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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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망이 나의 삶에 원동력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형제간의 서열에 밀려 원하지 않는 학교를 선택해야 했고, 원하는 직업을 위해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사회로 나가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때. 나는 부모도 형제자매도 모두가 나에게 너무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살핌이 필요했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더 나은 길을 선택하라는 조언을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매정했다. 그리고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내 자신을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내세울 것이 너무나 없었던, 없다고 생각했기에 사회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순간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이라고 생각하며, 직장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4시간의 잠을 선택하게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정말 원하는 직업에 대한 기사를 보고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아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나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나의 꿈으로 한발짝 다가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생활비의 부족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20대에 찾아온 첫번째 기회는,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해 주었고, 삶의 길을 열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꿈을 누리며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꿈을 누리며 살아가는 지금 나는 과연 행복할까? 세월이 흐르고, 꿈을 이루었다는 만족감이 또 다른 감정으로 발전하여 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고, 좀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내가 가진 능력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욕구를 갖게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다고 생각한 나의 꿈과 결혼 그리고 육아. 이 모든 것이 욕심이란 장애물을 만나면 방향을 잃을 뿐 아니라, 선택하고자 하는 기준점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흔들림이 잦아지면 균형은 깨어지고 모든 것이 헝클어진 채로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이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선택의 기로에서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마흔이란 나이를 코 앞에 둔 사라는 선택이라는 장애물을 맞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면서도 미안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십년지기 남자친구와 아내의 빈자리를 이겨내지 못하는 아버지와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는 남동생 그리고 그들의 파산, 매일 반복되는 회사의 과다 업무와 종종 찾아와 괴롭히는 어지럼증. 몸과 마음이 지친 사라는 선택과 결정이라는 현실과 마주한다. 힘들고 지치다고 손을 놓을 수 없는 현실에서 사라는 원망하고 미워하고 울부짖으며 자신을 나약한 존재로 허물어간다. 사회가 어떤 곳인지 몰랐던 나의 20, 많이 울고 많이 울부짖었다. 사라의 공허함과 배신감 그리고 왜 나에게만? 하는 끝없는 의문이 발목을 잡듯이 나또한 그 설움에서 벗어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꿈이라는 돌파구와 시작을 알리는 스물이라는 나이가 힘이 되어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 마흔은 늦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에 사라에겐 그녀를 일으켜 세워줄 손길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사라의 지친 저녁, 그녀의 삶을 열어줄 열쇠를 가진 고양이 시빌이 찾아온다. 시빌은 그녀가 겪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 현실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직시할 수 있도록 훈련을 강행한다. 의심할 땐 코로 냄새 맡기, 먹을 땐 먹는 데, 걸을 땐 걷는데 집중하기, 거리와 주변의 색 몰입하기,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기. 냄새와 내 옷의 느낌, 몸에 와 닿는 공기의 느낌, 걸으면서 느끼는 신체 각 부분의 다양한 감각들에 집중하기 등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마음으로 전해지고, 마음이 주변인들을 돌아보는 여유로 확장될 수 있도록 시빌은 사라에게 집중하였고, 그녀 또한 시빌의 훈련에 집중하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시빌은 말한다.

-- 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사실 네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 생각들과는 상관없다고 해야 할까, 관찰을 해 봐. 네 주변 공기의 냄새를 맡아봐. 네 피부를 느껴보라고, 귀 기울여 들어봐. 인생은 매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어.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항상 새롭게. (99)

내가 있는 위치를 부정하고 가족을 원망하며 지냈던 20대의 나를 꾸짖듯, 사라에게 닥친 불행한 오늘은 사라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라 말한다. 내 가슴속에 미움이 쌓였던 것은 처한 환경도 원인일 수도 있지만, 불투명한 미래와 사소한 말들조차 나를 향한 비수라 짐작하며 괴로워했던, 내 삶에 자신 없었던 나의 비굴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빌은 자신에게 집중하고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당당하게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삶의 시간을 누리라 말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 자리를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친다. 경력과 학력 그리고 나이를 고려하면서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까? 어떤 공부를 좀 더 하면 앞으로 10년 더 사회에서 쓰임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이라는 물음에 답을 구하지 못한 채 시간은 참 많이도 흘렀다. 순간순간 바뀌는 생각과 현실에서 직면해야 하는 과제들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들 때문에, 나이 때문에라는 핑계로 멈춰서 있다. 이러다 또 한 동안은 하고자 하는 욕구마저 잊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편안해진 건 결코 아니다.

