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름 -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마음그림책
아르기로 피피니 지음, 이리스 사마르치 그림, 신유나 옮김 / 옐로스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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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3년을 살아온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두 아이 키우면서 참 많은 추억이 깃든 집이라 이사를 결정하고는 마음 한 켠이 허전했다. 거실의 한 켠은 우리 둘째의 흔들침대가 있던 지정석이었고, 베란다 창 앞의 바닥 책장은 첫째가 창밖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친구를 소리내어 부르는 반가움의 장소였다. 짐을 드러내고 이사를 오던 날, 휑해진 집안을 둘러보는데 며칠 동안의 허전함보다 너무나 삭막하고 싸늘한 것이 여기서 내가 정말 살았나 싶은 허망함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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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색채가 주는 청량함과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여름』 이라는 제목이 주는 화사하고 산뜻함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보자마자 호기심을 작동시킨 그림책이다.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나무에 매달린 그네, 풀숲 뒤고 살곰 고개를 내민 고양이 한마리와 자연이 그대로 보이도록 창을 낸 집 한 채. 자연과 사람의 어우러짐이 너무나 포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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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떠나온 집의 모습도 이랬을까. 가족이 떠나온 집은 외로운 시간과 마주하고,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가고 있음을 온전히 몸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는 집은 그렇게 그렇게 그리움에 묻혀 점점 본래의 모습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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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집을 살펴보기 위해 다가온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 이들은 집 둘레를 살펴보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본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만 같은 집은 조용하고 쓸쓸하기까지 한다. 새로운 가족이 여는 문의 소리는, 그 동안 외로웠다고 집이 투정부리는 듯하고, 창문의 삐걱거림은 왜 이제서야 왔냐고 불평하듯 짜증을 내는 듯하다. 새로운 가족은 각자의 공간으로 서서히 몸을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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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족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고, 각자의 공간에 각자의 목소리와 온기 그리고 향기로 채운다. 그 동안 버려진 듯 먼지만을 일으키고 있었던 공간에는 새로운 싹이 틔우고 고개를 내밀어 흙냄새를 맡느라 분주하고, 잎사귀 하나하나 닦아주고 상처 보듬어주는 아빠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입가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회색도시를 연상케했던 집은, 오색찬란한 빛을 내는 집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자기 빛을 내느라 분주하다. 그렇게 집은 새로운 가족을 맞아 새로운 빛깔의 옷을 갈아입으며 손님 맞이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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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서 있던 사과나무 한 그루. 바람이 치고 가고 햇살이 따갑게 찔러도 굳건히 버틴 보람이 있었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소년과 잎사귀 한 장이 열리고 열매가 맺힐 때마다 환호성을 질러주고 기쁨의 미소를 지어주는 가족이 있기에 올해는 힘차게 영양분을 끌어올리리라 마음먹는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 열매는 소년의 입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가족의 손길에서 따스함이 느껴져, 춥고 외로웠던 지난 날들의 기억은 아스란히 묻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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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단순히 비를 피하고 휴식을 위한 재충전의 장소라고만 할 수 없다. 함께 하는이들과의 시간과 추억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집의 온도는 달라질 수 있다. 접시에 오려진 동그랗고 빨간 사과 한 알, 누군가 베어물어 탐스러움은 사라졌지만, 그 맛을 느낀 누군가의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것이 집이 주는 따스함이고 포근함이며,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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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와 함께 사는 집, 그 곳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꽃은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고, 열매는 이웃을 돌보는 따스한 손길로 무르익어간다.

