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시간 오늘의 젊은 작가 5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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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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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계간 문학동네 1995년 겨울호 통권 5호 계간 문학동네 5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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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자신의 삶이라는 집을 헐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소설이란 소설가의 삶을 반영하게 마련이라는 뜻보다는, 소설을 쓰는 것은 먼저 자신의 삶을 헐어내고 거기에서 가장 정제된 벽돌 한 장씩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헐린 집에서 나온 벽돌더미에서 쓸 만한 벽돌 한 장씩을 골라내는 것이야말로 삶을 보는 각도를 함축하는 것이며, 실제 삶 속에서 지었던 집과는 관계 없이 소설 속에서 지은 집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옮겨다놓는다 해서 소설 속의 리얼리티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나는 그 맥락에서 본다.

 

(-) 나는 소설 안에서 내가 본 대로의 삶을 베껴내기만 할 뿐 판단을 내리거나 설득의 말을 던질 엄두는 내지 못한다. 보이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침묵의 소설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침묵 속에서 내가 바라보기만 하는 인간의 삶. 그 속에서 인간은 악인과 선인이란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으며 내게는 그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에 함께 들어 있는 선과 악이 먼저 보인다. 또 나는 이별의 아픔을, 마지막 정찬 때 흘러나오던 애절한 음악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 양치질을 할 때 칫솔에 끼어져나오는 음식찌꺼기 속에서 본다. 나는 삶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를 통째로 정면에서 쳐다보려고 하기보다는 그 진지함과 무거움 사이의 좁은 틈으로 쏟아져나오는 날카로우나 따뜻한 빛을 그리고 싶다. '그럴듯함의 명령'과 '연대기적 엄격함'에 속박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도 삶을 보이는 한 방식이며 소설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눈 속에 담고 소설 속에서 베껴보인 모습이 삶의 진정한 한 단면이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_은희경_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발표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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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 궁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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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그 장소들에 대해 "나의 집에서 10구역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라고 주인공 비거 토마스에게 말하는 극 중 인물 메리 돌턴과 같은 입장이었다. 라이트는 소설 속에서 비거 토마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서서 그는 자신이 살인을 한 이유에 대해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죽였는지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해명하려면 자신의 삶 전부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

 

기말시험에서 익명의 한 학생(-)은 문학의 역할에 대한 나의 낙관적인 견해를 비판하면서 수업 시간에 읽은 포스터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리스』와 같은 작품을 읽는 것이 한 개인의 생각, 아마 재판관 한 명의 생각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와 같은 많은 작품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그 혐오의 이유에 대해 스스로 되묻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편견과 증오의 폭풍에 대항하는 아주 미약한 희망의 보호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180번 학생의 생각은 옳다. 문학적 상상력은 많은 사람들과 집단의 뿌리 깊은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고, 그 투쟁에서 언제나 승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흑인에 관한 개별적인 공감의 이야기를 말하지 못하는 인종주의자들은 많다. 인종 문제에 깊이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동성애자를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 중 한 명으로 상상하게끔 하는 포스터의 요청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사회는 서로를 공감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거부하는 분위기이고, 이러한 거부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 우리는 '공상'에 호소하는 것으로만 수년간 고착화된 혐오와 차별이 바뀌기를 희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공상은 그것이 적절하게 실현되었다 할지라도, 온갖 고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의 미약한 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현실 정치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방식을 고려해볼 때, 위 학생의 비판에 공감할 이유는 충분하다. (-)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의 이러한 거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여기서 옹호하게 될 '공상'이라는 형태가 갖는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유형의 공상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불평등하고 협소하게 인간적 공감을 익힌 사람들의 결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결함에 대한 해결책은 공상의 부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지속적이고 인간적인 함양에 있으며, 비인간적인 제도적 구조를 상상력으로 대체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제도를 새롭게 구축하는 데 있고, 나아가 공감 어린 상상력의 통찰을 보다 완벽하게 체화한 제도와 (제도적 견고함의 보호를 통해) 제도적 주체의 정립에 있다. 우리는 개개인의 상상에만 의존할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제도 그 자체는 '공상'의 통찰력으로 인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1180번 학생에게 묻고 싶다. 시민으로서 우리가 만약 희망을 갖고 또 스스로를 존중하고 싶다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헨리 제임스가 말했듯, 공적인 삶에 있어서 문학적 상상력의 과제는 "그 어떠한 것보다 더 나은 기쁨이 없을 때, 최상의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고귀하고, 구현 가능한 경우를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최상의 것이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유지되길 희망하고, 추한 것 옆에 아름다운 것이 있듯, 조악함과 둔감함 옆에 있음으로써 이것이 그 자체 목적으로서의 인간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함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정의로 이어지는 필수적인 가교를 잃게 될 것이다. '공상'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 연방대법관이었던 올리버 웬델 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연구가 "삶이란 총합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줄 수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이러한 생각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고, 그 같은 정신에 담긴 공적 추론이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

 

 

'왜 역사나 전기가 아닌 소설인가?' 나의 중심 주제는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주어진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여─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왜 역사가 아닌가에 대한 나의 답변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쉽게 도출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문학과 예술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단순히 "일어난 일들"을 보여주는 반면, 문예 작품은 인간 삶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문학은 독자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갖도록 요청하면서 일어날 법한 일에 주목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옳다. 대부분의 역사적 글과는 달리, 문학 작품은 일반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하고, 도 그들의 경험과 마주하게 한다. 문학 작품은 가상의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고유한 방식 속에서 작품 속 인물들과 독자 자신이─최소한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서─연결될 수 있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

이러한 점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은 좋은 문학이란 대부분의 역사 및 사회과학적 글쓰기가 갖지 않는 혼란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좋은 문학은 우리에게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불안을 야기하며,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는 전통적인 경건함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향을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고통을 가져다준다. (-) 심리적 동일시와 감정적 반응을 촉진하는 문학 작품들은 직면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을 보게 하고 또 그에 반응하기를 요구하면서 자기방어적 계략을 깨부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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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여름언덕 공동선 총서 1
제임스 C. 스콧 지음, 김훈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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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언젠가는 정의와 합리의 이름으로 중요한 법을 어기라는 요청을 받게 될˝ 때에 대비할 필요`(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5703.html), 평소 고민하고 있던 지점과 다른 듯 닮은 듯하다. 공동선총서 제1권이라는데, 앞으로 어떤 책이 나올지 기억하고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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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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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서사와 충동의 서사는 많다. 이를테면 "이것을 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할 것이다"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욕망의 서사이고, "난 이것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하고 있다"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충동의 서사다. (-)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l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어쩌면 사랑을 준다는 것이야말로 '나는 죽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고귀한 행위다. 이런 사랑이 있는 한,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남천'이라는 성소는 사라질 수 없을 것이고, 삶은 무의미하므로 세상은 멸망하는 편이 낫다는 식의 말도 우리는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_신형철_세속 시대의 성소聖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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