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 장영희 교수의 청춘들을 위한 문학과 인생 강의
장영희 지음 / 예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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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르셰(-)는 묻는다. "사랑과 평화는 한 가슴 속에 공존할 수 있는가? 청춘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은 끔찍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 없는 사랑, 사랑 없는 평화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나는 네가 사랑 없는 평화보다는 평화가 없어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해주기를 바란다. 새뮤얼 버틀러(-)가 말한 것처럼 "살아가는 일은 결국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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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펭귄클래식 61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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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몹시 괴롭습니다."

"불쌍한 사람, 내 탓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내 이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아닙니다. 그렇지만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일종의 망상이 되었습니다. 당신을 잃을 수도 있다는, 더구나 당신을 정말로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밤낮으로 저를 괴롭힙니다."

(-) 반다 (-) 의 눈빛은 떨고 있었고 촉촉하면서도 기진맥진해 보였다, 예전에 나를 황홀하게 했던 그 눈빛이었다. 그다음 그녀는 일어서서 작고 연약한 손으로 푸른 아네모네 화관을 비너스의 흰 곱슬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거의 내 의지와는 반대로 나는 그녀를 껴안았다. 

"저는 더 이상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대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가 말했다. "믿어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은 꼭 믿어주세요. 미사여구도 아니고 환상도 아닙니다. 마음속 깊이 저와 당신의 삶이 결합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당신과 헤어진다면, 저는 쇠약해지고, 파멸할 겁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절대로 없을 거예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이봐요." 그녀는 내 턱을 살짝 쳤다. "어리석은 사람!"

"진정으로 생각해보면" 하고 반다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당신의 모든 광기는 악마적이며 충족되지 못한 감각일 뿐이에요. 자연법칙에 어긋난 기질을 가진 자는 그런 병을 얻게 마련이죠. 당신이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 된다면, 오히려 완전히 이성적인 사람이 될 거예요."

"자, 저를 이성적으로 만들어주십시오." 나는 중얼거렸다. 나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모피 속을 더듬었다. 마치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물결처럼 모피가 내 정신을 혼미하게 하면서 그녀의 솟은 젖가슴 위로 출렁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아니, 그녀가 나에게 키스를 했다. 아주 거칠게, 아주 무자비하게, 키스로 나를 삼켜버릴 듯이. 나는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성을 잃었고, 마침내 더 이상 숨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무슨 일이에요?" 반다가 물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스럽다고요?" 그녀는 요란스럽고 의기양양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넘길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신음 소리를 냈다. "당신이 느끼지 못한다면."

그녀는 갑자기 진지해졌고 손으로 내 머리를 세우더니, 아주 세차게 나를 자기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 "당신은 나를 더 알아야 해요."

"반다!"

"결심해요. 복종할 거예요? 무조건?"

"제가 만약 거절한다면요?"

"그렇다면."

그녀는 냉정하게 비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악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끼고 내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정말로 내 상상의 폭군이었고 그 모습은 가혹해 보였다. (-)

"당신은 잔인한 여자입니다. 당신은 저를 때릴 겁니다." 내가 말했다.

"오, 아니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을 보내줄 거예요. 당신은 자유예요. 당신을 붙잡지 않겠어요."

"반다,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저를 말입니까?"

"그래요, 당신을, 나를 숭배하는 당신을." 그녀는 경멸적인 어조로 외쳤다. "한데 당신은 겁쟁이이고 거짓말쟁이이며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죠. 당장 떠나세요." 그녀는 경멸적인 어조로 소리쳤다.

"반다!"

"불쌍한 인간 같으니!"

내 피가 심장까지 솟구쳤다. 나는 그녀의 발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또 눈물바람이로군!" 그녀가 웃기 시작했다. 오! 이 웃음은 무시무시했다. "가세요. 더 이상 당신을 보지 않을 거예요."

"제발!" 나는 얼떨결에 소리쳤다. "당신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마음대로 다루는 물건이 되겠습니다. 저를 버리지만 말아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파멸할 겁니다.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나는 그녀의 무릎을 감싸 안고 손에 키스를 퍼부었다.

(-) "이제야 당신을 알겠군요. 짓밟힐 때 숭배하고 심하게 학대를 당할수록 더욱더 숭배하는 당신의 개 같은 본성을. 이제 나는 당신을 알지만 당신은 지금부터 나를 알아야 해요."