"우리집으로 놀러 오세요." 소리가 절로 나게 만드는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여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듯해져온다. 그래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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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나는 공자랑 논다
조희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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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중국의 철학사상에 대해 배우면서 참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있다. 공자는 사회의 혼란의 원인을 도덕성의 타락으로, 순자는 성악설, 맹자는 성선설 등 그들이 내놓은 사상의 참뜻을 익히고 밝히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사상을 암기하고 시험에서 원하는 점수를 획득하는 목표로 접근한 기억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장하는 철학사상과 그들의 이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 무엇이 서로 맞섰는지를 안다면 좀 더 와닿는 공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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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초등 5학년 둘째와 함께 만난 『초등학생, 나는 공자랑 논다』 는 제목 그대로 공자가 주장했던 사상에 걸맞는 말씀을 듣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설을 통해 가벼운 맘으로 읽기만 하면 된다. 읽으면서 나에게 깨우침을 주었거나 실천하고자 하는 말씀을 필사까지 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배움의 자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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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조희전 선생님이 출판하신 '맹자'를 읽으면서 2000여년 전에 추구하신 사상이 현실과 맞아떨어짐에 놀라웠는데, '공자' 또한 그 시대에는환영받지 못한 사상이고 철학자였을지라도 현시대에 우리들의 인성과 지혜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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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말씀과 필사할 공간 그리고 해설이 적당한 분량으로 구분되어 있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성인까지 부담없이 읽고 익히고 필사를 통해 다시금 마음에 담아두는 방식으로 철학사상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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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에게 철학사상은 당연히 어렵다.성인인 나에게도 '철학'은 난해하고 깊이가 있어서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학문 중 하나이다. 철학자의 이름부터 낯설기도 하거니와 누군가의 철학 이념을 깨우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삶을 통해 일깨운 사상 중에는 세월을 타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접목시킬 수 있는 이론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초등학생, 나는 공자랑 논다』 에 나온 공자 말씀이고, 그 말씀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 해설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철학이란 학문으로 단정짓지 말고, 지혜를 쌓고 인성을 바르게 키워나가는데 필요한 지침서 정도로 생각한다면 부담없이 다가설 수 있다. 공자의 지침을 읽으면서 그가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한 것이 무엇이며, 그것들이 현시대에도 필요한 항목들인지 생각해 보고, 실천한다면 나를 비롯한 주변을 밝히는 불씨가 되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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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길 찾기 푸른도서관 68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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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생긴 건 10년이 훌쩍 넘었다. 작가와 출판사에 집중하지 않는 나인데, 이금이 작가의 글은 배경과 인물에 상관없이 마음을 녹이는 마법을 부려 궁금증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끝을 예상하거나 짐작할 틈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독자가 독자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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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쯤 읽고 너무 좋아서 우리집 십대 두 소녀에게 권하여 읽게 한 「너도 하늘말나리야」 그 후속작 「소희의 방」에 이어 두번째 후속작으로 출간된 『숨은 길 찾기』를 오늘에서야 만난다.

달밭마을의 미르, 바우, 소희가 그 동안 얼마나 자랐을까, 그들의 가슴엔 어떤 이야기들로 가득할까,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설레온다. 상처투성이였던 그들의 가슴에 깃들었을 희망의 빛을 기대하며 책장을 연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소희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작은집으로 갔다가 엄마를 만나 새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미르는 달밭마을에서 살 때보다 풍요롭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사는 소희를 만나면서 약간의 경계심이 생기고 비교가 되면서 자신이 위축됨을 느낀다.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했던 어린 시절의 친구를 다른 공간, 다른 시간과 마주하게 되면 비교하게 되고, 상대에게서 옛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운 대상이 예전 그대로 내 곁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니.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가 있냐? 진짜 몰라보겠어. 너도 그렇지?"

미르가 바우에게 또 동의를 구했다. 바우는 미르의 말이 친구를 알아보지 못한 변명으로는 너무 궁색하다고 생각했다. 헤어진 지 몇십 년이 됐다거나 성형을 해서 얼굴이 바뀐 것도 아닌데 옷이나 신발이 달라졌다고 몰라보다니. 그건 절친이라고 떠들면서도 실은 미르가 그 동안 소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든지, 소희를그 자체가 아닌 다른 것들로 평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소희는 아픈 할머니와 살 때도, 남에게 물려받은 옷을 압고 있을 때도, 심지어 작은집으로 갈 때에도 의연하고 당당했다. 옷이나 신발 따위에 자기 가치를 맡길 아이가 아니었다.

