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이론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김동윤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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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바츨라빅(Paul Watzlawick)은 체계로서 가족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족을 천장에 매달린 모빌에 비유한다. 그는 모빌을 가족에, 각 구조물을 가족 구성원에, 그리고 그 구조물들을 이어주는 실을 커뮤니케이션 규칙에 빗대어 설명했다. 모빌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구조물들은 각기 적당한 공간에서 다른 구조물들과 실로 잘 연결되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조물들 가운데 어느 일부에 압력이나 힘을 가하면 금방이라도 모빌의 균형은 깨지고 만다. 나아가 모빌의 구조물을 잇고 있는 어느 하나의 실이라도 잘릴 것 같으면, 모빌의 형세가 일그러져 균형을 잃고, 정상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가족이라는 체계 내에서 작용하는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구사하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특히, 바츨라빅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다른 구성원과 맺고 있는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강조한다.


가족 관계를 이러한 체계로 접근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방식을 단순하게 설명해 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 방식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 때, 아들이 뒷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듣는 행위는 아버지의 말이 그다지 달갑지 않거나 불만이 있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이때 아버지는 자신의 메시지를 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던 나머지 아들이 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버지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될 리 만무하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대화와 소통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는 대인 관계라는 것이 일차 방정식처럼 쉽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식의 단순한 진술문만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래서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매우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며, 커뮤니케이터들의 태도와 감정, 그리고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감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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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이미지 알마 인코그니타
에르베 기베르 지음, 안보옥 옮김, 김현호 해설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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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이자 사진가와 기자로 활동한 에르베 기베르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유년기는 파리에서 보내고 라로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극단 활동을 했다. 1973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온 그는 영화 학교에 지원해 탈락하지만 여러 잡지에 영화 칼럼을 발표한다. (-)

동성애자였던 에르베 기베르는 1990년에 발표한 소설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를 통해서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밝힌다. 이 소설은 『연민의 기록』 『붉은 모자를 쓴 남자』와 함께 3부작을 이루며, 에이즈의 진행 과정에 따른 그의 일상과 신체 변화를 묘사하면서 자신의 투병 생활을 보여준다. 에이즈에 걸려 변화하는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수치 또는 파렴치>는 그의 사망 몇 주 전에 완성되었고, 그가 사망한 후, 1992년 1월 30일에 TV에 방영되었다.



나의 아버지 이름은 세르주다. 아버지는 나를 에르베 세르주라고 불렀다.

나의 아버지는 내 몸에서 내가 아버지의 아들임을 증명해주는 표시들을 보여주었다. 즉 엄지손가락 마디에 없는 그 뼈, 아마도 살 속으로 파고든 것 같은 그 발톱, 그 모든 선천적인 증거들, 작은 변형들 같은 표시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잘 규정된 한도에 따라서 내 몸을 서로 나누어 가졌다, 아침에 어머니가 나의 몸을 차지할 때는, 어머니는 나를 일으키고, 옷을 입히며, 소변을 보게 하고 엉덩이를 닦아주었다. 저녁에 아버지가 내 몸을 차지할 때는, 아버지는 침대 위에 서 있는 나의 옷을 벗기고, 잠옷을 입혀주었다. 아버지는 욕실에 가서 솜뭉치와 오드콜로뉴를 찾아오곤 했다. 아버지는 무릎 위에 타월을 펼치고 나의 다리를 타월 위에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알코올을 적신 솜으로 내 발가락 사이를 하나하나 닦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를 잠자리에 눕혔고, 내가 잠자는 동안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커다란 침대 시트를 금속 집게로 매트리스에 고정시키면서 침대 가장자리를 정리해주었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는 나와 함께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암송했으며 나를 포옹해주었다, 그러면 나는 잠들었다.

