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유성원 지음 / 난다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노콘 섹스 문제에 관해서 조금 더 얘기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제가 글을 쓸 때 계속 고민했던 부분들이 그런 거였어요. 게이, 남성 사이의 노콘 섹스는 분명히 이성 간의 노콘 섹스와는 다른 맥락이고 삽입하는 남성과 삽입당하는 남성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는 기존의 어떤 젠더관념이나 성적인 수행 면에서 다른 이야기가 나올 부분이어서.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포럼 당시 조금 논란이 되었던 “안에 싸도 돼요?”라는 세션 이름을 제안했을 때는, 저는 기존 성소수자, 게이 단체, 아이샵 등에서 하는 캠페인 구호가 와닿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콘돔을 써라, HIV테스트를 받아라, 하는 말이 좋은 말인데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왜인지, 그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언어나 소구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지 그 부분에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좋은 말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심스럽게 던지는 질문, 섹스를 하다가 처음에는 콘돔을 쓰기로 약속했지만 분위기가 좋아지고 상대가 허락할 것 같으니까 어떤 협상의 수단으로, 네가 이걸 허락하지 않으면 관계를 중지할 거야, 하는 협박이나 내가 더 매력적이니까 나보다 덜 매력적인 너는 이걸 포기해, 라는 방식으로 그게 강제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저는 많이 경험하고 있었고. 


우리가 만남 사이트에서 메시지로 표현하는, 노콘 가능, 안에 싸는 걸 허락한다거나 하는 말들 그런 언어로 다가가야 해당되는 사람들이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트위터에서 이것을 이성 간의 노콘 섹스와 연관지으면서 그러면 앞에 남성인 걸 뜻하는 ‘형’이라는 말을 넣어주지 그랬느냐, 해서 제가 그 의견을 적극 수렴에서 책에는 “형, 안에 싸도 돼요?”라고 했는데요. 그분께는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근데 하나 또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지금 이성 간의 관계에서 말씀하셨던 스텔싱이라든지 한국 사회에 현존하고 있는 젠더적인 위계, 그 폭력을, 상황들이 해소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요원해 보이는 이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 말이 제대로 가닿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분명히 그걸 고려해야 되고 노콘 섹스라든지 안에 싸도 돼요?라는 말에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이 계속 저에게도 어려움으로 남았었어요. 다만 저의 경우에 제가 경험한 게이 사회에서 콘돔 사용 여부가 계층을 가르는 하나의 상징이나 지표 같은 것이었어서, 저는 나와 동일한 삶을 살거나 동일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을 판별하는 방식으로 노콘이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 물었던 거 같아요.


게이로 정체화하면서 배우게 되는, 사회화된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몸이 인기 있고 권력을 갖는지 배우는 과정 같아요.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영역은 세분화되지만 대체적으로 더 나은 몸이 있고 수치심을 가져야 하는 몸이 있다고 느끼게 되죠. 저는 사람의 몸이 그의 삶이나 그가 살아온 역사가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어떤 사람이 근육질에 자기관리가 잘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 영역만 뛰어난 게 아니고 자신을 그렇게 관리하도록 살아오게 한 배경이나 영역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돼요. 


글에서 미청년, 젊은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그 사람의 신체조건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제가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성을 지닌 것과 어떤 사람이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온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게이인 경우는 다르다고 봤거든요. 몸이라기보다는, 몸으로 상징되는 그 사람의 삶 전체, 제가 그렇게 될 수 없고 살 수 없었던 삶 자체를 욕망했던 거 같아요. 그렇지만 그들과 관계맺는 데 계속 실패하게 되면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고 욕망해도 안전한 것, 상처받지 않는 것들, 원하면 가질 수 있는 것들로 주변을 점점 구성해나갔어요. 그러면서 제가 선호한다고 말하게 되는 관계의 양식과 만나는 대상이 점점 변화하는 거예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에 있겠지? 했는데 잘 보이지 않았어요.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언어나 글로 접하기는 어려웠고,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문학이 아니더라도 다른 텍스트에서 찾으면 그것을 저의 경험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는 시간들이었죠. 출판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한 게 2013년 무렵인데 계속 들었던 생각은 이런 책은 세상에 나오는데 어떤 글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가, 이런 생각을 계속 했거든요. 누군가가 선택하는 거잖아요. 이런 이야기는 세상에 있어도 돼, 이런 이야기는 세상에 있으면 안 돼, 이런 기준 같은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거기에 부합하는 글을 쓰도록 훈련되는 느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거나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은데 그 방법을 계속 모르는 채로 쓰기만 하는 거죠. 이게 언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 그런 날이 찾아오기는 할지, 그 전에 내가 사라지지는 않을지 그런 생각들을 계속 하면서 저한테 다짐하듯이 했어요. 내가 누군가가 읽기에 불편하지 않고 편안한 이야기를 쓴다면 그 편안한 이야기는 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누군가에게 불편하거나, 왜 이런 글을 썼지?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글을 써야 된다는 마음이 제게 있었고 그런 이야기에 분명히 저와 같은 사람, 비슷한 사람이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런 글을 계속 기다렸으니까. 세상에 있는 저와 비슷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방법으로 글을 썼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 사람이 읽고 싶어하는 글이 뭘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원할까? 나만 할 수 있고 내가 아니면 안 할 이야기들을 원할까. 이걸 물어봤을 때 저는 후자였거든요. 


