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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베토벤을 위하여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돌발적인 사건들, 약속들, 흘러간 수십 년의 시간, 생각들, 음악······ 이 모든 요소들은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갖고 있다. 진실은 시간과 무관하다. 그래서 하나의 만남이 몇 년 후에야 비로소 ‘결정적인’ 것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첫 사건, 첫 경험, 첫 느낌이라고 말할 때의 ‘첫’이라는 표현은 이후 그런 사건, 경험, 느낌을 백 번쯤 겪고 나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본 뒤에야 비로소 ‘처음’이라는 특성을 취득한다. 우리의 삶은 연대기적으로 진행되지만, 정신의 생애는 그렇지 않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갖는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단편적이고 분리된 실제들에다 한 가지 질서, 곧 시간적·서술적 혹은 논리적인 질서를 강요한다는 점이며, 그리고 그때부터 운명의 천을 짜내려가는 조직망을 더이상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조직망이라는 것은 연대기와 상관없고, 언제라도 분할할 수 있는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건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갖고 다닌다는 것이다. (-)
옛적부터 인간들은 인간의 조건을 증오해왔다. (-)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아찔한 빈약함을 혐오하면서, 자신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더 치밀하며, 결코 덧없는 하루살이의 운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뿌리가 있다고 꾸며낸다.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 가정, 부족, 국가, 종교로 자신을 정의한다. (-) 정체성 같은 문제에 휘말리기를 거부하면서, 인간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아무런 문제도 불러오지 않을 거라 믿는 거짓 정체성으로 대체해버린다. 각자가 인간으로 존재하기를 잊어버린 채 자신을 미국인, 중국인, 프랑스인, 바스크 사람, 가톨릭 신자, 무슬림, 동성애자, 부자, 가난한 자 등으로 여기는 것이다. 마치 가면 하나로 그 사람 전체를 가릴 수 있을 것처럼, 마치 입고 있는 옷 한 벌로 인간의 조건을 감출 수 있을 것처럼······
이 얼마나 모순인가! 질투에 대해, 그 불쾌한 감정과 기분, 사랑의 증상보다 훨씬 더 많은 불안의 증상들에 대해 수없이 많은 글을 쓰긴 했지만, 이제 실제로 내가 질투할 기회가 온 것이다.
(-)고귀한 이야기에서,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이 승리했다. 우린 결코 예외적인 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