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는 여자
민카 켄트 지음, 나현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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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틈으로 또 다른 세상을 갈구하는 여자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드러난 표지는,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고, 여자가 바라보는 세상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유혹이 나를 반긴다. 여자가 있는 세상과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여자가 간절하게 바라보는, 보고 싶어하는 그 세상엔 무엇이 있을까? 물음표를 품고 읽기 시작한 『훔쳐보는 여자』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은 멈추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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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텀은, 10대에 낳은 딸에게 자신의 곁에 있는 것보다 나은 환경을 주고 싶어 입양을 보낸다. 10년 전에. 그 후 오텀은 7년이란 시간동안 노력과 우연이라는 기적으로 입양 보낸 딸 그레이스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고, 그레이스를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것은 그레이스를 사랑하는 진짜 엄마의 사랑이고, 잘 성장하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오텀의 진짜의 삶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레이스를 입양한 그레이엄과 대프니, 두 사람은 따듯한 가정을 일군 부부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이고 싶기에 대프니는최선을 다한다. 항상 정갈하고 사랑받은 여자가 되기 위해 준비된 여자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의 모습을 SNS에 올리는 것으로 인정받는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을 누리며 살고자 한다. 그러나 대프니의 꿈같은 삶은 어느 순간 금이 가기에 이른다. 그레이엄이 대프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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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텀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그레이스가 있는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벤'의 주위를 맴돌고 결국 한집에 살게 이른다. 대프니의 SNS 계정을 살피면서 그녀의 모든 것을 익히고, 그들의 공간을 살피면서 그레이스와 함께 할 행복한 하루를 꿈꾸며 살아간다. 오텀은 그레이엄, 대프니 가정의 돌보미로 되고, 그레이스와 가까이에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행복한 시간과 더불어 대프니의 비밀스런 대마초 흡입과 그레이엄의 또 다른 사랑과 마주하게 된다.


             

그레이스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는 이 아이를 포기했다.

아름답고 순수한 이 작은 영혼은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내 딸은 아무 잘못이 없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본다. 그레이스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곧 다가올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더없이 순수하고 행복했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이.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그레이스의 얼굴을 감싼다. 대프니가 진작에 그레이스에게 해줬어야 할 행동이다.

바쁜 아침이지만 단 몇 초만이라도 울고 있는딸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걱정을 덜어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대프니는 정말 이기적인 여자일까?

제발 그녀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길 신께 기도한다. 그 누구도 내 딸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기를. 특히 내 딸의 가짜 엄마가.

훔쳐보는 여자. 290~291쪽

 

              

자신의 딸을 만나기 위해 벤의 곁을 지키는 오텀, 타인의 눈에 완벽한 가정을 보이기 위해 자신을 놓아주지 못하는 대프니,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거짓을 일삼는 대프니의 남편 그레이엄, 그레이엄의 사랑을 받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는 벤의 여동생 마르니. 오텀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고자 간절히 원하는 벤. 이들은 제일 가까운 이의 눈을 가리기 위한 가면을하나씩 쓰고 있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긴장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가면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필요한 방어와 적응 기제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훔쳐보는 여자』 의 인물들의 모습은 안쓰럽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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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해 선택한 대마초는 대프니의 온전한 모습을 잃게 하고,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던 완전한 가정도 잃게 만든다. 오텀은 자신의 딸 그레이스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대프니와 같은, 대프니처럼 완전한 엄마가 되고 싶어했으나, 오텀은 온전한 자신을 버린 또 다른 인격체라는 것이 밝혀진다. 부인의 가면 뒤에서 자상한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쇼가 숨막혔던 그레이엄은 또 다른 사랑을 얻으면서 가정은 서서히 금이 가고, 부인을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사랑의 희생양이 되도록 만든다. 

            

얽히고 얽힌 그들의 이야기는, 긴장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누가 언제 폭탄을 던질까 조마조마하던 나의 마음에 피~익 하며 바람이 빠지는 듯한 나른함이 깃들어온다. 아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되고, 또다른 이의 침입이 밝혀지면서 바짝 하고 있던 긴장이 확 풀려서가 아닐까 싶다. 생각지 못했던 오텀의 과거가 심리학자로부터 풀려지고, 그녀의 닫혀진 과거의 문이 열리면서 그녀 또한 가해자이며 희생양이었던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은 내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잊기 위한 방법으로 오텀의 인격 뒤에 숨어 있었다고 말한다. 일종의 방어기제를 사용한 것이다. 휘트모어 박사는 내가 계속 트라우마와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트라우마와 맞서야'할지,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다. 어찌 됐든 사라가 되는 건 진짜 싫다. 사라는 불안하고 지루하고 걱정도 많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으며, 그녀의 마음은 하루 종일 정처 없이 떠다닌다. 그녀는자기가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녀가 아는 거라곤 자기 자신, 즉 사라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다.

훔쳐보는 여자. 418쪽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 한 여자의 가면으로 시작된 이야기 『훔쳐보는 여자』 는, 아슬아슬 줄타기하듯 불안감에 휩싸인 오텀의 시간과 마주하게 한다. 암울했던 과거를 잊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한 여인과 완벽한 삶을 위해 자신을 잃어가는 여인, 온전한 자신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삶을 기웃거린 이들의 비극이 『훔쳐보는 여자』 를 통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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