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울지 않는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26
성실 지음 / 다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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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나는, 십대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나의 십대는 전학과 더불어 낯섬과 적응이 반복되었고, 회유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며 결정한 진로들로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았던 너무나 미지근하기만 한 시간들이었다. 해보지 못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나의 두 소녀가 십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그들의 시간이 궁금해서 일까, 난 오늘도 그들의 시간을 엿보는데 집중한다.

청소년을 다루는 다양한 매체를 지금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여러 생각을 한다. 맘껏 꿈꾸고 자유롭게 사고하는 그들이 부럽다는 것과 거침없는 그들 사이에 내가 있지 않음이 다행스럽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딤으로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이 안쓰럽고 다행스럽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집중한 책은 '다른'출판사에서 펴낸 '성실'작가의 첫번째 책 『가해자는 울지 않는다』 이다.

아든은 "전부 이야기할게요… 대신 다 듣고 나면, 저를 진짜 나쁜 새끼라고 생각해주세요."라고 말하며 한 남자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든의 입을 통해 나오는 모든 말이 이야기가 글이 되어 펼쳐진다.

아든은, 동우의 병풍이 되어 나쁜 행동을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도 웃는 것으로 동우의 나쁜 짓에 힘을 싣는다. 나날이 폭력이 깊어지는 동우의 행동에 아든과 남순이는 곧 싫증이 나고 지나침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동우를 말릴 만큼 강단이 있지도 깡도 없다. 동우의 비뚤어진 행동을 지나칠 수 없었던 주아는 선생님께 전달하고, 그들은 몇번의 경고와 봉사활동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보고도 못 본 척,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 일을 해낸 주아는, 동우에게 새로운 괴롭힘의 대상으로 찍히고 친구마저 모두 떨어져나가는 슬프고도 힘든 시간 속에 놓이게 된다.

사실 난 누군가를 괴롭히는 행위를 즐기지 않는다.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둘 중 하나를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싫어하는 쪽이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냥 관심이 없었다. 이런 골치 아픈 무리에 끼게 된 건, 그저 어쩌다 친구가 된 동우가 '이런 짓'을 즐겨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늘 마지막에 이를 즈음에는결국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그래도 굳이 나서서 동우를 말리지는않았다.

 죄책감이 없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는 학교 안에서는 이미 당연한 일로 자리 잡아 버린 이 행동들이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였던 것 같다. 괜히 아이들을 말리려고 나섰다가는 장난일 뿐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며 놀림을 받기 딱 좋기도 했고.

가해자는 울지 않는다. 18~19쪽     

 

아든은 웃음을 잃어가는 주아의 모습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동우를 말릴 수도 주아에게 손을 내밀 용기도 없는 자신에게서 나약함을 본다. 직접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해도 동우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든은 나쁜 아이였고, 나쁜 짓을 함께 한 동조자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동우의 괴롭힘이 극에 달하고, 주아가 모든 것을 잃어갈 때쯤 아든은 주아에게 어릴 적 함께 나눠가졌던 낡은 인형을 내민다. 그것만이 아든이가 할 수 있는 용기이고 배려였다. 남순이처럼 한 번 대들지도 못하고, 그만하라는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아든은, 자신의 비겁한 모습에 신물이 넘어오고 자신을 숨막히게 하는 집도 아버지도 버겁기만 하다.

 

물에 젖은 손이 얼굴에 닿자 기분 나쁜 끈적임이 느껴쪘다. 마치 쓰레기 더미에 들어갔다 나와 더러운 액체에 물든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얼굴도 몸도 손도 전부 이미 끈끈한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던 거지? 기억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기분 나쁜 액체로 몸이 뒤덮여 있었던 걸까? 그랬다. 나는 동우랑 똑같은, 아니 동우보다 더 나쁜 새끼였다.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관용에 빠져 있느라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

가해자는 울지 않는다. 60쪽

아든은 자신을 잘 안다. 이도 저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쓸데없는 곳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하라는 아버지의 권위적인 행동 뒤에서 아든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런 아든에게 친구는 동우와 남순이 뿐이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휘둘러야 하는 동우, 나약하지만 한번쯤은 제 소리를 내는 남순이, 그 사이에 있는 아든은 남순이 곁에 머물지만 동우의 힘을 무시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욱 비겁하게만 느껴진다. 주아가 당하는 모습에 움찔하지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인 아든에게 삶은 무료해지고 점점 주눅 들어간다.