숨은 길 찾기. 22~23쪽

 

미르는, 소희에게 예고에 간다고 한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연기학원에 등록하고, 학교 연극반의 오디션을 보는 등 한번쯤 생각해 본 꿈을 위해 매달려본다. 연기학원을 다니고 연극 무대에서 박수를 받고 짜릿함을 느껴보지만, 곧 자신의 실력이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하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

우리 아이들은 꿈을 꾼다. 그 꿈이 허무맹랑하고 가능성이 1도 없어보이지만 꿈꾸는 순간의 행복을 맛보기 위해 끊임없이 꾼다. 그러나 부모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현실과 마주서게 되면서 꿈은 깨어지게 되고,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경험에 힘입어 말하는 부모의 말은, 우리 아이들의 꿈을 좌절시키는 말이 된다. 꿈과 현실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앞서는 것이 현명한 부모의 길이 아닐까 싶지만 이 또한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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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새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과 단란한 가정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미르의 눈에 소희는 부러운 대상으로만 보일 뿐, 새아빠가 아닌 아빠와 딸이 되기 위해 애써 노력한 것은 보지 못했다. 소희는 보이고 싶지 않아 잘 감춰두었던 것이다. 잘 해야만 사랑받을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 소희의 속내를 들으며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했을 소희의 마음이 안쓰럽다. 소희는 미르에게 그동안 감춰두었던 속내를 열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바우는 소희의 빈자리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정원을 꾸미면서 조금씩 덜어낸다. 항상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소희에 대한 마음을 고이 간직하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어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간다. 그런 바우의 마음에 봄바람이 일고, 그 마음은 달밭마을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게 된 재이에게 전달되어 새로운 시간과 만나게 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용기를 갖게 한다.

"뭘 먼저 할지 순서는 내가 결정해요. 내 인생이니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인생을 선택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거라구요."

"뭐라고? 네 인생이라고? 그게 너 하나 보고 산 애비한테 할 소리야? 애비 말이 그렇게 하찮으면 이 집에서 나가!"

[중략]

아들 일인데도 남들과 똑같은 생각과 시선으로만 보려는 아버지는 자식을 자살하게 만든 닐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자기 뜻대로 결혼하지 않으면 사형시켜도 된다는 허미아 아버지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16세기에도 20세기에도 부모들은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자식들을 마음대로 하려 들었더.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아버지도 그랬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침대에 몸을 던지듯 놓은 바우는 팔베개를 한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키팅 선생님은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책상 위로 올라가게 했다.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바우는 아버지를 책상 위로 올라서게 하고 싶었다.

숨은 길 찾기. 168~169쪽

 

우리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길을 선택할 권리도 의무도 있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가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기다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인내심과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높이의 눈도 필요하다. 그것이 쉽지 않기에 우린 매번 아이들과 싸워야 하고, 누군가는 뜻을 굽혀야 한다. 자기의 꿈과 기대를 접는 것이 포기하는 것만 같고 지는 것 같아 끝까지 맞서기 위해 전투 태세를 취한다. 그 전투또한 성장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임을 우리는 조금 뒤에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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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길 찾기』는 미르와 소희 그리고 바우와 재이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담고 있다. 또한 미르의 엄마와 바우의 아빠, 소희엄마와 새아빠, 재이엄마와 아빠의 이야기가 함께 전달되면서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들을 드러내고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누구에게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기에 언젠가는 아물고 치유될 상처이지만, 그 순간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아간다. 서로의 상처를 깊이 알지 못하지만 이미 안아주고 있고,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상대로 인해 이미 상처가 아물어가는 이야기가 『숨은 길 찾기』에 담겨있다.

