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짚잠자리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권정생 지음, 최석운 그림, 엄혜숙 해설 / 길벗어린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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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공부할 때 과제물 주제가 '내가 좋아하는 인물의 삶'에 대해 쓰기였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내가 선택한 인물은 바로 "권정생" 선생님이다. 그 동안 선생님이 쓰신 '강아지똥', '밥데기 죽데기', '몽실언니', '엄마까투리', '오소리네 집 꽃밭', '길 아저씨 손 아저씨', '금강산 호랑이'등을 읽고 우리 집 소녀들에게 읽어주고 함께 읽어왔기에 선생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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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또다른 그림책 『밀짚잠자리』

이름도 생소한 밀짚잠자리, 꼬리 색을 보고 이름 붙여진 밀짚잠자리.

밀짚잠자리는 알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세상 나들이를 나온다. 신비롭고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는 세상으로의 첫 나들이가 밀짚잠자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두근거리는 맘으로 함께 비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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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개인 파란 하늘과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을 만난 밀짚잠자리는 "아이구나! 기분 좋다." 상쾌함을 느끼며 맘껏 날개짓을 시작한다. 밀짚잠자리는 아기 무종다리(종달새)도 만나고 아기 방아깨비도 만나면서 '하나님 나라'에 갈 거라고 한다. 방금 알에서 깨어난 밀짚잠자리에게 이미 갈 곳이 정해져있다는 것이 마치 우리 모두에게도 우리의 자리가 있음을 말해주는 듯 하다. 생명을 달고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 우리는 쓰임이 있는 곳에 닿기 위해 열심히 비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워내기 위해 온몸을 녹여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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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잠자리는, 동생의 뒤를 따라 걸어가주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고, 바쁘게 갈 길을 재촉하는 경운기의 시끄러운 소리와도 마주치며, 열심히 일하는 개미에게 일해야만 먹을 수 있다는 지혜도 배운다.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은 하루살이에게 '도깨비'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찡하게 아파오는 경험과도 마주한다. 다양한 만남과 소리 그리고 가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경험하는 밀짚잠자리는 하나님의 나라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하루가 된다. 우리의 삶도 밀짚잠자리의 하루와 같지 않을까.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을 위한 탐색으로 시작해서 사회로 나오는 그 순간 새로운 환경과 부딪히게 된다. 다양한 사람과 환경, 상황들을 만나면서 성장하고 관계를 형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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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첫 나들이를 나온 밀짚잠자리에게도 이제 휴식 시간이 다가온다. 하늘엔 노란 빛의 달이 떠오르고, 시냇물에 비친 달님을 보며 밀짚잠자리는 고된 하루를 털어놓는다. 하루살이에게 '도깨비'로 불린 마음의 상처도 위로받고, 바쁘게 달려간 경운기가 무서웠던 기억도 털어놓으며, 오늘 밤 달님의 온기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쉬어간다.

"이 세상은 아주 예쁜 것도 있고, 아주 미운 것도 있고,

그리고 아주 무서운 것도 있는 거야."

"그랬어요. 예쁜 것하고 미운 것하고 재미있는 것하고

무서운 것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기쁘고 즐겁고, 또 무섭고 슬프기도 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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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잠자리』 의 세상 나들이 이야기가 끝나면, 그 뒤로 작품해설이 이어진다. 아동문학가 엄혜숙님이 풀어놓는 『밀짚잠자리』 의 이야기와 그림작가 최석운님의 후기가 있어 독자와 편안한 소통의 시간을 마련하였다. 또한 권정생 선생님의 연보가 실려 있어 선생님의 작품 활동과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연보로 그의 삶을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검소하고 자신에게 극히 인색했던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느껴져 마음이 한 켠이 찡해옴이 느껴진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에는 애정이 담겨져 있다. 티내지 않고, 예쁜 말로 꾸미지도 않았는데 글에서 사랑이 느껴지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 그냥 느껴진다. 그것이 권정생 선생님의 글이 주는 힘이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나는 향이다.