-- 우리 인간들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정작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걸 보지 못한다고 했었지. 언제나 과거를 곱씹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무수한 가능성과 망상, 꿈과 악몽을 생각한다고. 그렇게 우리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동안에도 인생은 상관없이 흘러가는데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한다고. 105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세상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시빌이 말한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나의 길을 걸어가는 첫걸음이리라. 머리 속에 가득찬 걱정과 고민은 나에게서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일 외에는 어떠한 힘으로도 작용되지 않는다. 나에게서 나오는 핑계는 나의 삶을 비굴하게 만들며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밖에는 취급하지 않음을 스스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 널 속인 상대가 있다면 그건 바로 너 자신이지. 너야말로 네 인생이 끔찍하다고, 이제 끝났다고, 그래서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잖아. 그게 바로 너를 둘러싼 돌벽이고 그것도 네가 직접 쌓은 거야. 174

내가 가진 능력이 아무리 미흡하고 부족하다 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며,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지금 배움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잣대로 재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 나를 감싸고 있던 고정관념을 깼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가는 나로 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이 깨달음은 나에게서 긍정에너지로 발산되어 나를 비롯해 가족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밝은 기운을 뻗어낼 수 있으며, 그 기운은 그들의 에너지와 어우러져 새로운 빛으로 뻗어가리라 의심치 않는다. 잘하려고 꾸미는 것이 아닌 내 안에 감춰져 있는 좋은 기운, 따스한 미소가 관계를 더욱 편하게 해 줄 것이다. 매일 복잡한 일들로 과부하가 걸린 뇌를 씻어주는 마음 청결. 우리 모두는 마음 청결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아끼는 그 마음을 가꾸어나가야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인인 우리의 삶에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시빌이 전해주는 시빌다운 훈련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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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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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나는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집에서 30분은 족히 걸어가야 만날 수 있었던 서점은 항상 깔끔하고 조용했다. 책들은 눕혀져서 얌전하게 주인을 기다렸고 주인 아저씨는 책들이 놓인 나무 단 사이의 길목을 오가며 흐트러진 책이라도 있을까 각을 맞추셨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미닫이 유리문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항상 문고리 두짝이 정확히 맞춰져 있었다.

 

그러던 중, 6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친구 하나가 팔이 다쳐 깁스를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생님의 부름으로 책 한권을 사서 친구네 집으로 병문안을 가게 되었따. 그 때 처음으로 서점으로 내 몸을 쑥 들이밀었다. 나도 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다라는 당당함을 증명하듯 말이다.

그 후 나는 서점에 가서 책 표지를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여행을 하다 모아둔 용돈으로 명작동화를 한 권을 샀다. 고이 들고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는 다른 형제들 몰래 책을 읽었다. 책표지라도 닳을까 책장이라도 찢어질까 귀하디 귀한 손길로 어루만지며 읽어나갔다.

- "갖고 싶은 책은 제 발로 찾아야지. 앞에 온 애는 엄마 차로 왔잖아."    - 17쪽

세월이 흘러 지금은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읽게 된다. 검색창을 띄워도 신간을 알려주고, 친절하게 책 속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책이 전하고자는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굳이 시간내어 읽지 않아도 어디 가서 읽은 사람 흉내정도는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대형서점을 꽉꽉 채우고 있는 많은 책들은 우리가 손을 뻗지 않아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등으로 이름표를 달고 훑어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전시되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에 한 번, 손끝에 한 번, 결국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보이지 않은 힘을 가동시킨다.