나무둥치를 떠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길들이 대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주저하고 고민하며 머물러 있기만 해서는 어떤 길도 찾을 수 없다고. 인생이란 자기 앞에 펼쳐진 길들 중 자신의 길을 찾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그게 우리 삶에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숨은 길 찾기. 225쪽

 

상처를 안고 만난 이들이 이금이 작가의 손에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달밭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알아주면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 『숨은 길 찾기』는 잔잔하게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갈등의 골이 깊지 않아 편안했고,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따듯했고, 서로를 안아줌에 주저하지 않아 부러웠다. 그렇게 『숨은 길 찾기』는 나에게 책이 주는 즐거움과 책을 읽을 수 있는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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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애나 비룡소 클래식 45
엘리너 포터 지음, 스톡턴 멀포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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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시간을 만들고,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을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고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불편한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날마다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나오는 중에도 어릴 적 읽었던 명작을 다시 해석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더불어 새로운 의미로 독자들을 찾아오고 있다. 어릴 적의 감성이 일깨워지면서 삭막한 현실에서의 고단함이 활자가 주는 상상력과 따듯함이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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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생각으로 주위를 밝히는 에너지의 아이콘이라 하면, "빨간머리 앤"을 제일 먼저 연상하게 된다. "앤" "폴리애나" 두 소녀는 참 많이 닮아 있다. 고아로 부모를 잃고 새로운 환경을 만났다는 것, 주위의 변화에 민감하고, 수다스럽고 모든 이들과 사교적이라는 것이 그 둘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앤"이 고아로 여러 가정을 돌며 여러 불행한 모습을 보며 자랐다면, "폴리애나"는 목사인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사랑받으며 자랐다는 것이 다르다. 또한 "앤"은 입양가정에서 경험한 일들로 주변에 도움을 주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반면, "폴리애나"는 아빠가 가르쳐준 긍정적 사고를 토대로 주변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삼가 아룁니다.

[중략]

제가 알기로 목사님은 돌아가신 언니분의 남편이오나, 양가의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귀하께서 언니분을 보아서라도 아이를 거두어 친척들이 동부에서 양육하실 의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중략]

해링턴 양은 지금 마흔 살이고, 하늘아래 혼자였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들은 모두 죽었다. 여러 해동안 해링턴 양은 아버지가 남긴 이 저택과 막대한 재산의 유일한 주인이었다. 그런 고독한 생활을 대놓고 측은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고, 같이 살 친구나 동반자를 구하라고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해링턴 양은 사람들의 연민도 조언도 모두 탐탁지 않았다. 자신은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혼자가 좋았다.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 편했다. 그런데 이제는…….

해링턴 양은 인상을 쓰며 일어나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물론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자신의 의무를 잘 알 뿐만 아니라 그 의무를 다할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폴리애나'라니! 이 무슨 우스꽝스러운 이름이란 말인가!

폴리애나. 15~16쪽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한 언니를 떠나보내고, 가족을 모두 떠나보낸 후, 대저택을 지키며 빈 자리를 혼자 살아가는 해링턴 양. 웃음도 슬픔도 드러내지 않고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해링턴 양에게 갑자기 온 편지 한 통은 조용히 살아가던 그녀의 삶에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쳐온다.


가족 중 가장 사랑했던 언니의 딸, "폴리애나"에게 이모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조차 메마른 해링턴 양은 조카와 보이지 않는 선을 그으며, 이모로서 조카에 대한 책임만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폴리애나의 존재는 단순한 조카의 자리를 넘어와 해링턴 양의 계획은 조금씩 틀어지고 만다.

"재미는 뭔 재미! 저 귀염둥이한테는 웃을 일이 아닐 걸. 이제부터 저 애는 마님이랑 같이 사는 거니까. 아마 저 애한테는 어딘가 달아나 숨을 곳이 필요할 거야. 그래, 티머시, 내가 그 숨을 곳이 되어 줄 거야. 내가, 바로 내가!

낸시는 그렇게 맹세하고는 돌아서서 폴리애나를 데리고 널찍한 계단을 올라갔다.

폴리애나. 36~37쪽


해링턴 양의 대저택에서 살림을 도와주는 낸시는 해림턴 양과 폴리애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정없고 냉철한 이모에게서 외로울 폴리애나를 위해 다정한 언니가 되어주는가 하면, 이모의 마음을 의심하는 폴리애나에게는 이모의 대변인이 되어 마음을 녹여주는 막내이모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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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애나는 부모를 잃고 혼자 남은 자신을 흔쾌히 받아준 이모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모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모습에 크게 상처받지 않으며, 아쉽거나 불편한 상황들을 "기쁨놀이"로 생각을 전환시키며 기쁘고 행복한 순간으로 맞이한다.