HIV/AIDS 운동의 성과가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좀 문제적인 상황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안 좋은 말일 수 있는데 저는 한국에 HIV감염인 수가 너무 적다, 좀 많아야 된다. 저는 한 백만 명 정도면 좋을 거 같거든요. 백만 명 정도면 한국에서 병원을 못 간다거나, 손가락이 절단됐는데 치료를 안 해준다거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어떤 사람이 몸에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모욕해도 된다거나 직장에서 해고해도 된다거나 우리의 커뮤니티에서 배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건강할 수 없거든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게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모든 삶의 조건과 토대가 동일한 채로 출발하지 않는데 마치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발선이 같은 것처럼 관계맺게 되는 커뮤니티가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거든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비용이나 입고 다니는 옷, 하는 말, 문화, 겨울이면 스키를 탄다거나 하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울리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 어떤 시절엔 굉장히 수치스럽기까지 했어요.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삶의 조건이 다 같지 않은 곳에서 어떤 사람에 대고 너는 이런 조건을 가졌으니까 죽어도 돼, 너는 부랑자니까 추운 겨울에 갈 곳이 아무데도 없어도 돼, 너는 일을 하지 않잖아, 이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렇게 내몰리게 되는 조건과 과정을 살펴야 된다는 거죠. 누구나 처지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저는 오히려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나. 돈이 없어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이 감염되었을 때 그 부담을 사회 전체가 짊어지게 된다, 이런 것을 배우고 있잖아요. 그래서 취약한 부분, 사각지대가 있는지 살피고 있고. 


HIV 같은 경우도 혐오세력이 물고 늘어지는 부분은 동성 간 감염률이 높다는 건데 어처구니가 없잖아요. 동성 간 감염률이 높으면 이들을 어떻게 지원해줄 건지, 어떻게 낮출 건지 살펴야 하는데 그들의 해결책은 동성애를 하지 말래요. 그러면 답은 간단하죠. HIV에 걸리지 않으려면 다 죽으면 돼요. 죽으면 바이러스에 걸릴 수 없잖아요. 그런 식의 해결책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 있을 수 있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고민을 코로나가 시켜주고 있지 않나. 나는 잘살고 쟤는 못살아도 돼, 이게 아니라 저 사람이 못살면 그 영향을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내가 받게 된다는 사실을.


저는 죽어가는 방식으로서의 살아 있음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글을 쓸 때 항상 느끼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거였어요. 내가 처한 어떤 처지나 상황 같은 게 너는 죽어야 돼, 너는 살아야 할 필요가 없어, 넌 살아 있을 이유가 없어, 너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거고 미래는 나아지지 않을 거야, 라는 그 어떤 반복되는 말 앞에서 제가 그것을 받아적거나 쓰는 것만으로 그 쓰는 동안은 제가 살아 있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어떤 사람이 죽는 데 10초가 걸린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죽어가고 있지만 10초 동안은 살아 있는 거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글쓰기를 이해했던 시절이 있었던 거 같아요.


물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윤리적 기준에서 이 일은 나쁜 일이고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일이야, 하는 게 있을 거예요. 저도 당연히 그런 게 있고. 그 기준을 넘어서지 않는 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법이나 규칙, 암묵적인 합의로 규정한 ‘하면 안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늘 의문과 시험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이것이 정말 나쁜 거야? 노콘 항문 섹스가 나쁜 거야? HIV감염 위험이 있는 사람과 노콘 항문 섹스를 하면 HIV에 걸릴 수 있어서 나쁘다고 한다면 HIV에 걸리지 않는 방법을 제공해줘야지 그걸 제공해주지 않는 게 나쁜 일 아닐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돼요. 어떤 사람들이 자기가 살아 있으려고 수행하는 일들, 이 책에 묘사된 유성원의 모습이 누군가의 눈과 가치관으로 봤을 땐 이해할 수 없고 나쁘다라고도, 안타깝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해도 저는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방식으로서 그 시기를 지나왔다면 저는 그 행위를 나쁘다고 보고 싶지 않거든요. 판단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 사람이 처한 조건은 해결해줄 수 없으면서 그 사람이 처한 조건 안에서 분투하는 노력은 너무나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물론 이것은 그걸 변명한다거나 이게 감정적인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야, 라고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까의 당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드려야겠지만. 


