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히토리의 어떻게 살 것인가 - 일본 최고의 자수성가 억만장자가 깨달은 인생을 바꾸는 5가지 태도
사이토 히토리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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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하고,

찬란한 인생

《사이토 히토리의 어떻게 살 것인가》

사이토 히토리

현대지성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스스로 존재할 이유를 깊게 고민하게 됐다. 만 13세부터 20대 중반까지 오랫동안 고뇌했고, 답을 찾지 못하거나 매번 바뀌었다. 때문에, 스스로 존재할 이유를 찾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필수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인간은 없으니까. 수천 명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도 세상은 돌아가고, 모두의 기억에서 잊힌다. 나 하나 없어진다고 해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게 무섭지 않다. 개인의 존재 이유는 이기적이게도 오롯이 나를 위해서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내가 죽으면 세상도 사라진다. 나를 제외한 타자의 인생은 내가 없어지는 순간 연동이 끊긴다. 하지만, 그것이 죽어서 사라져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존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죽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빨간색만 보려고 작정하면 세상이 온통 붉게 보인다. 존재 가치를 의심하거나, 죽음의 이유를 찾고 세계를 배회하면 결국 그에 상응하는 것만 나타난다.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는 상황이 거듭되고, 사는 것보다 죽음이 매혹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렇게 스틱스강에 비친 한심한 몰골에 주먹을 내지르다가 강에 빠져 타르타로스가 되어 하데스의 거친 손길을 맞이한다.

남에게 불행을 강요하는 행위만큼 저열한 행동은 많지 않다. 개인적인 화를 해소하기 위해 타인과 함께 있는 공간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행위는 너무도 멍청한 행동이다. 불행은 감기처럼 전염력이 강하고, 인공색소처럼 착색된 후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 부정한 행위는 타인을 서서히 죽이는 것과 같다. 세상엔 부정에 물든 인간들이 넘친다. 꿈을 짓밟고, 할 수 없다고 말하며, 포기를 종용한다. 그들은 대체로 실패자이거나 시도조차 해본 적 없는 게으른 인간이다. 그들은 기력 흡혈귀이자, 감정 살인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고, 무시하는 것은 하책이며, 맞서는 것은 실책이다. 가족 중에 있으면 반드시 따로 살아야 하며, 친구라면 끊어내고, 회사라면 이직해야 한다. 물론, 어딜 가든 그런 인간들을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매번 도망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건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버틸 필요는 없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밭에 가뭄이 오기 전에 미리 물을 줘야 한다. 설령 그 선택 때문에, 남들보다 밭이 초라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의 밭은 누구보다 윤택할 것이니까.

나의 삶

나만의 인생에서 쓸모없는 남을 빼면 불행도 없어지고, 도태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비교와 질투는 암과 같아서, 더 증식하기 전에 도려냈다. 째마리 같은 인간들을 최대한 멀리했다. 나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힘썼다. 남들이 어떻게 살든 그것은 그들의 삶일 뿐이다. 적게 벌었을 땐 적게 썼고, 못 벌었을 땐 벌 수 있도록 노력했다. 기대감을 객관적으로 살피면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거나 넘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욕심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비교와 질투도 저 멀리서 대가리를 빼꼼 내밀고 있다.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외면하지 않았다. 비교하고, 질투했으며, 비대해진 욕심에 거만함이 올라와도 일단 해야 할 일을 반복했다. 결실 없는 여러 해가 흘렀고, 지쳐 주저앉았을 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쩐지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희망적인 영화나 소설처럼 툭툭 털고 바로 일어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다시 돌아볼 현재의 길을 아주 견고하게 다지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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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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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묶여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인간은 여러 행위를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 의식은 항상 묶여있다. 잠재력을 죽여놓고 자신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에만 머문다. 단정 짓고, 짐작하면서 하지 않는 삶을 지속하면 발전도 할 수 없고, 행복하지도 않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과 할 수 없다는 짐작으로 못 하면서 삶을 방치하는 것은 다르다. 선택과 집중은 훌륭한 방법이지만, 여기저기 치이며 흘러가듯 내버려두면 결국 후회만 남는다. 인간은 언제든 해볼 수 있고, 당장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이든 해보는 게 좋지 않은가.

포부는 주변에 밝히지 않는 게 좋다. 세상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넘친다. ‘해보자!’, ‘그거 좋은데?’라는 단어는 사장됐다. 얼마나 많은 자영업이 망하고, 회사가 문을 닫는지에 대해서만 나열한다. 월급에 중독된 인간들의 조언은 영양가가 없다. 뛰어본 적 없는 사람이 뜀박질을 가르치고, 날아본 적 없는 생물이 허공을 가르는 기분에 대해서 떠드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신의 그릇에서 허우적거리며 타인을 질투할 뿐이다.

