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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어릴 때는 울면 많은 것이 해결되었다. 울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던 시절도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떼를 쓰고 투정을 부렸다. 툭하면 울어서 울보, 여차하면 떼를 써서 떼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울어서 솜사탕을 얻고 떼써서 아이스크림을 얻었다. 녹는 것들이 많았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들이 많았다.
암 투병중인 아빠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새겨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을 하고 귤을 까먹고 낙엽을 두 장 주워 서로 한 장씩 나눠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성인이 되고 이런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내가 몰랐던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남은 시간이 참으로 귀하다.
얼마 전 허수경 시인의 사십구재가 있었다. 나는 약력 보고를 했는데, 약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긴 글을 적었다. 더 무색한 것은 한 사람의 삶이 요약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능하다면 수경 누나가 했던 말과 썼던 글들을 밤새 들려주고 싶었다. 사십구재를 마치고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아빠가 응급실로 옮겨졌다.
주치의가 더이상의 항암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말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몸과 마음은 한통속이었다. 지지난주까지 나와 근린공원을 산책했던 아빠였다. 20여 년 전 얘기를 나누며 그땐 왜 그랬을까 얘기하며 깔깔 웃기도 했다. 얼른 몸을 추슬러 바다를 보러 가자고도 했다. 아빠는 바다를 보면 아득해진다고 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말, 할 수 있는 것이 더이상 없다는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좀체 떠나지 않았다. 구급차를 타고 아빠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밤, 아빠를 바라보며 아빠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나는 아빠에게 무엇을 얼마나 했을까. 올 한 해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고, 그 무능함을 끝내 외면할 수 없어 슬펐다.
평소에 아빠는 할 것은 다 했느냐고 종종 물으셨다. 채근하거나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할것에는 할일뿐만 아니라 할말, 나아가 할 도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차근차근 할게요, 라고 답하면 아빠는 씩 웃었다. 그래, 나는 네가 내 아들인 게 좋다. 그 말에 얼굴이 벌게져 헛딴데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요즘 들어 애를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말했어야 했다. 저도 당신이 제 아빠인 게 좋아요. 부자지간이라 쉽게 나오지 않던 말이, 실은 부자지간이라 부러 애써서 해야 할 말이었던 것이다.
아빠에 대해 알 것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사실 또한 나를 슬프게 했다. 긴 시간을 함께해도 몰랐던 것들이, 상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유심함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자책하다가도, 마음이라는 게 있어서, 그것을 아직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 온기를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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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의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 2018) 개정판 작가의 말을 읽는다. “사랑한다, 라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아빠에게 사랑한다, 라고 말해야겠다. 잘 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잘 떠나는 일일 것 같다. 남은 자들에게는 그것이 잘 보내는 일일 거다. 아빠가 한 번이라도 더 웃으실 수 있게 말을 많이 건네야겠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야겠다.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