         

수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해 문을 열기 전, 딱 한 번 돌아보았을 뿐이다. 그때 수아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행이도 세상이 온통 침무고가 어둠에 잠겨 있던 덕에, 그 낮은 소리가 우리에게까지 와 닿았다.

"고마워, 사과해 줘서."

수아는 남순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난 수아가 들어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곧 남순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 옆의 남순은 최근 보지 못했던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얼굴에 나도 모르게 엷은 미소가 나왔다. 비록 나는 제대로 사과할 줄도 모르고 도와주는 일조차 버거워하는 비겁한 겁쟁이였지만, 남순은 달랐다.

가해자는 울지 않는다. 88쪽           

전학생 호제의 등장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동우에게 괴롭힘의 대상이었던 주아는, 호제에게 관심의 대상이고 모두에게 한쌍으로 불리기를 희망하는 대상이다. 주아는 동우로 인해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이 호제로 인해 다시 '친구'라는 새로운 대상이 생기면서 그 곁에서 어떻게든 남아보겠노라 하지만, 점점 주아는 생기가 없어지고 화가 늘어난다. 호제의 장난스러운 행동이 주아에게 치욕적이고, 눈요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 치욕적이다.

 

아든은 왜 그랬을까. 주아가 분명 호제를 버거워하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제가 주아에게 고백하겠노라고, 학교 구건물 옥상으로 주아를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한다는 그 말을 왜 흔쾌히 받아들였을까. 호제에게 밑보이기 싫었던 것일까, 아님 호제가 주아에게 갖는 그 마음을 진심으로 여겼던 것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호제와 같은 힘의 그늘이 필요했던 것일까.

     

아든과 남순이는 주아를 호재가 기다리는 학교 구건물 옥상으로 보내고, 계단에서 그들을 지켜본다. 호제의 고백을 거절하는 주아, 실랑이 끝에 잡았던 주아의 손을 놓아버린 호제, 그렇게 주아는 옥상에서 떨어지고, 그들은 주아의 죽음을 본 마지막 목격자 지목받고 경찰 조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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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는 힘있는 친구의 병풍으로 살아가면서 항상 맘 한켠이 불편한 아든이가 있고, 병풍이지만 결코 의리라는 얄팍한 감정을 앞세워보는 남순이, 힘이 주는 재미에 빠져 허덕이는 동우, 원리원칙을 앞세워 바로 세우고자 하는 맘이 앞서 구렁에 빠질 자신을 염두하지 못한 주아 그리고 힘을 이용해 합리화를 시키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호제가 있다. 그들은 모두 악하고 거침없이, 물러서면 떨어짐을 알기에 간신히 매달려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시간을 즐겼다. 그것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가해자는 울지 않는다』 는 아든의 시선에서 바라본 십대들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십대였던 나의 교실에도 아든이도 남순이도 주아도 동우도 있었다. '친구', '우정'이라는 말로 서로를 묶고 싶은 십대들의 허전함과 나약함이 '힘'으로 작용되었을 때 일어나는 폭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잔악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십대의 모습에 경악하지만 그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책임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아의 죽음으로 목격자가 된 그들, 벌은 면하였지만 스스로가 주는 '가해자'라는 양심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주아의 죽음을 슬퍼할 용기도 없는 그들에게 주아의 죽음이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주아가 못다한 말 못다한 이야기를 새롭게 써가는 시간으로 치유되는 그 날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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