 

책은 힘이다. 그리고 힘을 가졌다.

두고두고 가까이 하며 읽는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고,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보이며 마치 만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힘, 삶이 벅차고 힘겨울 때 위로가 되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힘, 슬픔이 가슴에 차오를 때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주는 함께의 힘, 이렇게 우리는 책을 통해 그 기운을 얻고 그 기운으로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 사람이 백 명 있으면 각기 다른 백 가지 독서법이 있다. 책의 어디에 영향을 받고 공감하는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렇다, 독서법에 정답은 없다. 독자는 책의 책장을 편 순간, 작가가 쓴 문장에 깃든 신비한 힘을 이해하는 자유를 얻는다. -11쪽 

 

하바 요시타카님의 "책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이라는 글자 뒤로 '~ 손해는 네 몫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더 읽어보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만 손해보는 일은 절대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읽고 나서 후회하더라도 , 못 읽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은.

북 디렉터로 활동한 하바 요시타카님이 소개해 준 많은 책들을 작가님의 시선과 감정으로 따라가면서 약간은 벅차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으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 동안 읽어왔던 책 소개와는 다른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책을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기도 하고, 책 속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재탐색의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와 책의 만남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뒤로 책을 읽는 이의 관점 그리고 여행지와 일상, 스포츠, 삶의 진정한 의미 등 우리가 그 동안 접하지 못한 분류 작업을 통해 테마를 나누고 그와 어울리는 책들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일상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이며 읽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책이 하나의 도구로 불리는 현대 속에서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도구가 도구로 이용되면서 삶의 질을 높혀준다면 책 속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뻗어나가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셔주리라 의심치 않는다.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전문지식 용어의 책을 여전히 벅차하여 일상을 꿈꾸는 소설과 시 그리고 동화와 그림책을 항상 가까이 하며 그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미처 꺼내지 못했던 내 자신을 찾는 기회를 갖게도 한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한 번 더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포스트잍을 붙여 놓고 시간이 지난 뒤 그 부분을 살며시 들춰보며 혼자 흐뭇해하는 것이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 재미로 나는 항상 읽는 책과 포스트잍을 짝처럼 대우해준다. 내가 읽은 책들이 하나둘 늘면서 책장의 공간이 좁아지는 순간이 올 때 나는 짜릿함을 느끼며 내가 여전히 책을 만지고 읽고 정리하는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이 감사함을 돋보기를 쓰고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호호할머니가 될 때까지 느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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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아이, 소동 높새바람 39
김경희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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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엄마'라는 이름표를 처음으로 달아준 나의 첫작품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5학년 2학기 사회 시간에 역사를 배운다. 역사를 지나가듯 들은 몇가지 아는 지식으로 빠르게 나가는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엔 무리일 거라는 판단이 들어 작년 2학기 무렵부터 함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역사 지식책과 온라인 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찬찬히 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배운 역사의 시작이며 내가 가진 역사의 깊이이다.

학창시절동안 배운 나의 역사는, 시험을 보기 위해 벼락치기로 외운 몇가지 암기 지식일 뿐이었다는 사실과 그 동안 잊고 지내면서도 너무나 당당했던 나의 무지를 현실로 깨닫게 되었다.

 

조선이 건국하고 너무나 평온했던 200년. 그 동안 국제 정세는 변화하고 있었으나 조선은 사화로 시작된 싸움이 깊어져 나랏일을 한다는 충신이라는 자들 또한 정치와 외교 뿐 아니라 백성들의 안위까지 나 몰라라 한 채 자기네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였다. 일본이 곧 쳐들어올 것임을 암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안일한 태도로 있다가 임진왜란이란 거대한 전쟁을 치르게 된다. 물론 우리 역사속에 등장하는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의병 곽재우 등의 활약으로 일본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이는 백성이 나라를 지켰으며, 백성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말해주는 가장 큰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사절단을 보내게 되며 우리만의 문화를 그들에게 전수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일본인들에게 환대를 받고 있는 사절단의 그림만 보면, 우리를 귀하게 여기고 우리의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열망을 엿볼 수 있어 어깨에 힘이 절로 간다. 그러나 그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듣노라면, 허울좋은 문화 교류일 뿐 두 눈 뜨고 우리의 문화를 일본에 넘겨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난다. 그림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우리 장인들의 고통과 한이 얼마나 깊었을까 말이다.