『밀짚잠자리』 는 1983년 월간 <기독교교육> 7~8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2019년 세상을 향한 새로운 날개짓을 시작한다. 가을볕이 좋은 날 우리 곁에 온 『밀짚잠자리』 는 파란 하늘만큼이나 푸르게, 논에서 익어가는 황금들판처럼 풍요롭게 우리의 마음에 고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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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1
존 D. 앤더슨 지음, 윤여림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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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시절에서 참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선생님 한 분과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내 기억을 바탕으로 구분하는 기분은 아주 간단하다. 나의 자존감을 세워주었느냐, 나에 대해 알기도 전에 나를 무시했느냐다. 사회에 나와서도 연락을 주고 받았던 6학년 담임 선생님은 내가 몰랐던 나를 깨워주시고, 나의 작은 행동에도 동기 부여를 해 주신 분이다. 여전히 나의 기억속에 선생님은 항상 감사한 분이다.

그리 넉넉한 살림도 아니었고, 사남매의 셋째인 나는 그리 큰 사랑을 받기엔 자주 아픈 오빠와 동생이 있었기에 그리 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서운함도 없었다. 그런 내가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준 선생님이기에 나의 가슴엔 여전히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있다.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조금 되었다.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을 읽으며ㅍ이젠 정년퇴직을 했을 연세이니, 또 다시 수소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유형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좋은 선생님이다. 이분들은 학교라는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유형이다. 우리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미술 시간이 아닌데도 수업에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년이 바뀌어도 찾아가서 인사하고 싶고, 실망시키지 않고 싶은 선생님이 바로 좋은 선생님이다.

빅스비 선생님처럼 말이다.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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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처럼 수학을 잘 하는 것도, 암기를 잘 하는 것도, 운동을 잘 하는 것도 아닌 잘하는 것 하나없는 평범하고도 너무 평범한 아이이다. 그런 나에게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주는 선생님이 바로 빅스비 선생님이다. 아빠의 불편한 몸으로 마음이 불편한 나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것도, 아빠가 학교로 상담을 오거나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없다. 항상 혼자이다. 익숙해지지는 않지만, 그게 더 마음 편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지. 그럼 관심을 받기 위해 눈에 띄는 행동을 해야 할 것 같거나, 다른 사람인 척해야 할 것 같기도 할 거야. 하지만 누군가는 알아보고 있단다, 토퍼. 누군가는 다 보고 있어. 누군가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절대 네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마."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233쪽

 

나는 선생님과 단둘이 만나는 비밀스런 시간이 이어지면서 선생님의 존재가 가슴 깊이 새겨지고, 선생님이 학기를 마치기 전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그 어떤 질문도 떠오르지 않는다. 선생님은 '췌관선암종'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빅스비 선생님이 읽어주는 '호빗 이야기'와 선생님과의 이별파티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선생님은 영상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가는 선생님을 학교측에서 염려와 배려 차원에서 조금 일찍 이별을 맞게 된 것이 아닐까.

토퍼와 스티븐, 브랜드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선생님과의 마지막 이별을 준비한다. 선생님이 정한 것이 아닌 우리의 마음이 닿는 그 날로 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선생님이 계신 병원을 찾기 위해 은밀하게 준비하여 등교시간에 맞추어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선생님이 마지막 날 하고 싶다던 것들을 하나씩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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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첫 도전은 완벽할 수 없다. 여기저기서 생겨오는 변수도 받아들여야 하고, 변수가 끝나면 또 다른 변수가 그들 앞에 놓인다. 그것이 인생이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일 뿐이다. 서로 다른 성격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그들이 오직 '좋은 선생님'과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내기 위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왜? 하는 안쓰러움이 생기기도 하고, 그들의 노력에 눈가가 뜨거워지기도 한다. 그들이 거쳐가는 여정들이 고된 만큼 선생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뜨겁기만 하다.

내가 생각해낸 최선의 답은 이거다. 인간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언제나 그럴듯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세상일이란 게 모두 공식에 들어맞는 것도 아니고 공통분모로 없애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일에 공식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은 이유 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또 논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빅스비 선생님은 모든 일에는 사실 다 이유가 있지만, 다만 그 당시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208쪽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있닥. 그리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 마음은 뜨겁다. 아쉬워서 행복해서 후회스러워서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간절함 만큼은 같을 것이다.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을 통해 빅스비 선생님이 관계를 맺고 타인의 존재를 수용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좋은'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더 깊게 느껴져왔다. '좋은 엄마', '좋은 선생님', '좋은 딸' 등 '좋은'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수용하고, 귀하게 여겨주며, 가르침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내세울 줄 아는 용기를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실을 모두 말하자면

마지막 날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문득 돌아볼 수 있는 날들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날들은 마치 카네이션 꽃 같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한다.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293쪽

 

빅스비 선생님과 세 친구가 함께 하는 '마지막'은 따듯하다. 서로가 원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마지막에 대한 어렴풋이 가진 소망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며, 그 시간이 결코 완벽하지 않아도, 그것을 향한 진심이 담겨 있기에 행복하다 말할 수 있다. 마지막을 함께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보다는 미소가 지어지고, 서로의 마음 속에 서로가 존재하고 있음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거란 믿음이 자란다.

