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소녀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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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를 가봐야겠다, 다짐이 선 <검은 수련> 때도 그랬지만 풍광을 글로 옮기는 작가의 필력이 탁월하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대게는 곁가지(?) 설명은 휙휙 읽게 마련인데 미셸 뷔시의 글은 정황 묘사에서 이미지와 색감이 절로 그려진다. 무생물인 자동차마저 귀엽다. 그래서 캐릭터 묘사가 다소 성에 차지 않는 걸까. 특히 여성이 스테레오타입 — 어떤 의미로든 — 에 가까운데 <그림자 소녀>에서 ‘소녀‘는 미치광이 말비나 아닌가 싶게 릴리가 매력이 없다. 말비나 역시 서브 캐릭터의 전형이긴 하지만. 말비나-마르크 콤비(?)로 기울어지면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작가가 지리학과 교수라네. 지형이나 풍속 묘사가 생생하더라니.

고통은 여러 고통이 더해져 커지는 게 아니라 큰 고통이 작은 고통을 밀어내는 법이다. 어쩌면 그건 다행인지도 모른다.

마틸드가 18년 동안 탐정을 고용할 만큼 미쳤다면 그녀의 남편은 청부 살인자를 고용할 만큼 참을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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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잉골드는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를 읽으면서 알게 된 학자다. 선 Zen이 아닌, 선학 linealogy이라는 분야가 생소하여 몸풀기 느낌으로 <팀 잉골드의 인류학 강의>도 집었다. 얇은 두께와 ‘강의‘라는 단어 때문에 학부 101 정도로 생각했으나 대단한 오판이었다. 어렵다.

소쉬르-레비스트로스 이론에 관한 챕터 《비교연구, 구조주의, 언어학》이 내겐 특히 그렇다. 머리 지끈. 구조주의를 비유적으로 비판하며 ˝[별들은] 구조를 통해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가 그 별들을 통해 작동한다.˝ 라는 대목에서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 표현은 당신이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은 당신이 걷는 방식으로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라는 대목과 맞닿는다.

차이는 다름이 아닌 접착제이며,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 이 하나의 세계를 분명히 설명하는 것이 인류학의 과제라고 ‘강의‘하는 저자.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생산자˝다. 선과 날씨를 통해 자신만의 인류학 이론을 펼치는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의 3부 《인간하기》에 유독 눈길이 머무는 이유다.

인간은 이제 인간을 빼닮은 인공물을 만들며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세계의 확장은 ‘인간다운 성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일 터. 두 책을 찬찬히 읽어야겠다. 한 명의 주체로, 인간 종의 하나로, 세계의 한 부분으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나의 선을 찾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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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이규원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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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책인데 제법 세련됐다. (저 때 이미 시차출근 제도를 시행했다니!) 시대가 시대인지라 감수성이 맞지 않는 부분은 있지만, 캐릭터 성격이 대사와 묘사로 잘 드러난다. 부아가 치밀어 고춧가루를 살짝 뿌렸다, 하루하루가 작두 타기의 연속이다(이 표현 써먹고 싶군), 팥밥을 지어 먹고 축배를 들 거다, 메탄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등등 비유와 표현도 찰지다. 온갖 하이테크에 특수 설정으로 무장한 현대 미스터리도 재밌지만, 진부하고 투박해도 그 구닥다리 속성 때문에 (클리셰일망정) 이런저런 트릭이 등장하는 레트로(?) 미스터리가 난 읽을 맛이 난다. (20세기 태생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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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장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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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을 능가한다는 소개 문구대로 상위 1퍼센트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하고 피칠갑에 카니발리즘이 난무하지만 캐릭터 설정, 사건의 얼개와 전개가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과 상당 부분 매치되는 만큼 다소 식상하다.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레드 드래곤>의 혼성 하위 호환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십 수년이 지났지만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앤서니 홉킨스의 농익은 살의가, 수년이 지났지만 미드 <한니발>에서 매즈 미켈슨의 세련된 살의가 각인된 탓일까.

