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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름 -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ㅣ 마음그림책
아르기로 피피니 지음, 이리스 사마르치 그림, 신유나 옮김 / 옐로스톤 / 2019년 7월
평점 :
얼마 전, 13년을 살아온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두 아이 키우면서 참 많은 추억이 깃든 집이라 이사를 결정하고는 마음 한 켠이 허전했다. 거실의 한 켠은 우리 둘째의 흔들침대가 있던 지정석이었고, 베란다 창 앞의 바닥 책장은 첫째가 창밖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친구를 소리내어 부르는 반가움의 장소였다. 짐을 드러내고 이사를 오던 날, 휑해진 집안을 둘러보는데 며칠 동안의 허전함보다 너무나 삭막하고 싸늘한 것이 여기서 내가 정말 살았나 싶은 허망함마저 들었다.

표지의 색채가 주는 청량함과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여름』 이라는 제목이 주는 화사하고 산뜻함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보자마자 호기심을 작동시킨 그림책이다.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나무에 매달린 그네, 풀숲 뒤고 살곰 고개를 내민 고양이 한마리와 자연이 그대로 보이도록 창을 낸 집 한 채. 자연과 사람의 어우러짐이 너무나 포근하게 느껴진다.

우리 가족이 떠나온 집의 모습도 이랬을까. 가족이 떠나온 집은 외로운 시간과 마주하고,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가고 있음을 온전히 몸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는 집은 그렇게 그렇게 그리움에 묻혀 점점 본래의 모습을 잃어간다.

왔다. 집을 살펴보기 위해 다가온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 이들은 집 둘레를 살펴보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본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만 같은 집은 조용하고 쓸쓸하기까지 한다. 새로운 가족이 여는 문의 소리는, 그 동안 외로웠다고 집이 투정부리는 듯하고, 창문의 삐걱거림은 왜 이제서야 왔냐고 불평하듯 짜증을 내는 듯하다. 새로운 가족은 각자의 공간으로 서서히 몸을 실어본다.

새로운 가족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고, 각자의 공간에 각자의 목소리와 온기 그리고 향기로 채운다. 그 동안 버려진 듯 먼지만을 일으키고 있었던 공간에는 새로운 싹이 틔우고 고개를 내밀어 흙냄새를 맡느라 분주하고, 잎사귀 하나하나 닦아주고 상처 보듬어주는 아빠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입가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회색도시를 연상케했던 집은, 오색찬란한 빛을 내는 집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자기 빛을 내느라 분주하다. 그렇게 집은 새로운 가족을 맞아 새로운 빛깔의 옷을 갈아입으며 손님 맞이에 여념이 없다.

외롭게 서 있던 사과나무 한 그루. 바람이 치고 가고 햇살이 따갑게 찔러도 굳건히 버틴 보람이 있었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소년과 잎사귀 한 장이 열리고 열매가 맺힐 때마다 환호성을 질러주고 기쁨의 미소를 지어주는 가족이 있기에 올해는 힘차게 영양분을 끌어올리리라 마음먹는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 열매는 소년의 입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가족의 손길에서 따스함이 느껴져, 춥고 외로웠던 지난 날들의 기억은 아스란히 묻혀져간다.

집은, 단순히 비를 피하고 휴식을 위한 재충전의 장소라고만 할 수 없다. 함께 하는이들과의 시간과 추억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집의 온도는 달라질 수 있다. 접시에 오려진 동그랗고 빨간 사과 한 알, 누군가 베어물어 탐스러움은 사라졌지만, 그 맛을 느낀 누군가의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것이 집이 주는 따스함이고 포근함이며, 편안함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사는 집, 그 곳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꽃은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고, 열매는 이웃을 돌보는 따스한 손길로 무르익어간다.
"우리집으로 놀러 오세요." 소리가 절로 나게 만드는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여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듯해져온다. 그래서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