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시인선 184
고명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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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형



나아가는 방식에도 자유가 있다니

팔로 만든 아치에도 형식이 있다니

사람들은 어떻게 하트를 그리는 걸까

물을 밀며 물을 마시며 물과 싸우다

물배가 차서 수박처럼 동그래지고


​무지개를 상상하며 팔을 뻗어요

강사님의 아름다운 설명 때문에

물속에서 입 벌리고 울 뻔했어요

이대로 팔과 다리에 살이 붙으면

죽은 개들을 다시 만나러 갈 것 같아서


님아 그 강 그 강 모두 강 때문이죠

번들거리는 몸도 마음도 강 때문이죠

수영을 시작한 건 귀하게

숨을 쉬고 싶어서

죽을 것처럼 보고플 때 빠지지 않고

숨을 색색 쉬며 용감하게 나아가려고


​그러니 우선 자유부터 익혀야 해요

몸에 힘을 빼고

수박에 줄을 긋듯이

물속에선 마음껏 일그러져도 괜찮아

벼락의 길을 부드럽게 따라 흐르며

멍든 팔을 구명줄처럼 수면에 뻗을 때


내 무지개 속엔 개가 있고 엄마가 있고

언덕이 있고 복수(腹水)가 차고 무덤을 그리고

내 그리움 속엔 왕릉만한 비탈이 있어서

정수리 너머로 봉분을 힘껏 끌어안을 때

심장을 그리는 법을 알 것 같은데


​나는 청어를 알아요 등 푸른 몸과 헛물을 안아요

물을 잔뜩 먹고 부푼 나는 하마가 되어

부드럽게 유영하는 할머니들을 봅니다

백자 같은 인간의

어깨와 곡선

아름다움은 다 겪고도 안아주는 것


​어때요 기분좋은 저항이 느껴지나요

물레 감듯 모든 걸 안고 나아가세요

강사님은 아름다운 말만 툭툭 내뱉고

나는 그게 수박씨처럼 귀하고 예뻐서

눈귀코를 번쩍 뜬 채 팔을 뻗쳐요

그렇게 품을 알 때까지 수영은 계속되어요


​_고명재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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