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아무 생각 안 하고 시간 때우기에 제격이기 때문이에요. 깊은 걸 읽으면 내가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하게 되면 내가 변해야 하니까. 그게 두려웠어요. 그런데 나처럼 생각하기 싫어했던 놈이, 생각하기 싫어서 그 몇 분 남는 시간에 무협지 읽던 놈이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생각이란 걸 해요.
처음에는 파업 참여할 때 제 마음속에는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단 생각도 있었고 모멸감도 있었고 부조리에 대해 화가 난 것도 있었어요. 지금은 '과연 내가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그것이 나의 일상이었을까? 나의 일상이라고 믿었던 그것이 정말 돌아가고 싶은 일상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혼자 밥 먹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청소하고 혼자 일하고 혼자 책 읽고... 그 생활로 못 돌아갈 것 같아요. 분노나 모멸감이나 무력감이 주된 동기였을 때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싸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분노나 무력감이 동기가 아니니까 목적의식도 오히려 흐릿해요. 고민은 지금이 더 깊어요. 매일같이 고민합니다. 매일같이 선택합니다. '내일도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매일 물어요. '내가 정규직화 걸면서 싸우고 있는데, 정규직 돼서 쌍차 돌아가면 뭐할 건데?' 갈등이 많고 목적이 불분명해졌어요. 정말 무엇이 내 목적인지가 불분명해졌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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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민이랑 저랑 염진영이랑 "부당한 해고다. 징계해고가 부당하다."라고 주장하며 재판까지 했지만 대법까지 졌어요. 대법까지 다 졌기 때문에 공장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어요. 공장에 돌아가는 것도 순서가 있어요. 무급자가 제일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에 희망퇴직자, 그다음이 해고자겠죠. 그다음에 우리(징계해고자)까지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대법에서까지 졌으니 그만둬야 하나? 이제는 진짜로, 정말로 돌아갈 가망이 아예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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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충렬에게는 풀고 싶은 질문이 한 가지 있다. 그해 2009년, 그는 어떻게 해야 했던가?
우리 모친은 나한테 그러죠. "이 미친놈아, 그냥 처음에 가만히 있지 뭐가 잘났다고 나섰냐." '산 자였을 때 가만히 있지.' 그 말이죠. 집사람 보기 미안해서 하는 말이죠. 내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걸 그만두고, 이 해고를 인정하고 다른 일을 찾아서 한다? 그럼 나는 돌아 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내가 그때 그렇게 후배들이랑 평택 공장으로 파업 참여하러 올라온 게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나는 너무 억울한데 그렇다고 법이 보호해 주는 것도 아니고. 모든 변호사들이 그랬어요. 법대로 하면 복귀된다고. 회사가 잘못한 게 밝혀지고 있는데 잘못한 놈이 해고시켜 놓고, 그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하면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더 처절해지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한 것인가? 그걸 알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내가 미친놈인가 알고 싶어서.
그렇지만 대한문에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2009년에는 다 우리보고 잘못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게 쌍차만의 문제가 아니더라. 우리 가족의 문제일 수 있겠다." 그런 말 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도 그렇게 살지 않았거든요. 누가 해고돼도 상관 안 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해고당하고 보니 억울해 죽겠는데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여겨 주는 것 보면서 '난 세상을 잘못 살았구나.' 하고 배웠어요. 지금은 미사 때문에 버티는 것 같아요. 수녀님이나 신부님이나 신도들, 굳이 매일 저렇게 할 필요 없잖아요. 이번 달에 비 얼마나 많이 왔어요? 폭우 맞고 기도하더라고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하더라고요. 자기 일도 아닌데 그러는 것 보고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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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H-2000 때 '야, 땀 흘리면서 일하는 게 너무 좋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공장에 돌아가려고 하는구나!' 그런데 또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하려고 공장에 들어가야 하나? 