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성의 철학 그리고 바타이유, 보드리야르, 리오타르
줄리언 페파니스 지음, 백준걸 옮김 / 시각과언어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 우리의 판단이 미숙했고 냉정해지려 애를 썼던 때인 (-) 풋내기 시절에는 증오가 보다 적절한 (-) 동기였을 수도 있다. (-) 증오는 그 한계를 갖는다.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은 늘 흥미롭다. 아마도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죽이는 작업(enterprise)은 결국은 지루하다. (-) 무언가를 죽이는 것, (-) 얼마나 그릇되거나 또는 나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당신의 일은 끝이 나고 만다. 남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살해는 그것이 지속하는 동안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거기에는 계속해 갈 곳이 없다. 사냥꾼들은 살해해야만 하고 (-) 증오가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해 돌고 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네 면의 회벽에 둘러싸인 방 안에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면서 나는 참 많이 바깥세상이 그리웠다. 밤에 눈을 감고 있을라치면 밖에서 들리는 연고전 연습의 함성 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모든 일상-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나고 부러웠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TV를 보는데 유명한 보쌈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보쌈 만드는 과정을 보여 준 다음, 손님 중 한 중년 남자가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한껏 크게 벌리고는 큰 보쌈 하나를 입에 넣더니 양 볼이 불룩불룩 움직이게 씹어서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갓집에 가면 보통 육개장, 송편, 전 등 자금자금한 음식들이 나오고 상추쌈이나 갈비찜 같은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상갓집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련을 남긴 채 이 세상을 하직하고 이제는 아무리 하찮은 음식이라도 먹을 수 없는 망자 앞에서 보란 듯이 입을 쩍 벌리고 어적어적 먹는 것은 무언無言의 횡포라는 것이다.

보쌈을 먹고자 입을 크게 벌린 그 남자의 격렬한 식탐, 꿀꺽 삼키고 나서 그의 얼굴에 감도는 찬란한 희열, 그 숭고한 삶의 증거 앞에 나는 지독한 박탈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깥세상으로 다시 나가리라. 그리고 저 치열하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이라는 책 앞부분에는,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다, 라고.

아닌 게 아니라 내 발자국 소리는 10미터 밖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정도로 크다. 낡은 목발에 쇠로 된 다리보조기까지, 정그렁 찌그덩 정그렁 찌그덩, 아무리 조용하게 걸으려 해도 그렇게 걸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돌이켜 보면 내 삶은 요란한 발자국 소리에 좋은 운명, 나쁜 운명 모조리 다 깨어나 마구 뒤섞인 혼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흑백을 가리듯 '좋은' 운명과 '나쁜' 운명을 가리기는 참 힘들다. 좋은 일이 나쁜 일로 이어지는가 하면 나쁜 일은 다시 좋은 일로 이어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운명행진곡 속에 나는 그래도 참 용감하고 의연하게 열심히 살아왔다.

그래도 분명 '나쁜 운명'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지난 2001년 내가 암에 걸린 일일 것이다. 방사선 치료로 완쾌 판정을 받았으나 2004년에 다시 척추로 전이, 거의 2년간 나는 어렵사리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2006년 5월, 중단했던 월간지 칼럼 '새벽 창가에서'로 나는 다시 돌아왔다. (-)

나는 그게 희망의 힘이라고 떠들었다. 내 병은 어쩌면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아름다운' 경력일 거라고 쓰기도 했다. 췌장암에서 기적처럼 일어난 스티브 잡스를 흉내 내,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삶을 리모델링해서 더욱 의미 있고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전제 조건일지 모른다고도 썼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에 대한 생각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의 희망 이야기를 스스로 즐겼다. (-) 그런데 나는 암이 다시 척추에서 간으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난 다시 나의 싸움터, 병원으로 돌아와 있다. (-)

지난번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항암제를 처음 맞는 날, 난 무서웠다. '아드레마이신'이라는 정식 이름보다 '빨간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항암제. 환자들이 빨간색을 보기만 해도 공포를 느끼고, 한 번 맞으면 눈물도 소변도, 하다못해 땀까지도 빨갛게 나온다는 독한 약. 온몸에 매캐한 화학물질 냄새와 함께 빨간약이 내 몸에 퍼져 갈 때, 최루탄을 맞은 듯 눈이 따가웠다.

그날 밤 문득 잠을 깼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옆 침대에서는 동생 둘이 간병인용 침대 하나에 비좁게 누워 잠이 들었고, 쌕쌕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에 천장의 흐릿한 얼룩이 보였다. 비가 샌 자국인가 보다. 

그런데 문득 그 얼룩이 미치도록 정겨웠다. 지저분한 얼룩마저도 정답고 아름다운 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세상을 결국 이렇게 떠나야 하는구나.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언젠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느 학생이 내게 물었다.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서 비파를 켜면서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파로 켜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 갈 것입니다. 이런 허망한 희망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 바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 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그 말은 어쩌면 그 학생보다는 나를 향해 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을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속에서도 차분함을 느낀다. 위험의 한가운데 안전한 곳이 있는 법이지.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늦은 밤이지만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싶었다. 네가 정말로 필요한데, 너는 여기 없구나. 어떨 때는 우리가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없다.