그녀가 성큼성큼 좌우로 걸어다니는 동안, 나는 절망하여 무릎을 꿇고서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이리 와요." 반다가 안락의자에 앉으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녀의 손짓에 따라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나를 슬프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마치 몸속에서부터 불이 켜지듯 갑자기 그녀의 시선이 환해졌다. 그녀는 웃으면서 나를 끌어안고 내 눈물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 반다는 기분이 좋아서 사탕을 내 입에 물려주기도 하고, 내 머리를 다듬어주었으며, 내 목도리를 풀어서 멋있게 작은 리본으로 매주었다. 또 모피 숄을 내 무릎에 얹어놓고서 내 손가락을 살짝 누르기도 했다. 유대인 마부가 앞에서 잠깐 동안 꾸벅꾸벅 졸 때면 심지어 내게 키스도 했다. 그럴 때 그녀의 차가운 입술에서는 가을에 앙상한 줄기와 누런 잎 사이에 외로이 피어나, 첫 서리 때면 꽃받침에 작고 단단한 다이아몬드들이 맺히는 저 어린 장미의 신선하고도 쌀쌀한 향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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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얼 부르지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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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째서 이소중된 명저가 품절상태인지 납득시켜주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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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2017-08-3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시품절풀렷네요 감사합니다..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 - 아시아 여성신학의 현재와 미래 아시아 신학 총서 7
정현경 외 지음 / 분도출판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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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목격하고 빨리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화가와 같은 심정으로 아시아 여성들의 이야기와 시, 신학적인 글들을 모았다. 하지만 그 폭발이 너무나 급박하고 변화무쌍해서 아주 굵고 빠른 선으로 화산의 윤곽밖에 그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그림이 폭발의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했다고는 생각한다.

 

(-) 지도교수였던 제임스 콘(James Cone)내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문제에 대해 학위 논문을 쓰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는 뭔가 심오한 것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아시아 여성들의 신학적인 지혜를 신뢰하고, 그것을 쉽고 단순하게 기술하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가난한 자들의 소리를 전하고 싶다면 제대로 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 베버리 해리슨(Beverly Harrison)과 그의 글들, 특히 사랑의 일을 하는 데서 분노가 가지는 힘(The Power of Anger for the Work of Love) 때문에 나는 유니온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니온 시절 그의 존재는 나의 분노를 진지하게 여겨야 하며, 그것을 나 자신에게 향하게 할 것이 아니라 정의를 향한 열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늘 일깨워 주었다. (-)

 

 

신학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인 행위이다. 한국 여성으로서 내가 신학을 하는 것은 통전성을 향한 나 자신의 투쟁과 자유를 향한 우리 민족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투쟁 속에서 완전한 인간됨의 의미를 추구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분별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는 물론이고 나 자신의 해방 과정에 힘을 불어넣고 싶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고통과 기쁨, 투쟁과 해방의 이야기들은 늘 우리의 사회-정치적·종교-문화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학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작업이다.

(-)

그러나 지나온 나의 신학 수업을 돌아보면 유럽과 북미의 백인 신학이 지닌 식민주의적·신식민주의적 요소를 파헤치고, 거기에 대해 반응하는 데 나의 신학 교육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쳤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백인들의 학문적 장에서는 나 자신의 신학을 세우는 데 시간과 정력을 쏟기가 어려웠다. 억압적 체제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해방의 현실을 건설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새로운 해방의 현실을 발견하고 건설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나의 민족의 힘과 역사와 계속 접해야 한다는 힘든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실존적인 신학 작업이 해체 작업에서 건설 작업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나를 낳아 준 어머니를 발견한 사건이었다. 내 어머니는 한국판 대리모였다. (-)

(-)

나를 낳은 분은 전라도 광주에서 아들 하나와 함께 살고 있던 가난한 미혼모였다. 그는 일제시대에 연인을 잃었다. 나를 낳은 것은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면서 동시에 슬픔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와 새로 내 어머니가 될 여자에게 나를 넘겨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들은 내 첫돌날 친어머니에게서 나를 데려갔다고 한다. 그는 나를 보내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나의 양어머니에 대항해서 싸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힘이 있었지만 나를 낳아 준 어머니는 아무 힘도 없었다. 나를 낳은 어머니는 나를 떠나보낸 32년 전 어느 비오던 봄날 기차역에 주저앉아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얼마 안 가서 그는 나를 잃은 슬픔 때문에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당시 십대였던 그의 유일한 아들은 어머니의 고통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유교적인 윤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에서는 결혼의 틀을 벗어나서 아이를 낳은 여성들을 철저하게 배척한다. 어떠한 법이나 관습, 집단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 그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여자들은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이다. 이들이 겪는 사회적 소외는 당대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나의 친어머니는 사회적인 질시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완전히 지워 버리고, 마치 내가 자신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함으로써 나를 정상적이고 합법적인부류의 아이들에 속하게 하고 싶어했다. 나를 낳아 준 어머니에게서 역사상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현경아, 너는 11년 이상 신학 공부를 해 왔다. 하지만 누구를 위해서 지금까지 신학을 해 왔니? 왜 신학을 공부하려고 했니? 너는 늘 네 나라의 억눌린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신학을 한다고 생각했지. , 봐라! 정말로 네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생각해 봐라!(-)”