글을 쓰는 것은, 만약 여러분이 세상에 혼자 남았는데 당분간 죽을 예정도 아니에요. 고양이도 없고 개도 없고 아무 생물도 없는 채로 앞으로 50년 정도를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느꼈던 어떤 외로움이나 고립감은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훌륭한 알바생,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왜 일을 저렇게까지 하지? 싶은 사람은 될 수 있는데 그리고 저는 그런 여러 면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면만이 나라고 보여지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받아들여지는 편안한 나만이 나라고 생각되고 싶지 않아서 계속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썼던 거 같아요.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이 제 글 친절한 설명에도 나오는 감염인의 콘돔 없는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이거든요. 내가 나를 긍정하고 실천하는 것과 별개로 사회에서 법으로 명문화해서 나의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삼는 일은 현실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거 같아요. 그냥 나만 혼자 괜찮다고 하면 되는 게 아니구나, 뭔가를 바꿔야 되는구나. 


저는 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사우나에서 만났을 것, 그런 찜방이나 디브이디방에서 만났는데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는 경우에 굉장한 동질감을 느껴요.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노콘 섹스를 선호하게 되었을까 (웃음) 하면서 저의 서사와 이분의 한 많은 삶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저 같은 경우는 마음에 들어도 상대가 콘돔을 쓰길 원하는 경우는 아, 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삶을 경험해왔고 그러니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조심하게 되는 것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같지 않다는 건데요. 우리가 합의라고 얘기하지만 합의를 과연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거든요. 넌 정말 동의한 거야, 넌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걸 허락한 거야, 하고 상대가 응, 응, 정말, 하고 각서까지 쓰고 혈서까지 썼다고 해도 그 사람이 사후적으로 그 경험을 되돌아봤을 때 그게 정말 자신이 동의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문제적인 고민이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조심해야 되는 사람으로 콘돔 사용을 원하는 사람을 꼽죠. 나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겠구나, 그러니까 이런 부분들을 좀더 예민하게 봐야겠다, 생각하게 되고요. 


프렙 얘기도 했었는데 프렙은 비감염인이 복용하면 예방약이고 감염인이 복용하면 치료제잖아요. 친구사이 같은 곳에서 왜 프렙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하지 않을까 예전에 잠깐 했었는데 제가 상대방의 감염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프렙을 권했을 때 상대가 감염인일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조심스러워서 이걸 이야기하기 까다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노콘 섹스를 하는 파트너들 대상으로 프렙 임상 연구가 진행된다거나 지원 사업이 있으면 카톡으로 근처 병원을 알려주고 가보라고 하는데 상대방이 저에게 감염 사실을 감추고 있다면 그런 메시지를 받고 어 그래 가볼게, 하더라도 가지 않는 그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생각은, 우리가 이렇게 신체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접촉하고 기쁨을 느끼고 심지어 사랑을 느끼기까지 한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 상대에 대해 이렇게 몰라도 될까? 상대가 HIV감염인이라면 그가 미검출 상태인지 아니면 어떤 사정으로 약을 못 먹고 있는 상태인지 최소한 우리가 관계맺으면서 발견하고 알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사람과 섹스를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처해져 있는 어떤 조건들이 그런 부분들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게 하고 우리가 만남을 가지는 공간에서는 그런 것들이 금기시되고 콘돔과 젤 사용, HIV검사를 받으라는 말이 굉장히 공허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돼요. 이런 익명성이라는 것이 상대방에게 폭력을 합리화하기 좋은 핑계잖아요. 내가 저 사람을 모르고 저 사람도 나를 모르니까 나에게 좀 나쁜 짓을 하거나 찜찜한 짓을 하더라도 두 번 다시 안 볼 거니까, 혹은 내가 누군지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를 테니까 괜찮아 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을 점점 줄여나가야 되지 않나? 하는 여러 생각이 드네요.


분개하는 경우 어떻게 견디나, 저는 이것이 저한테는 글쓰기의 방식이기도 했거든요. 사실 저는 글을 쓰면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뭐냐면 저를 빡치게 한 상황을 글과 맞바꾸는 느낌? 나를 분노하게 한 이걸 자원으로 이 글을 썼으니까 됐다,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저 같은 경우는 사춘기 때부터 글을 썼는데 글에 모든 나쁜 말을 다 썼어요. 저는 누가 저를 화나게 하면 그 사람을 글 속에서 정말 난도질을 했거든요. 그 사람을 현실에서 보면 미안할 정도로. 내가 좀 심했구나. (웃음) 그런 묘사를 악마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하고 끔찍하고 내가 상상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고통을 줬거든요. 나를 힘들게 하고 모욕하고 수치스럽게 하고 창피 준 사람을. 그런 일을 반복하다보니까 분노는 글 속에 있는데, 한 번 크게 화를 내면 같은 일로 두 번 화를 내기가 뻘줌해요. 이미 화를 한 번 내서 멋쩍어지는데 그런 부분이 저에게는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죠.


