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너는 더 강한 사람 - 어차피 지나고 나면 먼지 같은 일이야
김묘정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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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라는

허울

《생각보다 너는 더 강한 사람》

김묘정

필름출판사


나는 타인의 시선에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자유로워서도 안 된다.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배제하는 것이 나만의 인생을 잘 살아가는 거라고 착각했다. 그렇게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서 어느 정도는 사회에 녹아들 필요성을 느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고, 타인의 실수도 집어내지 않았다. 그런 행동은 늘 부정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논리의 가장 큰 적은 무논리와 목청이었다. 입바른 소리는 권위가 있어야만 효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권력엔 상대의 목소리를 잠그는 권능이 있었다.

나도 틀렸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매번 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내뱉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과연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없었을까? 모두 참는 것이다.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사회라는 게 생겨났다. 그곳에 섞여야 구성원이 된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구성원이 되었다.

사회에 등을 지고, 보편적인 정신상태와 거리가 먼 인간이 바로 나다. 나와 비슷한 인간이 물질적 성공을 거두고, 명예까지 얻는 걸 매체를 통해 접했다. 그러나 대부분 그 권위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거나, 빈 깡통으로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밑바닥이 금세 드러났다. 부서지는 속 빈 강정, 요란하기만 한 빈 수레, 비대해진 자아를 잡지 못하고 폭주하다가 스스로 나락으로 뛰어든다. 어쩐지 나의 결말을 미리 보게 된 것 같았다. 혹자는 ‘어쨌거나 돈은 많이 벌었잖아.’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곁엔 사람이 남지 않았다.

성공에 집착하고,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자신마저 잊게 되진 않을까.

넘치는 것보다 모자람을 추구한다. 넘치는 이유는 만족을 모르는 나의 부정적 본성 때문이다. 적당한 성공, 적절한 금전, 수준이 비슷한 연인 또는 배우자, 감당할 수 있는 업무,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와 욕심, 그게 무엇이든 넘쳐흐르는 것보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게 장기적으로 평온했다. 아쉬움은 약간의 미련을 남겼지만, 그것은 성장의 동력이 됐다. 넘치는 것 또한 더 큰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어렵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만들지 못했다.

적당함을 아는 것은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것과 달랐다. 능력도 없고, 꼬이기만 했을 땐 타자의 노력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했다. 그렇게 조금의 발전도 없이 방구석 평론가가 되었다. 인색한 부자와 구질구질한 거지 둘 중 무엇이 더 나은가? 이것에 옳고 그름은 없었다. 인색한 부자는 돈이라도 많으니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미 배부른 사람에게 산해진미를 들이민들 부른 배가 꺼지진 않는다. 풍족한 허무와 가난한 허무의 본질은 결국 공허가 아닌가. 물질에 미친 편협한 눈알이 왜곡된 풍경을 비추고, 나는 그 풍광에 현혹될 뿐이다.

자산 10억이 넘는 사람이 스스로 서민이라고 부른다. 100억 대 부자도 따라서 자신을 개미라고 낮췄다. 나는 그들의 말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딴 의미 없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삶이, 지금이, 내가 의미 없어졌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역설적으로 부자도, 가난도 허들이 상당히 높다. 나는 대체 어디에 속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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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문기행 - 국문학자의 걸음으로 기록된 일본
이경재 지음 / 소명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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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본

