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열쇠. 미스터리의 계절


— 책과 열쇠의 계절
고교 2학년 도서위원인 호리카와 지로와 마쓰쿠라 시몬이 활약하는 일상 추리+학원물이랄까. 시시껄렁한 일로 심각해하고 투닥투닥하는 게 귀엽다. 파슬리 콜라를 서로 먹이려고 하는데 아, 저 때는 저렇지, 저런 거 없어도 만들어서라도 (골려) 먹일 때지, 하며 술술 읽어가다,
왠지 모를 울컥함에 마지막 페이지를 한참이나 보았다.



— 거꾸로 소크라테스
단편집이다. 표제작이자 첫 작품 ≪거꾸로 소크라테스≫가 <책과 열쇠의 계절>과 묘하게 맞닿는 부분이 있다. 마쓰쿠라 프리퀄(+시퀄)인가 싶을 정도로. 아직 읽는 중인데 첫 번째 이후로 이상하게 잘 안 읽힌다. 거꾸로 책인가.



—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
청춘의 비분강개를 담은 특유의 문체와 페이소스가 돋보인다. 전작 <류>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만큼 빛과 어둠의 서사가 더욱 강렬하다. 작가의 이력이 배어나는 경계인의 정체성도 여전하다. 사건이 아닌 정서의 환기에 집중하는, 대만의 끈적한 여름밤이 떠오르는 소설.



— 일곱 명의 술래잡기
미쓰다 신조는 한 권 정도는 읽어야지, 하면서 내내 안 읽고 있었다. 미스터리는 좋은데 호러는 싫다. 특히 일본 작품.
너무 더워 짜증 나던 어느 날, <일곱 명의 술래잡기>를 읽어 버렸다. 더위를 잊어야 한다!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었지만 마지막 전개가 두려워 되도록 낮에 읽었다.... 다행히 귀신 이야기(?)는 아니었다. 서사는 사실 슴슴하고 공포 요소도 클리셰에 가까운데 종장을 향해가는 으스스한 기운만큼은 흥미진진. 노파와 고이치의 대화는 묘하게 코믹하기도. 이 정도 공포라면 나도 읽을만하다. 근데 며칠 전 한밤중에 깼는데 갑자기 소설 속 술래잡기 — 정확히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가 떠올랐다. 😑 어우. 술래가 아이들 세는 장면을 생각하다 잠들어버렸지만. 그만큼 재밌게 읽은 것이라 생각해야지.
다음은 뭘 골라야 적당한 스릴로 이 계절을 즐길 수 있으려나. 모 독서플랫폼에 의하면 취향 일치도에서 <마가>, <노조키메> 순으로 높던데 믿어도 되는 건지.



— 점성술 살인사건
2년쯤 전인가? 전면 개정판이 나왔을 때부터 읽고 싶었다. 엄청난 트릭이 대체 뭘까. 하지만 소재에 걸맞게 토막 살인+오컬트의 무시무시한 내용이라고 해서 마음을 다지는 데 어언...
다행히 묘사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생각보다 참혹하진 않다. 명성대로 트릭 설계가 세심하고 이를 위한 점성술 서사도 탄탄하다. 하지만 40년 간의 난제까지는... 드러나는 전모와 범죄 동기, 트릭의 실마리가 얼렁뚱땅 개연성이 떨어져 아쉽지만, 1980년 본격의 부활을 알리고 작가가 최근 전면 개정을 낸 만큼 공들인 작품이다. 여기에 독자로서 지적 유희에 동참하는 즐거움이 있다.



— 미스터리 세계사
TTS로 오며 가며, 이일 저일 사이 듣는 킬링타임용으로 골랐다. 대기근 때 아일랜드인이 이주한 비영어권 국가 중 최대 규모가 아르헨티나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세계에서도 아일랜드인이 이주한 나라로 다섯 손가락에 든다고 한다.



