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관계 1
안도현 지음, 이혜리 그림 / 계수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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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랑 걔랑 어떤 사이야? 사귀는 거 아니야?"
하는 주위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우리로 얽히는 것을 겁내한 나와 걔는 친구라는 관계로 단정지으며, 그 이상 그 이하로 관계를 짓는 것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초라한 핑계라는 것을 대면서 극구 부인할 때가 있었어요. 그러길 세 해를 넘기고 나와 걔는 주위의 의심을 현실로 전환시키면서 누가 보아도 연인임을 알 수 있는 우리가 되어가길 바라면서 사랑의 고리를 채웠지요.
'나와 너'에서 '우리'라는 관계를 맺으며 어느 새 '우리 마누라는, 우리 신랑은'하는 부부가 되었고, 두 돌을 바라보는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로 불리우며 가족이라는 관계를 맺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어요.

나라는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는 고집 센 셋째딸로, 형제에게는 제 할 일 똑 부러지게 하는 동생으로 누나로, 신랑에게는 어설픈 완벽주의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마누라로 아이에게는 항상 곁에 있어주는 든든한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 믿음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깨어지더라도 곁에 있어주는, 우리의 관계를 의심치 않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압니다.
그들과 나의 연결 고리 속에는 뿌리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혈연 관계가 적용되어 있지만, 그 보다 더한 것은 한 번 맺어진 관계는 신뢰와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라는 믿음이 해를 더해 갈수록 더 큰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동화 '관계'
갈참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져 버린 도토리 한 알.
외롭고 캄캄한 땅 위의 공포도 잠깐, 봄 여름 동안 함께 지냈던 나뭇잎들이 도토리의 곁을 지켜 주지요.
나뭇가지에서는 비바람을, 땅 위에서는 인간과 쥐의 먹이로부터 몸을 가려주고, 숨어 사는 것이 갑갑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도토리가 있어야만 나뭇잎도 존재할 수 있다는, 도토리와 나뭇잎이 또다시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나뭇잎 모두의 꿈이라고 견뎌내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요.
이 말은 도토리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용기의 메시지가 되어 도토리를 추위와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 되어 준답니다.

나뭇잎들은 도토리에게 존재하는 갈참나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세상 속에 한 그루의 나무로, 동물들에게는 겨우내 먹이로 키워낸답니다. 도토리로 하여금 새로운 생명을 꿈꾸고, 도토리는 나뭇잎으로 하여금 갈참나무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워나가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관계이며, 서로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하겠지요.

작은 도토리의 가슴 속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존재만은 분명한 갈참나무 한 그루.
우리는 도토리 한 알에서 자라나는 갈참나무의 존재를 믿듯, 우리들 가슴 속에 잠재되어 있는 희망과 새로운 용기를 믿고 그것을 세상에 펼치기까지 닥쳐올 어려움을 겪어내야만 합니다.
도토리가 잘 해 나가고 있음을 우리의 식탁을 사계절 내내 장식해 주고, 시골 뒷산에는 여전히 다람쥐들이 오독오독 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맑은 소리로 알 수 있잖아요.
이제 조금은 덜 두렵지 않나요?
보이지 않는 희망의 길이 외롭게 느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연어'라는 동화를 통해 안도현 시인의 문체와 사고에 매력을 느낀 저에게 '관계'는 또 한번의 행복함을 안겨주기에 너무나 충분한 동화였어요.
우리 인간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생명들에게서 인간들이 배워야 하는, 누구나 알고 있기에 쉽게 지나쳐 버리는 의미를 전달하지요.
나뭇잎과 도토리.
엄마와 아이.
아이의 가슴 속에서 날마다 자라고 있을 새싹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나뭇잎과 열매를 키워낼 수 있도록 비바람을 막아주고, 행복함으로 껴안을 수 있는 따스한 가슴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내 몸이 먼저가 아닌, 세상에 나올 모두의 꿈을 위해 내 몸을 낮추렵니다. 도토리와 나뭇잎이 서로 관계를 맺어 한 그루의 갈참나무를 키워내었듯이 '나와 너'가 아닌 '우리'의 관계로,세상에 아름다운 미소 하나 떨구고 가는 내가 되고픈 바람이 욕심처럼 저를 찾아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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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
토니 험프리스 지음, 윤영삼 옮김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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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나를 위한 온전히 나만을 위해 무언가 하는 것이 시간이나 정신적으로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을 버러고 살게 되었다.

