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꿈 - 에드거 앨런 포 시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공진호 옮김, 황인찬 해설 / 아티초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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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p] 사랑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말로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습과 방식 그 자체를 가리킨다. 사랑에 빠졌다는 말은, 말 그대로 한 존재가 완전히 내던져져 깊이를 모르는 수렁에 빠지고야 말았다는 말이고, 존재 자체가 더 이상 홀로 성립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근래에는 잘못된 사랑들이 너무도 많다. 그것 또한 사랑의 한 가지 방식이고,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모양이 너무도 기괴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우울증은 없다'라고 망발을 하는 용찬우(박찬우)나 남성성에 미친 듯이 집착하며, 앤드류 테이트에 자신을 대입하는 레드필코리아(장민서)의 사랑법은 어딘가 뒤틀려있다. 사실 장민서의 연애학 강의를 사는 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며, 그런 것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사람들이 호감을 갖지 못하고, 연애를 하지 못하며,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저런 사기꾼들의 강의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이 단단하지 않고, 어떤 문제들을 계속해서 외부에서 찾으려는 도피적인 관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은 결국 남에게 배우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존재가 제삼자의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다. 나와 네가 우리가 되는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런 이상한 강의들을 사서 시청할 필요가 있을까? 인터넷 전사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맡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목숨을 연명하다가는 평생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에드거의 사랑은 다르다. 사랑과 진실 그리고 소신을 중시했던 에드거는 어떤 자극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았다. 남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감을 믿었고, 그 사랑을 쟁취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모두를 진심으로 연모했고, 애도했다. 일평생 외도는 없었으며, 범죄기록 또한 전무했다. 이 단편 소설가이자 시인의 인생은 참으로 짧고, 아름다웠다.






[48p] 르노어

아아! 금 그릇이 깨졌다!

영혼이 영영 날아가 버렸다!

조종을 울려라! 거룩한 영혼이

스르르 삼도천을 건넌다.

그런데 기 드 베레여,

너는 눈물도 없는가?

지금 울지 않으려면 영영 울지 말라!

보라! 저기 저 비참하고

딱딱한 관에 네가 사랑한 르노어

그녀가 초라하게 누워 있다!

어서 오라! 영결사를 읊으라,

장송곡을 부르라!

그리도 젊은 나이에 죽은

여왕 같은 망자를 위한 성가를.

그리도 젊은 나이에 죽어 곱절로 죽은 르노어

그녀를 위한 애가를!

"비열하구나! 너희들은 돈을 보고 그녀를 사랑했고

거만하다고 미워했으며

그녀가 병약해져 몸져눕자

너희들은 그녀를 저주했다, 죽었으면 하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영결사를 읊으랴,

어떻게 진혼곡을 부르랴?

그녀가 그리도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은

너희들, 너희들의 사악한 눈,

너희들의 비방하는 혀 때문이었다고 할까?"


우리가 죄를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미친 듯 떠들지 말라!

하느님께 올리는 안식의 노래를

그렇게 엄숙하게 부르지 말라,

그러면 망자가 자책하지 않겠는가!

그 사랑스러운 르노어

그녀가 '먼저 갔다'

희망과 더불어 날아갔다,

지금 너는 네 신부가 되었을 그 소중한 아이,

아름답고 상냥한 르노어

그녀가 보고 싶어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녀는 초라하게 누워 있다,

금발 머리에만 생기가 있다,

머리칼에는 아직 생기가 있지만

눈에는 죽음이 있다


"물러가라! 오늘밤

나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애가를 높이 부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옛 찬가를 불러 그 소리에

천사를 둥실 실어 보낼 것이다.

조종을 울리지 말라!

저주받은 세상에서 하늘로 오른

그녀의 사랑스러운 영혼이

성스러운 환희에 둘러싸여 떠가는 중에

그 소리를 듣지 않게 하라.

그녀의 분한 혼이 이 땅의 사악한 자들에게서

분리되어 하늘로 갔다, 지옥에서

분리되어 천국 높은 곳으로 갔다,

슬픔과 신음에서 분리되어 천국의 왕

그의 곁, 황금 보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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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
변진서 지음 / 부크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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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3 감정의 주인이 되기]

[01 마음과 직면한다는 것]

[143p]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거. 내가 변화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나쁜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것은 어릴 때나 가능한 방법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나잇값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각 나이별로 해야만 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게 서른 살이 넘어가면 적어도 부모님에게 과하게 의지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인생은 부모님이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의 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혼자 살며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완전한 독립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혼자 살 집에 대한 전세자금, 결혼, 집 매매도 모두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경우는 완전한 자주적 독립이라고 보진 않는다. 소위 손 벌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쯤 우리는 독립을 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이다.


[02 내 안에 상처받은 아이 마주 보기]

[146p] 우리는 어떤 결정을 본인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 의식적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결정은 무의식에 의해 내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에는 상처로 가득한 '내면 아이'가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입 밖으로 뱉어낼 수 없는 상처를 품에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는 가족에게도, 연인에게도, 심지어는 신에게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상처를 목도하고, 치유받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상처가 곪고 썩기 시작하면 치료받기도 어려워진다.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내면의 아픈 나를 직시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믿을만한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가장 현명할 테다.


[03 그림자 인정하기]

[149p] 우리는 평소 인식하던 자아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한가운데 존재하는 자기로 나아가야 한다. 자아를 걷어 내고 자기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 곧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이다.

