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시인선 184
고명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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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형



나아가는 방식에도 자유가 있다니

팔로 만든 아치에도 형식이 있다니

사람들은 어떻게 하트를 그리는 걸까

물을 밀며 물을 마시며 물과 싸우다

물배가 차서 수박처럼 동그래지고


​무지개를 상상하며 팔을 뻗어요

강사님의 아름다운 설명 때문에

물속에서 입 벌리고 울 뻔했어요

이대로 팔과 다리에 살이 붙으면

죽은 개들을 다시 만나러 갈 것 같아서


님아 그 강 그 강 모두 강 때문이죠

번들거리는 몸도 마음도 강 때문이죠

수영을 시작한 건 귀하게

숨을 쉬고 싶어서

죽을 것처럼 보고플 때 빠지지 않고

숨을 색색 쉬며 용감하게 나아가려고


​그러니 우선 자유부터 익혀야 해요

몸에 힘을 빼고

수박에 줄을 긋듯이

물속에선 마음껏 일그러져도 괜찮아

벼락의 길을 부드럽게 따라 흐르며

멍든 팔을 구명줄처럼 수면에 뻗을 때


내 무지개 속엔 개가 있고 엄마가 있고

언덕이 있고 복수(腹水)가 차고 무덤을 그리고

내 그리움 속엔 왕릉만한 비탈이 있어서

정수리 너머로 봉분을 힘껏 끌어안을 때

심장을 그리는 법을 알 것 같은데


​나는 청어를 알아요 등 푸른 몸과 헛물을 안아요

물을 잔뜩 먹고 부푼 나는 하마가 되어

부드럽게 유영하는 할머니들을 봅니다

백자 같은 인간의

어깨와 곡선

아름다움은 다 겪고도 안아주는 것


​어때요 기분좋은 저항이 느껴지나요

물레 감듯 모든 걸 안고 나아가세요

강사님은 아름다운 말만 툭툭 내뱉고

나는 그게 수박씨처럼 귀하고 예뻐서

눈귀코를 번쩍 뜬 채 팔을 뻗쳐요

그렇게 품을 알 때까지 수영은 계속되어요


​_고명재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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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정원 - 서영채 평론집 문학동네 평론선
서영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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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이럴수가 2023으ㅏ 첫번째 소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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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탄생 민음의 시 275
유진목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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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일 때 나는 어떻게 너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말하며 대답할까. 네가 내가 만나고 싶은 네가 아닐 때 어떻게 우리가 우리라는 사실을 견딜까. 내가 나, 여기까지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의 다른 나는 유령이고 살아 있지 않은 나이며 스스로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단지 바라보는 나. 말하고 답을 듣지만 그것은 내 귓속에서만 울리는 목소리이고 잡을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나. 눈앞에서 너를 볼 수 있지만 너는 만져지지 않고 만져져도 없는 사람, 들려도 볼 수 없는 이. 더 나아가 사람이 아닌 것,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 없는 사람들은 그게 뭔지 알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헤매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나는 만지고 내리는 눈을 보면서 물음을 듣는다. 시인의 입은 천천히 열린다. 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발음하고 싶어서 해보는 혼잣말처럼. “그러나 나에게는 아이가 쓴 글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작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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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화가 난다 -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마야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난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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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메이션이라는 덴마크 일간지에서는 이 책을 가리켜 당신의 온몸을 관통할 하나의 장시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이것은 시라는 장르가 가진 가능성을 형식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극대화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시, 하면 떠올리는 형식과는 다른 몸을 입고 있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의 장르는 단순히 문학적인 스타일을 넘어 터져나오는 목소리, 진실한 발성을 받아쓰기에 시이자 사회고발적인 에세이이며 동시에 자신이 아닌 모든 입양인의 목소리를 조합해 만든 ‘여자’의 허구적인 이야기까지 함께한다. 이것은 단순히 마야 리 랑그바드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야는 국가 간 입양 문제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구조에 대한 분노와 성찰이 주관적인 게 아니라 명확한 근거가 있음을 논증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논증은 시라는 장르가 지닌 원초적인 힘으로 읽는 이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 변화를 이끌어낸다. 마야는 사회를 쉽게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는 너무나 느리게 변한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는 독자 한 명 한 명의 마음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했을 때 나아가 사회의 법과 제도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이 책을 읽기 전 입양인과 입양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성소수자이며 한국에서 살아가는 남성인)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만난 순간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야가 입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성소수자로서 동양인으로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솔직하게 묘사하면서 독자에게 한 인간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데서 온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주의깊게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 소수자의 문제, 교차성, 나아가 가족구성권의 문제와 만난다.


