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소설을 그리 읽는 편이 아니다. 소싯적 고전이나 추리물 좀 읽은 이후로는 전공 서적과 인문, 과학 교양서 위주에, 갈수록 책을 잘 안 읽기도 해서, 음, 그러니까 읽은 게 많지 않단 소리. 그래도 소설, 특히 추리물이 당길 때가 있는데 십수 년 전쯤 그랬던 것 같다. 고맙게도 나눔도 받은 덕에 읽던 계열 외 책도 접했다. 뭘 읽었는지 기억 휘발이지만.

 
대부분 까먹었지만 읽고 난 후의 감정이 뇌리에 잔향처럼 배어버린 책들이 있다. 당시 나눔 받은 책 무더기에 <우부메의 여름>이랑 <백기도연대> 시리즈가 있었다. 특히 백기도연대 장미십자 어쩌고 하는 제목(+서체)을 보고 요괴 소설이야 무협이야 뭐야 싶었지만, 그 시절 타지에서 한국어 소설이 고팠던 나는 바리바리 다 받아 왔던 것.
 
<백기도연대>는 탐정이 신기가 있어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겐) 생소한 오타쿠(+오컬트)스러운... 추리물이랄까. <우부메의 여름>은 심상 자체가 기분 나빴다. 공포물을 즐기지 않는 나는 아무 정보 없이 읽었는데, 읽다 보니 찜찜한데 흥미롭기는 한 거다. 무서운데 궁금하고, 한번 읽으면 중도에 접지 못하는 강박(?)이 있(었)어서 꾸역꾸역 읽었고, 어느덧 그 음습한 이미지만 화석화 돼버렸다. 결론은 이 작가(이름도 못 외었더랬다)는 안 읽어야지.


 





바야흐로 2023년 여름. 폭염으로 진이 빠진다.
 
뭔가 정신적으로 몰리면 극단으로 간다고 (내 기준) 공포 소설이라도 읽고 (공포 소설은 읽겠지만 공포 영화는 안 본다) 정신을 깨우자는 생각이 든다. 십수 년 전 어떤 기억. <우부메의 여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그 작가 책을 읽어 볼까?

 

그래서 <망량의 상자>를 골랐다. 작가 책 대부분이 상/중/하 셋으로 나뉘는데 이 책은 상/중 둘로 나뉘어서. 왜 이리 양이 많아. 근데 이 작가 아주, 굉장히, 엄청 유명한 거다. 내 생각을 훌쩍 널뛰어서(무지해서 미안합니다). 십수 년만에 작가 이름도 제대로 알았다 — 교고쿠 나쓰히코.


작가가 요괴 설화를 주요 소재로 한다는 건 알았지만, 더해서 일본 특유의 엽기성도 빼놓을 수 없다. 한데 여름 열기에 내 마음이 바싹 건조해진 건지 괴기하다는 기분이 별로 안 든다. 머릿속에 이미지는 떠오르는데 음, 그렇군 하고 끝. 아니면 교고쿠도의 일장 연설, 설교, 강연, 선문답, 장광설에 되레 진이 빠진 걸지도.

















+ <우부메>를 다시 읽어 볼까 싶다가도 내키지 않는다. 다시 보면 예전만큼 음침한 기분은 안 들 것 같다가도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기분 나쁜 심상이 너무 강렬한 거 보면 또 읽기 싫고. 교고쿠도가 얼마나 지식 설파를 해댈지도 무섭고. 다른 책 읽다 보면 언젠가 재독 할지도?
 
++ <광골의 꿈> 읽는 중. 초반엔 <망량>보다 몰입이 잘 됐는데 난데없이 프로이트... 가 웬 말인가. 일본 요괴 설화야 일장 연설을 해도 그럭저럭 읽겠는데, "수염 난 유대인"의 망령에 융까지. 작가가 그 누구보다 장광설+돌아이 캐릭터를 즐기는지 전개가 메타픽션 급. 사건의 줄거리에 달린 곁가지가 무겁다.


+++ 글줄(이라지만 말줄)의 향연에 지친 나머지 잡은 게 <마구>. 이럴 땐 페이지터너 — 히가시노 게이고 — 가 필요하다! 한동안 물려서 잡지 않던 책을 펼쳐든다. 야구 소재인 <마구>, 분명 안 읽었더랬다. 근데 읽을수록 익숙해. 이 기시감은 뭐지? 읽었나?? 어쨌든, 쓱쓱 군더더기 없이 넘어가는 전개에 속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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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 책이 드디어 번역이 됐구나.

독일어 까막눈이라 구텐베르크에서 영문으로 받아두고 묵혀둔 게 어언 몇 년이던가. 번역은 <The Ego and His Own>과<The Ego and Its Own> 두 개인데 역자는 Steven T. Byington로 같다. 아니, 지금 영역본 이야기할 때가 아니지.

