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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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력이나 집중력은 독자들의 강점이 아니다. 독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은 감각적인 향락들이다. 그들은 관심과 수용능력을 말살시키는 우울spleen과 친숙해 있다. (-) 이해받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그의 책을 헌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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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 문학동네 시인선 142
안주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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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에서 반쯤 꺼내다/밥상 위에 올려놓은 삼겹살은/나보다 나를 더욱 깊이 이해하면서/낮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다(「눈동자」 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내가/왜 눈물을 흘리는지 모르는/한 마리 구석이 될 때(「비가 오겠다」 부분)


우리는 아직 조금 남아 있다/없는 것처럼(「너는 나인 것 같다」 부분)


개가 되려고 결심하면/이제 침을 흘리고 남의 집을 지키면서도/인간보다/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변신」 부분)


야!//알지 못하는 사람이 소리를 질러도/그게 나일 것 같아서 두렵고(「내가 나에게 묻는 저녁」 부분)


늑대가 되어 돌아온 편지를 읽지 않기 위해/내 앞에 있는 늑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슬픔을/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고민하기 시작하면서(「늑대」 부분)


내 입으로 아버지, 밥을 먹는다//건방진 아버지//이제 죽어서 혼내줄 수도 없고/새벽까지 원망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데//아버지 내 입으로 밥을 먹는다//허락도 없이/씹지도 않고(「건방지게 깐죽거리면서」 부분)


기억에 남을 시련도 없는 생을 살았다/끝까지 차례를 지켜가며 누구나/만나게 되는 불행을 겪으며 살았을 뿐이다(「불행에 대한 예의」 부분)


(-)끊은 손을/아버지 묘에 가만히 놓아둘게요 죽으니깐 부끄러워서/묘를 열고 나오지도 못하는 아버지 저 갈 테니깐/무덤 속같이 밖이 캄캄해지면/나와서 손톱 깎고 그 자리에 제 손을 놓아두세요/술 처먹고 풀숲에다 버리지 말고(「아버지를 사랑함」 부분)


내가 나를 사십 년째 넘고 있지만/넘고 있다는 사실을/사십 년째 성실하게 까먹고 있다//살아 있는 것이겠지?//내 나이를 가끔 아내에게 물을 때가 있다/사춘기인 아이는 내 나이를/한참 넘어/먼 곳을 바라본다//그곳이 어디인지 모르지만/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내 나이를 가끔 거울에 비추어볼 때가 있다/나이에도 앞뒤가 있고/좌우가 있을 것 같다//금간 거울을 또다른 작은 거울에 비추자/두 개의 거울이 동시에 깨진 것 같다(「내가 나를 사십 년째 넘고 있다」 부분)


내가 인정하지 않는 것들이 나를 살게/한다는 생각을 구름이 환해지듯이/옥상이 서서히 드러나듯이 한다//만나면 때려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도/나를 살게 한다//어쩌면 내가 이 생에서 그토록 원했던 것도/근근이 하루하루를 견디기 위해/미워하고 사랑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모른다(「역겹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


결국 아버지 죽었다/병생 병든 채 살았고/반전 없이 마지막도 병들어 죽었다//아버지가 죽었는데/왠지 나의 일부를 끌고 간 느낌이 든다/그게 무언지 알 수 없지만//아버지 죽을 때 가지고 간 게 도대체/뭐예요?/죽으면서 저승에 뭐 들고 가는 사람이/어디 있어요?(「궁금할 때마다 밤이다」 부분)


더 아름답고/더 멀리 세상 밖으로 달아난 사람에게/밥은 먹었냐? 이런 말을 걸고 싶을 때가 있다/밥은 먹으면서 달아나고 있냐?(「아름답다」 부분)

 