'내 일을 하면 살아야지' '내 삶에 만족하며 살아야지' 하던 마음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하는 마음으로 바뀐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엄마의 자리만, 아내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 마음을 헤어려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준 것이 바로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 이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마치 누군가에게 나의 실체를 모두 보여준 듯한 느낌이다.

시중에 나온 많은 책들 중 한권인 육아서라고 생각하고 펼친 책은 그 동안 꽤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했던 내 자신을 자존감이 무척 낮은 사람이며, 엄마로 추락시키고 말았다.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상대를 위한다고 상대에게 져준다고 했던 나의 말과 행동은 정작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것은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을 뿐 아니라 갈등의 요소를 뒤로 감추게 하여 정작 풀어내야 하는 것이 무언지 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뒤로 물러난 갈등은 언제고 다시 고개를 들고, 그것은 항상 우리 부부 사이에 함께 존재하고 있었음을 그 동안 알지 못했다. 내가 모르고 살았던 내면의 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도 아주 당연하게 너무나 뻔하다는 듯이 써 내려가는 작가의 말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난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를 만났다.

그리고 희망을 만났다.너무나 모자라고 낮은 자존감을 가진 내가 '내가 좋은 엄마,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워가는 엄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났다.

자존감은 유전이 아니며,부모의 자존감에 영향은 받지만, 그대로 이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력하면, 그렇게 해 본다면 자존감이 높은 엄마가 부보가 되어,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실페을 드러나고도 내 자신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던 보상이랄까, 작은 선물처럼 너무나 큰 기쁨을 만난 듯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 삶 속에 들어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신랑과 딸                                                                                                  그 두 사람에게 난 늘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조금은 어설픈 완벽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내 자신이 가족을 힘들어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여 맺어진 가족이라는 이름표 아래 나는 너무나 많은, 모든 것을 얻으려고 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말 안해도 알아주겠자, 이렇게 하면 나머지는 해 주겠지, 나의 속마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하는 지레짐작이 상대뿐만 아니라 나에게 얼만 많은 생채기를 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나는 이제 이렇게 살아보려 한다.                                                                                                                                  믿고 의지하려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나를 인정하고 긍정적인 생각과 말로 상대의 마음을 받아주며,        솔직하고 자신있게 나를 내보이는 또 다른 나를 자신있게 표현하며 살고 싶다.                                                  어색하고 쑥스러워 가슴에 담아 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표현하면서 나로 인해 신랑과 딸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노력해야겠다는 아주 큰, 아주 행복한 실천을 해 보려한다.

자존감.

나 스스로를 사랑해야지 하면서 붙인 나의 닉네임 '이쁜 은재'

앞으로 나의 닉네임이 더욱 빛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천하고 가슴 깊이 사랑하는