마지막은 결코 슬픈 것이 아니다. 가슴 속에 서서히 피었다 오래도록 함께 하는 카네이션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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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새점 탐정 - 제13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상상도서관 (푸른책들) 4
김재성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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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과 새점 그리고 탐정이라는 세 개의 낱말이 따로인 듯한,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한 번 보고는 입에서 맴돌고, 표지에 그려진 소녀와 두 사내의 모습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증이 인다.

"너는 살인자다! 사람을 죽였어!"라는 말이 귀를 때려 너무나 괴로운, 그 말이 왜 자신을 따라다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소녀가 길을 헤맨다. 걷다보면 자신에 대한 어떠한기억이 살아날 것이라 믿으며 거리마다 상점마다 기웃거려 보지만, 소녀는 어떠한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일제침략기인 경성, 1919년 삼일운동 직후의 경성은 일본 순사들이 자유롭게 활개를 치며 다니며 독립군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을 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경성 새점 탐정』 . 작가 김재성은 작가의 말에서 글을 쓴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강영재는 일제의 식민 지배 아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강우규 의사의 손녀딸 이름입니다. 강우규 의사는 평화로운 삼일운동을 펼친 우리 민족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본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독립투사였지요. 예순넷의 나이에 신임 총독에게 수류탄을 던진 강우규 할아버지의 동상은 오늘날 서울역 앞에 서 있습니다.

저는 이 역사적 진실에서 한발 나아가 할아버지에게 수류탄을 전달한 손녀 강영재를 만들어 냈습니다. 영재를 통해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당시 어린이들의 용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소녀는, 거리를 헤매다 사람들이 모인 한 곳에 발길이 멈춘다. 장가갈 때를 알려달라는 청년과 집안의 가보가 없어졌는데 범인은 잡을 수 있을지 묻은 가장 그리고 기무라 순사까지, 바로 새점을 보는 할머니에게 다녀간다. 기무라 순사의 새점은 봐 줄 수 없다는 할머니는 그만 기무라 순사의 발길질에 쓰러지고, 소녀는 할머니를부축하고 할머니가 사는 판잣집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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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새 그리고 새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구관조와 "지식이 열쇠다"를 외치는 새의 말을 들으며 할머니가 정확하게 맞히는 새점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착한 마음은 꼭 오래 보고 지내야 아는 것이 아니다. 아픈 상대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눈빛, 당당하면서도 타인이 다가올 공간을 남겨 두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착한 마음은 나타난다."(37쪽)는 말씀과 함께 소녀에게 새점을 치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새점은 미신이 아니라, 새점을보고자 하는 사람의 표정, 말투, 눈빛, 옷차림 등을 관찰한 뒤에 궁금한 것과 추리를 하여 완성하는 관찰력과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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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할머니에게 배운 새점으로 범죄자를 찾고, 납치범이 숨어있는 곳을 알려주는 등 열심히 활약했지만, 경시청에 협력하는 점쟁이, 독립군 사냥꾼으로 불리는 결과를 얻고 만다. 뒤늦게 자신의 새점이 독립군을 위기에 처하게 했으며, 할머니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할머니가 가난하게 살게 된 이유와 자신이 누구인지 캐묻지 않고 거둔 이유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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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의 손녀가 기억을 잃은 소녀로 등장하여 소녀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경성 새점 탐정』 은 새점이라는 색다른 소재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독립군의 활약을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표현한 책이다. 혼란스러웠던 경성의 분위기와 같은 민족을 앞잡이로 활용하고자 했던 기무라 순사의 교활함, 독립군들의 조심스럽고 위험천만한 활동 모습들이 소녀의 새점 그리고 소녀의 관찰력으로 밝혀지는 이야기였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멈출 수 없는 흡입력 있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스토리가 푸른 문학상 수상작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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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은 아이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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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집 두 소녀와 뮤지컬을 보고 꽤나 긴 눈물을 흘렸더랬다. 조선이란 나라에서의 백성은 왜 그리도 가난하고 못 배우고 차별받고 숨죽여 살았는지, 그들의 삶과 회한의 숨소리를 들으고 있으니 가슴이 메어졌다. 연기하는 배우도 감정이 휘몰아쳐왔는지,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채 닦아내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보지 않았어도 통하는, 우리 민족의 한이라는 정신적 교감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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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다문 입술과 한 곳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똘망한 눈과 서책을 꼭 껴안고 있는 소녀, 강보에 싸인 작은 아기를 안고 뛰어가는 소녀, 아기를 업고 서책에 빠진 소녀는 『담을 넘은 아이』 의 아이, 바로 푸실이다.