나는 새로워졌는데, 나는 공장에서 일할 때 느꼈던 그런 부품화된 사람이 아닌데, 훨씬 자유롭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데 전에 일했던 그 모습 그대로의 공장에 들어가야 하나?' 그러면서 재빨리 합리화시켰어요. '그래, 나처럼 꿈꿀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공장에 들어가서 보여 주자.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자.' 하고 말이에요. (-) 공장 안 들어가도 된다는 말은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에요. 저런 공장, 영혼 없는 그런 공장이라면 안 들어가고 싶어요. 우리가 기계처럼 여겨지는 그런 삶을 더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정말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삶을 꿈꾸면서 살겠지만 '오늘만 버티면 장땡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에 제가 그랬어요. "우린 월요병이 없다. 우리는 매일 휴일이다. 그런데 월요일이 너무 갖고 싶다." 너무나 원해요. 월요병 앓고 싶어요. 그런데도 그런 공장 가고 싶지 않아요. 5년이 지났는데도 한 치의 변화도 없는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상상력인 것 같아요. '쌍차 문제를 생각보다 많이 알아줘서 고맙다. 그것도 의미 있다. 그러나 헛짓이다.' 이런 생각들이 있어요. 이렇게 자동차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헛짓이라고요. 대한문에 와서 서있는 것도 헛짓이라고요. 제선이, 한윤수가 와서 서있는 게 헛짓이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건 아직까지 비정규직 문제를, 정리 해고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려 하는 걸 본 적이 없을 뿐이에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헛짓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저는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불러요. 나는 정만이 형이, 상구 형이, 우리 형들이 공장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간절한 꿈이에요. 우리가 이명박 정권에 대항해서 혹은 어떤 정권에 대항해서 싸운 게 아니에요. 우리는 살려고 했어요.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새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지난 5년 동안 있었던 일을 잊지 않는 새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공장 복귀하면 5년간 내가 했던 이야기나 생각이나 행동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양 살고 싶지 않아요. 이 경험들이 내 남은 평생을 관통하면서 살아 있으면 좋겠어요. 77일 파업이 5년 투쟁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었다면, 지금 보낸 5년이 내 삶을 이끌어 갈 원동력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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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도 알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내가 왜 해고되었나?' 동민이는 우리가 해고된 데는 각자의 이유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래도 알고 싶어요. '그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해고되었을까?' 제 삶은 엎질러진 물이에요. 물방울 하나하나를 주워 담고 있는 건지, 하나하나 담으면 담을 수 있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차가 없었으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저는 만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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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버텨서 투쟁하는 게 아니라 투쟁해서 버티는 거예요. 여길 관두면 저는 외로와서 못 견뎠을 거예요. 여기서는 나를 놔주지 않아요. 나를 놔주지 못하죠. 제가 죽을까 봐. 제가 죽을까 봐 여기 사람들이 저를 꽉 잡고 있죠. 지금도 가끔은 혼자 있으면 생각을 하죠. '죽을까?' 그게 머릿속에 있단 걸 아니까 제어를 하죠. 그리고 투쟁을 못 접는 게 뭐냐면 우리 동민이가 많이 싸운단 말이야. 동민이가 싸우고 있고 창근이가 싸우고 있고 우리 수석(김득중 수석부위원장)이, 상균이 형이, 기주 형이 싸우고 있고 기성이가 싸우고 있고 우리 동지들 다 싸우고 있고. 우리는 놀 수가 없어. 왜? 나보다 더 확실하게 싸우는 사람에게 미안해. 나도 싸워. 그래도 미안해.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래서 결국 같이 가는 거야. '씨발, 나는 그렇게 못해. 난 관둘래.' 이게 안 돼. 뭔가 연결되고 연결돼 있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연결돼 있어. 내가 제일 미안한 게 동민이야. 나는 그렇게 못해, 우리 동민이처럼. 나는 항상 미안해. (-) 이건 정신적인 거야. 이제는 자신도 없고. 자동차 조립하던 내가 다른 데 가서 뭘 할까 자신도 없고. 그리고 해고자니까. 해고자라는 정체성이 있으니까. 내 머릿속에는 그게 찍혀 있어. '나는 해고자다. 나는 버림받았다.' (-) 이건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물질적인 문제도 있지만 너무나 정신적인 문제인 거야.