버스가 설 때마다 할머니들이/버스 계단을 느리게 세면서 올라온다/자기 안에 남은 나이를 거의 다 꺼내버린/사람들의 표정은 때로 만지고/싶을 만큼 아름답다(「여행의 끝」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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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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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님의 첫 책을 늘 기다렸네용.. 바로 주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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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표현된 불행 - 황현산 평론집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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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흔히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말한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꾀하고 그 역사적 맥락을 정리하는 해석의 기능과 미학적이거나 윤리적인 관점에서의 그 적절성 여부와 한계를 지적하는 기능이 그것이겠다. 한쪽이 작품에 대한 지식으로서의 비평이라면 다른 한쪽은 평가로서의 비평이다. 두 기능은 당연히 상보적 관계에 있지만, 한쪽이 다른 한쪽을 옥죄기도 한다. (-) 비평가가 늘 잊기 쉬운 것은 그가 자기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지식으로 정리할 때도, 그  한계를 지적할 때도, 그가 작가보다 우월하거나 앞선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작가와 같은 지적 풍토에 살며 작가와 똑같이 자기 시대의 주관성에 갇혀 있으며, 작가가 문제와 해답을 만날 때, 그도 문제와 해답을 만난다. (-) 작가와 비평가가 다르다면 그것은 문제와 해답을 만나는 방식과 제기하는 방식이 다만 다를 뿐이다.


비평가는 작가의 말이 늘 지식으로 환원되기를 바라지만, 작가는 자신과 마주선 문제가 이제까지 알려진 경험이나 지식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로 덮어 가려져 있다고 생각하기에, 또는 그 지식이나 경험으로 내내 문제삼았던 것이 다른 방식으로 벌써 해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 비평가는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와 해답이 진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마땅히 제기되어야 한다고 가장 먼저 공적으로 확인해주는 사람이다.


세계에는 어떤 질서가 있겠지만, 그 질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파지할 수 있는 인간의 지성은 없기에, 인간과의 관계에서 세계의 질서는 무질서와 다르지 않다. 지식의 체계란 이 무질서한 세계를 분별하고 정리하여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일 터인데, ‘지식으로 분별되는 세계’는 ‘분별하는 지식’만큼 확실한 것이 아니다. 분별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와 인간의 관계일 뿐이기에 분별의 뒤에는 희생되는 어떤 것들이 항상 남아 있다. 지식과 말이 권력이 되는 이유도 본질적으로 거기 있다. 지식과 말이, ‘세계’가 아니라 ‘세상’과 관계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통용되는 지식의 체계에는 어떤 사실을 그렇게 분별하기로 하는 정식계약과 그렇게 분별하기로 ‘양보하는’ 이면계약이 있다. 두 계약의 틈새에서 제도와 풍속이 갈리고, 법과 윤리가 갈린다. 그것들은 각기 그 나름의 말을 만들어내고 권력을 창출한다. 그러나 정식계약이건 이면계약이건 계약 속에 들어가지 못한 것들, 희생된 줄도 모르고 희생된 것들이 있다. 그것은 지식체계의 원죄와도 같고, 정신적 자유의 본질적인 구속과도 같다. 아름다운 것이건, 슬픈 것이건, 놀라운 것이건, 경이로운 것이건, 어떤 것 앞에서 누군가가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말을 하게 될 때, 그리고 그가 성실한 사람일 때, 그는 그 희생된 것들 앞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가 그 ‘이루 형언할 수 없음’을 문제로 발견하고, 계약의 파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약을 재조정하여 인간을 헛된 계약에서 해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그는 시인이거나 소설가일 것이다. 문학의 미학도 윤리도 형언할 수 없는 것과 한 인간의 관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벌써 역사 속에 편입된 텍스트도 아닌 문학 현장에서 생산되는 작품을 이미 정리된 이론체계 속에 구겨넣으려는 비평가의 시도가 자못 끔찍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계약을 잘 읽어보라고 보험회사 직원처럼 말하는 것이고, 계약은 벌써 빈틈이 없다고 법관처럼 말하는 것이며, ‘그러니까 네 말은 이 말이지’ 하는 식으로 경찰처럼 윽박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종이니 다성적이니 하는 말을 내세워 작가의 말을 갈피 잡아 들으려 하지 않는 어떤 종류의 비평 습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시도는 많은 경우 텍스트에 대한 비평가 자신의 무능을 빠져나갈 수 없는 계약에서 빠져나가려는 작가의 잔꾀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비평이 그 시대의 텍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한계 안에 갇혀 그 밖을 어렵사리 내다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것이 형언되려는 그 계기의 성실성과 진정성을 확인하고, 그 터전 위에서 자기에게도 정신의 구속인 계약의 그물망을 넓히거나 그 체계를 변혁하기 위해, 세상과 작가 사이에 이론적 매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또다른 권력이 되거나 주어진 권력의 울타리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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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법 문학동네 시인선 137
채길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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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법칙


