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자신들의 가게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친부모에게 화가 난다. 통역사에 의하면 친부모는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다. 여자는 그들이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게 부끄러워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하물며 길바닥에서 바나나를 판다고 해도 그들이 어디에서 일을 하는지 보고 싶을 것이다. 여자는 친부모가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로 그곳을 직접 보고 싶을 뿐이었다.
여자는 한국어를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인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를 입양했던 양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곧 이혼할 부부에게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모국의 문화는 물론 친부모와의 이별까지 경험했던 아이를 입양해놓고 바로 이혼을 해버린 양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비베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양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양부 없이 자랐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부 없이 자랐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양부를 아버지라 여겨왔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결혼한 자들이 가지는 그들만의 지위에 화가 난다.
여자는 세상에 결혼이라는 행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부부간의 결혼이라는 형식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아이들이 주로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녀를 입양시킨 나래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나래에게 분노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던 나래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나래에게 아이를 입양시키라고 압박했던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은진에게 입양 철회권이 없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은진이 아들을 되찾기 위해 동방사회복지회에 전화를 했을 때, 직원은 아들을 되찾으려면 2백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은 그 금액이 은진의 출산 및 은진의 아들을 돌보는 데 사용된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여자는 은진이 몇 달이나 기다린 뒤에야 아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언니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여자라 말하는 친모에게 화가 난다. 친모는 언니가 네 명이나 되기 때문에 언니들보다 여자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여자는 친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친가족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말로 길을 물을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집이 어딘지 택시 기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항상 상수역에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집 앞까지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자는 안마시술소를 찾는 로랑에게 화를 내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만약 여자가 이성애자 남성이었다면 그와 똑같은 일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는 자신이 이성애자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성별로 구분되는 존재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딸이기 때문에 입양을 보냈던 친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부부 사이의 자녀가 딸뿐이면 항상 여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에 화가 난다.
여자는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오직 남자만이 대를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동양인의 체형을 지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여성의 체형을 지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 여성들과 섹스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 남성들과 섹스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단지 정준이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바텀이라고 생각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인 게이들은 바텀이라고 규정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의 친모가 ‘진정한 어머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의 양모가 ‘진정한 어머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진정한 어머니’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그것은 진정하지 않은 어머니도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자는 미혼모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 한국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미혼모들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지 않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중 대다수가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 여성들과 섹스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아시아 남성들과 섹스를 하면 어떨지 궁금해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단지 정준이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바텀이라고 생각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의 생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하이힐을 신은 여성을 선호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살아가는 데 피부색이 아무 상관도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살아가는 데 피부색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살아가는 데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장애나 만성질병을 가진 한국인 아이들은 주로 해외로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장애아들의 부모에게 더 큰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낙오자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들이 낙오자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미혼모들이 무책임하다고 규정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녀를 직접 키우고 싶어하는 미혼모들을 이기적이라고 규정하는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여자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부족함 없는 삶을 산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오늘밤엔 그 무엇을 해도 도움이 되지 않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금 밤이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금 낮이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금 코펜하겐은 낮이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금 서울은 밤이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서울과 코펜하겐 사이에 시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가족이 경희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부의 말을 제대로 통역해주지 않는 경희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친모의 말을 제대로 통역해주지 않는 경희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통역해주지 않는 경희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가끔 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통역하지 않는 것이 여자와 가족에게 더 좋을 것이라 말하는 경희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한국계 입양인인 동시에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한국계 입양인이나 레즈비언 둘 중의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일까.
여자는 자신이 한국계 입양인이나 레즈비언 둘 중의 하나였다면 삶이 더 쉬웠을 것이라 믿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정말 그럴까. 그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여자는 국내입양을 촉진하려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국내입양을 촉진하려고 엄청난 돈을 사용하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만약 여자가 결정권자라면 그 돈을 미혼모를 지원하는 일에 사용할 것이다.
여자는 미혼모를 지원하는 데 더 큰 예산을 사용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이를 입양한 부부가 매달 수령하는 지원금이 미혼모가 수령하는 지원금보다 두 배나 더 많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소민이 일을 하는 동안 아들을 봐줄 사람이 없기에 풀타임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지혜가 구직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혼모라는 이유로 이력서를 내는 곳마다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지혜는 호적에서 딸의 이름을 지운 후에야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로 배수관 세제를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로 현미밥과 흰쌀밥이 둘 다 가능한 전기밥솥을 찾는 중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로 푸른색 불빛을 발하는 전구를 찾는 중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로 습기 찬 곳에 두는 플라스틱통을 찾는 중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모가 김장을 할 때 왜 여자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혹시 여자의 친모는 여자와 함께 마당에서 배추 씻는 모습을 이웃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혹시 어린 자식을 먼 나라로 입양시켰다는 사실을 동네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걱정이 되어 여자에게 전화도 하지 않는 건 아닐까?
여자는 동네 이웃들에게 여자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친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한국어 책을 소리내어 읽을 때면 바보처럼 들린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어 책을 소리내어 읽을 때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름방학 때 했던 일을 주제로 한국어 작문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작문 주제를 받아들고 마치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어 강사는 다른 주제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일까.
여자는 영어를 배우지 않는 언니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영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언니가 단 1명도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친가족과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통역 없이는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와 통역 없이는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언니들의 남편이 서울에 오기 때문에 여자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경희에게 전화를 했던 친모에게 화가 난다. 경희는 여자의 친모가 딸들이 남편을 데리고 오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여자는 친가족에게 화가 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다시는 그들을 보지 않으리라는 생각마저 했다.
여자는 더 큰 인내심으로 친가족을 대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친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삶에 들어온 여자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은 여자와는 달리 이러한 상황을 사전에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여자를 찾았던 것은 그들이 아니다. 여자가 그들을 찾았던 것이다.
여자는 친가족에게 짐이 된 것만 같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어머니에게 안아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어머니에게조차 안아달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버지에게조차 안아달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안아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를 안아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아버지의 품에 안겼을 때의 느낌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아버지와 함께 누워 잘 때의 느낌을 그리워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