 

춤추는 아이 소동, 홍이는 할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첩자라는 누명을 벗기고자 사절단으로 뽑히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간다. 양반들의 틈바구니에서 차별과 괄시를 받으면서도 자기가 왜 일본땅에 가려고 하는지 목적을 잊지 않고 참고 견디며 드디어 일본땅을 밟고,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뺏기 위한 일본의 감시 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조선행 배에 몸을 싣는다. 아버지를 비롯해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일본의 감시 속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언젠가는 조선에서 구하러 오겠지 하는 희망만 품고 살아야 하는 조선의 백성들. 그들이 조선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을 나라가 알고 품어줬더라면 그들의 깊은 주름은 평온하기만 했을 것이다.   

 

홍이를 따라 시장에서 한양, 한양에서 일본으로 먼 길을 따라가면서 조선전기와 후기로 넘어가는 그 중간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일본과 조선의 외교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사절단 그림으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역사의 한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된 글을 보면서 우리의 뿌리는 백성에게 있으며, 그 뿌리를 잡고 백성을 위하는 또 다른 백성이 있기에 조선은 건재했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동화로 꾸며진 역사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의 과거는 파헤치고 열어보면 그 속에 우리가 모르던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우리의 역사 한 장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풀어낸 역사동화, 이것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어른들이 미래에게 과거의 시간을 들려주는 귀한 시간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남이 자랑스럽다. 권력에 눈이 멀어 나라를 뒷전으로 생각한 그들이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 애쓰는 많은 백성이 있었고, 그 백성의 힘으로 일군 나라. 대한민국은 그래서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기에 나는 한 나라의 백성으로 희망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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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살자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마을 9
박찬희 글, 정림 그림 / 책고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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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두 아이가 키우던 장수풍뎅이 '꾸미' 가 죽었다. 수컷은 성충으로 탈피하지 못한 채 몸이 부패되었고, 암컷만 부화되어 외롭게 지내다 움직임이 잦아들어 내내 지켜보았는데 스스로 흙 속에 얼굴을 묻었다. 작은 아이는 죽은 꾸미를  사육통에서 며칠을 못 꺼내게 했다. 자기 집에서 며칠 더 지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먹이 냄새도 더 맡게 해야한다고 먹이도 새것으로 갈아주고, 사육통 먼지도 닦아주고 하더니,  꾸미를 손바닥 위에 조심히 올려놓고는 아파트 뒷편 화단에 고이 묻어주었다.  봉분도 예쁘게 다듬어주고 하트 모양으로 문양도 새기고 주위엔 다른 동물들이 오며가며 파헤칠까 돌맹이로 울타리도 쌓아올려 놓았다.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 학원을 오며가는 길, 그 곳에 들러 꾸미를 보고 온다고 한다. 움직임이 없는 꾸미를 보며 며칠 맘 아파하더니 무덤을 만들고 다녀오는 길에는 친구를 만나고 온 듯 밝은 표정이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이란 것은 세월이 흘러도 나이가 어려도 들어도 누구에게나 똑같은 온도로 추억을 남겨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릴 적 잠자리를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준다고 삶은 달걀을 으깨주고 반절을 올렸던 나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레 스쳐지나간다.