     

푸실이는 가난한 집의 첫째로 때때마다 산나물을 캐야 하고, 병치레로 고생한 둘째아들 귀손이를 귀하게 여겨야 하며, 늦게 태어난 막내 여동생을 보살펴야 한다. 6살이나 된 귀손이는 병치레로 고생했다는 이유로 태어난지 고작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의 젖까지 먹이며 떠받들어 키운다. 집안에 곡식이 다 떨어져 물이 더 많은 암죽을 끓여도 아빠와 귀순이의 몫은 있어도 엄마와 푸실이는 굶기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푸실이는 오빠에게 젖을 빼앗기고 빈 젖을 물고 배고파 우는 아기, 언제 죽을지 몰라 이름조차 없는 아기, 엄마가 양반집 젖어미로 가면서 암죽으로 겨우겨우 생명줄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아기가 너무 안쓰럽다. 가난한 집에 여자로 태어난 아기, 오빠에게 젖을 빼앗기고도 울기 밖에는 할 수 없는 아기를 푸실이는 포기할 수 없다. 이미 엄마 아빠는 포기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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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실이는 나물을 캐러가는 길에 발견된 서책을 가슴에 끌어안는다. 아직 글자를 깨우치지 못했지만 서책을 펼쳐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된다. 양반도 아닌 가난한 푸실이에게 서책은 사치고, 당치도 않는 일인 줄 알지만 푸실이는 그림을 그리듯 흙바닥에 글씨를 쓰며 언젠가는 깨우치게 될 그 날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푸실이의 품에 안긴 서책이 연결 고리가 되어 아가씨와 선비를 만나게 되고, 동네에서 언문을 깨우친 동무를 찾아가 글자를 깨우치게 된다. 푸실이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아기를 위해 젖어미로 양반집에 간 엄마를 찾으러 갔다가 그만 대감에게 들키고 만다. 대감은 손자의 젖을 천한 아기에게 나눠줄 수 없어 엄마에게 보약이라 속이고 약을 먹였다 한다. 건강한 손자는 살이 오르고, 굶기를 밥먹듯 한 아기는 병이 나서 살지 못하게 될 약이라고.


"대감마님! 대감마님은 군자가 아니십니다."

"뭐라?"

푸실이 말에 대감마님은 물론 마당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놀랐다.

"제가 읽은 책에선 단지 덕과 학식이 높다 하여 군자라 부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불쌍하고 약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이가 참 군자라 하였습니다. 허니 대감마님은 군자가 아닙니다."

[중략]

"아버님, 이 아이에게 인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선비를 본 대감은 못마땅한지 얼굴을 돌렸다.

"되었다. 이미 충분히 인정을 베풀었다. 네가 어찌하여 이 일에 나서는 것이냐? 어찌하여 저 아이의 역성을 드는 게야?"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생명을 살리고자 애쓰는 저 아이가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어미의 젖이 없어 굶주린 아이옵니다. 한준이가 불쌍하듯 이 아이 또한 그러합니다."

담은 넘은 아이. 139~140쪽.