입양인들은 자신이 타자화되는 경험을 한다. 덴마크인도 한국인도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입양인에 대한 환상이 있고 미디어에서는 그것들을 재현한다. 김치를 좋아하고, 한복을 입고, ‘모국’을 그리워하고, 혈육, 피를 나눈 가족에 대한 깊은 유대가 있기를 바라고. 그녀는 이렇게 재현되는 입양인, 번역되는 입양인, 통역되는 입양인이 완전한 나의 전체는 아니며 심지어 자신이 왜곡되기까지 한다고 느끼더라도 그 어떤 감정들은 자신에게 진실하다는 것에 화가 난다. 입양인으로서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모습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미디어에서의 노출이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또한 마야의 작업은 사람들 사이의 언어와 소통의 문제에 천착한다. 소통의 문제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반복해서 겪게 된다. 자신의 생각하는 것을 한국어로는 정확하게 세밀하게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어서 유아적인 표현을 하게 되는 것,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 질문받는 대상이 되는 것, 자신의 말을 누군가가 전달해주어야만 전달되는 권력관계를 의식해야 하는 것, 부모님을 만나 많은 말을 하지만 통역해주는 사람이 전해주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것. 


그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동일하다면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주고받을 수 있을까? 마야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친부모에게 밝히지 않기를 ‘선택’한다. 이러한 장면은 언어의 장벽 없이 우리가 소통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순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는 결국 상대방과 나라는 관계의 번역물이고 소통이라는 것은 그 권력관계 안에서 각자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갑이기보다는 을로서 살아간다. 어느 조직 내에서, 위치 내에서 을들의 말하기는 대개 지정돼 있다. 할 수 있는 언어는 제한돼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도 허락되어 있다. 우리는 부당한 요구나 상황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괜찮습니다’인 순간도 많이 겪으며 살아가니까. 


마야의 글을 읽다보면 감정의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하고 그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말할 수 없는 다층적인 레이어를 만나게 된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혐오하면서도 그리워하고 만지고 싶어하면서도 수치스러워하는 인간적인 감정들이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자신의 나이가 ‘친부모’의 사랑을 원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면서도 그러한 접촉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간절함이 있는 것, 상상 속에선 우리가 너무나 친밀하고 완전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어색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죄책감 속에 머물러야 하기도 한다는 뼈아픈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한국의 어머니에게 입양을 보낸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은 사실이며 가족들은 몰랐으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때로 입양인들은 없는 존재, 숨겨진 존재, 거짓말해야 하는 존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부당함을 전가받는 것이 왜 어머니들인지, 여성인지, 낙태와 거짓말의 부담을 짊어지는 것이 왜 아버지가 아닌지 마야는 분노한다. 


동시에 그들은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의 계급 차이도 날카롭게 의식하게 된다.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을 보냈을 당시의 친부모는 해외의 양부모보다 배우지 못했고 가진 것이 없었고 소득수준이 낮았다. 자신의 어떤 권리를 포기하는지도 모르는 채 입양 서류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양부모는 친부모보다 더 많은 교육문화적 혜택을 누렸고 자본이 많다.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누리는 것일까. 입양인으로서 겪는 경험은 이러한 계급적 차이와 모순에도 주목하게 만든다. 


