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캉캉 #작가와의대화 #유성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세미나실1 7월 10일 16:00~17:30


유성원의 이야기




1.

저는 섯버라는 이름으로 트위터에서 활동을 했었고 페이스북에서는 버섯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처음 트위터를 한 것은 회사에서 시켜서 했어요. 제가 출판사에 다니는데 이제는 신문광고의 시대는 끝났다. 개인이 다 마케터가 되어서 책을 팔아야 한다, 그래서 계정을 열고 책 홍보를 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팔로우 하고 싶은 사람은 게이 포르노 스타라든지 게이 야동을 올리는 사람인데 제가 팔로우 하고 있는 사람은 작가들이거나 출판사 관계자 그런 분들이에요. 어떤 사람은 세컨계라고 해서 분리해서 계정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그래야 한다고 느끼는 상황에 불만이 있었어요. 이 두 개를 섞을 순 없을까? 당시 회사에 계시던 사장님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 한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검열이 심하지 않을 거다 하는 말을 저에게 한 것은 아니고 건너건너 표현하는 걸 들었어요. 

근데 제가 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건 그래도 어렵다는 느낌이 있었고 그 불화가 뭘까 생각해보니까 이건 다른 사람한테 내가 누군지 인정받는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이야기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단순히 게이로서 커밍아웃을 했어, 그래서 난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랑 섹스하는 걸 좋아해, 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렇다면 나는 거기서 어떤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고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나에게 친구가 있다면 누구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제가 답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저 같은 경우는 군대를 전역하고서 2010년도부터 게이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고요. 그때는 이반시티라고 하는 게이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에서 토요일 술모임 공지를 보고 찾아가고 그랬는데 거기에서도 어울리기가 조금 힘들었어요. 왜냐면 저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어요. 초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지냈고 또래 친구가 없었고 그래서 또래 친구들이랑 관계맺는 법을 몰랐어요. 주변에는 다 어른들만 있었고. 아줌마, 아저씨, 형, 누나. 그래서 제가 무슨 수를 쓰거나 사랑받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았어요.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맺는 데 자신이 없었고… 그런 여러 맥락 속에서 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이유는 내가 게이여서일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외로운 거고 (거짓말을 하고 나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친구와 관계맺는 법을 모른다고. 그런데 (게이) 친구를 만나러 나가본 곳도 똑같은 세상이었던 거예요. 이성애자들의 문법을 흉내내고 있고 관계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고. 그런데 거기에서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그곳이 제게는 공원 화장실 같은 곳이었어요. 거기는 누구를 인격적으로 기대하지도 않고 이 사람의 이름이 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냥 오로지 싸고 싶어서 오거나 싸려고 가는 곳.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 그래서 그런 장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사용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거는 질병에 대한 혐오였어요. 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 다니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비난하는 방식은 질병, 저렇게 하면 병 걸려, 더러운 애들, (우릴 욕먹게 하는) 걸레 같은 애들. 그런 혐오문법이 있었고 그런 ‘더러운’ 애들과 건강한 사람들을 분리하는 힘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 HIV/AIDS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아직은 비감염인이지만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는 한 장기적으로는 감염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성관계를 하는 이상 (성정체성이나 그 형태에 관계 없이) HIV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에 관심이 생겨서 들어가게 됐고, 그때 진행했던 행사에서 제 경험담을 후기에 섞어서 쓴 글(「외로움의 조건」)이 사람들에게는 ‘에이즈 걸린 게이가 쓴 수기’라는 이름으로 퍼졌죠. 네이버에 검색하시면 나와요. 얼마나 문란한 게이들인지 봐라, 하는.


 



제가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책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거는 이제 2014년부터 2016년도까지 쓴 일기를 소설적으로 가공한 거예요. 이거는 트위터를 하던 시기, 그러한 성생활을 하던 시기와 닿아 있는데 그때 쓴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으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한번 정리를 해봤고요. 