이사야 벌린이 정신 나간 사람 중 제일 무해하고 명예로운 인간이라 극찬(?)한 막스 슈티르너. 배움으로서 점유한 것을 또한 자유롭게 제거할 수 있는 인간, 시민이 아니라 개인, 개인의 본모습을 자각하는 자발적 에고이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진정한 ‘자아 소유‘와 아나키즘에 관한 탐구를 이어가게 한다.

근데 부북스 책디자인에 나름 신경 쓰는줄 알았는데.... 모양새에 약한 인간인 나에게 <차라투스트라>에 이어 또다시 시련을 안기는구먼. 제목 서체를 어떻게 좀 하고 싶어지는... 그림은 엥겔스가 그렸다는 캐리커처에 색을 입힌 건가? 원래의 선화에 서체 정리만 잘해도 21세기 책으로 보일 수 있을텐데...이건 너무 아부지 서재에 있을 법한 책이야... 그래도 2023년에 만난 이 책,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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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제물 - 인민교회 살인사건 명탐정 시리즈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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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과 논픽션의 어긋난 무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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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발자국 -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유쾌하고 지적인 인간 진화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 틈새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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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적어 놓으세요.˝

소설 형식으로 쓴 고생물학자와 소설가의 진화 만담극. 인류학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두 사람 보여주는 ‘오리지널‘ 티키타카가 발군이다.


— 등장인물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무한대 입담을 자랑하는 고생물학자. 미야스의 표현으로는 광대 기질이 있는 타고난 이야기꾼. 생물 문어를 좋아하고 앵무새를 싫어한다. 추위에 강하다. 진화생물학 관련하여 주변 사물과 현실에 빗대어 이야기하면서도 언제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불자와 같은 면모가 있으나 마지막에 폭발한다.

후안 호세 미야스: 비밀리에 활동하는 네안데르탈인.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새는 걸 강박적으로 경계하는 소설가, 저널리스트. 먹는 것을 좋아하고 살짝 망상 기가 있는 별난 유머 감각의 소유자이다. 활기 넘치는 사람들을 질투한 나머지 싫어하지만, 아르수아가는 예외인 듯.

"네안데르탈인이 되는 거라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럼 나잖아. 나는 길들여진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인 셈이네? 이게 맞나? 그러면 아르수아가도 은밀하게 숨어 사는 네안데르탈인인 셈인가? 사피엔스의 규범에 적응해 살아가는 척하는 네안데르탈인 말이야.‘

— 열하나. 모든 아이들 중에서

양은 많은데 열량은 적은 것과 양은 적은데 열량은 높은 것 중에서 골라야 해요. 삶이 그렇죠.

— 열다섯. 기적의 식이요법 중에서

집에 도착하자 그에게 전화했다.
"아르수아가, 그동안 메모한 것을 다시 보고 있는데 수명과 기대 수명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그러자 고생물학자에게서 전혀 불자답지 않은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농담이에요!"
나는 얼른 서둘러 마무리했다.

— 열여섯. 이젠 사람들의 평가에 맡기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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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폰 르포르 책이 국내에 한 권도 번역된 게 없나 보네. 검색하니까 헤르만 헤세의 <게르트루트>만 나오는 거 보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에 맞서 카르멜회 수녀들이 순교한 사건을 바탕으로 독일 작가 르포르는 1931년 <단두대에 선 최후의 여자>라는 소설을 쓴다. 이후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이를 영화 대본으로 각색 하던 중 사망하고 어찌저찌하여 마침내 프랑시스 풀랑크가 오페라로 만들어 이탈리아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

아무튼, 게르트루트 폰 르포르의 <천국의 문>을 기대 안 하고 검색했는데 아예 작가의 책이 한 권도 안 나온다. 흠. 그래, 덥고 습하고 실내외 온도차로 몸은 더 축축 처지니 즐거운 소설을 읽자.



<디 아더 미세스>
읽으면서 설마? 했는데 그 설마 맞았고, 후반부 얼레벌레 힘 빠지는 진행도 좀... 그래도 필력 있는 작가인지 술술 읽힌다.


<사악한 목소리>
부록 에세이가 난 더 좋았다.


<매스커레이드 게임>
히가시노 게이고의 죄와 처벌, 용서와 속죄의 메시지.


<형사 부스지마 최후의 사건>
세상 악당 때려 잡는 악마 형사 부스지마. 우후, 우후후, 우후후후.


<아기 판다 푸바오>
너무 더워서 읽었다... 늘어질 땐 귀여운 거 보는 게 최고.
판다 눈이 저렇게 초롱초롱한 줄 몰랐다. 흑과 백의 조화가 신의 한 수인 생명체인 듯.


<회색 여인>, <석류의 씨> 등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미스터리(?) 몇 권 더 읽을 예정이고 소설 외 읽은 것 정리해야 하는데 죽어라 안 하고 있다. 날씨만큼 흐물흐물 늘어진 내 정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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