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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책 만드는 법 - 원고가 작품이 될 때까지, 작가의 곁에서 독자의 눈으로 ㅣ 땅콩문고
강윤정 지음 / 유유 / 2020년 9월
평점 :

출판편집자로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독자로 책을 읽기만 했지 만드는 과정의 요모조모를 몰랐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고 꼼꼼히 일러주는 강윤정 편집자·작가님이 없었더라면 이 일을 계속 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전도 지금도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는 듯해 자괴감이 들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 적이 많다. 그럴 때면 자신의 중심을 놓지 않고 기준과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자세를 다시 차리게 된다. 연차는 쌓여가지만 모든 업무를 두루 경험해본 것이 아니기에 약한 부분이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몰랐던 부분의 디테일들을 책으로 간접 체험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박시하 시인의 시집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신간 안내문도 그러한 마음으로 쓰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이미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비가 내리고 폭설이 쏟아지는 것부터, 부서지고 쇠락하고 가라앉고 산산조각 나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언가, 누군가 혹은 어딘가가 스러지고 사라지고 지워지며 어둠에 덮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시인이 이러한 시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한 단어 쓸 때마다/ 손가락 한 마디씩 부서지는// 오랜 형벌"(「그을린 방」)을 불사하며 존재의 그림자를 향해 다가간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쓰고자 한다. 결국 시인은 그 그림자 안에 있을 빛과 만나고자 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다. 페허를 바라보는 허무한 시선에 그치지 않고, 침묵과 부재의 허허로움에 지지 않고, 모든 하강의 이미지를 끌어안은 채 가닿을 빛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말이다. _125쪽, 「좋은 책을 넘어 특별한 책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