이거(전시 텍스트)는 제가 트위터에서 주로 쓰는 말투였는데 편집자로 일하면서는 맞춤법을 지켜야 된다는 그런 명령 속에 있고 누가 잘못된 말을 쓰면 고쳐야 하는 입장인 거죠. 비문이에요, 틀렸어요, 오자예요. 그런데 생각했어요. 우리가 고치지 않아도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고 뜻을 알 수 있는데 이걸 왜 똑바로 써야 하지? 이러한 약속이 작동하는 방식이 이 사회의 규칙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의 서문이자 이번 책 작가의 말인 ‘사람’을 위한 규칙을 썼습니다.





2.

저는 정체화 과정을 좀더 얘기해야 될 것 같은데 저 같은 경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자에게 끌렸고 성욕을 느꼈고 성관계를 가졌음에도 어렸을 때는 그런 문제가 있었어요. 제 몸에 피부병이 있어서 제가 저 형이 너무 좋고 저 형이 나랑 항문섹스를 하게 하고 싶어, 생각하는데 저는 옷을 벗으면 온몸에 그런 습진과 온갖 컴플렉스에 뒤덮이게 하는 육체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욕구는 느끼지만, 하면 안 돼, 왜냐면 저 사람들이 너‘는’ 원하지 않을 거야, 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저 사람이 설령 다른 남자와 항문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졌더라도 그 상대가 너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제가 게이 커뮤니티에서든, 커뮤니티라고 말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든 이 부분이 계속 작동하는 거예요. 노콘 항문섹스 같은 걸 하면 병에 걸려, 위험해, 그리고 나는 안싸 절대 안 해, 라고 하지만 올식이라고 하는 쉽게 말해 이상형인 사람이 나는 콘돔 있으면 안 해 혹은 안에 싸고 싶어, 라고 했을 때 아니, 절대 안 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안 된다는 걸 느꼈거든요. 내가 나를 취약하게 하고 싶지 않고 내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잘살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면 정해진 여러 방법들이 있잖아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고. 해야 되는 행동이 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게 될까.

저는 중독 문제에도 관심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중독자에 대해서 의지를 생각할 수 있잖아요. 담배 같은 걸 끊으려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나 환상이 있는데 실제로 저는 의지의 문제보다는 환경의 문제가 훨씬 큰 거 같다고 느꼈어요. 제가 본 한 테드 강연은 중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분은 그래요. 우리가 병원에서 맞는 마취제나 진통제는 아주 고순도의 약물이다. 우리가 불법적인 루트로 구할 수 있는 약들보다 훨씬 더 고순도의 약물들인데 그럼 우리가 뼈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해서 몇 달 동안 치료하고 나오면 우린 다 중독자가 되어야 하는데 중독자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데 그렇다면 이 차이는 뭘까. 어떤 사람은 왜 자기가 중독될 뭔가를 찾아서 헤매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실험을 하나 했었는데 흰 쥐를 우리에 넣고 하나는 물, 하나는 마약이 든 물을 놓고서 관찰했대요. 그러니까 쥐가 마약이 든 물을 택해서 먹다가 죽어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환경을 조금 바꾸어서 쥐공원을 만들어줬다는 거예요. 쥐한테 친구를 만들어줬고 미끄럼틀과 운동기구도 있고 여러가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두었더니 마약이 든 물을 택해서 마시는 쥐는 없었다는 거예요. 이거는 사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어느 정도의 답은 되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이, 나는 항문섹스를 좋아하고 남자들이랑 섹스하는 게 좋아, 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도 그것만으로 이루어지진 않잖아요. 누구나 굉장히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여러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거를 과연 드러내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가, 거기에 대해선 의문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지금 같은 경우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HIV감염인 같은 경우는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체내 바이러스 수치가 미검출에 도달해서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가 없어요(U=U). 콘돔 없는 섹스를 하더라도. 그럼 내가 감염인으로서 미검출 수치에 도달하도록 치료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관리했다는 사실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더라도 그것과 별개로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한국사회에 존재해요.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이라는 게 있는데 그건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섹스를 했을 때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그런 조항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내가 나를 긍정하고, 나는 섹스하는 거 좋아해, 그리고 나는 타인에게 전염시키지도 않아, 하는 개인적인 차원의 정신승리와는 별개로 여전히 사회에서 이 사람을 처벌하고 불법화하는 제도나 법령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생활하면서 체감하게 되는 문제거든요. 