  오늘, 혼자서 다짐했다. 가벼운 두통이나 그것을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로 말이다. 많은 시간을 낭비했으니 이제는 다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아파서는 안 된다.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목표를 이루는 건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내 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 문제는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 있다. 규칙은 지켜졌을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고 가치가 있다. 깊이 생각하고 늘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까닭은, 그런 자세가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다양한 행동을 하나의 목표로 모아주기 때문이다. (-)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대의 문호라는 칭호는 감투까지는 아니어도 영예였고, 하웁트만은 이것이 좋았다. (-)˝우리는 늘 연기한다. 그걸 아는 사람은 영리하다˝는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멋진 경구는 작가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의 공간 책세상총서 3
모리스 블랑쇼 / 책세상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누군가 절망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절망은 무엇에도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절망은 언제나 당장 그 목표를 넘어선다"(카프카, <일기> 1910). 마찬가지로 글 쓰는 행위의 기원은 "진정한" 절망일 수밖에 없다. 즉 그 어느 것도 권유하지 않는 절망, 모든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절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글을 쓰는 자에게서 그 펜을 앗아가는 절망만이 글을 쓴다는 행위의 기원이다. 이 두 움직임의 공통점은 단지 이들 자체의 불확정성뿐이며, 오로지 이 불확정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 두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에게 "나는 절망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당신은 절망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아무도 "나는 글을 쓴다."라고 긍정할 수 없다. 단지 "당신은 글을 쓰십니까? 그렇습니까? 당신은 글을 쓰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카프카(-) 1912년까지 그에게 있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은 매우 컸었다. 이 욕망은 여러 작품을 낳았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그에게 문학적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신을 주지 못했다. 아니 그 작품들은 그에게 자신의 문학적 재능보다는 오히려 그가 자신의 문학적 자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직접적인 의식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직접적으로 의식한 그의 문학적 자질이란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충일감의 원시적인 힘을 말한다. 그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의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였다.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이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정도까지 다른 모든 작가들과 다름없는 일개 젊은 작가에 불과했다는 가장 놀랄 만한 증거는 카프카가 브로트 Max Brod와 함께 공동으로 쓰기 시작했던 소설이다. 자신의 고독을 그렇게 공유한다는 것, 그것은 카프카가 아직도 자신의 고독 주위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의 <일기>의 메모가 말해주는 바와 같이 아주 빨리 그는 이 사실을 깨닫는다. "막스와 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의 글이 내 앞에 있을 때, 내가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완성체로서, 그 어느 것도 도달할 수 없는 완성된 것으로서 나는 그의 글들을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 감탄의 양만큼 그가 소설 <리차드와 사무엘>을 위해 쓰는 문장 하나하나는 나 자신의 양보에 연결되어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나의 깊은 내면에까지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 혐오스런 양보. 적어도 오늘만은 그렇게 느껴진다."(1911년 11월).

1912년까지 카프카는 자신을 온통 문학에 바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게 변명하고 있다. "나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아주 위대한 작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한, 나는 아무 것도 감행할 수 없다." 1912년 9월 22일 밤, 그에게 이 성공의 증거가 찾아온다. 이날 밤 그는 단숨에 <선고>를 쓴 것이다. 이 작품은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이 표현될 수 있을 듯하고, 큰 불이 준비되어 그 불 속에 모든 것, 가장 기이한 생각들조차도 불타 사라져버리는 것같이" 여겨지는 지점으로 가까이 가게 한다. 얼마 후 그는 이 작품을 그의 친구들에게 읽어준다. 자기 작품을 육성으로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굳히게 된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이야기의 확실성이 입증된 것이다." (-)

이 이후로 카프카는 자기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앎은 앎이라고 할 수 없다. 글을 쓸 수 있다는 능력은 그의 것이 아니다. (-) 그가 쓴 글, 그것은 단지 접근하기 위한 작업, 확인하기 위한 작업일 뿐이다. <변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이 형편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는 아주 끝장이 난 모양이다." 또 그 후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변신>에 대해 심한 혐오를 느낀다. 마지막 부분은 읽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 그때 사업여행으로 방해를 받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1914년 1월 19일).


이 마지막 말은 카프카가 부딪혀 부서지고 만 갈등이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그는 직업이 있고 가족이 있다. 그는 이러한 세계에 속하며, 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시간을 준다. 그러나 그 시간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도 이 세상이다. 적어도 1915년까지 <일기>는 절망적인 생각으로 점철되어 있다. 거기에는 자살이라는 생각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자기 시간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시간이란 육체적인 힘, 고독, 침묵을 말한다. 틀림없이 외부적 상황이 그에게 불리했을 터이고, 그래서 저녁이나 밤에 일했을 것이다. 그래서 잠을 설치고 불안이 그를 지치게 했을 것이다. "일을 좀더 잘 조직했더라면" 갈등이 사라질 수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 후 병에 걸려 한가한 시간이 나게 되었을 때에도 갈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 갈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며, 다른 형태로 변한다. 이로운 상황이란 없다. 작품에의 의무에 "자기의 모든 시간"을 바친다 하더라도, "모든" 시간을 다 바친다 해도 그것은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문제는 작업에 시간을 바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기의 시간을 글 쓰는 것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더이상 작업도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시간 속으로 이동하는 것,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 속에 돌입하는 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