이렇듯 마야의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순간을 수시로 맞닥뜨리게 된다. 마야가 입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성소수자로서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진실한 분노는 나와 상관없는 경험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 입장하는 열쇠로 변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경험에 갇혀 있던 부조리를 사회를 향해 발화하게 하는 방아쇠로 만드는 연금술을 보여준다.


이 책이 뛰어난 점은 난해하고 딱딱할 수 있는 문제를 아주 읽기 쉽고 받아들이기 좋게 만드는 마야의 리듬에 있다. 처음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평범해 보이는 문장으로 시작해 매우 정교한 카드의 집을 만들어낸다. 그 집은 위태롭고 흔들리며 취약하지만 그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취에 닿는다. 마야가 쌓아올린 이 언어의 집은 어느 한 순간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마야가 이 책을 펴내고 거의 10여 년 만에 한국에서 선을 보이게 된다. 한국계 입양인으로서 덴마크에서, 스웨덴에서 책이 나왔지만 정작 책으로 한국 독자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던 그다. 한국어판이 출간된 올해에서야 진짜 책이 나오는 기분이 든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아가 친부모 역시 덴마크어도 스웨덴어도 몰랐기에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제 한국어로 책이 나왔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것은 친부모에게 하는 커밍아웃이기도 하다. 이 책을 편집한 김민정 시인은 마야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이제야 말할 수 있는 토대와 조건이 갖춰진 것 같다고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 인권과 소수자의 경험에 주목하면서, 어느 누구도 한 가지 면만을 가지고 살아가진 않는다는 교차성에 대한 논의와 새로운 시대, 가족의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지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마야의 <그 여자는 화가 난다>가 품고 있는 진실한 고백의 힘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과 만나며 그들의 세계를 확장시켜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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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화가 난다 -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마야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난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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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신들의 가게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친부모에게 화가 난다. 통역사에 의하면 친부모는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다. 여자는 그들이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게 부끄러워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하물며 길바닥에서 바나나를 판다고 해도 그들이 어디에서 일을 하는지 보고 싶을 것이다. 여자는 친부모가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로 그곳을 직접 보고 싶을 뿐이었다.



여자는 한국어를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인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를 입양했던 양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곧 이혼할 부부에게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모국의 문화는 물론 친부모와의 이별까지 경험했던 아이를 입양해놓고 바로 이혼을 해버린 양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비베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양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양부 없이 자랐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부 없이 자랐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양부를 아버지라 여겨왔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결혼한 자들이 가지는 그들만의 지위에 화가 난다.

여자는 세상에 결혼이라는 행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부부간의 결혼이라는 형식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아이들이 주로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녀를 입양시킨 나래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나래에게 분노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던 나래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나래에게 아이를 입양시키라고 압박했던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은진에게 입양 철회권이 없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은진이 아들을 되찾기 위해 동방사회복지회에 전화를 했을 때, 직원은 아들을 되찾으려면 2백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은 그 금액이 은진의 출산 및 은진의 아들을 돌보는 데 사용된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여자는 은진이 몇 달이나 기다린 뒤에야 아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언니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여자라 말하는 친모에게 화가 난다. 친모는 언니가 네 명이나 되기 때문에 언니들보다 여자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여자는 친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친가족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말로 길을 물을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집이 어딘지 택시 기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항상 상수역에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집 앞까지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자는 안마시술소를 찾는 로랑에게 화를 내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만약 여자가 이성애자 남성이었다면 그와 똑같은 일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는 자신이 이성애자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성별로 구분되는 존재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딸이기 때문에 입양을 보냈던 친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부부 사이의 자녀가 딸뿐이면 항상 여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에 화가 난다.