훌륭한 사람의 조언을 발판 삼는 것은 아주 좋은 판단이다. 그러나 선택은 항상 개인의 몫이다.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항상 나 자신이어야 한다. 실패와 좌절은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실패가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지만, 타인의 종용으로 선택권을 잃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온전한 나로서 살아갈 것이다.

책 관련 이야기

책을 받고 옆면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양쪽 다 세네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간지는 흑지를 사용했고, 내지는 전부 색지로 채웠다. 공기, 흙, 불, 물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색지와 글씨체를 선택했다. 내지도 일반적인 책에 사용하는 80g의 모조지보다 훨씬 두꺼운 100~120g 정도로(정확하지 않음) 보인다. 심지어 제본도 사철 방식을 채택했다. 실험적인 글에 더 실험적인 기획으로 엄청난 책이 탄생했다. 무지개떡 같기도 하고, 용지 샘플북 같기도 한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그 어떤 책보다 소장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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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
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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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이별

《나의 사전연명의향서》

김지수

북루덴스


2010년 4월 13일, 산뜻한 봄 내음이 이어지던 날 아버지는 향년 55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내가 만 16세 때의 일이다. 폐에 덕지덕지 자리 잡은 암세포에 끊이지 않던 기침이 온 집안을 채웠지만,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앞서 선행된 대장암 4기에 아버지는 장을 1m나 절제했다. 그렇게 배에 튜브를 삽관해 변을 빼내야 했음에도 결국 완치에 성공했고, 식단도 철저하게 조절했다. 그러나 2년 만에 재발한 폐암도 4기였고, 암세포는 1년 만에 뼈와 뇌 등 온갖 곳으로 전이했다. 아버지는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기 전까지도 단 한 번도 희망을 놓지 않았고, 힘든 것을 내색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영원한 잠에 들고 14년이 흘렀을 때, 어머니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희 아빠도 어린 자식들 두고 가는 게 미안하다며 많이 우셨어.”

지금도 아버지의 눈물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가 타인 옆에서 울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조문객의 발길이 끊기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바깥으로 나가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그때 먹먹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됐다. 후회와 분노 그리고 자조와 반추를 거듭하며 소리 없는 슬픔을 왕창 쏟아냈다.

《나의 사전연명의향서》를 읽으며 오래간만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부분적으로 소실됐던 기억이 생생하게 재생됐고, 조금이나마 그 심정이 느껴졌다. 죽음으로 향하는 공포와 동시에 아이와 함께 세상을 관찰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하고 싶고, 세상을 원망하진 않았을까. 개인의 인생은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지만, 고통스럽기도 하다. 먹방 유튜버의 음미보다 직접 먹는 게 훨씬 생생하고, 타인의 죽음보다 작은 바늘에 찔린 내 손가락이 훨씬 아프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내가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 그렇기에 사는 것도, 사람답게 죽는 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살을 종용하는 것은 아니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인간이 스스로 연명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들은 대체로 조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의미 없는 연명을 이어간다. 물론, 스스로 병원에서 끝까지 버티고 싶다면 그것도 존중한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환자실 너머 무지개 병동(1인 임종실)에 다다르면 보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치료, 저런 치료, 이 약품, 저 약품의 비용은 남은 이들의 미래를 앗아간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매번 방문하는 아이들은 평생 트라우마가 자리 잡는다. 나와 비슷한 유년을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조증,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여러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었다. 차라리 시골집 안온한 곳에서 우리 가족이 온전히 슬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마무리했다면 어땠을까.

온몸에 여러 호스를 삽입하고, 병마가 소소한 생각마저 앗아가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렇게 대미를 장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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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5.겨울호 - 88호
박광규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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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소설

《계간 미스터리》

2025 겨울호, 통권 88호

나비클럽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많지 않다. 감정이 격해져 서로 욕설을 주고받거나, 과하게는 서로 멱살을 잡을 수도 있다. 물론, 타인에게 가하는 물리력(정당방위는 제외)은 이유 불문하고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타자의 생명을 끊어낸다는 것은 복수라는 이유가 있어도 지지하기 어렵다. 체계와 법을 무시한 행위는 비수가 되어 결국 내 심장에 박히기 마련이다. 또한, 인간사에서 살인을 정당화할 만큼 정의라는 개념이 완벽하게 정립되지 않았다. 타인의 숨을 멈추게 할만한 일의 정도는 80억 인구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는 너무도 터무니없을지도 모르고, 어떤 이유는 합당하지만 과하게 잔인할지도 모른다. 정당한 방위는 있음이 분명하나, 정당한 살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급박한 상황에서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주거에 불법으로 침입한 괴한을 살상하는 것은 당연히 의도가 없었기에 정당한 방위라고 볼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안전해야만 하는 공간에 동의 없이 쳐들어온 것이니까. 복수는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범법 행위로 해당 인물을 처단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러한 행위는 나에게도, 남아있는 가족에게도, 나아가서 사회에도 큰 물의를 일으킨다.