항문으로 섹스하는 애들한테는 이런 취급을 해도 돼, 왜냐면 너희들은 항문으로 섹스하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고 콘돔을 사용하면 되고, 예방약이 있고 심지어 예방약(성분)도 특허가 만료돼서 저렴한 복제약(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없으면서 이 사람들을 범죄시하고 병리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런데 이런 저의 개인적인 고민이나 문제점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글 한 편, 이야기 하나로는 보여주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왜냐면 어떤 사람 앞에서도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가 없다는 느낌이 있는 거죠. 듣고 싶어하지도 않을 거고. 그래서 제가 이번에 만든 책은 그동안 있었던 일기, 제가 주로 박을 타거나 외로움을 느끼거나 여러 문제가 있을 때 썼던 글을 모아놨는데. 이 문제를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고 싶었어요. 당장은 제가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때 나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알 수 없는데 2014년에서 2016년도까지가 지나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고 있거든요. 그러한 시간적인 거리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번에 만든 책은 만오천원이고요. 전시장에도 갖다두려고 하니까 꼭 한 권씩 사셔서 성소수자 인권 향상에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원하시면 출장 가서 직접 저자와의 대화 시간도 가질 수 있도록. (웃음)



3.

MSM이라는 용어는 남자와 섹스하는 남자라는 말의 약어인데 이거는 혐오세력이 동성애하면 에이즈 걸린다, 하고 이야기하지만 동성애자라고 자신을 정체화했거나 표현하는 사람만이 동성과 섹스하는 게 아니다, 이성애자, 혹은 나의 남편, 그런 사람도 남자랑 섹스할 수 있다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고요. 성행동의 문제를 성정체성의 렌즈로 들여다봤을 때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얘기하는 용어고. 저는 이 동성캉캉이라는 이것이 크루징이라는 주제로 묶이면서 크루징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작가님들과 얘기할 때도 제가 계속 느낀 어떤 섭섭함이 있었는데요. 그게 뭐냐면 우리가 이렇게 동성캉캉 작가와의 대화 혹은 아트비앤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지만 동성캉캉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행동에 참여하거나 화장실에서 진짜 크루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 올 수 있을까? 그러면 결국 이 공간에 오거나 올 수 없는 사람은 누굴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까도 데이팅 어플이나 그런 걸 얘기하셨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공간에 모이거든요. 제가 그런 공간에, 그리고 거기 모이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애틋함이 있어요. 

거기서 화장실에서 이제 저와 성관계를 하신 분은 갑자기 이제 그런 얘기를 해요. 나는 친구가 없다. 나는 아는 게이가 없다. 그냥 여기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얘기를 듣고 와봤다. 그런데 나는 이미 게이 친구들도 있고 어디서 뭘 하면 되는지도 아는데 이 사람은 나이가 사십이 넘었는데 이제 그런 걸음마를 처음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게이로 활동하면서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게이로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게이로 섹스할 때 어떤 매너를 지켜야 하나에 대해서 합의된 것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사실 이성애자들은 결혼을 하면 일부일처제라든지 아내에게 남편에게 충실해야 된다든지 어느 정도 합의된 문법이 있죠. 게이들은 그런 게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관계의 문법을 계발하거나 상상하면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폭력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가 쉽다는 거죠. 

저는 성병에 취약해지는 지점은 사람이 자기에게 허용하지 않았던 안전장치를 하나씩 푸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저는 정체화하면서 빨리기만 했어요, 나는 절대 안 빨아, 아직 안 빨았으니까 게이가 아니야, 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의 정액은 입에 받아요. 왜냐면 그 사람은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사람을 닮아서. 내가 너무나 사랑했고 말하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고 껴안아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사람하고 너무 닮은 사람이 내 입에 싸고 싶어해요. 그러면 그걸 허락한단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어떤 안전장치를 푸는 순간들이 사람들의 삶에 찾아오고 그때 이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에 남겨졌을 때 이 사람은 자기 삶을 어떻게 관리해나가야 하고 상상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아직도 너무 많은 공백이 있는 거예요, 성소수자로서 살 때. 그래서 크루징의 공간에 오는 사람들은 낱낱이에요. 여기를 보면 이렇게 모여 있어요. 누군가에게 말을 걸려면 말을 걸 수도 있어요, 용기를 낸다면. 근데 그러기가 어려워요. 그런 거를 원하지 않고 싸고 나면 빨리 나가버리고 그렇게 혼자 고립되어 있을 때 이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몸이 아팠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 내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고 나의 행동, 화장실에서 남자 고추를 빨았거나 항문섹스를 한 경험을 친구들에게 가족에게 아내나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을 때 이 사람이 혼자 거기에 대처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거죠. 