_베르나르 포콩에게 시퀀스 제안


La Pudeur ou L'Impudeur

https://www.imineo.com/documentaires/arts/litterature/pudeur-impudeur-video-1182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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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의 두 남자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림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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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상가들은 말했대요. 흑인은 흑인일 뿐이다. 흑인은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아래에서만 노예다.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아래에서만 노예다. (-)차별적인 상황, 억압적인 관계를 얘기하는 거죠. 그러면 이런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떤 impairment를 가진 사람, 손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때 그 손상은 사실은 손상일 뿐일 수 있다는 거예요. 손상 때문에 장애인인 것이 아니라, 손상은 손상일 뿐인데 그것 역시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아래에서 장애가 된다는 거예요. 특정한 상황과 관계가 뭔가를 할 수 없게 만들 때 장애가 된다는 거죠. 우리가 차별금지법에서 얘기하는 정당한 편의에서 정당하다는 게 뭐에요? ‘뭔가를 할 수 없게하는 그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아래에 놓이지 않도록 만드는 행위, 바로 그 행위가 정당한 행위라고 보는 거죠. 그렇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으면 그 사람이 뭔가 할 수 없게되지 않는 거죠.”(김도현, <장애, 장애학, >, 3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 프로그램, 희망을만드는법, 2014. 2. 8.)



2015년 허핑턴포스트(US)에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살다 마침내 결혼한 노만 맥아더와 빌 노박 커플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뉴욕에선 동거관계(domestic partnership)을 법적으로 인정받았지만 펜실베니아주로 이사하면서부터는 동거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이 서로의 법적인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입양밖에 없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병으로 입원하게 된다면, 병실에 들어가서 간호할 수 있는 권리는 타인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만약 빌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는 유일한 동반자임에도 불구하고 간호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법적으로 병실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지요.”(허핑턴포스트US, 2015. 5. 30.)

 

2014년 발표된 한국LGBTI(이하 성소수자)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많은 성소수자가 상당히 장기적인 연애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그들 역시 파트너 관계 및 공동 생활을 유지하는 데 가장 시급히 필요한 제도’(복수응답, 3개 선택)수술 동의 등 의료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68%)를 꼽았다. ‘국민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 인정’(45%)이 그 뒤를 이었다. 또한 레즈비언의 98.1%가 파트너십의 제도화를 원한다고 응답했고 특히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2016,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소속 모임 풀하우스는 결혼이 아닌 다른 가족제도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성별이나 성애적 관계 여부와 무관하게, 친밀함을 바탕으로 주거와 생계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트너를 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는” ‘파트너등록법지지 서명 캠페인을 벌였다. 이 파트너등록법은 2014년 진선미 더민주 의원이 초안을 마련한 생활동반자법과 거의 같다.(한겨레, 2016. 11. 07.)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엮이지 않았어도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이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진선미 의원은 말한다누구나 삶을 함께 살아갈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가 있고 그게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 그는 특별한 한 사람을 법률적으로 꼭 결혼한 배우자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고 이것은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이미 보편화된 다양한 가족, 기존 법의 바깥에 있는 이들의 삶을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선미 의원이 모델로 삼은 것은 두 이성 또는 동성 성인 간의 시민 결합 제도인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이다. 이 법에 대한 프랑스 사회 고민의 출발점은 아동권의 보장에 있다고 한다. “부모의 결합 형태(결혼 또는 동거)와 무관하게 모든 아동은 동등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철학이 법안 발의의 밑바탕에 있었다. 동성 부부이든, 여성 부모 가정이든, 혼외 자식이든 구분하지 않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동등한 조건에서 자라야 한다는 철학이다.”(한겨레, 2014. 9. 12.)


동성 커플이 법적으로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법은 동성 커플들과 그들이 함께 키우는 아이들 모두에게 심리·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 미국 소아과 학회 회원들은 LGBT 커플에 대한 보다 포용적인 대중 정책을 펼칠 것을 주장한다. 부모와 자녀 간의 가족 관계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고, 아이들을 법적, 경제적, 감정적으로 불확실한 지위의 불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허핑턴포스트US, 2017. 2. 22.)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이 흐름을 이어받아 이성 간의 혼인에 의한 가족 구성뿐만 아니라 동거노인, 미혼모, 공동체, 동성커플, 비혼커플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동반자등록법을 제정하겠다는 복지 공약을 내세웠다.