병상에 누워 평생을 살아야 하는 부인에게,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이에게,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나와 떠돌이생활을 자처한 친구에게, 신자들의 싸움으로 지쳐가는 목사님에게, 폴리애나는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스스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지금의 생활이 불행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기쁨놀이"는 앞으로 두 다리로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진단 앞에 낙담하고 있는 폴리애나에게 기쁨의 선물이 되어 돌아온다. 그녀의 아픔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날마다 폴리애나를 찾아와 폴리아나 덕분에 찾게 된 기쁨이 무엇인지, 그 기쁨이 폴리애나가 좌절하지 않을 희망으로 되살아나길 간절히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마을 사람을이 찾은 기쁨은 그들에게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게 하였고,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시간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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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닥친 폴리애나의 사고는, 폴리애나 자신 뿐만 아니라 해링턴 양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또 한번의 변화를 일으킨다. 기쁨 놀이에 자신있던 폴리애나는 자신에게 일어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는데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해링턴 양에게 조카 폴리애나는 의무감이 아닌 사랑이었고 함께 하는 기쁨임을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폴리애나의 슬픔은 고마움과 절망으로 상실감을 느끼게 하였다. 작은 소녀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의 전환은 주변 모든 이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어, 하지만 이모, 이모, 그냥…… 그냥 살아 있을 시간은 하나도 안 남겨 주셨잖아요."

"살아 있을 시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언제는 죽어 있기라도 한단 말이니?"

"아, 당연히 숨이야 늘 쉬겠죠. 그런 걸 배우는 시간에도요. 하지만 살아 있지는 않을 거에요. 잠잘 때도 숨은 끊임없이 쉬지만, 그건 살아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말하는 살아 있는 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예요. 밖에서 놀고, 책을 읽고 물론 혼자서 일도 하고, 또 언덕을 오르고, 정원에서 톰 할아버지랑 얘기하고, 낸시 언니랑도 얘기하고, 어제 지나온 무지 멋진 거리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어떤 집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그런 걸 모두 알아보는 거라고요. 저는 그런 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모, 그냥 숨만 쉬는 건 사는 게 아니라고요."

폴리애나. 73~74쪽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할 줄 아는 소녀, 폴리애나. 그녀가 마을을 변화시킨 "기쁨놀이"는 단순하고도 쉬운 놀이의 하나이지만, 그것이 일으키는 변화는 매우 큰 파도가 되어 삶을 변화시킨다.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을 원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할 수 있어서 기쁘다" 또는 "내가 있어서 ~에게 기회가 되었으니 기쁘다"로 스스로를 탓하는 절망의 마음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겨나길 소원해본다. 폴리애나의 기쁨놀이에 우리 모두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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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는 여자
민카 켄트 지음, 나현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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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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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틈으로 또 다른 세상을 갈구하는 여자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드러난 표지는,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고, 여자가 바라보는 세상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유혹이 나를 반긴다. 여자가 있는 세상과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여자가 간절하게 바라보는, 보고 싶어하는 그 세상엔 무엇이 있을까? 물음표를 품고 읽기 시작한 『훔쳐보는 여자』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은 멈추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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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텀은, 10대에 낳은 딸에게 자신의 곁에 있는 것보다 나은 환경을 주고 싶어 입양을 보낸다. 10년 전에. 그 후 오텀은 7년이란 시간동안 노력과 우연이라는 기적으로 입양 보낸 딸 그레이스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고, 그레이스를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것은 그레이스를 사랑하는 진짜 엄마의 사랑이고, 잘 성장하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오텀의 진짜의 삶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레이스를 입양한 그레이엄과 대프니, 두 사람은 따듯한 가정을 일군 부부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이고 싶기에 대프니는최선을 다한다. 항상 정갈하고 사랑받은 여자가 되기 위해 준비된 여자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의 모습을 SNS에 올리는 것으로 인정받는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을 누리며 살고자 한다. 그러나 대프니의 꿈같은 삶은 어느 순간 금이 가기에 이른다. 그레이엄이 대프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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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텀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그레이스가 있는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벤'의 주위를 맴돌고 결국 한집에 살게 이른다. 대프니의 SNS 계정을 살피면서 그녀의 모든 것을 익히고, 그들의 공간을 살피면서 그레이스와 함께 할 행복한 하루를 꿈꾸며 살아간다. 오텀은 그레이엄, 대프니 가정의 돌보미로 되고, 그레이스와 가까이에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행복한 시간과 더불어 대프니의 비밀스런 대마초 흡입과 그레이엄의 또 다른 사랑과 마주하게 된다.


