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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돌리는 물레 ㅣ 키큰하늘 3
탁정은 지음, 김완진 그림 / 잇츠북 / 2020년 3월
평점 :
판타지 동화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에서 벗어나고픈 열망이 시작점이 되어 이야기의 시작을 열어준다.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만나 현실에서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사고와 실마리를 찾은 뒤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꿈만 같은 이야기, 이것이 내가 동화에 대해 공부할 무렵, 판타지 동화를 들여다보면서 나름대로 내린 판타지 동화에 대한 어설픈 정의이다. 근래에 내가 읽은 책 중 나의 판타지 정의와 가장 잘 어울리는 판타지 동화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한새는, 마음이 아프다. 잘하고 싶었고 우승이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날 그 경기로 모든 게 변하고 말았다.
전국대회 준결승전 경기 45초 전, 한새는 상대팀 에이스 영우의 덩크로 골만은 막자는 점프를 했을 뿐인데, 거친 파울로 영우는부상을 입는다. 한새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한새는 농구를 할 수 없게 된다.
영우네에게 위로금을 주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아빠와 한새에게 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까지, 한새는 마음이 무겁다. 한 순간에 평온한 가정이 무너진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한새는 마음이 아프다.
『시간을 돌리는 물레』 는 우주 먼 곳 '루매내'라는 별에서 일어난 일과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으로 펼쳐진다. 우주의 어느 별과 한새의 이야기가 어떤 상관 관계를 가질까 의아스럽지만, 혼자 여행을 떠난 한새가 모래봉황섬이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궁금증이 풀린다.
한새는 아빠의 택배 물건에서 주인없는 보물 지도책 한 권을 발견하고, 숫자가 가리키는 모래봉황섬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지도가 가리키는 그 곳에 있는 보물만 가지고 온다면 아빠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물레의 눈'을 가진 자만이 푸른 물레를 돌릴 수 있어. 잘 봐. 이게 루매내의 푸는 물레야."
자세히 그건 자전거나 리어카 바퀴에 가까웠다. 바퀴가 눈 앞에서 뱅글 돌다 사라졌다.
"어,어? 어떻게 하신 거에요?"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할머니가 한마디 더 했다.
"한새 맞지? 정한새. 한새야, 바다 쪽이 아니란다. 가시나무 숲에 숨어 있지. 숲으로 들어가 '물레의 눈'으로 세 개의 문을 열어라.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고 네 개의 보름달이 뜰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하는 이상한 말들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간을 돌리는 물레. 10~11쪽
한새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할머니와 세모꼴 형을 만나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여행을 멈출 수는 없다. 한새는 해병대 캠프를 온 영우와 만나게 되고, 영우는 깊은 숲으로 향하는 한새가 걱정되어 뒤따르게 되면서 그 동안 한번도 하지 않았던 속내를 꺼내게 된다. 영우는 농구 출신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자신을누르고 있으며, 한새에 대한 지나친 처벌에 대해 미안함도 내비친다.
사람에게는 일생에 한 번, 커다란 행운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행운을 잘 잡으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한다. 이상한 책에서 숫자를 찾아내고, 숫자가 좌표이며 좌표가 모래봉황섬이란 걸 알아냈고, 보물 표시를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찾아온 큰 기회일지도 모른다.시간을 돌리는 물레. 61쪽
루매내 별, 공주가 태어난 지 7일째 되는 날 왕은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신녀 카로는,
"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는 날, 공주는 푸른 물레를 안고 태앙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며, 그것이 루매내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또다른 신녀 오도는,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공주는 푸른 물레를 안고 날아오를 것이며, 그 순간 공주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공주가 깨어나면 루매내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리라"
라고 예언한다.
왕은, 공주와 루매내의 평온을 위해 공주에게 물레를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한다. 신녀 카로의 저주가 있기 전으로 돌리고 싶은 시간, 공주의 탄생으로 그럴 수 없는 시간, 왕은 푸른 태양의 별 루매내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지만, 푸른 물레의 눈이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온 힘을 다해 물레를 돌린다.
"루매내라고요? 난 그게 뭔지도 몰라요. 난 보물을 찾으러 온 것 뿐이에요. 보물 때문에 날 미행한 거죠?"
세모꼴 형이 책을 탕탕 치며 말했다.
"보물이 아니라니까! 이 안에 시간과 이정표가 들어 있어. 그게 우리를 떠나온 시간으로 돌려보내 줄 거야. 나한테 필요한 건 그뿐이야. 여기는 루매내 사람들이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곳일 뿐이라고."
한새는, 아빠의 고된 가장의 무게와 엄마의 병원비를 위해 혼자 여행을 결심하고 모래봉황섬에 왔다. 그러나 한새가 가진 보물지도책은 푸매내 별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이었고, 푸매내는 '푸른 물레의 눈'에 미래가 달려 있다. 그것을 가진 이가 한새였으며, 한새의 용기가 그들의 운명을 좌우한다.
푸매내의 새로운 주인이 되고자 하는 카로와 그의 아들 푸시오 그리고 왕과 공주를 도와 잠든 푸매내를 깨우고자 하는 오도와의 만남에서 한새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욕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직시하게 된다. '우승'이란 목표와 '에이스 영우'를 향한 자격지심이 가까운 이들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새는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노라고 약속하는 왕의 호의를 거절하고, 전국대회 준결승전 경기 45초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줄 것을 부탁한다.
"보물을 찾아 돈이 많이 생기면 엄마 치료비도 다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길 떠나면 더 이상 엄마를 볼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 뭔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영영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누군가가 와서 우리를 구해 주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넌 모를 거야. 나는 온 우주의 문자를 '물레의 눈'에 새겨 넣었어. 우주에서 길을 잃을 경우를 생각해서 말이야. 숫자를 보고 여기를 찾아왔다고 했지? 나만큼이나 너도 간절한 게 있었던 모양이구나. 원하는 것은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법이야. 내가 루매내를 지키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듯이 말이지.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더 많이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법이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난 한새와 푸매내의 이야기는 자신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우리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우린 후회하고 반성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시간과 마주서길 희망한다. 그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라고 단정지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우주의 별 '푸매내'의 푸른 물레와 한새에게 닥친 위기는, 시공간을 초월한 판타지를 만나 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판타지 동화의 정석을 보여준 『시간을 돌리는 물레』 오랜만에 푹 빠져 읽었다.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