금 마시기도 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마무리하는 의미로 한 잔, 그리고 이왕에 마실 거라면 한 잔보다는 ‘2잔 걸치고’ 취해서 집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한 잔을 마시고 들어가든 2잔을 마시고 들어가든 어차피 아내는 바가지를 긁을 테니까. (-)



결국 중독자는 자신이 다니는 길에 계속 바나나 껍질을 던져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는 어떻게든 자신이 그 길을 걷게 만들어 ‘실수로’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지게 한다. 중독자의 두뇌는 다니는 길목마다 지뢰를 설치하고 무심결에 빠질 함정을 파놓는다. 불운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알코올중독자 중에는 합리적이고 지적인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조차 이런 일이 진행되는 내내 스스로 위험을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뻔해 보이는 합리화, 자기 편한 대로의 현실 왜곡, 우연과 실수로 위장한 자기기만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



알코올중독자는 술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받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은 이미 수천 번도 더 해보았다. 알코올중독자를 가장 심란하게 만드는 건 사는 동안 다시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는 알코올중독자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들은 당장 술을 끊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문제없이 마실 수 있다고 자신을 안심시킨다. 술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삶이 다시 제자리를 찾으면, 뒤죽박죽 어지러운 머릿속이 정리되면, 술판을 벌이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정도로 현명해지면, 술에 대한 갈망이 완전히 사라지면, 의학의 발달로 알코올중독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면 등등. 이런 희망 때문에 중독자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가볍게 한 잔’하고 싶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음주 방식을 바꾸면 술을 조절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이전에 마시던 독한 술을 도수가 낮은 술로 바꾸거나, 물과 섞어 희석해서 마시거나, 기준을 정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마시거나, 급하게 벌컥벌컥 마시던 술을 조금씩 천천히 마시는 식으로 말이다. 이들은 술을 마셔도 되는 수천 가지 이유를 생각해낸다. ‘다음에는 다를 거야.’라는 믿음 때문이다. 과거의 뼈아픈 실수에서 얻은 교훈으로 자신이 바뀌었고, 그래서 이제는 충분히 술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고, 중독자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이런 무의식적인 기대가 술에 대한 욕망의 불씨를 살려놓는다. 이것이 중독자가 오랫동안 취약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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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연애 말들의 흐름 5
유진목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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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제자리걷기를 하면서 읽었다. 귀퉁이를 접고 색연필로 그으면서 읽었는데 나는 유진목 시인의 이 책이 이렇게 웃긴 책인지 몰랐다. 특히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단어들은 다 웃기다. 그 유머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책을 덮고 나니 저기 멀리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고 다른 공간에 있으나 내가 나를 보며 다녀가듯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내 방에는 소중한 고양이 두 마리가 있고 침대가 있고 수박도 있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모이면(그런 게 가능하다면) 유진목 시인에게 싫은 일이 두 개 생길 거였으면 하나로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본문을 거의 다 그으며 읽었기 때문에, 그리고 예전에는 그런 본문들을 다 타이핑해서 올려두었는데 이제는 저작권 걱정이 되어서.. 아래 문장은 일부이고 특히 내가 웃기다고 말한 부분들은 여기 옮겨적지 못하엿으므로 책을 사서 읽어보면 좋겠다 특히 27쪽 맨아래 문장을 읽고 33쪽을 만났을 때는 너무 웃겨서 제자리걸음 하다가 멈추고 페이지 사진을 찍었다(증거는 여기 안 첨부함).



(-) 나는 내멋대로 굴다가 모두와 헤어졌다. 나는 자다 죽는 것처럼 이별하고 싶었다. 힘든 건 너무 힘이 드니까.




말 끝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는 사람에게도 나는 궁극의 혐오를 느낀다. (-)


그러니까 제발. 나는 사람들이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대로 나한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니? 자기는 가족이랑은 섹스를 안 한다니? 매사에 그럴 의도가 없었던 사람과 가족이랑은 섹스를 안 하는 남자를 처음부터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 거리를 두고 되도록 멀리 있으면서 말을 섞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인간을 더 혐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신을 사랑하는 엄마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와 궁핍한 생활이 너무나도 분명해 살아 있는 것이 싫기만 했다. 몇 번인가 나는 죽으려고 했는데 그것은 삶이 보잘것없어서였다. 삶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이.




비교적 살아 있는 일에 여력이 있을 때는 내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맞이하는 좋은 순간들을 상상해보았다. 그것은 상상이어도 좋았다. 상상 속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나는 글로 썼다. 그러면 그것이 마치 나의 기억인 것처럼 나에게 남았다. (-)




사람과의 좋은 순간은 늘 그리운 것이었다. 살면서 가져본 적 없는 순간인데 그랬다.




그후로 3주 동안 우리는 동쪽으로 가면서 차 한 대를 나무에 처박아 완전히 박살을 냈고(그때 나는 순간의 기억을 상실하고 왼쪽 다리 전체에 타박상을 입었다. 손문상(가명)은 경찰이 오길 기다리며 길 건너편에 앉아서 박살난 자동차와 나무를 그렸는데 그것이 타고난 태평함인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에 있는 동안에 그저 모든 게 좋았을 뿐이었다)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1년 전인가 어느 술자리에서 잠깐 본 적이 있는 나를 그가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모든 연애는 나를 혼자서 걷게 했다. 걷는 것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효과가 없었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나는 그를 죽이러 가고 말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무조건 걸었다. 그런 놈 때문에 내가 살인자가 될 순 없다. 교도소는 무서운 곳일 것이다. 타인의 통제하에 생활할 수 없을 것이다.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 정신없이 걷다 보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분 같은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격렬한 산책은 기분을 압도한다. (-)




나는 언제나 내가 더 최악이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더 많이 최악일 수 있었는데.




