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의 풍선 - 초등 통합교과 2-2 수록도서 ㅣ 나린글 그림동화
제시 올리베로스 지음, 다나 울프카테 그림, 나린글 편집부 옮김 / 나린글(도서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작년 여름 휴가지 숙소에서 다음날 일정을 계획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쭉 ~ 흘렀던 시간이 있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라는 치매에 걸리기 시작한 경증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일본에 실제로 존재하는 식당을 모티브로 해서 3부작으로, 2회 방송된 프로그램으로 가게를 열고 정리하고 주문하고 계산하기까지 실제 운영하는 모습을 다큐로 방송되었다.
자신들이 치매 증상을 보인다는 것도 치매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언제 기억을 잃었는지 눈치채지 못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할 수 있는데 점점 자리를 잃어감에 소외를 느끼고 점점 주눅하는 자신을 스스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눈물이 차올랐다.

『기억의 풍선』 은, 손자와 할아버지를 주인공하여, 기억을 풍선으로 비유한 아주 잔잔잔하고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하얀 바탕에 선으로 그려진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 그들이 손에 꼭 쥐고 있는 풍선에는 행복했고 즐거웠던 기억들이 하나씩 담겨 있다. 기억은 기억마다 다른 색의 풍선에 담겨있고, 동생보다는 내가, 나보다는 할아버지에게 더 많은 풍선이 쥐어진다.

할아버지의 풍선에 담긴 기억 한 조각을 꺼내 이야기로 풀어놓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할아버지와 나에게 모두 있는 은빛 풍선엔 똑같은 기억이 담겨 있다. 할아버지도 나도 기억의 풍선을 꺼내 그 속에 담긴 시간을 꺼내는 그 순간이 아주 행복하다. 할아버지가 설레고 행복했던 할머니와의 결혼식 모습도 풍선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할아버지는 점점 힘이 없어지나보다. 풍선을 꼭 쥔 손에서 힘이 빠지고, 그 틈으로 풍선들이 하나둘 빠져나간다. 나와 함께 했던 기억의 풍선도 사라지고, 할아버지는 나의 이름조차 풍선과 함께 떠나보냈나보다. 할아버지는 떠나가는 풍선에는 관심도 없고, 아쉬운 표정도 짓지 않고 멀리 떠나가는 풍선들을 바라볼 뿐이다. 할아버지의 기억은 이렇게 떠나간다. 할아버지의 머리 속에서.

기억은, 나의 몫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떠나보낸 풍선들을 내가 다시 하나둘 모아 손에 꼭 쥐고 있으면 된다. 그것이 바로 할아버지와 나의 시간이고, 기억이며, 추억이 되어 나의 가슴에 고스란이 남아 있게 된다. 기억을 하고 있는 그 시간만큼은 우린 분명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기억이 주는 온기는 나의 가슴을 은근하게 데워주고 있을 테니까.

『기억의 풍선』 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떠나가는 풍선으로 비유한 그림책이다. 치매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좀 더 따듯해졌으면 하는 간절함을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대의학으로도 막을 수 없고, 치료할 수 없는 치매, 우리 모두가 함께 보듬어줘야 하는 노인의 현실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그들 곁에서 기억의 풍선을 잡고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함께'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