(-)

(-) 어머니와의 만남은 나의 신학적 관심들을 분명히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어머니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이 외롭고 험한 세상 속에서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이야기나는 그가 살아 온 침묵의 문화에 분노하곤 했다. 그 주변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침묵시키려고 했다. 생산적이고 공적인 인간이 될 어떠한 체계적인 도움도 없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침묵은 결코 그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갈가리 찢겨졌고, 가난에 내몰려졌으며, 한동안은 정신이상까지 되었었다.

(-) 유럽과 미국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훌륭하고” “전문적인신학자가 될수록 내 어머니 같은 사람들과는 멀어져만 갔다. 더 이상 유럽의 특권층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이른바 종합적인신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제 내게 아주 분명해졌다. 나는 내 어머니 같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신학, 그들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는 신학을 하고 싶다. 그래서 백인과 자본주의, 남성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역사의 밑바닥 중에서도 더 밑바닥에속하는내 어머니 같은희생당한 사람들, 특히 아시아 여성들의 상처와 고통에 소리를 불어넣고, 그들을 부활시키고 싶다.

아시아의 짓밟힌 여성들을 나의 신학의 일차적인 맥락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들의 경험에 대해 책임이 있는 신학을 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서구 남성 지식인들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신학적 언어와 패러다임, 질문들은 아시아 여성신학의 자원이 될 수 없다. (-) 자원은 아시아 여성들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아시아 여성들이 자신들의 구체적인 매일매일의 삶의 경험들이 스스로를 위한 종교적인 의미 구조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고 여길 때 비로소 우리는 강요된 종교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 아시아 여성들은 스스로의 느낌과 판단을 신뢰하고, 그것들을 사용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규정하는 기존의 규범 체계에 도전해야 한다. 우리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매일매일의 삶의 경험들이 우리의 신학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시험대가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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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범우사상신서 19
콜린 윌슨 지음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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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31년 영국 레이세스터에서 노동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주당 3펜스를 버는 구두 수선공이었다. 이것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가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이 20세기의 현 시점에서는 불합리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노동자 계층의 가족들-특히 공장 노동자들-은 오블로모프가 산업의 악마라고 여겼던 이상한 냉담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 나의 가족은 내가 주일마다 월급 봉투를 집에 가져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16세에 학교를 중단했다(나의 동생은 14세에 중단했다).

(-)

그 후 8년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일-주로 비숙련노동-에 종사하면서 계속해서 자료를 수집했다. 나는 또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나는 부피가 큰 일지 한 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24세가 되었을 때는 수백만 단어에 달했다. 그것은 매우 고되고 재미 없는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나의 관심과 같은 관심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19세에 결혼했으므로 아내와 어린애들이 이 문제에 덧붙여졌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도 어떤 격려도 기대하지 않고 완전히 혼자서 전부의 작업을 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 천재적 재능에 대한 어떤 신념-즉 적어도 자기가 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과 다른 어떤 인간도 이러한 확신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그것은 상관없다는 믿음-이 없이는 작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소외에 대한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행히도 나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훌륭히 절제할 수 있는 유쾌한 성격을 항상 지녀왔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어떤 작가나 사상가와도 접촉하지 않고 완전히 고독의 공간 속에서 읽고 쓰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의 일생을 공장에서 노동하는 데 썩이고 나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한 생각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블레이크나 니체도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일할 수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감내해내기도 했다. (-)

(-)

'아웃사이더'의 근본문제는 일상의 세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며, 그 일상의 세계가 무언가 지루하고 불만족스럽다고 느끼는 데 있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이 톱밥을 계란이나 베이컨이라고 믿으면서 먹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인류의 시인이나 사상가들은 이 감정을 그들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데, 악셀의 표현에 의하면 이 감정은 삶 그 자체가 평범하게 되풀이되는 노역이며 종들에게만 알맞다는 느낌이다. (-)