             

그레이스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는 이 아이를 포기했다.

아름답고 순수한 이 작은 영혼은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내 딸은 아무 잘못이 없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본다. 그레이스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곧 다가올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더없이 순수하고 행복했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이.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그레이스의 얼굴을 감싼다. 대프니가 진작에 그레이스에게 해줬어야 할 행동이다.

바쁜 아침이지만 단 몇 초만이라도 울고 있는딸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걱정을 덜어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대프니는 정말 이기적인 여자일까?

제발 그녀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길 신께 기도한다. 그 누구도 내 딸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기를. 특히 내 딸의 가짜 엄마가.

훔쳐보는 여자. 290~291쪽

 

              

자신의 딸을 만나기 위해 벤의 곁을 지키는 오텀, 타인의 눈에 완벽한 가정을 보이기 위해 자신을 놓아주지 못하는 대프니,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거짓을 일삼는 대프니의 남편 그레이엄, 그레이엄의 사랑을 받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는 벤의 여동생 마르니. 오텀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고자 간절히 원하는 벤. 이들은 제일 가까운 이의 눈을 가리기 위한 가면을하나씩 쓰고 있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긴장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가면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필요한 방어와 적응 기제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훔쳐보는 여자』 의 인물들의 모습은 안쓰럽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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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해 선택한 대마초는 대프니의 온전한 모습을 잃게 하고,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던 완전한 가정도 잃게 만든다. 오텀은 자신의 딸 그레이스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대프니와 같은, 대프니처럼 완전한 엄마가 되고 싶어했으나, 오텀은 온전한 자신을 버린 또 다른 인격체라는 것이 밝혀진다. 부인의 가면 뒤에서 자상한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쇼가 숨막혔던 그레이엄은 또 다른 사랑을 얻으면서 가정은 서서히 금이 가고, 부인을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사랑의 희생양이 되도록 만든다. 

            

얽히고 얽힌 그들의 이야기는, 긴장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누가 언제 폭탄을 던질까 조마조마하던 나의 마음에 피~익 하며 바람이 빠지는 듯한 나른함이 깃들어온다. 아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되고, 또다른 이의 침입이 밝혀지면서 바짝 하고 있던 긴장이 확 풀려서가 아닐까 싶다. 생각지 못했던 오텀의 과거가 심리학자로부터 풀려지고, 그녀의 닫혀진 과거의 문이 열리면서 그녀 또한 가해자이며 희생양이었던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은 내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잊기 위한 방법으로 오텀의 인격 뒤에 숨어 있었다고 말한다. 일종의 방어기제를 사용한 것이다. 휘트모어 박사는 내가 계속 트라우마와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트라우마와 맞서야'할지,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다. 어찌 됐든 사라가 되는 건 진짜 싫다. 사라는 불안하고 지루하고 걱정도 많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으며, 그녀의 마음은 하루 종일 정처 없이 떠다닌다. 그녀는자기가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녀가 아는 거라곤 자기 자신, 즉 사라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다.

훔쳐보는 여자. 418쪽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 한 여자의 가면으로 시작된 이야기 『훔쳐보는 여자』 는, 아슬아슬 줄타기하듯 불안감에 휩싸인 오텀의 시간과 마주하게 한다. 암울했던 과거를 잊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한 여인과 완벽한 삶을 위해 자신을 잃어가는 여인, 온전한 자신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삶을 기웃거린 이들의 비극이 『훔쳐보는 여자』 를 통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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