— 콘클라베
가톨릭 신앙에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적당히 어우러져 술술 읽힌다. 얼개는 단순하다. 콘클라베를 구성하고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것. 세계 각지에서 모인 118명의 추기경이 기도하고 아침 먹고 투표하고 개표하고 기도하고 저녁 먹고 기도하고 자고 일어나서 기도하고 먹고 투표하고 개표하고를 반복하는 사이사이 감찰과 고발, 시치미, 반목, 모략이 펼쳐진다. 염탐과 술수라고 해봤자 노구의 성직자들이라 별 거 없다. 대화와 간구, 그리고 기도하기. 이게 스릴러인가 싶지만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콘클라베는 온갖 이슈로 부글댄다. 급기야 테러까지 발생. 지상 교회의 최고 자리는 누구에게 갈 것인가.
인노켄티우스(인노첸시오)는 십자군 때 이런 교황이 있었지, 정도밖에 모른다. 오랜 세월 이 이름의 교황이 없기도 하고, (우리말 기준으로) 어감 때문인지 켄타우로스가 떠오르면서 왠지 모를 이방의 기운이 느껴진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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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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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머릿속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에 좀 혼란했다. 어떤 책 혹은 영화랑 헷갈리고 있나? 요즘 단 게 자꾸 당기고 피곤해서 머리가 멍해진 건가 싶었는데
아하, 이 책은 <이런 사랑>의 개정판이고 원제는 <Enduring Love>다. 그러니까 까마득한 언젠가 영화 <사랑을 견뎌내기>를 봤던 것. ‘Enduring Love‘는 ‘이런 사랑‘이고, 이런 사랑은 ‘견딜 수 없는 사랑‘이지만,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제목 이야기를 하는 김에, 영화 <사랑을 견뎌내기>는 오역 아닐까 싶었지만 의도된 오역이든 아니든 수긍할 수 있었다. 이번에 소설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읽으면서 아무래도 <이런 사랑>이 더 맞는 제목이 아닐까, 아니 원제(영원한 사랑)를 살린 제목이 되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누구에겐 견딜 수 없어 영원한 사랑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영원히 견딜 수 없는 사랑. 그렇다면 견딜 수 ‘있는‘ 사랑은 무엇인가, 되묻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낭만과 망상의 무한 고리여라.






🖊 1819년 10월 13일 존 키츠가 패니 브론에게 보낸 편지

사랑이 날 이기적으로 만들었어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당신을 다시 만나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군요. 내 삶은 거기서 멈춘 것만 같아요. 다른 어떤 생각도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완전히 삼켜버렸어요. 지금, 이 순간 난 녹아내리는 것만 같아요. 당신을 당장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인간이 종교에 목숨을 바치는 데 난 전율했지요. 하지만 더는 아니에요. 신앙을 위해서라면 나도 순교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사랑이 내 종교입니다. 내 신앙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거예요. 당신을 위해서. 나의 종교는 사랑이고 당신은 내 사랑의 하나뿐인 교리입니다.

My love has made me selfish. I cannot exist without you. I am forgetful of every thing but seeing you again. my Life seems to stop there. I see no further. You have absorb‘d me. I have a sensation at the present moment as though I was dissolving. I should be exquisitely miserable without the hope of soon seeing you ....I have been astonished that Men could die Martyrs for religion. I have shudder‘d at it. I shudder no more. I could be martyr‘d for my Religion. Love is my religion. I could die for that. I could die for you. My Creed is love and you are its only tenet.

책 속에서 I

키츠나 그의 시에 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그가 연인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편지를 쓰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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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츠가 천재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그는 과학이 세상에서 경이로움을 앗아간다고 생각한 반계몽주의자였다. 사실은 정반대였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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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본인 학자는 거기에) 키츠가 연인 패니에게 썼지만 부치지 않은 편지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절망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영원한 사랑의 외침"이라고 묘사되어 있었다고 한다.