(-)

20세기에 낭만주의는 다른 이름으로 재생되었다. 소위 '실존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했다. 지고하고 신과 같이 초연하며 권능 있는 세계와, 우리가 희생적이고 절망적이며 '일시적'이라고 느끼는 세계 중 어느 세계가 실제적인가? 자유에 대한 인간의 경험과 육체나 세상에 속박되어 있는 노예의 경험 중 어느 것이 진실한가?
(-)
(-) 나는 현대문학에 매우 널리 스며들어 있는 우울증이나 패배의 경향에 참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패배하거나 죽음을 당할 의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 모든 문제는 무의미하며 우리는 우리들의 감정의 한계를 좋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이어 교수가 이끄는 게으르고 지적으로 우둔한 영국 철학자들의 학파에도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들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거나 가장할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
해결의 길은 반드시 발견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나의 타고난 낙관주의가 나의 이점이다. (-) 만약 문제가 패배된 채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 문제에 충분히 공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내가 어떻게 해서 '성네옷의 한계'라는 문제를 깨닫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1954년의 어느 더운 여름날, 나는 지치고 '생명의 평가절하'의 상태로 북방의 큰 길에서 피터버로로 가는 무료 자동차를 불렀다. 나는 피터버로에 가고 싶지는 않았으며-그것은 진저리쳐지는 의무의 요구였다-또한 내가 무미건조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했고 주인과 싸워야 했던 런던에 특별히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는 너무 의기소침해 있었기 때문에 트럭이 마침내 내 앞에서 멈췄을 때에 고마운 느낌도 가질 수 없었다. 1마일쯤 갔을 때 자동차의 변속기에서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운전수가 자동차 수리 공장에 가서 수리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를 내려 다시 차를 불렀다. 두번째의 트럭이 내 앞에서 멎었다.
이번에도 나는 고마움도 마음의 위안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약 10분 정도 갔을 때 불합리하고도 우연한 일치가 일어났다. 자동차 변속기에서 역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마치 "나는 다음 차고에서 너를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날 처음으로 '아!' 하는 적극적 감정이 일었다. 어쨌든 그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그가 시속 20마일 미만으로 차를 몰자 그 소리가 그쳤다. 이렇게 1시간 반쯤 간 후에-우리 둘 다 긴장하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그는 "만약 우리가 이 속도대로 계속해서 간다면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 갑자기 위안과 기쁨에 압도당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그의 불합리함에 주의했다. (-)나는 나의 이러한 인식을 서투르기는 하지만 다음의 말로 공식화했다. 즉, "고통이나 불편함에 의하여 자극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쁨에는 무관심하다"고, 그리고 그때 우리가 성네옷의 거리를 지나고 있어서 나는 그것을 '성네옷의 한계'라고 이름붙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잊지 못한다.

(-)

우리가 취급하고 있는 문제가 진보의 문제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점차로 분명해졌다. 이 책에서 나는 아웃사이더들을 쉽게 탈선하는 급행 열차에 비교했다. 비행기와 소리의 장애 문제가 더 적절한 비교일지도 모른다. 비행기가 소리의 속도에 가까운 속력으로 비행하게 되면, 공기는(-) 일종의 콘크리트 장벽과 같은 것을 형성한다. 제트 비행의 초기에는 비행기가 이렇게 콘크리트와 같은 공기의 장벽에 부딪쳐 파열되곤 했었다. 그러나 발명가들이 초음속 폭음을 거뜬히 통과하는 비행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을 때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비행기는 항상 급강하했다. (-) 그런데 어느 날 특별히 배치된 시험 비행사가 불합리한 짓을 시도했다. 그는 조종간을 광포하게 뒤로 젖히는 대신에 앞으로 당기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는 평소보다 훨씬 급강하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비행기는 똑바로 나아갔다. 즉 초음속에서는 평상시의 많은 법칙적인 특성이 뒤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아웃사이더> 문제의 청사진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은, 진보란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할 능력이 있는 인간을 창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것은 평균적인 동물로서의 인간에게는 완전히 낯선 진지함과 정신적인 강도의 능력이다. 19세기에는 성공하지 못한 경험들의 잔해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풀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성네옷의 한계'라는 나의 개념 속에 반 이상의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주된 불행은 초음속 여행의 낯선 법칙에 대한 우리의 무지다.

_콜린 윌슨_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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