 


LGBTI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결과를 좀더 살펴보자. 응답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혐오, 차별, 폭력의 대상이 된다고 느꼈다. 공공장소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증오와 혐오발언이 표출되는 일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나고(87%), 공공장소에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물리적 폭력 및 괴롭힘이 종종 또는 자주 발생하며(55%), 미디어에 의한 조롱이나 왜곡, 차별적인 묘사가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84%)고 답했. 이 때문일까? 응답자 중 28%가 자살을, 35%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특히 18세 이하의 청소년 성소수자 중 46%가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고 53%가 자해를 시도했다. 두 명 중 한 명인 셈으로 위험성이 심각하다. 이는 한국(0.4%, 2013), 전 세계(0.2~0.3%, 2010)의 평균 자살시도율과 비교했을 때도 매우 높은 수치다(마음연결, 성소수자자살현황). 또 성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한 이들의 자살시도와 자해시도의 비율 역시 41%48%, 차별이나 폭력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경우(21%, 27%)보다 높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자살 위험성을 줄일 수 있을까? 1999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80만 명에 달하는 모든 성적 지향의 학생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줄리아 레이프먼은 동성혼 법제화 이후 매년 자살을 시도하던 청소년 성소수자가 약 13만 명 정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면 성적 지향과 관련된 구조적 오명이 줄어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조사 대상자 대부분은 결혼할 일이 없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자신이 당장 사용할 일이 없다 해도,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되면 학생들은 오명을 덜 느끼게 되고 미래에 대해 보다 희망적이 된다는 것이다.(위의 글, 2017. 2. 22.)


독일에서도 동성 커플의 법적 보호를 위해 2001년부터 등록된 동반자’(registered civil partnership)법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성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면 동성애자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동반자등록법이 시행된 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됐느냐는 이준일 교수의 질문에 주자네 베어 독일연방헌법재판관은 답한다.

 

내가 알기론 아니다. 아무도 동성애자 증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학생들의 자살이 줄었다. 그동안 여성성·남성성과 관련해 사회적 압박이 많았던 것이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는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이성애자에게도 해를 끼친다. 동반자등록법 시행으로 사회가 더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동성애자들은 두려워하거나 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한겨레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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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베토벤을 위하여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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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돌발적인 사건들, 약속들, 흘러간 수십 년의 시간, 생각들, 음악······ 이 모든 요소들은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갖고 있다. 진실은 시간과 무관하다. 그래서 하나의 만남이 몇 년 후에야 비로소 ‘결정적인’ 것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첫 사건, 첫 경험, 첫 느낌이라고 말할 때의 ‘첫’이라는 표현은 이후 그런 사건, 경험, 느낌을 백 번쯤 겪고 나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본 뒤에야 비로소 ‘처음’이라는 특성을 취득한다. 우리의 삶은 연대기적으로 진행되지만, 정신의 생애는 그렇지 않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갖는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단편적이고 분리된 실제들에다 한 가지 질서, 곧 시간적·서술적 혹은 논리적인 질서를 강요한다는 점이며, 그리고 그때부터 운명의 천을 짜내려가는 조직망을 더이상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조직망이라는 것은 연대기와 상관없고, 언제라도 분할할 수 있는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건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갖고 다닌다는 것이다. (-)

 

 

옛적부터 인간들은 인간의 조건을 증오해왔다. (-)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아찔한 빈약함을 혐오하면서, 자신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더 치밀하며, 결코 덧없는 하루살이의 운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뿌리가 있다고 꾸며낸다.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 가정, 부족, 국가, 종교로 자신을 정의한다. (-) 정체성 같은 문제에 휘말리기를 거부하면서, 인간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아무런 문제도 불러오지 않을 거라 믿는 거짓 정체성으로 대체해버린다. 각자가 인간으로 존재하기를 잊어버린 채 자신을 미국인, 중국인, 프랑스인, 바스크 사람, 가톨릭 신자, 무슬림, 동성애자, 부자, 가난한 자 등으로 여기는 것이다. 마치 가면 하나로 그 사람 전체를 가릴 수 있을 것처럼, 마치 입고 있는 옷 한 벌로 인간의 조건을 감출 수 있을 것처럼······

 

 

이 얼마나 모순인가! 질투에 대해, 그 불쾌한 감정과 기분, 사랑의 증상보다 훨씬 더 많은 불안의 증상들에 대해 수없이 많은 글을 쓰긴 했지만, 이제 실제로 내가 질투할 기회가 온 것이다.

(-)고귀한 이야기에서,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이 승리했다. 우린 결코 예외적인 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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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5
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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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이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겨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임솔아_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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