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롱뇽과의 전쟁>
서문만 읽는데도 별 다섯 개 찍고 싶다. <평범한 인생>, <RUR>로 빠져든 카렐 차페크의 세계. <곤충 극장>, 오른쪽 왼쪽 주머니 이야기도 빨리 읽고 싶은데 계속 안 읽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걸 가장 마지막으로 미루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말이다.

쏜살문고의 <개를 키웠다 그리고 고양이도>는 기존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와 같은 책인 듯한데 다셴카 사진이 실려 있다. 폭스테리어가 원래 귀엽긴 한데 다셴카, 정말 귀엽다.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에는 카렐 차페크의 형 요제프의 개성 있는 일러스트가 실렸다. 정원 가꾸기 책도 쏜살문고에서 나왔던데 펜연필독약에서 나온 판본(요제프 차페크 그림)과 뭐가 다른가 봤더니만, 이슈가 있었네.




<미궁>
추리/미스터리로 알고 봤는데 현학적 문체에 기묘한 스토리 전개로 내 머릿속이 미궁이 되어 버렸다. <미궁>은 (장르적 의미의) 미스터리가 아니다.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이쿠타가와상 수상자라고 하는데 <편의점 인간>을 읽었을 때의 실수를 또 하고 말았군. 메시지는 둘째치고, 문체 때문에 난 이 책 적응 불가... 그만큼 작가의 지문은 확실한 셈이다.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이 작품에 알라딘 별 두 개는 — 별 반 개가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 좀 미안한 감이 있는데 세 개는 줄 수 없었다.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으로 새로운 레귤러 캐릭터로 자리한 블랙 쇼맨. 갈릴레오 유가와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고, 가가도 가버리고 (슈헤이 시리즈를 만들어서 슈헤이+가가 조합은 무리인가), 본격까지는 아니어도 블랙 쇼맨을 메인으로 한 탐정물일까 내심 기대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칵테일 미담 릴레이‘였다. 개인적 아쉬움과 약간의 심통이 섞인 별 두 개 — 정확히는 별 두 개 반, 딱 ‘중간‘ — 이다. 몸풀기는 끝났다. 게이고옹, 다음번엔 블랙 쇼맨의 개성을 살린, 한바탕 쇼타임을 기대해 봐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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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방주>의 플롯은 매력적이다. 제목에서 아이러니를 자아내는 반전도 — 뇌 정지까진 아니지만 — 좋았다. 다만,

극한의 클로즈드 서클에서 군상 묘사가 단순하다. 생판 남도(물론 끼어있지만) 아니고 친구 사이에 벌어진 살인 사건이다. 시체와 함께 물리적으로 고립된 상황, 도덕성과 자존감의 밑바닥을 파고드는 일련의 전개는 밋밋하다 못해 조금 세게 말하면 유치하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전체 페이지를 보고 (종이책이 350페이지가 넘는다) 내밀한 전개를 기대했으나 기계적으로 페이지가 흘러가니 문제집 정답 확인하듯 마지막으로 건너뛸까 싶게 설정이 무색하다. (페이지 다 어디에 쓴 겁니까...) 트릭 사수를 위해 다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는 의도라기엔 작법도 평이하다.

현대 본격물에서 기상천외한 트릭이 나오기는 힘들다. <미스터리 클락>처럼 갈 데까지 가보자, 작정한 게 아니라면. <미스터리 클락>은 도.대.체.가.알.아.먹.을.수.가. 없.다. 그래도 정신 나간 트릭에 정신 나간 캐릭터 보는 맛은 있다. <녹스 머신>도 외계어가 쏟아지는 부분은 정신이 아득하지만, 트릭을 엮는 메시지 — 지식 탐구의 열망, 신본격의 미래, 고전에 대한 경외 — 가 있다. 트릭 자체가 아니라 트릭이 들어간 ‘이야기‘를 한다. <방주>에는 개연성 이전에 이야기가 부족하다.

본격 추리물 역시 문학성을 담보해야 미래가 있다는 취지에 작가들은 입을 모은다. <눈먼 자들의 도시> 정도는 아니라도 <방주>만의 (포스트)아포칼립스를 풀어갔다면 무의미한 페이지도 줄고 제목의 여운도 한층 깊었을 텐데. 뭐 역자의 말대로 후던잇+와이던잇을 결합한 오락 소설로 일독했으니 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수수께끼를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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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개역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박여성.안병서 옮김 / 까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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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반복, 자기 복제, 되먹임 고리로 완성한 영원한 황금 노끈.
푸가는 못 써도 귀는 있다. 6성 리체르카레,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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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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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갈라놓은 욕망,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위선. 네 남자의 머리끄덩이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는... 두둥.

이들 [예술가들]은 — 그중에서도 소설가가 최악이다 — 친구와 가족에게조차 작업시간뿐 아니라 조는 시간, 신책시간을 비롯하여 침묵하는 매 순간과 우울증과 만취상태가 모조리 변명의 여지가 있는, 고도의 목적을 담은 행위라는 믿음을 주려고 집요하게 애쓴다. 클라이브가 보기에 그건 평범함을 감추려는 제스처에 불과했다. 그 역시 예술의 숭고함을 의심치 않았지만 부당한 행동은 예술의 일부가 아니었다.

비웃어 마땅한 사진들이었고, 실제로 비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어딘지 경외심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우리는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 있다.