 

아들을 살리기 위해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이라곤 젖어미밖에는 없는 엄마의 선택 그리고 엄마의 선택으로 어미 젖을 먹을수 없는 아기.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어린 아이 하나 죽는 것은 예사일이 되게 만든 가난

여자로 태어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지는 꽃이 된 여인 그리고 여인이 남기고 간 '여군자전'. 품은 뜻을 꽁꽁 숨기고 살아야했던 엄마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고 원망하는 아가씨와 여인이기에 숨겨야 했던 재능과 꿈 그리고 천한 신분으로 눈치밥을 먹고 살지만 당당하고픈 푸실이.

그 때 그 시대가 있는 사람은 세상에 무서울게 없었기에 지켜야 하는 권위만을 내세우며 자기의 것을 견고히 다지기 위해 점점 외통수가 되도록 만들었으며, 없는 사람은 권력에 무릎을 꿇어서라도 빌어먹을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치열하기만 했다. 신분이 달라서 여자로 태어나서 삶을 선택할 수 없었던 그 때 그 시대를 살아간 아가씨의 엄마와 푸실이. 그들은 비록 이름을 알리고 세상에 나설 수는 없지만곁에 있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여인이었음이 분명하다.

『담을 넘은 아이』 는 푸실이의 걸음을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고픔을 참아야 하고, 신분앞에 무릎 꿇어야 하고,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때 그 시간들을 만날 수 있다. 푸실이가 처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애쓰는 그 모습이 애달팠다. 소녀를 온 몸으로 안아주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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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풍선 - 초등 통합교과 2-2 수록도서 나린글 그림동화
제시 올리베로스 지음, 다나 울프카테 그림, 나린글 편집부 옮김 / 나린글(도서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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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휴가지 숙소에서 다음날 일정을 계획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쭉 ~ 흘렀던 시간이 있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라는 치매에 걸리기 시작한 경증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일본에 실제로 존재하는 식당을 모티브로 해서 3부작으로, 2회 방송된 프로그램으로 가게를 열고 정리하고 주문하고 계산하기까지 실제 운영하는 모습을 다큐로 방송되었다.

자신들이 치매 증상을 보인다는 것도 치매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언제 기억을 잃었는지 눈치채지 못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할 수 있는데 점점 자리를 잃어감에 소외를 느끼고 점점 주눅하는 자신을 스스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눈물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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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풍선』 은, 손자와 할아버지를 주인공하여, 기억을 풍선으로 비유한 아주 잔잔잔하고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하얀 바탕에 선으로 그려진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 그들이 손에 꼭 쥐고 있는 풍선에는 행복했고 즐거웠던 기억들이 하나씩 담겨 있다. 기억은 기억마다 다른 색의 풍선에 담겨있고, 동생보다는 내가, 나보다는 할아버지에게 더 많은 풍선이 쥐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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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풍선에 담긴 기억 한 조각을 꺼내 이야기로 풀어놓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할아버지와 나에게 모두 있는 은빛 풍선엔 똑같은 기억이 담겨 있다. 할아버지도 나도 기억의 풍선을 꺼내 그 속에 담긴 시간을 꺼내는 그 순간이 아주 행복하다. 할아버지가 설레고 행복했던 할머니와의 결혼식 모습도 풍선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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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점점 힘이 없어지나보다. 풍선을 꼭 쥔 손에서 힘이 빠지고, 그 틈으로 풍선들이 하나둘 빠져나간다. 나와 함께 했던 기억의 풍선도 사라지고, 할아버지는 나의 이름조차 풍선과 함께 떠나보냈나보다. 할아버지는 떠나가는 풍선에는 관심도 없고, 아쉬운 표정도 짓지 않고 멀리 떠나가는 풍선들을 바라볼 뿐이다. 할아버지의 기억은 이렇게 떠나간다. 할아버지의 머리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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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나의 몫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떠나보낸 풍선들을 내가 다시 하나둘 모아 손에 꼭 쥐고 있으면 된다. 그것이 바로 할아버지와 나의 시간이고, 기억이며, 추억이 되어 나의 가슴에 고스란이 남아 있게 된다. 기억을 하고 있는 그 시간만큼은 우린 분명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기억이 주는 온기는 나의 가슴을 은근하게 데워주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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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풍선』 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떠나가는 풍선으로 비유한 그림책이다. 치매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좀 더 따듯해졌으면 하는 간절함을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대의학으로도 막을 수 없고, 치료할 수 없는 치매, 우리 모두가 함께 보듬어줘야 하는 노인의 현실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그들 곁에서 기억의 풍선을 잡고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함께'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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