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영화 말들의 흐름 2
금정연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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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이름 석자만 보아도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할지 느껴지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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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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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울면 많은 것이 해결되었다. 울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던 시절도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떼를 쓰고 투정을 부렸다. 툭하면 울어서 울보, 여차하면 떼를 써서 떼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울어서 솜사탕을 얻고 떼써서 아이스크림을 얻었다. 녹는 것들이 많았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들이 많았다.

암 투병중인 아빠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새겨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을 하고 귤을 까먹고 낙엽을 두 장 주워 서로 한 장씩 나눠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성인이 되고 이런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내가 몰랐던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남은 시간이 참으로 귀하다.

얼마 전 허수경 시인의 사십구재가 있었다. 나는 약력 보고를 했는데, 약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긴 글을 적었다. 더 무색한 것은 한 사람의 삶이 요약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능하다면 수경 누나가 했던 말과 썼던 글들을 밤새 들려주고 싶었다. 사십구재를 마치고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아빠가 응급실로 옮겨졌다.

주치의가 더이상의 항암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말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몸과 마음은 한통속이었다. 지지난주까지 나와 근린공원을 산책했던 아빠였다. 20여 년 전 얘기를 나누며 그땐 왜 그랬을까 얘기하며 깔깔 웃기도 했다. 얼른 몸을 추슬러 바다를 보러 가자고도 했다. 아빠는 바다를 보면 아득해진다고 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말, 할 수 있는 것이 더이상 없다는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좀체 떠나지 않았다. 구급차를 타고 아빠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밤, 아빠를 바라보며 아빠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나는 아빠에게 무엇을 얼마나 했을까. 올 한 해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고, 그 무능함을 끝내 외면할 수 없어 슬펐다.

평소에 아빠는 할 것은 다 했느냐고 종종 물으셨다. 채근하거나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할것에는 할일뿐만 아니라 할말, 나아가 할 도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차근차근 할게요, 라고 답하면 아빠는 씩 웃었다. 그래, 나는 네가 내 아들인 게 좋다. 그 말에 얼굴이 벌게져 헛딴데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요즘 들어 애를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말했어야 했다. 저도 당신이 제 아빠인 게 좋아요. 부자지간이라 쉽게 나오지 않던 말이, 실은 부자지간이라 부러 애써서 해야 할 말이었던 것이다.

아빠에 대해 알 것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사실 또한 나를 슬프게 했다. 긴 시간을 함께해도 몰랐던 것들이, 상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유심함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자책하다가도, 마음이라는 게 있어서, 그것을 아직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 온기를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


허수경의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 2018) 개정판 작가의 말을 읽는다. “사랑한다, 라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아빠에게 사랑한다, 라고 말해야겠다. 잘 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잘 떠나는 일일 것 같다. 남은 자들에게는 그것이 잘 보내는 일일 거다. 아빠가 한 번이라도 더 웃으실 수 있게 말을 많이 건네야겠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야겠다.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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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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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알코올중독자들이 있는 폐쇄병동으로 아버지를 면회 갔을 때 말이야. 휴게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아버지의 등 뒤편에서 맨발로 탁구를 치다 나를 보려고 뛰어나오던 아저씨들을 봤어. 아버지는 웃으며 ‘내 똘마니’들이라고 장난스럽게 소개했어. 난 한심하단 눈빛을 담아 그들을 쳐다봤지.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해사한 표정으로 말하더라. “형님이 딸 시집을 보여주면서 자랑 많이 하세요.”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네, 하고 얼른 고개를 숙였는데 마음이 이상하더라. 나는 매번 아버지를 구박하기만 했는데. 아버지는 이곳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는 저 바보 이반들 하고 우르르 몰려가 담배를 피우고, 우르르 몰려가 종이학을 접으며, 갇혀서, 갇혀서, 갇혀 있으면서까지 날 자랑했다니. 내가 뭐라고. _98~99쪽



할머니는 삶은 밤을 숟가락으로 파내 밥그릇에 모아놓고 설탕을 뿌린 뒤 내게 주었다. 숟가락을 입속에 넣었다 빼면 밤 부스러기가 침과 섞여 숟가락에 축축하게 달라붙었다. 숟가락에 붙은 부스러기를 떼어 먹고 있으면 할머니의 손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할머니는 삶은 옥수수도 한 알 한 알 떼어내 밥그릇에 담아놓았다가 내가 오면 주었다. 옥수수는 입속에서 몽글몽글 굴러다니다 터졌다._190~191쪽



염을 할 때 아버지의 손과 발, 내가 사랑하던 얼굴을 오래 만졌다.


