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여태 모아둔 돈으로 시골에 작은 집 하나 장만해서, 편의점이든, 작은 카페든, 밭일이든 뭐든 하며 입에 풀칠만 하면서 글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서울에 남은 가족, 연인, 친구, 지인을 핑계로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평생 혼자 살 수는 없겠다는 불안감이, 나를 좀먹는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그 일에 치이며 좀 더 쉬운 일을 찾아 헤맸다. 막상 찾아온 좋은 기회에도 정신은 점점 나약해지고, 불만을 찾아낸다. 하기 싫은 이유가 쉼 없이 튀어나오고, 쓸데없는 고민과 혐오가 줄지어 흘러나온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정답을 바라지 않는다. 인간사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고, 비교적 수월하게 남들보다 못하게 산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고, 늘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 그저 나만의 뜻을 찾는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으로 갈 것인가. 적어도 지금과 같은 인생은 아니다.
속초, 강릉, 삼천포, 해남, 제주도 등 알아본 곳은 참 많다. 구매할 집까지 물색했다.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원하는 인생을 쟁취할 수 있다. 30대 초반의 남자가 모든 걸 버리고 시골로 향하는 삶은 타인의 흥미를 자극하기 나쁘지 않은 설정이다. 그것으로 유튜브도 시작하고, 글도 작성한다. 새로운 경험으로 색다른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 한가지 때문이 아니다. 복합적인 두려움이 실행을 멈추게 만든다. 금전적인 부담과 시행착오 그리고 내 사람들의 관계와 본질적인 고독이라는 복합적인 두려움. 아마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떠나지 않을까. 남들과 똑같은 삶, 평생 비교하는 인생, 그 무수한 자조적 생각들을 뒤로한 채 천천히, 천천히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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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떠나고 싶다는 욕망과 떠날 수 없다는 결핍이 창작의 연료가 된다. 평생 떠나지 못하는 상태로 정신적인 괴로움이 증폭되었을 때 간헐적인 여행으로 식견을 넓히며 해소를 반복하는 것이다. 빽빽한 공간에서 고즈넉한 장소를 그리워하고, 그 녹색의 또 갈색의 풍경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연소한다. 가끔은 벗어나지 못함을 실체 없는 대상에 하소연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다시금 직시한 현실은 생각보다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묵묵히 걷는다. 언젠가는 이라는 기약 없는 희망은 그 어떤 사탕보다 달다. 날카롭게 구멍 뚫린 사탕에 혀가 베여 비릿한 피 맛이 올라와도 씹어 삼킬지언정 뱉어내진 못한다. 어쨌거나 달콤하니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실패를 예감하고, 포기를 갈망하지만, 퇴근 후 습관적인 운동, 독서, 작문이 쩍쩍 갈라지는 갈증을 해소한다. 이것은 참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명확하게 해설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다. 이조차도 버티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길 부정하고 싶어서, 텁텁한 일상에 나름의 단맛이 느껴지고, 그 텁텁함조차도 행복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해서, 좋아하는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 모두가 애쓰고, 힘들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