여자는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오직 남자만이 대를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동양인의 체형을 지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여성의 체형을 지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 여성들과 섹스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 남성들과 섹스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단지 정준이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바텀이라고 생각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인 게이들은 바텀이라고 규정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의 친모가 ‘진정한 어머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의 양모가 ‘진정한 어머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진정한 어머니’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그것은 진정하지 않은 어머니도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자는 미혼모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 한국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미혼모들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지 않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중 대다수가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 여성들과 섹스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 남성들과 섹스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단지 정준이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바텀이라고 생각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의 생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하이힐을 신은 여성을 선호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살아가는 데 피부색이 아무 상관도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살아가는 데 피부색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살아가는 데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장애나 만성질병을 가진 한국인 아이들은 주로 해외로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장애아들의 부모에게 더 큰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낙오자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들이 낙오자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미혼모들이 무책임하다고 규정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녀를 직접 키우고 싶어하는 미혼모들을 이기적이라고 규정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여자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부족함 없는 삶을 산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오늘밤엔 그 무엇을 해도 도움이 되지 않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금 밤이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금 낮이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금 코펜하겐은 낮이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금 서울은 밤이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서울과 코펜하겐 사이에 시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가족이 경희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부의 말을 제대로 통역해주지 않는 경희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친모의 말을 제대로 통역해주지 않는 경희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통역해주지 않는 경희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가끔 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통역하지 않는 것이 여자와 가족에게 더 좋을 것이라 말하는 경희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한국계 입양인인 동시에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한국계 입양인이나 레즈비언 둘 중의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일까.

여자는 자신이 한국계 입양인이나 레즈비언 둘 중의 하나였다면 삶이 더 쉬웠을 것이라 믿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정말 그럴까. 그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여자는 국내입양을 촉진하려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국내입양을 촉진하려고 엄청난 돈을 사용하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만약 여자가 결정권자라면 그 돈을 미혼모를 지원하는 일에 사용할 것이다.

여자는 미혼모를 지원하는 데 더 큰 예산을 사용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를 입양한 부부가 매달 수령하는 지원금이 미혼모가 수령하는 지원금보다 두 배나 더 많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소민이 일을 하는 동안 아들을 봐줄 사람이 없기에 풀타임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혜가 구직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혼모라는 이유로 이력서를 내는 곳마다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지혜는 호적에서 딸의 이름을 지운 후에야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로 배수관 세제를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로 현미밥과 흰쌀밥이 둘 다 가능한 전기밥솥을 찾는 중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로 푸른색 불빛을 발하는 전구를 찾는 중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로 습기 찬 곳에 두는 플라스틱통을 찾는 중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모가 김장을 할 때 왜 여자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혹시 여자의 친모는 여자와 함께 마당에서 배추 씻는 모습을 이웃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혹시 어린 자식을 먼 나라로 입양시켰다는 사실을 동네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걱정이 되어 여자에게 전화도 하지 않는 건 아닐까?

여자는 동네 이웃들에게 여자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친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한국어 책을 소리내어 읽을 때면 바보처럼 들린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 책을 소리내어 읽을 때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름방학 때 했던 일을 주제로 한국어 작문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작문 주제를 받아들고 마치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어 강사는 다른 주제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일까.




여자는 영어를 배우지 않는 언니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영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언니가 단 1명도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가족과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통역 없이는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와 통역 없이는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언니들의 남편이 서울에 오기 때문에 여자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경희에게 전화를 했던 친모에게 화가 난다. 경희는 여자의 친모가 딸들이 남편을 데리고 오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여자는 친가족에게 화가 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다시는 그들을 보지 않으리라는 생각마저 했다.

여자는 더 큰 인내심으로 친가족을 대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친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삶에 들어온 여자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은 여자와는 달리 이러한 상황을 사전에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여자를 찾았던 것은 그들이 아니다. 여자가 그들을 찾았던 것이다.



여자는 친가족에게 짐이 된 것만 같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어머니에게 안아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어머니에게조차 안아달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버지에게조차 안아달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안아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를 안아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아버지의 품에 안겼을 때의 느낌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버지와 함께 누워 잘 때의 느낌을 그리워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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