문제는 이것이 사회조건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할 때는 무력감도 같이 오는 거잖아요. 나의 이 분노가 딱 정확하게 가닿아서 물리쳐야 될 대상을 물리치고 바꿔야 할 조건이 바뀌고 이러면 참 좋겠는데 그 조건은 제자리인 상태에서 분노만 계속 안게 되니까 그 부분이 어려워요. 저는 이제 에이즈 운동에 대해서도 잘 몰랐는데, 요양병원 대책위 했던 선생님이 했던 얘기 보면, 에이즈 환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했는데 거기서 인권침해가 일어나서 감염인이 사망하고 거기에 대해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서 요양병원 대책위를 마련하고 긴 시간이 지났는데 그 대책위를 가리켜서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는 대책 없는 대책위다. 저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더라고요. 되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이걸 계속 하셨어요? 책에도 잠깐 나오는데, 저는 여기에 발을 담근 것도 아니고 잠깐 기웃거리기만 한 건데도 이게 1년을 하면 끝난다, 2달을 바짝 하면 끝난다 이런 것이 아니고 어떤 언어로 어떻게 이 시스템에 접근해서 내가 원하는 바를 관철시켜야 할지 깜깜한 상황에서 단지 나에게 누군가가 어떤 사정을 호소하고 그걸 외면할 수 없어서 이 판에 뛰어든 사람들이 굉장히 그 앞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이 분노를 무력감으로, 그래서 문제 제기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으니까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패배감에 젖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말 누구도 풀기 어려운 문제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분개할 만한 상황 앞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거기에 너무 나의 모든 것을 잃지 않도록 하는 거. 내가 정말 뛰어나고 매력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내가 무슨 한마디만 하면 달려들어서 그걸 다 바꿔주고 받아들여주고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자명한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분노에 내 모든 것이 잠식되지 않게 하는 아주 작은 나만의 무언가라도 발견하려는 노력을 계속 해야만 이걸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저에게는 의미 있었거든요. 이게 개선될 것 같지 않은데 글을 계속 쓰다보면, 제가 찜방에 가서 누구한테 거절당했거나 폭력적인 관계를 맺었다면 그 경험을 1년 전에도 했는데, 3년 전에도 한 거예요, 그렇게 누적되다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동일한 경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내가 겪어본 경험상 여기까지는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값을 지닌 상태로 그걸 경험하는 것이어서 게임을 한 판 다시 하는 느낌으로. 저는 그 방식이 기록이었는데 여러분에게 그게 어떤 방식일지는 모르겠어요. 각자 누구나 내가 돈을 받거나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닌데 꾸준히 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거든요. 그것을, 그 힘을 발견하고 소중하게 지속해나가는 것이 이 분노에 자신이 상하지 않는 아주 작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두번째 질문은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는데 나의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와 조건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는 그래서 말을 안 했어요. (웃음) 저는 말을 안 했어요 그냥, 글을 썼어요. 말을 해도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너무 잘 느끼고 있거든요. 내가 저 남자들, 사람들과 자리에 있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정해져 있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직장생활에서 성원씨, 이거 괜찮아? 물었을 때 아뇨, 못하겠는데요, 하면 안 되는 상황 있잖아요. 내가 너한테 이런 무례와 큰 폭력을 저질렀는데 이것에 대해서 너는 나한테 문제 제기하지 않을 거지?라는 말에 문제 제기 할 거예요, 라고 할 수 없으니까 네 괜찮아요, 하고 말잖아요. 그게 우리 현대 직장인 우울증의 원인이고. 그런 면에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언어, 사람들이 생각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형식의 말하기를 발견해야 되고 그런 것을 찾아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는 저 사람에게 말하지 않지만 내 경험이나 느낌, 감정 같은 것은 어떻게든 남아 있게끔 나의 것으로 만드는 길이 뭐가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저는 인류학이라는 분야를 잘 몰랐고 인류라는 말이 너무 크게 느껴졌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인류라는 것을 이루는 아주 작은 어떤 한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이런 학문인가보구나 하고 혼자 오해 아닌 오해를 해보네요.


중요한 건, 저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검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검열의 기준이 중요한데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윤리,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숙고했을 때 그것이 하면 안 되는 일이어서 안 하는 거여야지, 사회문화적으로 결정돼 있다고 생각해서, 그게 공고하다고 느껴서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각자 삶에서 갖고 있는 질문들, 풀어내야 하는 숙제들을 안고 씨름하실 때 모두가 가는 방향이 아니라 실패하는 방향으로 가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도 후대를 위한 멋진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그런 실패의 순간을 제가 좋아하거든요. 누가 아프다고 하면 좋아하고 누가 망했다고 하면 좋아하고 누가 속상하다고 하면 좋아하니까 그런 이야기 있으면 저에게 많이 나눠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11월 21일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인류학과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으로 본 몸의 출현' 북토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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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앞에 두 번 깨어나는 - 사랑하거나, 고독하거나, 소설가 오성은의 영화 소리 산문
오성은 지음 / 책밥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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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소중책이 출간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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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최승자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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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생토록 어떤 순간을 기다려왔는데요, 그게 그 순간일까요? 그 순간에 몹시 아플까요? 「심장론」 부분