조선의 흔적

《일본인문기행》

이경재

소명출판


근대 일본 문학은 음침하고, 눅눅하다. 읽다 보면 알 수 없는 가려움이 느껴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대표적으로 《인간 실격》을 집필한 다자이 오사무의 글이 그렇다. 기분 나쁘면서도,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예술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두 번 읽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당시 일본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편협한 사고로 지어진 시 같은 소설이 즐비했다. 인간 본성의 법칙보다 더 내밀하고 깊은 불편함을 발산한다. 이러한 극 미시적인 소설을 거듭 읽으면 내면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개인마다 다른데, 얇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음이거나, 광분하여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나일 지도 모른다. 왜 이런 소설을 읽어야 하며, 어째서 세계적으로 극찬받는 것일까. 유명한 비평가가 읽고, 크게 감탄해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소설이라서? 전부 참이자 거짓이다.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과 절대로 읽으면 안 되는 책은 없다. 누가 봐도 쓰레기 같은 책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동요가 인다면, 읽을 것이다. 타자가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너무도 훌륭한 책이라도, 시선이 머물지 않으면 뇌리에서 완벽하게 지워진다.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소설을 아는가? 문학은 감성적이기만 한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감성을 아는가? 일본과 중국은 나쁘고, 일본은, 중국은 등등 분류 없이 한곳에 묶어서 이해하고,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들은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들의 답을 낼 수 없다. 아마도 평생 확언할 수 없을 것이다. 나쁘고, 착한 것, 선과 악, 명과 암, 생과 사, 나와 타자, 아침과 밤, 밀물과 썰물, 물과 불, 남자와 여자, 한국과 다른 나라들 전부. 우리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암울한 예술가들

흡연, 음주, 약물 등 중독과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예술가들은 대체로 무언가에 중독되었다. 대표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 프랜시스 베이컨, 에드거 앨런 포, 찰스 보들레르, 어니스트 헤밍웨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알코올 중독이었다. 영화계에선 정신질환 관련 처방 약물과 향정신성 약물에 중독되어 자살에 이르거나 인생 자체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예술가에게 중독은 뮤즈와도 같다. 일반인과 다른 사상과 실행력을 얻기 위해선 자신을 파괴해야 하는데, 가장 쉬우면서 아주 천천히 철저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게 바로 중독이다. 그들은 평생 담배를 태우고, 대마도 곁들인다. 해장으로 알코올을 섭취하며, 온갖 정신과적 약물에 의존한 채 몽롱하게 살아간다. 결국엔 마약에까지 손대고, 예술성마저 붕괴해 인격 자체가 산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예술은 오래도록 살아남길 기원하며 눈을 감는다. 그 말로를 알고 있음에도 나는 종종 스트레스라는 핑계로 또는 예술적 감각의 증폭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백해무익한 습관을 되찾으려 한다.

일본 구석구석에 조선인의 넋이 묻어있고, 숨결이 안개처럼 자욱하다. 여기저기 학살이 만연하고, 저주의 붉은빛이 대지를 뚫고 나온다. 근대 일본 예술은 대체로 암울하다.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혹) 등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심지어 미시마는 정치적인 진일보를 위해 할복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살아간 윤동주와 이상은 다르다. 아무래도 어떤 목적과 이상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결핵 등 병 때문이지 자살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내가 추구하는 예술은 깊고, 편협하며, 처절하다. 주인공은 항상 암울한 상태를 유지하며 타자의 도움도 거부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그려가는 나는 그다지 처절하지 않다. 남들과 비슷하게 행복하고, 타인과 다르지 않게 불행하다. 조금 덜 안온할 수도 있고, 조금 더 아플 수도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때문에, 평생 스스로 숨을 거둘 생각은 없다.

《일본인문기행》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계속해서 어떤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일본의 문화 유지력 때문이었다. 타국의 문화는 철저하게 짓밟고, 복구할 수 없도록 훼손한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는 최대한 보존한다. 문화가 말살되면 민족성도 따라서 사라진다. 예술은 문화를 지키는 방파제와 같다. 예술이 점점 사라지고, 조롱거리가 되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영광이 있을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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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6.1.2 - no.64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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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을