4.

일단은 (이번 전시에 있어서) 그런 공적인 공간에서 노콘섹스라든지 항문섹스라든지 그런 말들이 드러나 있는 거, 노출돼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단어는 세상에 없는 것처럼 숨겨져 있잖아요. 가려져 있고. 행동은 있는데 보이지 않고. 그래서 제가 게이 관련된 전시에 갔는데 내가 한 행동이 아름답거나 고상하거나 은유적으로만 표현되어 있다면 서운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읽든 안 읽든 그런 단어들을 배치하고 이 문장을 읽을 때 사람들의 동공이 약간 흔들리거나 그런 경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저는 계속 글을 써왔어요. 일기를 2003년도부터 썼고 그거를 다 텍스트 파일로 가지고 있어요, 가지고만 있지 고칠 시간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2014년도부터 2016년이라는 시간은 제가 출판사를 2013년도에 들어가서 2015년 4월에 퇴사했는데 그때 느꼈던 것들은 그랬어요. 아직 박상영 작가님 등이 등장하기 전에, 일부 작가님들이(전체 비중에서의 일부이지만 사실은 전체에 가까운) 인물의 비정상성이나 자신의 우울한 내면을 드러내는 도구로서 성소수자들 게이들의 이미지를 활용했는데 그게 너무나 불만이었거든요. 남자 둘이 좋아서 항문섹스를 하는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울어요. 그래서 그게 너무 싫었어요. 나는 고추 빨고 정액 먹는 게 너무 좋은데 저 사람들은 왜 우는 거야. 그래서 나는 언젠가 이 사람들을 다 뒤집어놓을 거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 계속 써왔던 글이고요. 2014년 무렵부터 우울증이 좀 심해졌고 그런 것을 관리하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그만두고 물류센터에 다니다가 새로운 출판사로 이직하기 전까지의 기록이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제가 처음 썼던 글과 달라요. 많은 부분을 덜어냈고 지금 전시장에 가시면 벽면에 붙어 있는 건 2018년 글인데 책에는 안 실려 있고 그런 식으로 실리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요. 어떤 건 얘기할 수가 없고. 내가 소설로 이 장면을 쓰면 사람들이 다 놀라 자빠질 거야, 하더라도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기 때문에 그거를 제가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거를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고요. 아까도 윤리나 도덕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저는 나에게 무엇이 윤리와 도덕일까 생각해보면 고통이었어요. 뭐가 날 아프게 하지? 어떤 게 나의 몸을 아프게 하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성병, 질병에 걸리면 몸이 아프겠죠. 팔이 부러지면 아프다던지. 마음의 고통은 아까도 말했지만 관계에서 잘 정의되지 않은 폭력들이 사랑으로 포장될 때. 


19. 7. 10. 동성캉캉 작가와의 대화 중에서




유성원 작가노트



“섯버”라는 이름으로 2014년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에 발표했던 「외로움의 조건」이라는 글은 “[혐]에이즈에 걸린 게이가 쓴 수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그에 대한 답으로 2019년 성소수자 인권포럼 발제문 「노콘 항문섹스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를 썼다. 유성원은 오늘날 에이즈 치료제이자 예방약으로 쓰이는 트루바다와 프렙, U=U 등이 성적으로 활발한 게이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렇다면 콘돔 없이 안에 싸도 된다는 말이냐”라는 질문에 답하려 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섹스하는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 과정에서 누락된 것은 무엇인지 묻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2014년부터 2016년까지의 ‘일기’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그 3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익명성을 띤 “크루징”이라는 개념과 성적 공간이 어떻게 개인에게 강제되고 구성되는지 돌아본다. 편집자로 일하는 작가는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포기하면서 무엇이 쓸 수 있는 글이고 쓸 수 없는 것인지 시험한다. 초고를 교정을 마친 책과 함께 전시해 교정할 수 있는 부분과 교정할 수 없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사람과 사건이 이야기로 남고 또 사라졌는지 기록 너머와 그 이후의 시간을 응시하려 한다.