나더러, 안녕하냐고요?/그러엄, 안녕하죠. 「안부」 부분

그것들이 나를 지나치기 전에, 내가 먼저 통과한다./일번 국도에서, 통과할 것으로서의 이 세계,/스쳐 지나가야 할 것으로서의 이 세계를. 「일번 국도」 부분

산다는 것은 결국 싼다는 것인데 「“그릇 똥값”」 부분


최승자의 이 시집을 읽으면 벼락이 내리치거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어떤 순간을 기다려온 나와 그 전조에 무심한 세계를 일별하게 된다. 시인은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고, 우리가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뉴스를 듣고 기뻐한다. 그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면 세상을 이렇게 창조해놓은 신을 죽여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도대체 이런 스토리를 쓴 작자는 누굴까./죽여버려야지, 나는 그 안의 한 고통스런 배역으로 존재하긴 싫으니까”(「구토」).

시인에게 눈은 오직 길 잃고 헤매려 만든 연기 가득한 스크린이자 허상만을 보려 만든 필름이다. 스크린 안의 무서운 형상에 놀란 눈들은 그 필름을 행복한 필름으로 고치려 애를 쓰다 죽어버린다. “영원한 고쳐 쓰기의 과정, 구제불능의 패러디”(「눈이란 무엇인가」)인 이 세계에서 나는 끊임없이 만지고 싶어하는 손, 맛보고 싶어하는 혀, 냄새 맡고 싶어하는 코, 듣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는 귀와 눈, 생각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고서 “먹어도 만족할 줄 모르는/거대한 식귀”이다. 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허섭스레기들에 목이 말라/쓸어담기만 하는 거대한 동냥 바가지”였으며 ‘그것들의 조립이 나라고 믿었’다(「또다른, 걸인의 노래」). 

시인은 “패혈증처럼 숨가쁘게,/어질어질” 진달래가 피어오르는 바깥의 봄을 견디지 못하고 쪽문을 닫아버린다. 시인은 자신이 ‘닫혀버린 집안 한구석에서 무게 없이 깊이깊이 가라앉는 인조 장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용서한다(「아득한 봄날」). “네 몸, 내 몸을/나의 눈, 나의 귀, 나의 코, 나의 입을.” 그리고 썼던, 쓸 모든 시를(「나는 용서한다」). 시인은 이제껏 먹여 키워왔던 슬픔들, ‘사실이었고 진실들이었던 그 대책 없는 픽션들’을 밟아버리기로 한다. 한때는 그것들이 나를 뜯어먹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야말로 그것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먹여 키웠는지 알고 있다고 고백하면서(「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이제 시인은 ‘긴 여행의 한 출발점에서’, 자신에게 이것이 너의 삶이라고 속삭이며 삶의 무대를 꾸며주고 삶의 줄거리를 하염없이 이어온(「?」) “태초의 빈 공책” 위에 아무것도 더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더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라고”도 그 위에 더는 쓰지 않는다(「빈 공책」). 그제야 시인은 자신이 디딘 땅, 그 흙 속에서 말없이 천 년, 만 년 기다린 신부를 발견한다. “몸 다 굳어져/흙 인형으로 변했다가/이제 마침내 흙으로 부서져버릴”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납빛 절망의 눈을(「연인들 1」).

어느 날 아침, 방에서 눈을 떴을 때 시인은 움직임이 없는 돈벌레를 발견한다. 볼펜으로 밀어보아도 딱 그만큼만 밀려나는 작은 벌레. 섬세한 가는 다리들을 수없이 지닌 그것은 명상에 잠긴 듯 고요하다. 그러다 잠시 후 돈벌레는 얇은 껍질을 벗고 더 짙은 고동색의 벌레가 되어 사라진다. 꼬물거리며 사라지는 작은 돈벌레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시인은 판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러다 시인이 떠올린 것은 타로 12번 카드, hanged man이다. 빚을 갚지 못한 벌로 교수대에 한쪽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죽음을 당한 남자. 그 카드를 거꾸로 놓고 보면 남자의 얼굴은 평안하다. 시인은 묻는다. “죽음보다는 속세의 모든 빚과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쪽이 훨씬 덜 괴롭다는 뜻일까.” 벌레의 허물을 버리려 볼펜에 꿰어 들고 마당으로 나간 시인은 마당 한 끝에서 거미집을 발견한다. 분명 어제 부숴버렸던 것인데 같은 자리에 다른 거미가 커다랗게 집을 지어놓았다. 몇 개의 이슬방울들을 매단 둥근 거미집은 빛 속에서 “제가 전 우주인 것마냥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돈벌레 혹은 hange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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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연필 -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아무튼 시리즈 34
김지승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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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연필 김지승 북토크 중에서