박찬희님이 쓰고 정림님이그린 '강변 살자'는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겨진다. 선에 맞추어 짜맞추듯 그리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대로를 담아낸 듯한 풍경과 마치 지나간 시간 속에 내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다음장으로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그 속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강물이 흐르며 바위에 부딪쳐 내는 마찰음이 금방이라도 들릴 듯 싶고, 바람이 불어 내 머리칼을 자연스럽게 날려줄 것만 같다. 우리의 눈에 자연스럽고 싱싱함을 선사하는 '강변 살자'의 그림이 편안함을 주는 것은 인위적으로 꾸미려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이것이 자연이 주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고, 우리는 그 자연 속에서 내일의 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아이들과 가평에 있는 잣향기 푸른숲을 산책했다. 하늘높이 뻗은 잣나무들과 바람결에 따라 햇살 기운을 따라 맘대로 뻗어나간 코스모스와 여러 들풀들을 만나면서 편안했다. 그러나 계곡이라 불리웠던 그곳엔 바위와 돌들이 모습을 드러난 채 목말라하고 있었다. 운동화를 벗고 바지를 걷어올려야만 지나갈 수 있었던 그 길을 망설임없이 걸어갈 수 있다는 현실 앞에 우리 가족은 잠시 주춤했다. 번거로움이 없어 좋아했을 법한데도 누구하나 발을 내딛지 못하였다. 마치 걷는 방법을 잊은 듯 싶었다. 낯설었다. 힘들게 흘러가는 가는 물줄기 하나만이 모습을 드러낸 바위 틈으로 흘러 목을 축여주고 있었다. 우리의 자연이 언제 이렇게 황폐해진 것일까 마음이 아팠다.

 

'강변 살자'의 배경이 된 여주 신륵사의 여강. 여전히 아름답고 자연이 살아있는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의 자연스러움은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한 위장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곳의 주인은 모두 그곳을 떠나갔다. 주인을 떠나보내고 새로 만들어진 터전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발길을 돌려 세운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기 편한 곳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많은 이들의 힐링 장소로 변모했지만, 그 사이 그 곳을 떠나야만 했던 주인들이 다시는 그 곳으로 찾아 올 수 없다는 현실을 우리는 편리함과 안락함에 잊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나 어릴 적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살았던 자연의 모습을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추억으로만 들으며 자라고 있다. 길가다 발견하는 한마리의 메뚜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잠자리의 짝짓기 모습에 넋이 나가고,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미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오늘 보고 내일 봐도 또 감탄하고 놀라운 듯 소리내어 엄마 아빠를  부른다. 빨리 봐주러  달려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려 못 보게 되면 세상 근심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아쉽다는 표현이 끊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주는 치유이며 공감이다. 그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자연 속에서 뒹굴며 자연의 이치를 배우며 자연을 닮아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점점 인위적으로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공간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이 마음 아프다. 조금은 부족하고 어설퍼도 그속에서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꾸는 많은 생명체의 ​삶을 우리는 무슨권리로 함부로 파헤치고 단장이란 이름으로 꾸미는지 묻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 어른의 욕심으로 그만 간섭해야 한다. 권리는 가진 자가 누려야 할 명백한 책임이며 미래이다. 우리 아이들의 권리에 눈독들이는 일은 더이상 없길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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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슬픔
공광규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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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느 새 마흔을 넘어섰다. 어릴 적 마흔을 넘은 선생님들과 동네 어른들을 보면서 저 나이가 되면 뭐든 잘하고 막힘이 없으며,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이뤄낸 완성됨을 의미하는 숫자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내가 맞이한 마흔은 여전히 바둥거리며 이루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 채 헤매며 서툴고 후회와 반성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이다. 짧고도 짧지 않은 나의 삶을 돌아보면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 창피하고 후회스러운 순간,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결정 등 나름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인생이지만 나의 인생을 글로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문득 문득 든다. 후회는 후회되는 대로, 대견함은 뿌듯함으로, 가슴 한켠에 자리잡은 응어리는 터트려 상처딱지를 앉도록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싶다. 그 때마다 자신의 시간을 담담히 글로 써내려가는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라는 그들이 참 부럽다. 글이든 그림이든, 소리든 동작이든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들이 말이다.