단어에서처럼 문장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클라이브가 목요일에 쓰고 금요일에 부친 엽서로 의도한 바는 - 자넨 ‘해고돼도‘ 싸-였다. 그러나 화요일 해고의 여파 속에서는 - 자넨 해고돼도 ‘싸‘- 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에 엽서가 도착했다면, 아마 다르게 읽혔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 운명의 희극적 성격이었다. 빠른우편으로 보냈다면 피차 좋았을 텐데. 어찌 보면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는 것이 그들 운명의 비극적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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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열쇠. 미스터리의 계절


— 책과 열쇠의 계절
고교 2학년 도서위원인 호리카와 지로와 마쓰쿠라 시몬이 활약하는 일상 추리+학원물이랄까. 시시껄렁한 일로 심각해하고 투닥투닥하는 게 귀엽다. 파슬리 콜라를 서로 먹이려고 하는데 아, 저 때는 저렇지, 저런 거 없어도 만들어서라도 (골려) 먹일 때지, 하며 술술 읽어가다,
왠지 모를 울컥함에 마지막 페이지를 한참이나 보았다.



— 거꾸로 소크라테스
단편집이다. 표제작이자 첫 작품 ≪거꾸로 소크라테스≫가 <책과 열쇠의 계절>과 묘하게 맞닿는 부분이 있다. 마쓰쿠라 프리퀄(+시퀄)인가 싶을 정도로. 아직 읽는 중인데 첫 번째 이후로 이상하게 잘 안 읽힌다. 거꾸로 책인가.



—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
청춘의 비분강개를 담은 특유의 문체와 페이소스가 돋보인다. 전작 <류>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만큼 빛과 어둠의 서사가 더욱 강렬하다. 작가의 이력이 배어나는 경계인의 정체성도 여전하다. 사건이 아닌 정서의 환기에 집중하는, 대만의 끈적한 여름밤이 떠오르는 소설.



— 일곱 명의 술래잡기
미쓰다 신조는 한 권 정도는 읽어야지, 하면서 내내 안 읽고 있었다. 미스터리는 좋은데 호러는 싫다. 특히 일본 작품.
너무 더워 짜증 나던 어느 날, <일곱 명의 술래잡기>를 읽어 버렸다. 더위를 잊어야 한다!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었지만 마지막 전개가 두려워 되도록 낮에 읽었다.... 다행히 귀신 이야기(?)는 아니었다. 서사는 사실 슴슴하고 공포 요소도 클리셰에 가까운데 종장을 향해가는 으스스한 기운만큼은 흥미진진. 노파와 고이치의 대화는 묘하게 코믹하기도. 이 정도 공포라면 나도 읽을만하다. 근데 며칠 전 한밤중에 깼는데 갑자기 소설 속 술래잡기 — 정확히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가 떠올랐다. 😑 어우. 술래가 아이들 세는 장면을 생각하다 잠들어버렸지만. 그만큼 재밌게 읽은 것이라 생각해야지.
다음은 뭘 골라야 적당한 스릴로 이 계절을 즐길 수 있으려나. 모 독서플랫폼에 의하면 취향 일치도에서 <마가>, <노조키메> 순으로 높던데 믿어도 되는 건지.



— 점성술 살인사건
2년쯤 전인가? 전면 개정판이 나왔을 때부터 읽고 싶었다. 엄청난 트릭이 대체 뭘까. 하지만 소재에 걸맞게 토막 살인+오컬트의 무시무시한 내용이라고 해서 마음을 다지는 데 어언...
다행히 묘사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생각보다 참혹하진 않다. 명성대로 트릭 설계가 세심하고 이를 위한 점성술 서사도 탄탄하다. 하지만 40년 간의 난제까지는... 드러나는 전모와 범죄 동기, 트릭의 실마리가 얼렁뚱땅 개연성이 떨어져 아쉽지만, 1980년 본격의 부활을 알리고 작가가 최근 전면 개정을 낸 만큼 공들인 작품이다. 여기에 독자로서 지적 유희에 동참하는 즐거움이 있다.



— 미스터리 세계사
TTS로 오며 가며, 이일 저일 사이 듣는 킬링타임용으로 골랐다. 대기근 때 아일랜드인이 이주한 비영어권 국가 중 최대 규모가 아르헨티나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세계에서도 아일랜드인이 이주한 나라로 다섯 손가락에 든다고 한다.



— 콘클라베
가톨릭 신앙에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적당히 어우러져 술술 읽힌다. 얼개는 단순하다. 콘클라베를 구성하고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것. 세계 각지에서 모인 118명의 추기경이 기도하고 아침 먹고 투표하고 개표하고 기도하고 저녁 먹고 기도하고 자고 일어나서 기도하고 먹고 투표하고 개표하고를 반복하는 사이사이 감찰과 고발, 시치미, 반목, 모략이 펼쳐진다. 염탐과 술수라고 해봤자 노구의 성직자들이라 별 거 없다. 대화와 간구, 그리고 기도하기. 이게 스릴러인가 싶지만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콘클라베는 온갖 이슈로 부글댄다. 급기야 테러까지 발생. 지상 교회의 최고 자리는 누구에게 갈 것인가.
인노켄티우스(인노첸시오)는 십자군 때 이런 교황이 있었지, 정도밖에 모른다. 오랜 세월 이 이름의 교황이 없기도 하고, (우리말 기준으로) 어감 때문인지 켄타우로스가 떠오르면서 왠지 모를 이방의 기운이 느껴진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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