10. 30. 말과활아카데미 3층


연필 수집하시는 분들 중에서 수집에 의미를 두시는 분도 있고 실사용자, 실제 사용이 중요하신 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양쪽에 다 걸치고 있어서. 저는 무조건 아무리 좋고 귀해도 일단 써야 돼요. 깎아야 돼요. 근데 그러면 새 연필로 되돌릴 수 없으니까 특별한 날을 골라요. 새 글을 쓴다거나.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아니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 쓸 때. 주변에 책 쓰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최근에는 한지혜 작가님의 소설집이 나왔는데 거기 나오는 어머니의 출생연도 정도 되는 연필을 골라서 그걸 깎아서 줄을 긋는 용도로 쓰고 있어요. 


제가 갖고 있는 것 중에 좀 오래된 게 이게 1890년대 연필이에요. 훨씬 예쁘고. 이걸 누구에게 선물하면 1890년대 나무를 선물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 중에 1890년대만큼 오래된 것이 없을 거잖아요. 그냥 연필이다, 해서 주면 그런데 이게 1890년대 나무고, 흑연이다. 그리고 흑연은 점토를 섞어서 만드는데 흙도 여기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건 그냥 연필이라는 사물보다는 과거로부터 오는 뭔가 같아서 빈티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중고신인 같은 작가거든요. 지금까지 책을 안 쓴 게 아닌데 제가 그전에 쓴 책들은 주어의 자리에 단체나 여성 노인의 이름을 놓고 썼어요. 저는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책은 주어의 자리에 ‘나는’을 박아놓고 쓰니까,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글을 쓰지? 제 주변 여성작가들도 창작에 대한 억압이나 공포가 한층 더 큰데, 잠이 안 오더라고요. 글을 써놓고 꿈에 그 글에 대해 비판받는 꿈. 내가 뭐라고. 내가 이런 글을 쓰면 내가 무슨 대단한 삶을 사는 게 아닌데 나까지 책을 내나. 문제가 뭐였냐면 매주 강의를 하면서 여러분의 글을 쓰십시오, 그러는 거예요. 매주 여러분을 앉혀놓고 여러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염치가 없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집에 돌아가는 마을버스에서 머리를 박으면서 니가 그럴 일이 아니지. (웃음) 그 수업이 아니었으면 못 썼을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걸 안 쓸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김혼비 작가가 언니, 나는 이제 남성이 쓴 연필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아, 라고 해서. 자기는 꼭 내가 썼으면 좋겠다고, 주변에서 많이들 그런 이야기를 해서 등 떠밀리듯 앉았는데 쓰다보니까 그런 거 같아요. ‘나는’이 무서우니까 자꾸 타자를 불러오게 되더라고요. 내 안의 타자를 끌어오든, 기억 속의 타자를 끌어오든 해보자 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있더라고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 이야기를 슬쩍. 그런 글을 쓰려고 엄청 고민을 하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잘못 생각했던 건 내 얘기보다 그분들을 등장시키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살아 있는 사람은 쓰기가 어렵고, 그래서 죽은 사람 아니면 아주 멀리 있는 사람에게. 실비아 할머니는 한글을 배우고 계시는데, 나오는 글의 제목을 찍어서 보내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한글로 쓴 좋아요를 제게 보내주셨어요.


이 책을 쓸 때 제가 몸이 많이 아팠어요. 생에 대한 감각이 마치 깜깜한 밤에 안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수직의 감각으로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허방을 딛는 듯한 때가 찾아오고 그러다 땅에 닿으면 수평의 감각으로 살아가는데... 그 수평의 감각. 내가 내 땅에 발을 붙이고 내 감각을 가지고 걸어가야 되는 시기가 왔구나, 늙음이나 노화, 그런 것으로 내 몸에서 받아들이기도 하는 순간 같아요. 죽음에 대해서도 달라졌고, 이 연필이라는 게 아이러니하거든요. 좋아해요. 근데 쓰면 없어지잖아요. 소멸의 순간을 같이하는 거거든요. 사람의 죽음하고도 비슷하지 않나. 그런데 마지막에 몽당이가 되게 귀여워요. 최선을 다해서 깍지 끼워서 쓰는데. 그게 예의인 거 같아서. 최선을 다해서 쓰는 거. 사용하는 거.