내 진짜 꿈은 5년을 그대로 되돌려서 5년 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 5년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고 싶어요. 스물네 명 죽은 사람 없이, 아무도 죽은 사람 없이, 아무도 우는 사람 없이, 라인에서 일하다 소주 한잔하고 퇴근하고... 그렇지만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해고 무효 소송 재판이 진행되는데 이겨야 하고 회계 조작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고. 그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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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해 주는 분들이 없었으면 무너졌을 것 같아요. 잠깐 쉬려고 하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고 또 나오고, 스물두 번째 죽음까지는 거의 한 달 반 만에 희생자가 한 명씩 나와서 쉬려야 쉴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힘들어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기도 했어요. (-) 집사람에게 우울증 증세가 있어서 감정 기복이 심해졌어요. "잘 자."라고 말하고 전화 끊어도 다음 날 아침 기분 나쁠 때가 많습니다. 점심 때 밝았다가도 저녁에는 또 아닙니다. 남편은 없고 본인은 힘드니까. (-)
(-) 자영업을 하지 않는 이상 날 받아 줄 곳은 없습니다. 해고자이자 전과범으로, 사회적으로 낙인도 찍혔습니다. 상상도 해봤어요. '지금 공장으로 돌아가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공장 바깥에서 투쟁 과정에서 힘들지만 사람과의 정 나눔도 많았고 많이 배웠는데, 공장으로 돌아가면 또 노동에만 매몰돼서 매일 아침에 눈 뜨고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9시에 돌아와 밥 먹고 자는 것을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삶을 한번 바꿔 볼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지만,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도 돌아가야만 합니다. (-)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 주장과 선택이 올발랐다는 것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2009년도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 저는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해고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물네 명 죽어버린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들 해고자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한 기업에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 갔는데 이 땅에 살면서 방치되는 것이 맞느냐?'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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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5천 명 중에 1천 명이 공장에 남아 싸웠습니다. 1천 명 중 20퍼센트는 비해고자였고 80퍼센트는 해고자였어요. 그전까지 노조 간부를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많지 않았어요. 정말 묵묵히 일만 하고 가정만 지키려고 왔다 갔다 했던, 그야말로 회사의 방침에 열심히 따랐던 친구들이 남았어요. 저는 그런 친구들 아니었으면 77일 싸움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1천 명 중에 이탈하는 사람들에도 순서가 있는데, 일반 조합원이 아니라 방귀 깨나 뀌었다던 활동가들이 더 빨리 빠져나가요. 해고의 충격이 큰 사람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요. 가장 억울했던 사람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요. '귀족 노조' 행세를 했던 사람들은 스스로 덜 억울했을 겁니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은 싸워서 될 게 아니라는 정세 판단을 하고 먼저 백기를 드는 거죠. 그런 싸움의 현장에선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요. (-) 먼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양심이 없으면 운동이 안 되더라고요. (-)
사실 평상시에는 도덕.염치.양심 이런 것들이 다 있어요. 그런 것들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많이 무너져 버려요. 그런데 양심.염치.도덕이 있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노동자다웠어요. 그런 게 없는 사람은 의리, 동료 이런 것들을 먼저 팽개쳐 버리더라고요. 나한테는 바코드가 남아 있어요. 사람 하나하나마다 도덕.양심.의리.염치의 바코드가 남아 있어요. 누가 배신하고 도망갔는지가 또렷이 다 기억 속에 남아 있어요. (-) 그것이 나의 개인적 괴로움 중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걸 해결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로 모이려면 그걸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도 나약한 인간이니까, 그걸 희석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노력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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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사람 마음은요, <주역>에서는 '단금지교'라고 해요. 마음이 모아지면 무쇠도 자릅니다. 하나씩 하나씩 모인 그런 소중한 마음들이 이 엄청나게 얽히고설킨 난제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느껴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 아닌가 싶어요. 사람은 누구나 측은지심이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가니까 그런 측은지심이 나오면서 본인들 스스로도 '우리가 왜 싸웠지?'하고 자기들에게 묻는 것이 느껴져요.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내 귀에 막 들리는 것 같아요. '우리 미쳤어. 미쳤었나 봐. 우린 그런 사이가 아냐. 우린 형제야.' 이렇게 서로 답변하고, 그 이야기가 멀리서 들려오다가 지금은 가까이서 들려와요. 그리고 형제는 어떻게 하지? 그렇지, 싸웠더라도 금방 밥상머리에서 이야기하며 놀고, 부모 돌아가시면 함께 울고 하는 게 형제잖아요. 우리는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요. 우린 이렇게 회복되는 거예요. 인간성이 회복되는 거예요. 5년 만에요. 