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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평점 :
읽으면서 머릿속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에 좀 혼란했다. 어떤 책 혹은 영화랑 헷갈리고 있나? 요즘 단 게 자꾸 당기고 피곤해서 머리가 멍해진 건가 싶었는데
아하, 이 책은 <이런 사랑>의 개정판이고 원제는 <Enduring Love>다. 그러니까 까마득한 언젠가 영화 <사랑을 견뎌내기>를 봤던 것. ‘Enduring Love‘는 ‘이런 사랑‘이고, 이런 사랑은 ‘견딜 수 없는 사랑‘이지만,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제목 이야기를 하는 김에, 영화 <사랑을 견뎌내기>는 오역 아닐까 싶었지만 의도된 오역이든 아니든 수긍할 수 있었다. 이번에 소설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읽으면서 아무래도 <이런 사랑>이 더 맞는 제목이 아닐까, 아니 원제(영원한 사랑)를 살린 제목이 되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누구에겐 견딜 수 없어 영원한 사랑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영원히 견딜 수 없는 사랑. 그렇다면 견딜 수 ‘있는‘ 사랑은 무엇인가, 되묻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낭만과 망상의 무한 고리여라.
🖊 1819년 10월 13일 존 키츠가 패니 브론에게 보낸 편지
사랑이 날 이기적으로 만들었어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당신을 다시 만나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군요. 내 삶은 거기서 멈춘 것만 같아요. 다른 어떤 생각도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완전히 삼켜버렸어요. 지금, 이 순간 난 녹아내리는 것만 같아요. 당신을 당장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인간이 종교에 목숨을 바치는 데 난 전율했지요. 하지만 더는 아니에요. 신앙을 위해서라면 나도 순교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사랑이 내 종교입니다. 내 신앙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거예요. 당신을 위해서. 나의 종교는 사랑이고 당신은 내 사랑의 하나뿐인 교리입니다.
My love has made me selfish. I cannot exist without you. I am forgetful of every thing but seeing you again. my Life seems to stop there. I see no further. You have absorb‘d me. I have a sensation at the present moment as though I was dissolving. I should be exquisitely miserable without the hope of soon seeing you ....I have been astonished that Men could die Martyrs for religion. I have shudder‘d at it. I shudder no more. I could be martyr‘d for my Religion. Love is my religion. I could die for that. I could die for you. My Creed is love and you are its only tenet.
책 속에서 I
키츠나 그의 시에 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그가 연인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편지를 쓰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키츠가 천재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그는 과학이 세상에서 경이로움을 앗아간다고 생각한 반계몽주의자였다. 사실은 정반대였는데도 말이다. ----- (그 일본인 학자는 거기에) 키츠가 연인 패니에게 썼지만 부치지 않은 편지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절망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영원한 사랑의 외침"이라고 묘사되어 있었다고 한다.
책 속에서 II
아이들의 엄마와 심각한 대화를 나눈 뒤라,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한 토론은 차라리 달콤한 휴식이었다. ----- 잠깐 쉬는 동안 레이철이 쭈뼛쭈뼛 다가와서 말했다. "전에 아저씨가 와서 우리랑 얘기했던 거 기억나요." "나도 기억 나." 내가 말했다. "그럼 다른 얘기 해요. 오늘은." "그러자." 내가 말했다. "무슨 얘기 할까?" "아저씨가 먼저 해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강을 가리켰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을 상상해봐.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 아이들이 내 손을 끌고 진흙투성이 강가로 데려갔고, 나는 거기 서서 느리게 흐르는 갈색의 혼탁한 강물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레오한테도 얘기해주세요." 레이철이 말했다. "그 얘기 다시 천천히 해주세요. 그 강물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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