지금도 만져보고 싶다.


가끔 만질 수 없다는 게 의아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_202쪽



살아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다. 새삼 이 사실이 놀랍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어떻게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온 걸까? 내 몸속을 흐르는 피는 어떻게 한순간도 흐름을 멈추지 않고 지금껏 움직여 왔을까? 새들과 한철 피고 지는 꽃들과 난쟁이 같은 버섯들, 크고 작은 동물들에 비해 사람은 태어나 죽기까지의 주기가 길다. 창문 앞에 흐드러진 목련은 나를 한 철 보겠지만, 나는 저 목련이 죽고 나서도 내년에 다른 얼굴로 오는 목련들을 ‘또’ 볼 수 있다. _202~203쪽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작은 지붕들’처럼. 근사하지?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따뜻하게 잘 사는지 알면 질투 날 텐데. 내 지붕 아래로 가끔 칠이 벗겨진 기차가 지나다니고, 세숫대야에 쏙 들어가는 작은 바다도 넘실대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조용히 늙어가기도 해. 물론 옛날 음악이 흐르는 주크박스와 한 소쿠리 귤, 숨겨둔 꿀단지도 있어. 난 요새 부자야. 이렇게 살고 있다고.


물론 생각이 날 때가 있지. 아주 가끔. <걸어도 걸어도>란 일본 영화를 보고 난 직후라든가, 피곤한 일을 처리하고 돌아와 힘없이 단추를 풀 때. 혹은 치약을 짜다가 별안간. 청국장을 끓이다가 문득. 마치 먼 옛날 애인처럼 떠오르지. 내게 그런 애인이 정말 있었나, 싶은. _216~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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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무법자 -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케이트 본스타인 지음, 조은혜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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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ㅠㅠㅠ 계약이 종료돼서 절판당한 것인가요 한글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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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의 집 렛츠! 당사자연구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지음, 이용표.김대환 감수, 이진의 옮김 / EM커뮤니티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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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학교에 들어가서도 죽는 게 낫겠다혹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라고 말하는 5명 정도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와서 제가 자진해서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안심했습니다. 저의 고통을 겨우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퇴원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왜 살고 있는 거지?’라든지 장래에 대한 생각도 못할 정도라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죽고 싶다고 하는 관념(죽음의 신)이 나타나 응급외래진료를 받고 응급 입원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당사자연구 과정에서 응급외래진료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의 유대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병원이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이 안심을 얻기 위한 매체였으며 병을 이용해 사람과 연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죽고 싶어지면 한밤중에도 부모님께 응급외래로 데려가주세요!”라고 간청하며 병원으로 향합니다. 병원까지는 40분 정도 걸립니다. 가장 곤란한 것은 죽고 싶다는 고통이 아니라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 죽고 싶다고 하는 마음이 점차 수그러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책이 필요해집니다. 역시 나는 외로우며, 부모님은 밤중에도 불구하고 운전하고 있고, 병원에는 의사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죽고 싶다고 하는 마음을 유지시켜 최악의 상태로 병원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자신을 열심히 비난하면서 기분을 괴로운 상태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

저에게 있어서 병이 낫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수단을 상실하게 하는 공포감으로 느껴졌습니다.

 

훗카이도·우라카와에 와서 정신과외래 진료를 받았을 때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죽고 싶다고 하는 것은 고향인 아이치에서밖에 통용되지 않는 일종의 방언이고 말을 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라카와에서는 응급외래진료를 받을 때 죽고 싶다고 말해도 전혀 입원시켜주지 않고 열일곱 알 복용하고 있던 약도 한 달 사이에 네 알로 줄었습니다. “죽을 겁니다라고 하면 , 알겠습니다로 끝납니다.

그래서 베델의 당사자연구 미팅에서 죽음의 신과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멤버인 시미즈 리카씨가 응급외래에 가고 싶어지면 나한테 전화 줘!” 하며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다시 죽음의 신이 찾아왔을 때, 용기 내어 시미즈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마침 좋은 때 전화 줬네. 지금 찌개 만들고 있는데 오지 않을래?”라고 말해줘서 응급외래가 아닌 공동주거 레인보우하우스 찌개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누구 한 사람 죽음의 신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즐겁고 맛있게 찌개를 먹었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제 안에서 죽음의 신이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저의 죽고 싶다는 사실은 살고 싶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외침이었단 것입니다.

 

_베델의 집 렛츠! 당사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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