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계간 문학동네 1995년 겨울호 통권 5호 계간 문학동네 5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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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자신의 삶이라는 집을 헐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소설이란 소설가의 삶을 반영하게 마련이라는 뜻보다는, 소설을 쓰는 것은 먼저 자신의 삶을 헐어내고 거기에서 가장 정제된 벽돌 한 장씩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헐린 집에서 나온 벽돌더미에서 쓸 만한 벽돌 한 장씩을 골라내는 것이야말로 삶을 보는 각도를 함축하는 것이며, 실제 삶 속에서 지었던 집과는 관계 없이 소설 속에서 지은 집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옮겨다놓는다 해서 소설 속의 리얼리티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나는 그 맥락에서 본다.

 

(-) 나는 소설 안에서 내가 본 대로의 삶을 베껴내기만 할 뿐 판단을 내리거나 설득의 말을 던질 엄두는 내지 못한다. 보이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침묵의 소설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침묵 속에서 내가 바라보기만 하는 인간의 삶. 그 속에서 인간은 악인과 선인이란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으며 내게는 그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에 함께 들어 있는 선과 악이 먼저 보인다. 또 나는 이별의 아픔을, 마지막 정찬 때 흘러나오던 애절한 음악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 양치질을 할 때 칫솔에 끼어져나오는 음식찌꺼기 속에서 본다. 나는 삶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를 통째로 정면에서 쳐다보려고 하기보다는 그 진지함과 무거움 사이의 좁은 틈으로 쏟아져나오는 날카로우나 따뜻한 빛을 그리고 싶다. '그럴듯함의 명령'과 '연대기적 엄격함'에 속박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도 삶을 보이는 한 방식이며 소설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눈 속에 담고 소설 속에서 베껴보인 모습이 삶의 진정한 한 단면이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_은희경_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발표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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