책 속에서 II

아이들의 엄마와 심각한 대화를 나눈 뒤라,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한 토론은 차라리 달콤한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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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는 동안 레이철이 쭈뼛쭈뼛 다가와서 말했다. "전에 아저씨가 와서 우리랑 얘기했던 거 기억나요."
"나도 기억 나." 내가 말했다.
"그럼 다른 얘기 해요. 오늘은."
"그러자." 내가 말했다. "무슨 얘기 할까?"
"아저씨가 먼저 해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강을 가리켰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을 상상해봐.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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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내 손을 끌고 진흙투성이 강가로 데려갔고, 나는 거기 서서 느리게 흐르는 갈색의 혼탁한 강물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레오한테도 얘기해주세요." 레이철이 말했다. "그 얘기 다시 천천히 해주세요. 그 강물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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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우수하다는 뜻인가 봐요. 롤링스톤즈도 그렇고 기무라 씨도 마찬가지죠. 살아남았으니 승자예요.”
노인네가 승자인가, 하고 크게 웃어젖힌 후, 기무라 시게루는 전화를 끊었다.
신칸센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역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 기세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차내 안내방송이 환승 정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 마리아비틀(불릿 트레인) 중에서


① 걸어다니는 우드스톡
② 저자가 롤링 스톤즈 팬인가
③ 문득 든 생각. 불운의 신에게 끈질긴 구애를 받는 나나오와 부조리의 신에게 일찌감치 낙점받은 하무라가 킬러 vs 탐정으로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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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델, 에셔, 바흐
2.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3.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4. 낭만주의의 뿌리


이번 달에 (재독 포함) 읽고자 하는 책인데 너무 무리한 계획인가. 하긴 1번 부터가...

무의식적 회피 전략 그런 것인지, 부지런히 읽어도 빠듯한 판에 자꾸 추리 소설을 읽는다. 이것마저도 한 권 한 권 읽는 게 아니라 이거 읽다 저거 읽다 하는데 집중력이 확실히 떨어진 것 같다. 집중력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요즘 공기도 좋은 참에 걷기, 달리기 열심히 하는데... 어째 더 피곤해. =_=



<몰타의 매>는 벼르다가 이제야 읽었는데 서술 방식 때문인지 1930년대 영화로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 맙소사. (지워버리고 싶은 알뿌리...!) 나름 쿨하고 세련된 마무리, 좋았다. 그나저나 스페이드 씨 좀 웃긴다. 막판에 얼간이가 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거야.... 앵무새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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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난데 없는 빔의 추락으로 그 자리에서 끝날 수도 있으니 그 자신도 난데없이 살던 곳을 떠나서 인생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철제 빔 사건 때문에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빔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빔이 떨어지지 않는 생활에 인생을 맞춘 거죠.

— <몰타의 매> 중에서


오래전에 <로열패밀리>라는 드라마를 엄청 재밌게 봤다. 이젠 내용도 제대로 기억 안 나지만. 원작인 <인간의 증명>을 본다 본다 하다 이제 읽는데 스페이드 씨 때문에 조금 갑갑했던 속이 풀리는 중이다.



아무래도 이번 달에 저 4권은 무리인 것 같다. 1만 읽어도 성공인데. 그냥 차근차근 읽어보자. 목표는 작게, 적게, 간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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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정의 부품 대부분이 공학 디자인의 기본 원리인 키스KISS 법칙을 따랐다. “간단하게 만들라고, 이 멍청아 Keep It Simple, Stupid”를 줄인 말이다.

—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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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개는 비슷비슷하지만 렌조 미키히코만의 찜찜하고 서늘한 여운을 주는 서술트릭 심리 상황 묘사로 저마다 미묘한 개성을 풍긴다. <<열린 어둠>>은 표제작 이라(게다가 마지막이라) 내심 기대했는데, 개인적으로 조금은 김빠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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