 

아버지는 내게 빌려간 사만 삼천 원을 오만 원으로 갚아준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만 원을 되돌려주고

아버지는 내게 오천 원을 다시 주고

나는 아버지에게 삼천 원을 내준다

 

우리는 조금씩 더 관대하게

너무 산술적이지 않도록

쌍방에게 모른 척을 해준다

에누리 없이 다가가

손 없이 건네는 잔돈들로

언젠가는 이 놀이가 지겨워지겠지

더 작은 것으로 나뉘지 않는

당연하고 지루한 사칙연산으로

지난날의 총합들이 우리를 계산해준다면

평균이 영일 때

우리는 겹쳐 있을까

아예 몰랐던 사이보다 멀어져 있을까

 

아버지는 영이 될 수 없는 분모

나는 그 위에 올라선다

아버지가 커지면 전체가 작아지고

내가 커지면 흔들거리는 생활 속에서

최대 최소의 공약수와 공배수를 따져가며

나이를 먹는 동안

우리는 닮고 닳은 각자의 수식들을

피부로 만든 연습장에 기록하고 쪽수를 넘겨왔다

 

서로가 약분되어

더 작은 것을 가지지 못할 때

내게 아이가 생기겠지

아버지와 아이 사이가 한없는 점들로 이어지는

하나의 선분을 긋고

나는 아버지에게서 내려온다

그리고 영 될 수 없는 부모가 된다

아버지는 이제 허리가 휘고

흔적뿐인 분자가 비어

값은 거의 영에 가깝다

아버지에게 아이를 업히면

연약한 체중에도 휘청한다

아이는 계속 자랄 것이고

무용해진 지폐를 찢듯

얇고 가벼운 몸의 몫을 거스르며

삶도 나머지를 살아가게 된다

 

열 명의 인물이 모여

다른 한 위인의 동일한 가치가 되는

그런 수학은 잘해본 적 없지만

아이 열을 합해선 왜 한 아버지가 될 수 없는지

유일한 아이로 자라나더라도

어째서 아버지 열 명은 가질 수 없는지

 

내가 정말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만유인력


 

버스 창틀에 먼지인가 했는데 거미다

안내 방송은 정류장마다

어디까지 가니 내릴 수는 있겠니

모퉁이를 돌자 손잡이가 기울어지고

질량을 가진 것들 사선이 되어

골똘히 어긋난 노선을 생각하는데

어깨에 골반을 기대오는 수줍은 것들이

두시 방향 가속도가 되었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

문득 창틀이 비어 있다

거미인 줄 알았는데 먼지였구나

흔들리는 인간은 손잡이를 잡고

거미는 줄을 엮어 투명을 감추고

먼지는 질량을 가졌지만 자주 공중에 뜬다

우리에겐 아직 지나친 정류장이 남았으므로

여기 함께 있는 힘

자기 이외의 물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만유인력이라고 해

벨을 누른다면 수십 개의 붉은 태양이

떠올라 이곳의 궤도를 알려주겠지만

버스는 내가 진짜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준 적이 없다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눈을 떠도 불편하지 않은 물속 같은

무중력이란 불가능한 걸까

 

달리는 중인데도 갇힌 게 분명한

버스 안에서

창에 비친 햇살이

나인가 했는데

반짝

침이 고이고

가장 먼 곳을 가리키며

나와 둘로 나뉘지 않는

그림자가 일어선다

 