(-) 주로 여성이었던 비서는 연필을 들고 무언가를 ‘임시로’, ‘예비로’ 쓴다. 마지막 결정, 명령, 실행은 대부분 남성 상사의 결재로 이루어지며 공공의 의미 체계를 획득하는 결재란의 그 표식은 연필이 아닌 볼펜이나 만년필로 남겨졌다. 그곳은 연필의 자리가 아니다. 연필의 자리가 아니면 여성인 나의 자리도 아니기 쉬웠다. (-) 공식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문서의 효력과 그것을 발생시키는 서명으로부터 여성은 지속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사람이 잘 부서지는 존재이고, 의아할 만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안다’고 말하기보다 ‘모를 수가 없다’고 해야 한다. 삶이 환기시키는 건 그런 거다. 우리는 그냥 알기보다 대체로 모를 수가 없는 경험으로 자란다. 상담가가 내려놓은 연필 끝이 뭉툭해져 있었다. 흑연은 잘 부서졌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흑연도 강하지 않았다. (-)




다이아몬드와 흑연 구성 성분의 일치와 구조적 차이를 소비하는 한국적 방식은(-)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예시로 곧잘 쓰였다. 흑연처럼 헐렁하고 약하고 잘 부서지는 이들은 패배자가, 고온과 고압을 견딜 만큼 단단한 다이아몬드는 승자가 되었다. (-) 모두가 동일한 욕망을 즉, 다이아몬드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할 거라고 전제한 글들이 많았다. 그중 ‘작은 자극에도 무너지는 흑연 같은 삶’을 나무라는 표현은 당황스럽게 문학적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했다. 다른 것들과 포개지고 더해지고 섞이는 삶을 상상하는 건 무너지고 부서져본 사람들이다. 홀로 단단할 수 없어서 ‘약한 인간 1’과 ‘약한 인간 2’가 손잡고 ‘좀 덜 약한 인간들’로 살아가는 먹먹함에 대해 아는 것도 그들이다. 몇 세기에 걸쳐 흑연에 점토(주로 고령도) 등을 섞어 강도를 높이고 잘 부서지지 않는 연필심을 만드는 데 투자한 것도 흑연의 약함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들이었다. (-)




사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그 말이 여전히 내 옆에 있다. 그럼 나는 잘 무너지고 부서지는 사람들 곁에 있기로 한다. 강함과 약함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그걸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그 각각의 의미와 위계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를 자문하면서. 사람이 어떤 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며 그 무너짐이 어떤 죄책감을 만드는지에 예민할 수 있는 건 내가 잘 무너지고 부서지는 사람이어서다. 모를 수가 없다. 모른 척은 해도. 연필을 쓰는 사람은 부서진 흑연 가루가 종이의 섬유질에 남는 것이 연필 필기의 원리임을 매 순간 경험한다. 종이 위에 남는 건 바로 그 부서짐의 노력이니까.






(-) 시선이 마주치는 것들마다 나에게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다 끝났어. 나는 원하는 대로 살지도, 살지 않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계속 화가 나 있었다. 분류하고, 버리고, 팔고, 잊기로 마음먹는 일련의 정리 수순이 내게는 그 화를 표현하는 방식이자 정말 정리하고 싶은 걸 숨기는 방어의 몸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분명했던 게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졌다. 나 자신을 많이 속인 일일수록 그랬다. 단념과 관련된 일일수록.


(-) 가지고 있던 책의 3분의 2는 버렸고, 어떤 이유로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들만 차곡차곡 상자에 담았다. 책 한 권 구입도 부담이 되던 시절에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내게 선물하고는 도로 빌려가곤 했던 친구들의 메모가 남은 책들이 섞여 있었다. 영어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펑펑 울고 있는 나에게 “당신이 표현하는 것보다 깊고 넓은 세계가 당신 안에 있다는 걸 안다”라고 했던 지도교수의 논문과 저작도 넣었다. (-)






연필의 나무가 연필을 구성할 때는 심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심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연필에서 깎여나갈 때 나무는 칼날과 결을 맞춰 부드럽게 움직이고 저항이 덜해야 합니다. 언뜻 모순처럼 느껴지는 이 이상적 조건을 한 나무에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몇 세기에 걸쳐 이어졌지요. 그들 덕분에 나는 강하면서 결이 고운 또는, 단단하게 사라지는 무언가가 세상에 있다는 걸 압니다. 늙음과 사라짐이 쇠약함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당신의 손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의 97% 이상이 이미 사라지고 없어요. 인간이라고 영원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쓰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새벽이고, 혼자일 때, 영원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인간은 홀가분하고, 깜빡하거나 놓친 일에 대한 죄책감도 어렵지 않게 지운다. 1분에 세계를 이루는 인간 존재 중 100여 명이 죽는다고, 한 시간이면 6,000여 명이, 그럼 하루면… 이런 생각들은 죽음을 이해하는 데 물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죽음은 “아침이 행복해야 하루가 행복해요” 하는 사람과 “새벽 3시에 행복해야 나를 사랑하기 수월하다”라고 방금 쓴 사람이 어디쯤에서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퍼지는 쓸쓸함 옆에 있다. 영원해야 할 이유가 없는 누구도 출생률로 와서 사망률 숫자로 사라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어서 한쪽이 사라지면 ‘과 사람’이 남는다. ‘과’는 관계다. 그중에서도 사별은 만나지 못하면서 계속 헤어지지도 못하는 이별이고, 만나지 못한 채 계속계속 재회하는 일이라서 우리는 죽은 사람의 무엇으로 계속 살아간다. 겹겹 아픈 이름으로. 아파야 기억을 하니까. 기억해야 새벽 3시를 좋아할 수 있으니까.


