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연애 말들의 흐름 5
유진목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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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제자리걷기를 하면서 읽었다. 귀퉁이를 접고 색연필로 그으면서 읽었는데 나는 유진목 시인의 이 책이 이렇게 웃긴 책인지 몰랐다. 특히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단어들은 다 웃기다. 그 유머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책을 덮고 나니 저기 멀리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고 다른 공간에 있으나 내가 나를 보며 다녀가듯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내 방에는 소중한 고양이 두 마리가 있고 침대가 있고 수박도 있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모이면(그런 게 가능하다면) 유진목 시인에게 싫은 일이 두 개 생길 거였으면 하나로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본문을 거의 다 그으며 읽었기 때문에, 그리고 예전에는 그런 본문들을 다 타이핑해서 올려두었는데 이제는 저작권 걱정이 되어서.. 아래 문장은 일부이고 특히 내가 웃기다고 말한 부분들은 여기 옮겨적지 못하엿으므로 책을 사서 읽어보면 좋겠다 특히 27쪽 맨아래 문장을 읽고 33쪽을 만났을 때는 너무 웃겨서 제자리걸음 하다가 멈추고 페이지 사진을 찍었다(증거는 여기 안 첨부함).



(-) 나는 내멋대로 굴다가 모두와 헤어졌다. 나는 자다 죽는 것처럼 이별하고 싶었다. 힘든 건 너무 힘이 드니까.




말 끝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는 사람에게도 나는 궁극의 혐오를 느낀다. (-)


그러니까 제발. 나는 사람들이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대로 나한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니? 자기는 가족이랑은 섹스를 안 한다니? 매사에 그럴 의도가 없었던 사람과 가족이랑은 섹스를 안 하는 남자를 처음부터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 거리를 두고 되도록 멀리 있으면서 말을 섞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인간을 더 혐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신을 사랑하는 엄마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와 궁핍한 생활이 너무나도 분명해 살아 있는 것이 싫기만 했다. 몇 번인가 나는 죽으려고 했는데 그것은 삶이 보잘것없어서였다. 삶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이.




비교적 살아 있는 일에 여력이 있을 때는 내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맞이하는 좋은 순간들을 상상해보았다. 그것은 상상이어도 좋았다. 상상 속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나는 글로 썼다. 그러면 그것이 마치 나의 기억인 것처럼 나에게 남았다. (-)




사람과의 좋은 순간은 늘 그리운 것이었다. 살면서 가져본 적 없는 순간인데 그랬다.




그후로 3주 동안 우리는 동쪽으로 가면서 차 한 대를 나무에 처박아 완전히 박살을 냈고(그때 나는 순간의 기억을 상실하고 왼쪽 다리 전체에 타박상을 입었다. 손문상(가명)은 경찰이 오길 기다리며 길 건너편에 앉아서 박살난 자동차와 나무를 그렸는데 그것이 타고난 태평함인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에 있는 동안에 그저 모든 게 좋았을 뿐이었다)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1년 전인가 어느 술자리에서 잠깐 본 적이 있는 나를 그가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모든 연애는 나를 혼자서 걷게 했다. 걷는 것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효과가 없었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나는 그를 죽이러 가고 말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무조건 걸었다. 그런 놈 때문에 내가 살인자가 될 순 없다. 교도소는 무서운 곳일 것이다. 타인의 통제하에 생활할 수 없을 것이다.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 정신없이 걷다 보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분 같은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격렬한 산책은 기분을 압도한다. (-)




나는 언제나 내가 더 최악이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더 많이 최악일 수 있었는데.




언젠가 또 내가 최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최선을 다해 더욱 더 많은 최악을 안기고 싶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내가 가장 최악의 인간일 수 있도록.




시간에 맞춰 개를 산책시켜주는 사람이 있듯이, 매일 같은 시간에, 특별히 산책을 할 수 없는 날씨가 아닌 이상, 한결같이 집에 방문하여 나를 산책시켜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는 미래에서 나의 상상 속에 도착하는 사람. 내게 못된 말을 하지 않고, 내 몸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가끔씩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 어제와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사람. 산책에서 돌아오면 나를 창가에 앉혀주고, 내일 봐요, 하고서 떠나는 사람. 나는 창가에서 내일의 산책을 기다리는 사람.




