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화가 난다 -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마야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난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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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메이션이라는 덴마크 일간지에서는 이 책을 가리켜 당신의 온몸을 관통할 하나의 장시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이것은 시라는 장르가 가진 가능성을 형식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극대화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시, 하면 떠올리는 형식과는 다른 몸을 입고 있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의 장르는 단순히 문학적인 스타일을 넘어 터져나오는 목소리, 진실한 발성을 받아쓰기에 시이자 사회고발적인 에세이이며 동시에 자신이 아닌 모든 입양인의 목소리를 조합해 만든 ‘여자’의 허구적인 이야기까지 함께한다. 이것은 단순히 마야 리 랑그바드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야는 국가 간 입양 문제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구조에 대한 분노와 성찰이 주관적인 게 아니라 명확한 근거가 있음을 논증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논증은 시라는 장르가 지닌 원초적인 힘으로 읽는 이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 변화를 이끌어낸다. 마야는 사회를 쉽게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는 너무나 느리게 변한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는 독자 한 명 한 명의 마음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했을 때 나아가 사회의 법과 제도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이 책을 읽기 전 입양인과 입양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성소수자이며 한국에서 살아가는 남성인)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만난 순간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야가 입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성소수자로서 동양인으로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솔직하게 묘사하면서 독자에게 한 인간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데서 온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주의깊게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 소수자의 문제, 교차성, 나아가 가족구성권의 문제와 만난다.


입양인들은 자신이 타자화되는 경험을 한다. 덴마크인도 한국인도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입양인에 대한 환상이 있고 미디어에서는 그것들을 재현한다. 김치를 좋아하고, 한복을 입고, ‘모국’을 그리워하고, 혈육, 피를 나눈 가족에 대한 깊은 유대가 있기를 바라고. 그녀는 이렇게 재현되는 입양인, 번역되는 입양인, 통역되는 입양인이 완전한 나의 전체는 아니며 심지어 자신이 왜곡되기까지 한다고 느끼더라도 그 어떤 감정들은 자신에게 진실하다는 것에 화가 난다. 입양인으로서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모습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미디어에서의 노출이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또한 마야의 작업은 사람들 사이의 언어와 소통의 문제에 천착한다. 소통의 문제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반복해서 겪게 된다. 자신의 생각하는 것을 한국어로는 정확하게 세밀하게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어서 유아적인 표현을 하게 되는 것,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 질문받는 대상이 되는 것, 자신의 말을 누군가가 전달해주어야만 전달되는 권력관계를 의식해야 하는 것, 부모님을 만나 많은 말을 하지만 통역해주는 사람이 전해주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것. 


그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동일하다면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주고받을 수 있을까? 마야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친부모에게 밝히지 않기를 ‘선택’한다. 이러한 장면은 언어의 장벽 없이 우리가 소통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순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는 결국 상대방과 나라는 관계의 번역물이고 소통이라는 것은 그 권력관계 안에서 각자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갑이기보다는 을로서 살아간다. 어느 조직 내에서, 위치 내에서 을들의 말하기는 대개 지정돼 있다. 할 수 있는 언어는 제한돼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도 허락되어 있다. 우리는 부당한 요구나 상황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괜찮습니다’인 순간도 많이 겪으며 살아가니까. 


마야의 글을 읽다보면 감정의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하고 그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말할 수 없는 다층적인 레이어를 만나게 된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혐오하면서도 그리워하고 만지고 싶어하면서도 수치스러워하는 인간적인 감정들이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자신의 나이가 ‘친부모’의 사랑을 원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면서도 그러한 접촉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간절함이 있는 것, 상상 속에선 우리가 너무나 친밀하고 완전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어색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죄책감 속에 머물러야 하기도 한다는 뼈아픈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한국의 어머니에게 입양을 보낸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은 사실이며 가족들은 몰랐으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때로 입양인들은 없는 존재, 숨겨진 존재, 거짓말해야 하는 존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부당함을 전가받는 것이 왜 어머니들인지, 여성인지, 낙태와 거짓말의 부담을 짊어지는 것이 왜 아버지가 아닌지 마야는 분노한다. 


동시에 그들은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의 계급 차이도 날카롭게 의식하게 된다.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을 보냈을 당시의 친부모는 해외의 양부모보다 배우지 못했고 가진 것이 없었고 소득수준이 낮았다. 자신의 어떤 권리를 포기하는지도 모르는 채 입양 서류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양부모는 친부모보다 더 많은 교육문화적 혜택을 누렸고 자본이 많다.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누리는 것일까. 입양인으로서 겪는 경험은 이러한 계급적 차이와 모순에도 주목하게 만든다. 


이렇듯 마야의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순간을 수시로 맞닥뜨리게 된다. 마야가 입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성소수자로서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진실한 분노는 나와 상관없는 경험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 입장하는 열쇠로 변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경험에 갇혀 있던 부조리를 사회를 향해 발화하게 하는 방아쇠로 만드는 연금술을 보여준다.


이 책이 뛰어난 점은 난해하고 딱딱할 수 있는 문제를 아주 읽기 쉽고 받아들이기 좋게 만드는 마야의 리듬에 있다. 처음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평범해 보이는 문장으로 시작해 매우 정교한 카드의 집을 만들어낸다. 그 집은 위태롭고 흔들리며 취약하지만 그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취에 닿는다. 마야가 쌓아올린 이 언어의 집은 어느 한 순간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마야가 이 책을 펴내고 거의 10여 년 만에 한국에서 선을 보이게 된다. 한국계 입양인으로서 덴마크에서, 스웨덴에서 책이 나왔지만 정작 책으로 한국 독자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던 그다. 한국어판이 출간된 올해에서야 진짜 책이 나오는 기분이 든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아가 친부모 역시 덴마크어도 스웨덴어도 몰랐기에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제 한국어로 책이 나왔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것은 친부모에게 하는 커밍아웃이기도 하다. 이 책을 편집한 김민정 시인은 마야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이제야 말할 수 있는 토대와 조건이 갖춰진 것 같다고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 인권과 소수자의 경험에 주목하면서, 어느 누구도 한 가지 면만을 가지고 살아가진 않는다는 교차성에 대한 논의와 새로운 시대, 가족의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지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마야의 <그 여자는 화가 난다>가 품고 있는 진실한 고백의 힘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과 만나며 그들의 세계를 확장시켜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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