삶에 그리 애착이 없던 나도 투병 중에는 새벽에 자꾸 잠이 깼다. 잠들 때는 ‘이렇게 끝나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을 붙잡았고, 30분 만에 잠이 깰 때는 “아, 아직!” 하는 탄성을 앞세웠다. 그렇게 잠이 깨면 종말 이후 혼자 세상에 남은 느낌이란 게 그리 먼 감각이 아니었다. 보통 새벽 3시. 간혹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긴 꼬리로 이어지는 날이면 잠들기가 가장 위험한 일 같았다. 내가 잠들면 누가 나를 보호하지? 불면은 그런 질문과 함께 오곤 했다.


혼자이고, 공기의 흐름이 들릴 정도로 고요하며, 낮에 붙잡고 있던 세상과의 연약한 연결점이 사라진 새벽, 잠드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 되면 나는 거실에 난 작은 창 너머로 언뜻 푸른빛이 돌기 전까지 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몸이 힘들면 창이 보이는 곳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아픈 사람에는 창이 신전이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온통 기도다. (-)




“엄마, 죽은 사람 유골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주는 장례 서비스가 있대요.”


“엄마 죽으면 만들어 너 가져. 비상금으로 갖고 있다가 힘들면 팔아 쓰고.”


팔 수 있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고 굳이 말하진 않았다. 알았다고 했다. 엄마가 물었다.


“혹시 통뼈면 다이아몬드를 더 많이 만들 수 있고 그런 걸까? 알아보고 알려줘. 엄마 운동 열심히 할게.”


언젠가부터 엄마가 뭘 ‘열심히’ 한다고 하면 나는 눈물이 났는데, 다이아몬드 많이 만들어주려고 운동 열심히 한다는 말에는 웃음이 났다.




(-) 아픈 몸은 자주 멈췄다. 막막하다가도, 기도하다가도, 신나서 유서를 쓰다가도. 대신 시간이 흘렀다. 시간 속에서 천천히 회복되었다가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하던 몸은 그 반복을 기록하는 데에만 연필을 썼다. 반복은 규칙을 만들고 규칙은 중요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감각, 최소한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려면 규칙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아파서 줄곧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보다 투병과 삶이 비균질적으로 섞여 어떤 예상, 각오, 낙관, 두려움의 주기가 제멋대로인 상태가 몇 배 더 힘들었다. 규칙적인 통증이 불규칙하고 비균질적인 평화보다 나았다. 둘 중 선택하라면 통증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어둠을 사랑하도록 훈련되는 걸까.




투병기와 회복기를 명확하게 가르는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런 게 있기나 할까.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투병한다는 건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믿어야 겨우 지나가는 시간이 있긴 했다. 그런 시간들을 오래 지났다. 나는 이제 전혀 아프지 않은 상태나 조금도 불편하지 않고 말씀한 상태가 어떤 건지 기억하지 못한다. 투병이자 회복이었던, 다른 피와 몸의 시간을 통과하며 병이 내게 남긴 건 어딘가 조금쯤은 항상 불편한 채로 살다가 연필이 되겠다는 꿈. 꿈이 이래도 되는 건가, 하면서 나는 다이아몬드와 흑연과 같은 탄소로 이루어진 숯을 떠올렸다. 꿈보다 쉼 같은 느낌으로. 마르셀 그리올의 『물의 신』을 읽다가 연하게 스며들던 그 느낌처럼.


‘연필을 아낀다’를 연필 쓰는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면 ‘연필을 즐겁게 자주 쓴다’이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몽당연필이 되기까지 이 세상에서의 소멸을 돕는 방식으로의 아낌이다. 연필들은 천천히 사라진다. 그들을 아끼는 사람들의 손에서. 『물의 신』 속 도곤족들도 그 아낌의 방식을 잘 알았다. 마르셀 그리올의 딸, 인류학자 즈느비에브 칼람 그리올은 마르셀 그리올이 죽었을 때 이 인류학자의 연구와 글로 세상에 알려진 도곤족이 보여준 정중한 인사를 서문에 남겼다. 그들의 전통 장례 의식에는 지상에서의 노동이 끝났음을 의미하며 고인이 쓰던 괭이를 부러뜨리는 순서가 마지막에 있었다. 그들을 이해했던 한 인류학자에게 이 원시 부족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소멸을 선언했다. 괭이를 대신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마르셀 그리올의 손에서 떠나지 않던 노동의 도구이자 생의 도구를 부러뜨린 것이다. 그의 연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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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역사 -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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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책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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