세상에는 멍청이들이 있고 (자신이 멍청한 줄 모르고) 이제 나는 언제든 살아가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그나저나 어떤 말로 멍청이들의 입을 닥치게 할 수 있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삶이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야."




바다 가까이 가면 늘 생각한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못 가는구나.




지구는 걸을 수 있는 곳과 걸을 수 없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걸어서 닿을 수 없는 곳에는 다른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인간은 그 사실을 잊고 산다. (-)




고작 책상에라도 잘 앉아 있고 싶다.




책상에 잘 앉아 있다가 잘 때가 되면 잘 자는 사람이고 싶다.




설핏 잠들었다가 느닷없이 깨어나 심장이 쿵쾅대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빛이 좋은 날엔 집 밖으로 나가 햇빛을 쬐는 사람이고 싶다. 




여름에는 바다에 들어가 하루라도 수영하는 사람이고 싶다.




어두운 방에 누워서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왜 산악인이 되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었지?




나는 왜 선원이 되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었지?




나는 왜 죽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었지?




고작 책상에 앉아 있지만 현실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말고. 고작 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정신을 쏟지 말고. 내가 아닌 다른 것을 향해 생각을 나아가게 하고. 내가 아닌 다른 것에서 용기를 찾고.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용기를 사용하고. 누구나 비겁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내 것이 아닌 것은 쓰지 말고.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을 분별하고. 내가 아닌 것으로 불행하지 말고. 나인 것으로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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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 허수경이 사랑한 시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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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타계한 진이정 시인은 나에게는 문우였고, 시에 대해서라면 긴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다방에 앉아서 토론을 하곤 했던 벗이었다. (-)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에 해설을 썼던 황현산 선생님은 진이정이 마치 그의 죽음을 알았다는 듯 마지막 시편들을 썼다고 말했다. 한없는 지적인 호기심, 세상에 대한 따뜻함과 이를 배반하는 세상에 대해 열렬하고도 깊은 시를 쓴 자, 진이정. 그의 제는 어느 절에 모셔져 있었는데 어느 해 나는 서울에서 그의 제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제삿날 등성이에 머물고 있었던 해는 정확히 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작 여섯 살이었을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던 시인의 눈에 머물던 해거름의 지는 해. 우리는 언제나 어린애고, 영혼은 어떤 시간을 살아가도 이렇게 낯설게 우리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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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책 만드는 법 - 원고가 작품이 될 때까지, 작가의 곁에서 독자의 눈으로 땅콩문고
강윤정 지음 / 유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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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편집자로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독자로 책을 읽기만 했지 만드는 과정의 요모조모를 몰랐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고 꼼꼼히 일러주는 강윤정 편집자·작가님이 없었더라면 이 일을 계속 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전도 지금도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는 듯해 자괴감이 들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 적이 많다. 그럴 때면 자신의 중심을 놓지 않고 기준과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자세를 다시 차리게 된다. 연차는 쌓여가지만 모든 업무를 두루 경험해본 것이 아니기에 약한 부분이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몰랐던 부분의 디테일들을 책으로 간접 체험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박시하 시인의 시집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신간 안내문도 그러한 마음으로 쓰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이미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비가 내리고 폭설이 쏟아지는 것부터, 부서지고 쇠락하고 가라앉고 산산조각 나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언가, 누군가 혹은 어딘가가 스러지고 사라지고 지워지며 어둠에 덮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시인이 이러한 시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한 단어 쓸 때마다/ 손가락 한 마디씩 부서지는// 오랜 형벌"(「그을린 방」)을 불사하며 존재의 그림자를 향해 다가간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쓰고자 한다. 결국 시인은 그 그림자 안에 있을 빛과 만나고자 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다. 페허를 바라보는 허무한 시선에 그치지 않고, 침묵과 부재의 허허로움에 지지 않고, 모든 하강의 이미지를 끌어안은 채 가닿을 빛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말이다. _125쪽, 「좋은 책을 넘어 특별한 책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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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의 내면 심리 들여다보기 - 중독의 늪, 충동과 유혹의 심리
아놀드 루드비히 지음, 김원.민은주 옮김 / 소울메이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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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이걸 눌러서 이책을 찻아온 사람이라면,, 이책을읽어낼수밖에없갯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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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
나영정 외 지음, 장애여성공감 엮음 / 와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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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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