스탠퍼드 시절 룸메이트였던 루시엔 폴터와 로버트 헌터. 우연한 사고로 루시엔은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된다. 루시엔의 요청으로 옛 친구 로버트가 그의 심문을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은 죄수와 형사로 재회한다. 자신은 하수인일 뿐이라며 그간의 사연을 털어놓는 루시엔. 하지만 이것은 게임의 서막이었으니 프레데터이자 연쇄살인마는 루시엔 폴터였다. 이후론 장르의 전형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스탠퍼드와 예일에서 공부한 앨리트가 마약으로 나락에 떨어져 범죄의 하수인이 된다, 이 낙차에 흥미가 일었는데, 아 역시나. 이름마저 범상치 않은 루시엔 폴터가 잘나도 너어무 잘나신 사이코패스라는 식상함에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이런 잘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상대하면서 FBI 행동과학부 센터장님, 그 안일한 사고는 뭡니까..... ˝겨우 단추˝라뇨? 게다가 인간미 넘치는 성장형 캐릭터임이 분명하고 그 빌드업을 위해서라지만, 신참도 아닌 테일러 요원의 풋내는 그저 답답(읽다보니 성장형도 아니네). 이 와중에 범죄 장면장면에서 생생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미드 <한니발> 때문일거야........

<악의 심장>은 ‘로버트 헌터‘ 시리즈로 다음 편은 <악의 사냥>이다. 루시엔이 급기야 간수 다섯을 죽이고 탈옥을....하고 루시엔을 추격하는 로버트 헌터의 사냥극(!)이 중심인 모양.


+ find, feel, let, allow, make 등 직역 문장이 우리말 번역 같지 않고, 심리스릴러라는 장르 특성도 반감하는 거 같아 아쉽다. 그녀의 자제력은 완전히 그녀를 떠났다, 보다 그녀는 자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놔버렸다,가 낫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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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읽는/은 추리소설 초간단 정리.


<악의 심장>
초반, 각 챕터를 감질나게 끊으면서 밀당을 하는 패턴에 살짝 짜증이 나려는 찰나, 또 절묘하게 이야기를 풀어 줌. 하하. 근데 이 고비를 넘기고 읽다 보니 이젠 /그, 그들/이라는 번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 직역으로는 맞는 번역이긴 한데 중간중간 /그, 그들/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번역을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가 누구고 그들이 누구인지 첫 등장에 언급한 이후로 (원문대로) 대명사의 향연이라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좀 거슬린다. 어여 나머지도 읽어야지.



<심연 속의 나>
도나토 카리시 직품 치고는 싱겁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갑분영매의) <속삭이는 자>보다 좋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 각색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에서 ‘모성‘과 ‘본성‘, ‘아이러니‘를 곱씹다 보면 여흥만큼은 슴슴하지 않다.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10대 때 6개월 연애, 이후 10년간 소식 단절, 20대 중반 느닷없이 밝혀지는 이별의 비화로 이런 사달이 나려면 내밀한 무언가를 쑤셔내거나 송곳처럼 파고들어야 하는데 더듬더듬 동어반복의 향연에 남은 건 설익은 이야기와 인물만 덩그러니. 단편 정도의 줄거리를 억지로 단행본으로 출간하니 늘어지고 또 늘어져 있던 개성도 어둠에 묻힐 수밖에. 개인적으로 <나를 찾아줘>도 그냥저냥 읽었는데 여기에 견주기엔 길리언 플린에게 실례 아닐지. 하물며 애거사 크리스티라니.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명탐정의 제물>을 쓴 그 작가다. 다 읽고 알았다. 중반부로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살인사건이 터지고 이후 죽었던 이들이 하나둘 살아나는데....엇, 이거 뭐야? 하다 읽다 보니 개인적으로 <명탐정>보다 재밌게 읽었다. 특유의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 식의 전개는 여전한데 실없이, 어이없이, 실소를 흘리며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특수 설정으로 모든 것이 풀리는 미스터리.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 나름 해피엔딩의, B급 감성(혹은 병맛이라고 해야 할지) 결말까지 압권이다.



<살의의 대담>
<그리고 아무도>에 비하면 나름의 핍진성을 갖춘 추리물. 킬링타임용으로, TTS 노동서(?)로 듣기에 좋다.



<신의 숨겨진 얼굴>
<살의의 대담>처럼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로 초반부터 감이 잡히는 줄거리긴 한데, 어떤 (어이없는, 좋은 의미로) 반전이 있을지도 모르니 쭉 읽어보자. 헉, 여기까지 적고 방금 알았다. <살의의 대담>을 쓴 작가구먼. 어쩐지 잡념의 만담화, 그러니까 의식의 흐름이 비슷하더라니.



이 외에 몇 권 더 있지만 생략…. 잡은 인문 교양서는 도파민 중독인지, 진도가 안 나가고 자꾸 (일본) 미스터리에 손이 간다. 본의 아니게 추리소설의 해 II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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