우리 아빠는 광부셨다. 저학력에 가진 기술 하나 없이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고, 밥벌이를 위해 시작한 것이 사촌형을 따라간 강원도 탄광촌이었다. 깜깜한 굴 속에 모자에 달린 렌턴에 의지하여 석탄을 캐며 젊은 시절을 보내셔야 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옷 가지 몇 벌뿐 지켜 내야만 했던 자식만 넷.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서워도 싫어도 가야만 했던 지하 굴 속.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긴장을 잘 하며 소심한 우리 아빠. 지금도 여전히 은행. 병원. 관공서를 혼자 못 가신다. 엄마를 대동하거나 만만한 나를 불러서 가야 큰 소리 치고 너털웃음 지으며 여유있는 척 하며 일을 보신다. 그런 사람이 깜깜한 어둠을 뚫고 그 길을 갔을 때는 책임감이란 자동시스템에 전원이 켜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탄광이 폐광하고 도시로 올라온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아빠는 여전히 동굴을 못 들어가신다. 입구부터 시작된 어둠은 그가 천성적인 겁쟁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씀으로는 지겹도록 들어가본 굴 안 봐도 그 속을 훤히 알기에 돈 주고는 안 들어간다 하시지만, 그의 굵은 손마디와 딱딱해진 손바닥에 서린 땀이 그가 그동안 짊어졌던 짐이 얼마나 무겁고 힘겨웠는지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어린 자식들 앞에서 술마시고 맥없이 쓰러지며 한맺힌 울분과 눈물을 보여야만 다음 날 다시 갱에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옛날, 왜 그리 아빠를 원망하고 미워만 했을까. 아빠는 왜 단단하고 무쇠같은 존재로만 있길 바래왔던가. 그의 눈물 한 번 닦아주지 못한 것이 이렇게 후회되고 죄송스러울지 그 때는 왜 몰랐을까.

-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늘 실패의 삶을 산다. 늘 결핍의 삶을 살다가 죽는 존재가 아버지다. 48

오늘을 사는 그의 삶은 행복할까. 귀농하여 혼자 살면서 계절마다 택배 상자를 올려다보내며 잘 받았냐고 전화하시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자식의 삶에 관여하고 사시는 지금 그는 행복할까. 암 수술을 받던 날, 수술 대기실로 들어갈 때 긴장해서 자식 목소리에 흔들리던 그 눈동자를 잊을 수 없는데, 회복하고 나와서는 그 동안 못 잔 잠 다 잔 거 같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씀하신. 나의 아버지는 지금쯤이면 행복하실까.

정말 오랜만에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면서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여전히 철부지 자식이며 여전히 내 곁에 건재해 주기만을 바라는 미운 자식으로만 곁에 있다는 것이 내 스스로 깊은 숨을 내쉬게 한다.

공광규님이 회상하는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시골집을 맞으면서 절로 나의 부모님과 어린 시절 힘들게 살면서도 나만의 꿈을 꾸던 그 곳이 떠올랐다. 몇해전 가족 여행 길에 찾아간 시골집은 이미 다 철거되고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집.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우리 아이들은 집이 없어졌다는 그 말을 한참동안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공광규님이 시골집을 두고 모텔에서 자야만 했던 그 시간 모텔에서 울고. 여섯 식구 힘들다 하면서도 옹기종기 모여살았던 그 장소가 말끔히 사라진 그 시간, 나는 마음으로 깊이 울었다.

여고시절. 문예창작반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며 문학소녀의 꿈을 꿀 때가 있었다. 일주일에 몇 편의 시를 써서 선배에게 검사를 받고 수정을 하고 다시 쓰고 하며 나름의 글을 쓴다고 폼잡았던 시절이었다. 그 때는 왜 고민하는 척, 왜 깊은 고민을 하는 척하며 글을 썼는지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한정적인데 내가 마치 그들의 심정을 다 알고 있는 듯, 그들의 존재 이유를 다 아는 듯 글에 그 의미를 모두 담아내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나보다 1살 많은 선배가 고쳐준다고 내 맘에 수많은 상처를 내주었다. 그때 썼던 시 중에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나그네'와 '새벽'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시 두편이다. 나그네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나였을텐데, 새벽을 맞이해보지도 못한 나였을텐데 무슨 힘으로, 무슨 생각으로 그 시를 썼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모르겠는 그 두 편의 시가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으며, 수상의 기쁨으로 이어져 텅 비어있을 뻔한 생활기록부의 한 공간을 채워주었다. 지금은 어른 흉내낸 여고생의 척을 눈감아주신 결과로 받아들인다.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  눈과 비에 얇아지는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95. 수종사 풍경