 카프카는 글을 이따금씩 미완성으로 "조금씩" 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9월 22일 밤, 그는 이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날 단숨에 씀으로써, 그는 그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하는 무한한 충동을 충분히 회복한 것이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씀으로써만, 영혼과 육체가 이렇게 완전히 열린 상태에서만이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1914년 12월 8일). "단편적으로 쓰여진 것들이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여, 아니면 밤을 완전히 새어서 내리달아 쓰지 않은 것보다 가치가 훨씬 덜하다는 것, 또한 나의 생활방식으로 볼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가치가 덜한 글밖에는 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포기된 채로 일기 속에 남아 있는가를 설명해주는 그 첫번째 이유를 발견한다. 카프카의 <일기> 속에는 상당한 분량의 이야기들이 중단된 채로 그대로 실려 있다. "이야기"는 대부분 몇 줄밖에는 계속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는 급속히 일관성을 이루고 밀도가 높아지지만 겨우 한 페이지를 메우고 중단된다. 때로 어떤 이야기는 몇 페이지 계속되어 점점 확실히 윤곽을 드러내며 전개되다가 멈추어버린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카프카는 이야기가 스스로 모든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갈 수 있게 해줄 만한 충분한 폭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언제나 단편, 그리고 또 다른 단편에 불과하다. "어떻게 이 조각들을 용해시켜 비약이 가능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

카프카에게는 좀더 많은 시간과 또한 좀더 적은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람들이라면 먼저 그의 가족이 있다. 그는 이들의 구속을 잘 참아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족들로부터 해방되지도 못한다. 그 다음으로는 그의 약혼자가 있다. 이것은 이 세계 안에서 인간의 운명을 실현하며, 가족과 자식들을 갖고, 공동사회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그의 본질적인 욕망을 나타낸다. (-) F. B.와 약혼하고, 파혼하고, 재차 약혼을 하던 그 즈음, 카프카는 한결같이 점점 커져만 가는 긴장 속에서 "나의 결혼이 초래할 모든 장점과 단점"을 꾸준히 검토하면서 항상 이러한 요구에 부딪혔다. "나의 유일한 열망, 나의 유일한 소명은 ......문학이다. ......내가 이룬 모든 것은 오로지 고독의 소산이다. ......그때에는 나는 더이상 홀로 있지 못할 것이다. 이것만은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베를린에서의 약혼식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범죄자처럼 묶여 있었다. 진짜 쇠사슬로 나를 묶어 한 구석에 처박아놓고 그 앞에 헌병들을 세워놓았다 하더라도, 이것보다 더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약혼식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삶으로 이끌어오고자 애썼다. 그러나 여기에 성공하지 못하자, 그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관용하려고 애썼다." 곧이어 약혼은 무효가 되나, 갈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정상적인" 삶에 대한 욕망인 것이다. 또한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고민으로 인하여 이것은 더욱 비통하며 강한 욕망이 된다. (-) 카프카에게 있어 정상적인 삶과 평범한 행복의 포기는 올바른 삶의 확고함조차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법의 보호권 밖에 위치하게 되는 것, 그가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땅과 발판들을 잃는 것이었다. 어떤 면으로 그것은 법이 설 땅과 발판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다. (-)

(-) 카프카의 경우는 모든 것이 훨씬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작품에의 의무와 자기 자신의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무를 그가 융합시키려 애썼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카프카에게 고독을 선고하며, 그의 삶을 사랑도 인연도 없는 독신의 삶으로 만든 것이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는 글을 쓴다는 것을ㅡ적어도 자주,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ㅡ자기의 삶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으로 느꼈다. 어쨌든 그것은 고독이 그의 내면에서, 그의 밖에서 그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 절망과, 이러한 움직임과 불가분의 관계인 나약함 가운데서도 글을 쓴다는 것은 다시 충만한 삶의 가능성이 된다. 목표 없는 길이 된다. (-) 글을 쓰지 않을 때 카프카는 고독하다. 그가 야우노흐에게 말한 것처럼 "프란츠 카프카로서 고독하다". 그러나 이 고독은 불모의 차디찬 고독이다. 그가 마비라고 부르는, 화석처럼 얼어붙게 하는 추운 고독이다. 이것이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제일 큰 위협이었던 것 같다. (-) "나는 마비되었다. 나는 돌이다."라고 횔덜린은 말한다. 카프카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하고, 관찰하고, 증명하고, 기억하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함께 함에 있어, 나는 무능하다. 이 무능력은 매일 더욱 커진다. 나는 돌이 된다. 내가 작업 속에서 나 자신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희망이 없다."(1914년 7월 28일).



모리스 블랑쇼_카프카와 작품에의 의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