https://blog.naver.com/paranoia_a/221583859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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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구조대 민음의 시 258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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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집을 교대로 지킨다




장정일




집 앞의 버스 정류소에 내리면

불 냄새가 난다

너와 나는 그만 헤어져야 해


내 발걸음을 이끄는 건

들리지 않는 소방차 소리

골목에서는 언제나 환영을 보았지

어지러운 소방 호스와

나를 손가락질하는 낯선 이웃들

까맣게 타 버린 창에 늘어진 혀처럼 보이는 것은 그냥 커튼일 테지


누구도 알지 못할 우리 집 비밀번호

너는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나와 똑같은 꿈을 꾸다가 일어났어

서로 겸연쩍은 얼굴을 교환하고

물 잔을 앞에 놓고 식탁에 마주 앉았어

이미 불탄 집인데


이튿날 아침엔 네가 먼저 사라졌어

동물원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알바일 테지

나는 가스레인지를 껐다, 켰다, 껐다, 켰다

하지만 이 집은 우리 게 아니야


저녁에 너는 불 냄새를 맡으러 돌아올 테지

물에 젖은 커튼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지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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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구조대 민음의 시 258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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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장정일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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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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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얘기를 해볼게요. 제가 택시를 타고 가는데요. 우회전을 해야 하는 길인데 어느 차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어요. 그래서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고요. 저 차가 왜 저기 서 있지, 했는데 기사님이 그래요. "손님, 도로에 서 있는 차는 다 이유가 있어요." 제가 고수가 나타났구나 했죠. (웃음) 

살다보면 죽고 싶을 때가 있죠. 내일 아침 눈을 안 뜨고 싶다, 하는 순간들이 있죠. 그런 순간도 있고 어떤 인간이 너무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저 인간을 내가 죽여버리고 싶다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면 좋겠어, 죽었으면 좋겠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과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의 스펙트럼이 다 넓은데 그 마음을 그냥 먹었을리 없잖아요. 내가 죽을까? 해서 죽는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누가 죽었으면 좋겠다,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도로에 차가 서 있으면 이유가 있는 거죠.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차가 고장났거나 갑자기 급한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고,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남들이 뭐라고 하면 무정하다 그럴 텐데, 남들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는 비난하기 쉬운 거죠.

요즘 영화 <생일>이 개봉됐잖아요. 그게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그 아이가 없는데 아이의 생일이 돌아오면 엄마들이 너무나 괴로워해서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2년 동안 생일 모임을 했던 거 같아요. 그 이웃 치유자 선생님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생각했죠. 이걸 하면 무엇이 좋아지는 것일까, 아이는 없는데, 같이 울고 웃고 얘기하고 한 달 정도 준비하고 한 아이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무리 잘해도 빵점짜리 일인 거예요. 아이가 살아 돌아오기 전에는 어떤 치유 작업도 그들에게는 빵점짜리 일인 거예요. 그런데 왜 할까.

치유의 원리가 그런 거예요. 뭘 하면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인간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에는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 효율적이죠. 가장 비경제적인 일이 효율적이에요. 이 빵점짜리 일을 안 하게 되면 누군가는 마이너스 천점, 마이너스 사백점까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걸 아니까 그 일을 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우리가 조금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하는데, 그 생일 모임이 끝나고 나면 엄마들이 일주일 정도 두문불출하는 경우가 많아요. 집에 돌아가니까 아이의 부재가 너무나 더 생생해지는 거예요. 친구랑 얘기했고, 웃었고 했는데 집에 돌아오니까 없어요. 그래서 앓는 거예요. 너무 앓아요. 하지만 그 이후엔 달라질 수 있어요. 성과에 급급하면 이 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되풀이될 수 있죠. 그렇게 빵점짜리 일을 향해 가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공감의 핵심인 것이죠. 어떤 사람에게 눈을 포개고 마음을 포개면, 죽을 작정을 한 사람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런 걸 경험칙으로 우리가 알게 된 거죠. _이명수, 공원에서 만난 혁신가, 강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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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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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잉 얼른 읽고 싶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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