수 없는 말

《악스트, 비보호》

악스트 격월간지, 통권 064


틀딱, 딸피, 꼰대, 영포티, 아재, 젠지 스테어, 급식충, 잼민이, 수저론(금, 은, 동, 흙), 헬조선, 탈조선, 노키즈 존, 맘충, 개저씨, 한남충, 한남유충 등 셀 수도, 세고 싶지도 않은 온갖 혐오적 표현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것들을 유머로 승화해야 하며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씹)선비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진지함은 가벼움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가벼움이 진지함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논리의 가장 큰 대항마가 비논리인 것처럼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몇몇 단어는 혐오가 아닌 진실일지도 모른다. MZ는 원래 세대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젊고, 유약하며, 개념이 없는 사람’을 MZ라고 지칭한다. 심지어 그 MZ에 속해있는 80년대생도 그 조롱에 동참했다. 이제 80년대 중반까지 만으로 마흔이 됐다. 그들은 MZ이면서 아재고, 영포티다. 현시점 대한민국에서 40대는 가장 많은 조롱을 받고, 견뎌야 하는 세대가 됐다. 우리가 입에 올린 조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부 경험하게 된다. 열심히 조롱했던 그들도 결국 영포티가 될 것이고, 그 조롱의 공간에서 열불을 토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나는 제대로 된 말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다. 무분별한 비난 대신 논리정연한 비판을 표출하고, 쓸데없는 세분류에 현혹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타인이 이해됐고, 밉지 않았다. 자주 사용하는 말이 높은 빈도로 떠오르는 생각이 된다. 거듭된 상념이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보편적인 태도로 변모한다. 혐오, 차별, 폭력에서 눈을 돌린 게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산재한 불행에 초점을 두지 않고, 소소하고 잔잔한 행복에 감사함을 느꼈다. 불평불만 이전에 스스로 행동했다. 사회구조를 바꾸긴 어렵기에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실행력 없는 방구석 혐오는 밀어두고, 현실에서 한 번이라도 더 봉사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글이글 끓던 대한민국의 찬연한 본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점차 사라지는 화마 밑에서 새하얀 꽃이 피어났고, 그 사이사이에서 파란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올랐다.

비보호

가끔 침대 위에서는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증상은 한겨울에 조금 더 심해진다. 보일러를 적당한 온도로 틀어두고, 침대 바로 밑에 이불을 깔고 드러눕는다. 침대라는 방파제 아래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딱딱한 바닥에 등이 배기며 나태함에 대한 속죄를 한다. 평소에도 밀려드는 생각에 단일한 것에 집중하기 어려운데, 누워서 눈을 감으면 더욱 심해진다. 온갖 생각의 해일이 세로토닌을 휩쓸어간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생각 하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심호흡과 명상 그리고 강도 높은 운동이 불면을 밀어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게 실패했을 땐 마지막 수단으로 맥주 한 캔을 한 번에 털어 넣고, 책을 읽는다. 그렇게 생성된 협소한 간이 울타리 안으로 몸을 욱여넣어 서서히 잠에 취한다.

*음주는 1년에 5번 정도로 거의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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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히토리의 어떻게 살 것인가 - 일본 최고의 자수성가 억만장자가 깨달은 인생을 바꾸는 5가지 태도
사이토 히토리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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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하고,

찬란한 인생

《사이토 히토리의 어떻게 살 것인가》

사이토 히토리

현대지성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스스로 존재할 이유를 깊게 고민하게 됐다. 만 13세부터 20대 중반까지 오랫동안 고뇌했고, 답을 찾지 못하거나 매번 바뀌었다. 때문에, 스스로 존재할 이유를 찾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필수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인간은 없으니까. 수천 명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도 세상은 돌아가고, 모두의 기억에서 잊힌다. 나 하나 없어진다고 해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게 무섭지 않다. 개인의 존재 이유는 이기적이게도 오롯이 나를 위해서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내가 죽으면 세상도 사라진다. 나를 제외한 타자의 인생은 내가 없어지는 순간 연동이 끊긴다. 하지만, 그것이 죽어서 사라져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존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죽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빨간색만 보려고 작정하면 세상이 온통 붉게 보인다. 존재 가치를 의심하거나, 죽음의 이유를 찾고 세계를 배회하면 결국 그에 상응하는 것만 나타난다.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는 상황이 거듭되고, 사는 것보다 죽음이 매혹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렇게 스틱스강에 비친 한심한 몰골에 주먹을 내지르다가 강에 빠져 타르타로스가 되어 하데스의 거친 손길을 맞이한다.