아내이고,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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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든에서의 그 여름
라빌 스펜서 지음, 이창식 옮김 / 고려원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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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이라는 나이와 함께 서른 두 해를 살아오면서 그 중 이십 구년 동안은 몸만은 자유였다. 그리고 그 중 이년은 사랑이란 이름의 한 남자로, 그 중 일 년은 한 남자와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사랑스런 딸과 지내며 이제는 몸도 마음도 자유에서 벗어났다. 
점차 나와 연결되어지는 이들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면서 완벽하게 자유를 누렸던 것도 아니면서 이십 구년의 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육아로 몸이 지치고, 집에서 약간의 내 일을 하면서 마음이 지칠 때 혼자였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살며시 나를 찾아온다.
한 남자를 사랑해서, 한 남자와 결혼해서, 한 남자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이 생기면서 늘 행복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면, 그건 불행해서 일까?
행복하지 않은 건, 불행해서도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생활에 스스로 안주해 버리기 때문인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느끼지 못하는 말 그대로 안주.
난 이게 너무 싫어질 때 이혼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내가 정말 이혼을 한다면, 로베타 주에트처럼 이혼녀가 된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가고,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막막함을 지나 두려움마저 든다.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아이의 행동에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신랑과 함께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날 방송된 아이는 이혼 경험이 있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둥이이다. 우리 부부가 그 프로그램에서 중점을 두고 본 건 막내둥이의 행동이 아닌,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면서 가족을 이루게 된 세 명의 자녀였다. 방송 진행자는 인터뷰를 통해 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토해내게 하였다.
‘아이들이 무슨 죄길래? 방송이 대체 뭐길래? 지나간 아픈 상처를 저렇게 들추게 하여 아이들의 눈에 눈물을 맺게 하는 거야?’ 이게 우리 부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 뒤를 이어 신랑은 ‘이혼은 어떤 경우에도 하면 안 되는 거야. 어른들이 서로 한 발만 물러서면 되는데, 아이들에게 저런 고통을 줘.’한다. 나는 아니다. 아이들의 고통과 상처가 마음 아프고 안쓰럽지만, 어떤 경우라는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론 함께 하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로베타의 전 남편 조지의 행동은 로베타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정당화시키지 못하며, 가정은 아이들에게 울타리 역할을 해 주지 못하였다고 판단된다. 아이들에게 가정은 마음에 영양제를 충전하는 곳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고향 캠든으로  돌아온 로베타와 그녀의 세 딸. 자유로움 속에서 자라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달아가는 그들에게 캠든은 그리 넉넉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눈 속에 들어온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환경들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가꾸면서 새로운 사랑도 가정도 꾸려나간다.
이혼녀라는 이름표가 그녀의 모든 행동들에 제약을 주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고 주목될수록 힘이 나는 로베트를 보면서 이혼녀라는 이름표는 그 뿐,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스스로 이혼이라는 굴레 속에 가두어두는 것이 더 큰 사회로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의 자리를 지켜나가야 하는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감을 위해서도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혼녀가 아닌 여자로 엄마로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는 로베타의 생기 있고 기운 넘치는 모습을 통해 신랑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사는 나의 나약함이 미안해졌다면, 이 또한 로베타를 향한 편견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워진다.
나만 괜찮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은 말일뿐으로 여기는 당당한 그녀가 이루어내는 가브리엘과의 사랑 또한 로베타이기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서 자연스레 과거의 상처를 보듬어 주게 되고, 그 상처마저도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었던 그들의 모습이 잔잔하게 내 가슴에 스며들어와 글의 마지막을 알리는 맺음이 왔을 때 아쉬움이 찾아 들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아쉬움과 기쁨인지….

난 캠든에서의 여름 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베타가 삶을 살아가는 당당함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 그리고 솔직하고도 따스함이 묻어나는 마음의 표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부러웠다.
자유스럽게 키우는 세 딸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러했다.
책을 읽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 또한 로베타만의 교육 방식이었다. 자연을 벗삼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자연에서 나눔을 배우며 서로를 향하는 그 마음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했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였다. 이것 또한 내가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겠지.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은 우리 모두의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을 기억하고 어느 것을 잊는지는 오직 나만의 선택이지만, 우리의 삶 주머니 속에는 세 가지의 맛이 담긴 사탕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로베타를 응원하고, 그녀의 삶을 존중하지만, 사랑을 한다면 사랑을 했다면 사랑을 하고 있다면 씁쓸한 맛의 사탕을 먹어 입맛을 떨어지게 하는 실수보다는 달콤해서 녹아내리는 것마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행복의 사탕을 집어 달콤함이 내내 입 속에 머물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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