나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 역설적으로 추리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누가 범인인지, 어떤 트릭을 사용했는지는 곁가지일 뿐 크게 중요하지 않다. 너무 말이 되지 않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어설퍼도 그 나름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평생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존경심이 샘솟는 것이다. 하지만, 동기는 다르다. 살인이라는 행동을 촉발한 원인이 적절하지 못하면 아무리 대단한 속임수와 추리가 동반된다고 해도 흥미를 잃게 된다.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는 어느새 살인 동기보다 속임수와 추리에 중점을 맞추었다. 사람의 숨을 강제로 거두게 한 동기로는 도저히 공감이 생기지 않았다. 추리소설에서 필연적인 타인의 생명을 끊는 일이 단순 아이템이 되어버린 것에 경악했다. 사회적 메시지도, 개인의 철학도, 문학적 통찰도 없이 특이하게 죽이고, 참신하게 풀어내기만 하는 것을 미스터리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한국 추리소설의 발전

계간 미스터리를 읽은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그 흔한 셜록 홈스도 탐독한 적 없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두어 편을 읽은 게 전부라 미스터리 장르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긴 호흡과 답답함 그리고 동기와 수법이 이해되지 않아 이 장르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단편 미스터리는 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평소 고전 단편 소설의 맛에 집착하는 만큼 이것 또한 새롭게 맛있게 잘 차려진 단편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배경도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배경과 상황, 말투 그리고 동기와 수법까지 전부 한국적이다. 있을 법한 감정선이 소설에 더 동화되게 만든다. 마치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도 많은 초단편과 단편 추리소설이 줄지어 나오길 기원하고, 한국의 추리소설을 기대한다.

나비클럽의 실행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도전을 열열하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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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는 사람들
김희영.류정희 지음 / 담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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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든

떠나는 삶

《천천히 걷는 사람들》

김희영 원작 / 류정희 그림

담다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여태 모아둔 돈으로 시골에 작은 집 하나 장만해서, 편의점이든, 작은 카페든, 밭일이든 뭐든 하며 입에 풀칠만 하면서 글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서울에 남은 가족, 연인, 친구, 지인을 핑계로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평생 혼자 살 수는 없겠다는 불안감이, 나를 좀먹는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그 일에 치이며 좀 더 쉬운 일을 찾아 헤맸다. 막상 찾아온 좋은 기회에도 정신은 점점 나약해지고, 불만을 찾아낸다. 하기 싫은 이유가 쉼 없이 튀어나오고, 쓸데없는 고민과 혐오가 줄지어 흘러나온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정답을 바라지 않는다. 인간사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고, 비교적 수월하게 남들보다 못하게 산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고, 늘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 그저 나만의 뜻을 찾는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으로 갈 것인가. 적어도 지금과 같은 인생은 아니다.

속초, 강릉, 삼천포, 해남, 제주도 등 알아본 곳은 참 많다. 구매할 집까지 물색했다.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원하는 인생을 쟁취할 수 있다. 30대 초반의 남자가 모든 걸 버리고 시골로 향하는 삶은 타인의 흥미를 자극하기 나쁘지 않은 설정이다. 그것으로 유튜브도 시작하고, 글도 작성한다. 새로운 경험으로 색다른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 한가지 때문이 아니다. 복합적인 두려움이 실행을 멈추게 만든다. 금전적인 부담과 시행착오 그리고 내 사람들의 관계와 본질적인 고독이라는 복합적인 두려움. 아마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떠나지 않을까. 남들과 똑같은 삶, 평생 비교하는 인생, 그 무수한 자조적 생각들을 뒤로한 채 천천히, 천천히 걷고 싶다.

···

하루에도

떠나고 싶다는 욕망과 떠날 수 없다는 결핍이 창작의 연료가 된다. 평생 떠나지 못하는 상태로 정신적인 괴로움이 증폭되었을 때 간헐적인 여행으로 식견을 넓히며 해소를 반복하는 것이다. 빽빽한 공간에서 고즈넉한 장소를 그리워하고, 그 녹색의 또 갈색의 풍경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연소한다. 가끔은 벗어나지 못함을 실체 없는 대상에 하소연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다시금 직시한 현실은 생각보다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묵묵히 걷는다. 언젠가는 이라는 기약 없는 희망은 그 어떤 사탕보다 달다. 날카롭게 구멍 뚫린 사탕에 혀가 베여 비릿한 피 맛이 올라와도 씹어 삼킬지언정 뱉어내진 못한다. 어쨌거나 달콤하니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실패를 예감하고, 포기를 갈망하지만, 퇴근 후 습관적인 운동, 독서, 작문이 쩍쩍 갈라지는 갈증을 해소한다. 이것은 참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명확하게 해설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다. 이조차도 버티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길 부정하고 싶어서, 텁텁한 일상에 나름의 단맛이 느껴지고, 그 텁텁함조차도 행복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해서, 좋아하는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 모두가 애쓰고, 힘들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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