남에게 불행을 강요하는 행위만큼 저열한 행동은 많지 않다. 개인적인 화를 해소하기 위해 타인과 함께 있는 공간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행위는 너무도 멍청한 행동이다. 불행은 감기처럼 전염력이 강하고, 인공색소처럼 착색된 후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 부정한 행위는 타인을 서서히 죽이는 것과 같다. 세상엔 부정에 물든 인간들이 넘친다. 꿈을 짓밟고, 할 수 없다고 말하며, 포기를 종용한다. 그들은 대체로 실패자이거나 시도조차 해본 적 없는 게으른 인간이다. 그들은 기력 흡혈귀이자, 감정 살인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고, 무시하는 것은 하책이며, 맞서는 것은 실책이다. 가족 중에 있으면 반드시 따로 살아야 하며, 친구라면 끊어내고, 회사라면 이직해야 한다. 물론, 어딜 가든 그런 인간들을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매번 도망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건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버틸 필요는 없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밭에 가뭄이 오기 전에 미리 물을 줘야 한다. 설령 그 선택 때문에, 남들보다 밭이 초라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의 밭은 누구보다 윤택할 것이니까.

나의 삶

나만의 인생에서 쓸모없는 남을 빼면 불행도 없어지고, 도태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비교와 질투는 암과 같아서, 더 증식하기 전에 도려냈다. 째마리 같은 인간들을 최대한 멀리했다. 나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힘썼다. 남들이 어떻게 살든 그것은 그들의 삶일 뿐이다. 적게 벌었을 땐 적게 썼고, 못 벌었을 땐 벌 수 있도록 노력했다. 기대감을 객관적으로 살피면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거나 넘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욕심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비교와 질투도 저 멀리서 대가리를 빼꼼 내밀고 있다.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외면하지 않았다. 비교하고, 질투했으며, 비대해진 욕심에 거만함이 올라와도 일단 해야 할 일을 반복했다. 결실 없는 여러 해가 흘렀고, 지쳐 주저앉았을 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쩐지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희망적인 영화나 소설처럼 툭툭 털고 바로 일어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다시 돌아볼 현재의 길을 아주 견고하게 다지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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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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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묶여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인간은 여러 행위를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 의식은 항상 묶여있다. 잠재력을 죽여놓고 자신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에만 머문다. 단정 짓고, 짐작하면서 하지 않는 삶을 지속하면 발전도 할 수 없고, 행복하지도 않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과 할 수 없다는 짐작으로 못 하면서 삶을 방치하는 것은 다르다. 선택과 집중은 훌륭한 방법이지만, 여기저기 치이며 흘러가듯 내버려두면 결국 후회만 남는다. 인간은 언제든 해볼 수 있고, 당장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이든 해보는 게 좋지 않은가.

포부는 주변에 밝히지 않는 게 좋다. 세상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넘친다. ‘해보자!’, ‘그거 좋은데?’라는 단어는 사장됐다. 얼마나 많은 자영업이 망하고, 회사가 문을 닫는지에 대해서만 나열한다. 월급에 중독된 인간들의 조언은 영양가가 없다. 뛰어본 적 없는 사람이 뜀박질을 가르치고, 날아본 적 없는 생물이 허공을 가르는 기분에 대해서 떠드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신의 그릇에서 허우적거리며 타인을 질투할 뿐이다.

훌륭한 사람의 조언을 발판 삼는 것은 아주 좋은 판단이다. 그러나 선택은 항상 개인의 몫이다.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항상 나 자신이어야 한다. 실패와 좌절은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실패가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지만, 타인의 종용으로 선택권을 잃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온전한 나로서 살아갈 것이다.

책 관련 이야기

책을 받고 옆면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양쪽 다 세네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간지는 흑지를 사용했고, 내지는 전부 색지로 채웠다. 공기, 흙, 불, 물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색지와 글씨체를 선택했다. 내지도 일반적인 책에 사용하는 80g의 모조지보다 훨씬 두꺼운 100~120g 정도로(정확하지 않음) 보인다. 심지어 제본도 사철 방식을 채택했다. 실험적인 글에 더 실험적인 기획으로 엄청난 책이 탄생했다. 무지개떡 같기도 하고, 용지 샘플북 같기도 한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그 어떤 책보다 소장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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