자본이 어떤 시혜를 베풀어서 노사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이런 큰마음들이 발효돼서 풀어 가는 것 아닌가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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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말하지 않은 한 가지를 말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진실'에 관한 것이다. 양형근은 1989년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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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상하이차에 매각될 때 이렇게들 이야기했어요. "중국은 관용차만 1년에 8만 대다. 쌍차가 12만 대 만드는데 관용차만 8만 대면 얼마나 많이 팔 수 있겠느냐. 우리도 이제 넓은 시장에 차를 팔아야 한다." 거기에 넘어간 거죠. 그런데 조금 있다가 보니까 '먹튀'(먹고 튀기) 조짐이 보이더라고요. 오리온전기가 이미 겪은 일이에요. 우리 과정이랑 똑같아요. 그래서 상하이차가 기술 유출한다고 고발을 제가 했어요. 그뿐만 아니에요. 상하이차는 우리를 인수하면서 독립 경영, 고용 보장 등 몇 가지를 약속했어요. 1년에 3천억 원씩 4년간 1조2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특별 협약까지 했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지키고... 인수 자금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웠어요. 상하이차는 우리를 5천9백억 원에 샀어요. 그것도 우리 은행들이 신디케이트론(둘 이상의 은행이 해외기업체에 공동으로 자금을 대출하는 일) 4천2백억 원을 대출해 줬어요. 그 대출금도 아마 쌍용차 돈으로 갚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어요. 경영은 자본가들의 성역이라는 거죠. 제가 매각 과정부터 헐값이라고 주장하고, 먹튀나 기술 유출 등을 고발하니까, 외국 사장이 이번엔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거죠. 하지만 사측에서 결국 취하했어요. 저희는 생존권 사수대를 결성했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는 당연히 해고를 각오했고, 진실은 있다고 변함없이 믿었어요. (-) 파업 끝나고 나니 평조합원이었음에도 징역 7개월 살았어요. 가족들을 책임지기는커녕 파산 신청했고 퇴직금도 가압류 때문에 1원 한 푼 못 받고, 지금은 카드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에도 파업 끝나고 나와서 생계 투쟁은 한 적이 없고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와서 그때부터 회계 조작, 기획 부도 증거들을 모았어요. 쪼가리 쪼가리 모았어요. 이렇게 하기까지 참 힘들었어요.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내 말을 믿지 않고, 우린 현장 출신이라 거칠어서 전문가들 손을 거쳐야 하니까. 저는 사무직인 사람 하나랑 계속 이 문제를 파왔어요. 내가 생각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쌍차 자산이에요. 정리 해고 당시 안진 회계 법인이 쌍차 자산을 어떻게 평가했나? 왜 갑자기 1년 사이에 5,177억 원이나 줄었나? 왜 부채 비율이 160퍼센트대에서 560퍼센트대로 크게 증가했나? 정리해고 숫자가 2,646명이란 근거는 어디서 나왔나? 저는 이 과정에서 회계 조작이 있다고 생각해요.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거예요.
저는 해고자 복직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해요. 우리만 해고당했나요? 다른 사업장에도 수많은 해고자가 있어요. 다른 사업장에서도 얼마든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너네만 해고되었냐? 왜 너네만 난리야?" 하지만 쌍차 문제의 두 핵심은 진실과 죽음이에요. 우리가 정리 해고의 문제의 중심에 선 것은 우리가 많이 해고돼서가 아니라 진실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 말은 쌍차 복직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을 가려내는 것, 그것이 복직이라는 거예요. 진실만 밝히면 우리는 원상회복되는 거예요. 진실이 곧 복직이에요. 우리가 인간적으로 안돼서, 불쌍해서 복직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것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한 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때문이에요. '뭐가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지? 왜 경영상의 문제가 생겼지? 경영상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경영상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책임 전가 안 하려면, 특히 노동자만 책임지고 경영자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게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 그냥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이것이 스물넷이 왜 죽어 가야 했는지를 밝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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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낙인찍히고 왜 이런 대우를 받느냐?' 사회에서 받아 주지 않고 억울하니까 죽는 거예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 해고가 되었다 치더라도 죽지 않고 살 수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왜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하잖아요.
희망퇴직 한 사람이 진짜 희망을 가져야 해요. 지금은 '절망 퇴직'이잖아요. (-) 한때 국정조사.청문회 할 때는 조금식 희망을 갖기도 했어요. '우리는 억울하게 쫓겨난 거고 곧 진실이 밝혀지겠구나. 그전에 흑자기업이었는데 기획 부도로 법정 관리된 거구나.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아니라 회계 조작 때문이었구나. 우리는 청춘을 바쳐 일한 곳에서 억울하게 쫓겨났구나.' 청문회 때 이미 상하이차의 먹튀가 밝혀진 거잖아요. 청문회 때 신디케이트론 이야기했잖아요. 산업은행 같은 국책 은행이 개입된 것이니, 산업은행은 과연 회계 조작을 몰랐는지를 따져 봐야죠. 국가 기관들이 다 개입된 것이잖아요.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씌운 것이잖아요. 생산성 지수 가지고요. '현대차는 서른 대 만드는데 쌍용차는 열 대만 만드느냐?'는 식으로요.
(-) 이 구조 조정 자체가 잘못되었고, 법정관리도 허구라면? 저도 정리 해고자이지만, 정리 해고자만 살자는 게 아니에요. 복직도 돼야 하지만, 이런 진실이 밝혀져야 들어가서도 부당한 대우를 안 받아요. "회사가 받아 준 거야. 너네 잘해." 그런 말 안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