언젠가 또 내가 최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최선을 다해 더욱 더 많은 최악을 안기고 싶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내가 가장 최악의 인간일 수 있도록.




시간에 맞춰 개를 산책시켜주는 사람이 있듯이, 매일 같은 시간에, 특별히 산책을 할 수 없는 날씨가 아닌 이상, 한결같이 집에 방문하여 나를 산책시켜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는 미래에서 나의 상상 속에 도착하는 사람. 내게 못된 말을 하지 않고, 내 몸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가끔씩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 어제와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사람. 산책에서 돌아오면 나를 창가에 앉혀주고, 내일 봐요, 하고서 떠나는 사람. 나는 창가에서 내일의 산책을 기다리는 사람.




세상에는 멍청이들이 있고 (자신이 멍청한 줄 모르고) 이제 나는 언제든 살아가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그나저나 어떤 말로 멍청이들의 입을 닥치게 할 수 있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삶이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야."




바다 가까이 가면 늘 생각한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못 가는구나.




지구는 걸을 수 있는 곳과 걸을 수 없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걸어서 닿을 수 없는 곳에는 다른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인간은 그 사실을 잊고 산다. (-)




고작 책상에라도 잘 앉아 있고 싶다.




책상에 잘 앉아 있다가 잘 때가 되면 잘 자는 사람이고 싶다.




설핏 잠들었다가 느닷없이 깨어나 심장이 쿵쾅대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빛이 좋은 날엔 집 밖으로 나가 햇빛을 쬐는 사람이고 싶다. 




여름에는 바다에 들어가 하루라도 수영하는 사람이고 싶다.




어두운 방에 누워서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왜 산악인이 되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었지?




나는 왜 선원이 되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었지?




나는 왜 죽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었지?




고작 책상에 앉아 있지만 현실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말고. 고작 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정신을 쏟지 말고. 내가 아닌 다른 것을 향해 생각을 나아가게 하고. 내가 아닌 다른 것에서 용기를 찾고.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용기를 사용하고. 누구나 비겁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내 것이 아닌 것은 쓰지 말고.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을 분별하고. 내가 아닌 것으로 불행하지 말고. 나인 것으로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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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 허수경이 사랑한 시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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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타계한 진이정 시인은 나에게는 문우였고, 시에 대해서라면 긴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다방에 앉아서 토론을 하곤 했던 벗이었다. (-)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에 해설을 썼던 황현산 선생님은 진이정이 마치 그의 죽음을 알았다는 듯 마지막 시편들을 썼다고 말했다. 한없는 지적인 호기심, 세상에 대한 따뜻함과 이를 배반하는 세상에 대해 열렬하고도 깊은 시를 쓴 자, 진이정. 그의 제는 어느 절에 모셔져 있었는데 어느 해 나는 서울에서 그의 제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제삿날 등성이에 머물고 있었던 해는 정확히 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작 여섯 살이었을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던 시인의 눈에 머물던 해거름의 지는 해. 우리는 언제나 어린애고, 영혼은 어떤 시간을 살아가도 이렇게 낯설게 우리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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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책 만드는 법 - 원고가 작품이 될 때까지, 작가의 곁에서 독자의 눈으로 땅콩문고
강윤정 지음 / 유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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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편집자로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독자로 책을 읽기만 했지 만드는 과정의 요모조모를 몰랐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고 꼼꼼히 일러주는 강윤정 편집자·작가님이 없었더라면 이 일을 계속 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전도 지금도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는 듯해 자괴감이 들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 적이 많다. 그럴 때면 자신의 중심을 놓지 않고 기준과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자세를 다시 차리게 된다. 연차는 쌓여가지만 모든 업무를 두루 경험해본 것이 아니기에 약한 부분이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몰랐던 부분의 디테일들을 책으로 간접 체험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박시하 시인의 시집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신간 안내문도 그러한 마음으로 쓰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이미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비가 내리고 폭설이 쏟아지는 것부터, 부서지고 쇠락하고 가라앉고 산산조각 나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언가, 누군가 혹은 어딘가가 스러지고 사라지고 지워지며 어둠에 덮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시인이 이러한 시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한 단어 쓸 때마다/ 손가락 한 마디씩 부서지는// 오랜 형벌"(「그을린 방」)을 불사하며 존재의 그림자를 향해 다가간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쓰고자 한다. 결국 시인은 그 그림자 안에 있을 빛과 만나고자 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다. 페허를 바라보는 허무한 시선에 그치지 않고, 침묵과 부재의 허허로움에 지지 않고, 모든 하강의 이미지를 끌어안은 채 가닿을 빛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말이다. _125쪽, 「좋은 책을 넘어 특별한 책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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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의 내면 심리 들여다보기 - 중독의 늪, 충동과 유혹의 심리
아놀드 루드비히 지음, 김원.민은주 옮김 / 소울메이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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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이걸 눌러서 이책을 찻아온 사람이라면,, 이책을읽어낼수밖에없갯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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