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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나라를 찾아서 - 개정판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9
문지나 글.그림 / 북극곰 / 2014년 11월
평점 :
내 나이 21살. 떠나보냄의 슬픔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내가 병간호했던 큰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시던 그 날.
온전한 정신이 있던 오후에 내 손을 잡아주며 "잘 있어. 나중에 만나"하셨던 그 말,
그게 마지막 인사였던 것을 장례를 치르면서야 알았던 나의 철없던 날.
숨을 놓기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들 얼굴 보기 위해, 이미 누가 누구인지 시력도 모두 잃은 그 때도 눈동자를 움직이며 기억 속에서 놓지
않기 위해 애쓴 그 모습이 나의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 분의 숨소리와 온기는 느낄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앙상한 가지와 텅빈 거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세 사람.
창밖을 힘없이 바라보는 여인과 옷걸이 걸린 옷자락을 만지는 소녀 그리고 모자를 손에 잡고 있는 소년.
그들은 오늘 떠나보냄과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아직은 떠난 이의 온기를 느끼며 현실과 마주서는 것이 힘겹기만 하다.

소녀와 소년은 떠나보낸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창가를 향한 계단이 소녀와 소년을 인도하듯 펼쳐지고
그들의 마음을 고이 담은 비행기는 세상을 향해 비행을 시작한다.

어두운 겨울 밤
하얀 눈위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버스에 오르는 소녀와 소년을 만난다.
펭귄 버스에 원숭이기사. 사과와 가지 올빼미 손님이 있는 버스에 오른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 있는 기사와 손님들
그리고 소녀와 소년

그들 앞에 전해진 상자 하나. 그 속에 담겨진 모래와 소라 껍데기
그들에게 놓인 상자 속에는
떠나보낸 이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듯 정갈하다.
상자를 묶고 있던 끈들은, 그들과의 인연을 말해주듯 자연스럽게 풀어져
여전히 연결되었음을 말해준다.

바닷가에 나란히 선 두 사람.
두 사람의 등을 포근히 안아주는,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은,
그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 듯 따스하고 넓다.
바다와 두 사람의 두툼한 외투가 대조를 이루면서
그들의 쓸쓸함이 더욱 깊게 느껴지며, 지나간 시간은 추억이 되고 그리움으로
새로운 자리에 내려앉을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부엉이기사가 전해 준 상자 하나.
소녀와 소년, 두 사람은 그렇게 아빠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아빠는 고요한 나라에서 여전히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지만,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아 가끔씩 꺼내어보는
보물상자처럼 귀하게 여기는 순간을 만들어줄 것을 이젠 안다.

도서출판 북극곰의 이루리 작가는, 『고요한 나라를 찾아서』를 만나게 된 그 시간을
'볼로냐에서 만난 샛별'이라고 표현한다..
잔잔하게 다가와 우리 가슴에 따스한 온기 하나 심어넣어주는 『고요한 나라를 찾아서』는
'샛별'이라고 표현한 것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가장 적당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온기도 숨결도 더이상 느낄 수 없음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떠나보냄에 있어 그와의 시간까지도 추억까지도
떠나보내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소녀와 소년은 오늘 아빠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아빠의 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소중한 시간과 마주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라에 갔다는 엄마의 말에 소녀와 소년은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 보고 싶다고.
아빠와의 행복하고 따듯했던 추억의 장소 바다에서 아빠의 숨결을 느끼고, 아빠의 온기를 받으면서
고요한 나라로 떠나는 아빠를 배웅한다.
밤하늘의 별이 빛나듯 두 사람의 가슴엔 아빠의 별이 꺼지지 않고 지켜줄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샛별은 또 다른 시간과 추억으로 만나 성장시켜 나가줄 것이라 믿는다.
떠남의 슬픔을 따스함으로, 남겨짐의 슬픔을 배웅으로 표현한 '문지나' 작가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떠나보냄과 배웅.
그리고 가슴에 남겨진 그리움이 새로운 세상으로의 시작임을 알려주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