 

아마 달이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날은  /  보나마나 수달네 개구쟁이 아이들이

매화꽃잎 위에 똥을 싸 놓고서는  /  그걸 매화향이라고 울길 때일 것입니다.    98. 병산습지

 

시를 배웠다. 시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해서 써서는 절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글이다. 그리고 그것의 마음을 진정으로 느끼고 살펴볼 눈과 마음이 있어야만 글로 태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광규님의 '수종사 풍경과 병산습지' 두 편의 시를 읽으면서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그 속에서 참아내는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는 성인의 성숙됨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엄마를 따라 절에 가면서 처마끝에 매달려 낭랑한 소리를 내는 풍경이 참 좋다 했으면서도 그 속에 감춰진 고통을 몰랐으며, 바람이 몸을 때릴 때 참아내며 내는 그 소리를 좋다고만 한 내 귀와 마음은 또 얼마나 철부지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구쟁이 수달네 아이들이 매화꽃잎에 똥을 싸놓았다. 그걸 매화향이라고 우긴다. 그걸 다 알고 있는 달이 함박웃음 떠뜨리면서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주고 우리는 그 매화꽃향을 맡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며, 매화꽃을 볼 때마다 어딘가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을 수달네 개구쟁이를 찾아볼 것만 같다. 못 찾으면 그 날 밤 달님에게 어디에서 우릴 훔쳐보고 있었냐고 물어봐야할 것만 같다.

- 현실감과 생동감 있는 시를 쓰려면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시인이라고 다 올바른 지식인은 아니지만 올바른 지식인이라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 인간을 살기 어렵게 하는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고 따져야 한다.  101

 시를 쓰는 일은 내 존재를 확인해가는 여러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115~117

시는 시다. 이어지는 글로 해명할 수있는 산문과는 다르게 짧은 문장과 몇 단어로 읽는 이에게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공광규님의 시와 그 속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분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추구하는 삶이 어떤 빛깔인지 떠올려보게 된다. 또한 나의 느낌이 실제와 다르다하더라도 그 또한 글이 주는 또다른 매력이라고 수달형제들처럼 억지 웃음지어보고 싶어진다.

 

정말 오랜만이다. 나의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게 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를 만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을 말이다. 공광규님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난 것이 처음이지만 마치 작가님의 삶을 모두 들여다본 듯한 착각이 일게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을 내가 잘 어루만지며 걸어가고 있는지, 느끼면서 주위를 살피며 살아가고 있는지 문득 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난 달부터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다. 부쩍 생각이 많아진 요즘, 공광규님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남겨준다.

-사람들은 경쟁과 속도를 현대적 인간의 보편적 선으로 알고 있다. 같은 길을 빨리 가려고 대로에서 무리들과 경쟁한다. 그러다보니 부딪히고 막히고 싸우는 것이다. 차라리 나만의 오솔길을 가는 것이 편하고, 실제로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190

나를 중심으로 뻗어간 나의 주변의 사람들.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다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잘나고 멋진 나보다는 나를 가장 아끼는 나로 살면서 주변을 돌보면서 그들의 삶에 나다움을 심어주는 그런 나로 살아가고 싶다. 공광규님이 말한 나만의 오솔길. 나는 나만의 오솔길 위에 나다움을 키워내며 나로 인해 주변인들의 삶에 잠시나마 위안을 안겨주는 그 순간을 만들어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공광규님의 글을 읽은 동안 참 따뜻하고 위안을 받았다. 그 위안 속에 나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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