성급한 브레이크의 관성이

그쪽이 아닌 방향을 향해

떠오르는 우리를 은근히 밀어 멈추면

보이지 않는 실에 걸린 진공의 밖에서

문이 열리고

겸손한 물성으로 내려앉은

먼지보다 작은 퇴적들이

어떠한 그물에도 들키지 않은 채

버스에 올라타는 곳으로부터

 

나는 어디서든 내릴 수 있다

당장 누군가와 함께

혹은 혼자서라도

종점을 지나 영원히 갈 수 있고

눈을 감아

잠들 수가 없을 땐

꿈꿀 수 있다



 

까맣게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면 좋다

아버지는 이제 향기 나는 홍차도 잘 드시고

치즈가 가득 든 크림빵도 기꺼워하시고

육천 원짜리 단맛 나는 싸구려 포도주도

나와 같이 즐긴다

회사 업무라거나 아버지 어릴 적 한참을 걸었다던 자갈밭

언덕과 바다 풍경 아버지 이십대 삼십대

나 꼬마였을 때의 지나간 오랜 날들이

빛바랜 사진 속에서 얼굴 없이 기화해

햇살과 함께 어렴풋한 어지러움으로 퍼진다

따뜻한 홍차의 아지랑이처럼

텁수룩한 포도주의 취기처럼

인생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나는 진짜로 그렇게 묻고 아버지는

사는 게 그냥 고다 고 하고 대답하신다

죽기 위해 움직이는 장기 말처럼

부모는 자식을 위한 부속품에 불과할지 몰라도

누구도 원해서 시작한 게 아닌

이 뻔한 역할놀이와 성긴 포진에서조차

나는 수를 물리지 않고선 아직도 아버지를 이기지 못해서

언제든 낡은 판은 허물고

아버지와 마주앉아 다시금 시작하게 된다

자기 말은 먹을 수 없는 규칙처럼

재갈을 물고 아버지는 내게 막힌 길목들을 버릴 거지만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돌아오신 날

내 앞에선 토하지 않겠다며 화장실 문 꼭 닫고 억억거릴 때

뚝뚝 끊어지는 말더듬의 행간으로 버려진

소화되지 못한 단어들로는

평생을 고쳐도 부족하여 결국엔 미완성으로 남을

한 편의 긴 비문처럼

우리의 생애도 열망도 끝없이 수리할 수 있다면

아버지가 영원히 산다면

내가 아버지의 너무 멀리 뒤처진 비유이거나

허술한 특허로 복제된 불완전한 소유물일 동안

각자의 가장 불편한 자유를 다해

먼저 찍힌 흐릿하고 여유로운 발걸음을 지나서

아버지에 관한 이유가 더이상 나 때문은 아닐 때에도

나는 아버지의 치유가 되고 싶다

나는 치유받고 싶다

정확히 똑같았던 신장에서 아버지가 점점 작아져

이제 나는 아버지보다 머리통 하나 정도 키가 크지만

매일매일 짧아지는 연필처럼

매일매일 새로 깎은 연필처럼

금박으로 새겨놓은 이름마저 벗겨지고 잘려나간 뒤

곱슬대는 머리카락으로 흩어진 부스러기들을 털어버리면

그리하여 더는 다듬을 수 없을 만큼 줄어들어

올바로 쥐고 글 쓸 수 없어도

여전히 흑심과 나무 냄새 그리고 아름다운 파란색에

빨강으로 칠해진 처음의 본질을 그대로 지닌 채

앞으로는 부러지지도 만료되지도 않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의

지루해도 절대 고장나지 않는 몽당연필처럼

하얀 변기 뚜껑 위에 앉으신 아버지의 숱 듬성한 백발을

염색약 묻힌 칫솔로 새까맣게 빗겨주며

무뎌진 흑연 같은 뒤통수에 대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는

닳아 투명해진 소용돌이가 또 한번 휘감겨 물결이 일고

뭉클한 호흡과 몽롱한 생각들을 내려보낸

가운데가 텅 빈 그림자에 닿은 외통의 자리와

맑고 깊어 먼 데까지가 다 비치는 동심원에서부터

사각사각 빛나며 지워질 듯 떠오르는 이 어두운 글자들이

우리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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