진짜 나를 찾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 쓰는 것을 사랑했다. 밤새 책을 읽기도 했고, 낮에는 글을 쓰고 싶어서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는 운동을 하고 되었고, 또 어쩌다 보니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나는 시간만 나면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을 직업으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물론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는 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꿈이 하나일 필요는 없이 않은가. 나는 아직도 소설가가 되고 싶고, 산문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서평가가 되고 싶기도 하다.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있든 사회에서 어떤 직업으로 불리든 관계없이 결국에는 읽고, 쓰는 일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04 NOT SORRY]

[156p] 나답게 살아도 괜찮다. 철없게 살아도 괜찮다. 남들과 좀 달라도 괜찮다. 칭찬받지 않아도 괜찮고, 욕 좀 먹어도 괜찮다.

나는 스스로를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돈이 많은 사람을 욕보이는 것이 아니다. 부자도 부자 나름의 행복이 있듯이 나도, 내 나름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개개인의 행복은 단 하나의 물질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돈에 맹목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쨰서인지 항상 부자와 거지를 논한다. 꼭 그렇게 극단으로 치우쳐야만 속이 후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거지가 되고 싶지도 않다. 금전도 중용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넉넉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다. 넉넉하면 저축을 해두고, 부족하면 더 노력을 하는 것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천 원 한 장도 가지고 있을 필요 없다는 극단적인 무소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임금을 바라지 않는데, 어째서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거지를 논하는 것일까. 내 옅은 지식으로는 그러한 궤변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때문에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남들과 좀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대로 살아도 충분히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05 스스로를 상처 주지 않는 방법]

[160p] 알베르 카뮈 '세계의 악은 거의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며, 또 선의도 총명한 지혜 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는 법이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멍청한 신념이 가득한 사람은 대화를 거부한다. 보통은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일단은 수긍을 한다. 일단은 인정을 하고난 후 '더 공부해서 그 말에 반박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한다거나,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군요'라는 말을 하는 게 정상인의 범주일테다. 그러나 자신이 선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은 타인이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을 때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분명 앞에서 내 말을 듣고 있고 눈을 뜨고 있음에도 정신은 어딘가로 향해 있다. 자신과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은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것이다. 타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 본인의 사상만을 관철하려고 하는 사람은 가까이하기 대단히 어렵다. 그럼에도 나 또한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런 이들 조차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염원한다. 나는 무지하고, 또 무지하고, 더 무지한 사람이니까.


[06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구분하기]

[166p] 지혜라는 건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의연함, 통제 가능한 부분에서 용감성, 또는 그 둘을 구분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 둘을 잘 구분해서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자존감도 높다.

대부분의 모든 상황에서 무던한 아버지와, 모든 상황에서 불안을 안고 사는 어머니 사이의 나는 어떤 상황에서는 심각하게 무던했고, 어떤 상황에서는 과하게 불안을 표출했다. 혼돈이라는 말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해야 할 상황에서는 의연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공감하지 못한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칭한다고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서 이제는 좀 바뀌어 보려고 한다.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통제가 가능한 상황만을 보며 살아가고 싶다. 통제가 되지 않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넘기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하면서 말이다.


[07 틀 깨부수기]

[175p]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

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의 주된 내용이 아닐까 싶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여러가지의 사랑 중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듯하다. 나 또한 스스로를 사랑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항상 자신감 있어 보이는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가끔씩은 내가 너무도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지금 잠시 쉬어가는 중이라고.


[08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181p]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부코스키도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애쓰지 말고 기다리라고. 글을 수 있는 마음,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유독 글을 쓰는 것에 조급함을 느낀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타인에게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조급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왜 조급함이 생기는지 적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급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다 의미가 없었다. 언젠가 내 글을 원하는 시기가 올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그런 시기가 오기 전까지 열심히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09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다면]

[191p] 돈이 내 꿈, 내 존재를 이루는 수단이기에 중요한 건지, 아니면 돈이 내 인생의 목표, 꿈이기에 중요한 건지. 결정은 당신의 몫이다.

꿈을 우선시한다고 해서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돈은 내 꿈을 쟁취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니까. 그러나 요지는 거기에 있지 않다. 돈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넘치게 필요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의 액수는 사람마도 너무도 다르다. 모두가 동일한 금액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설령 타인이 돈이 일절 필요 없고 무소유로 살겠다는 태도를 취해도 그것을 인정해 주는 자세이다. 결국 남이지 않은가. 그가 돈을 벌지 않는다고 나에게 피해를 주진 않는다. 그가 목적이 돈에 있는 사람을 험담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를 나무랄 수 없다. 타자의 인생 목표에 감을 놓고 배를 놓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STEP 4 나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01 편견으로부터의 자유]

[196p] 사람들의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색안경을 낀 자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색안경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에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색안경이 있음을 인정하면 상대의 편견 어린 판단에 의연할 수 있다. 판단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소리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예체능 쪽에 재능이 있었다. 운동을 잘했고, 특이한 그림도 잘 그렸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고, 작문도 꾸준히 하다 보니 누군가 내게 소설가나 시인이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도 평범한 회사원이 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때문일까, 내 겉모습은 책을 읽을 것 같은 모양새 하고는 거리가 멀다. 얼굴도 무표정에, 무뚝뚝하게 생겼고, 키는 작지만 몸은 다부지다. 더해서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왼쪽 팔 전체에는 '올드 스쿨'이라는 장르의 검은색 타투가 꽉 들어차있다. 이런 나는 한국 사회에서 뒷 말하기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런 나는 남들보다 더 스스로를 증명하기가 어려웠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과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누군가에게 쫓기듯 글을 썼다. 그러다보니 나를 위해 썼던 글들이 결국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로 변모되었다. 물론 덕분에 월간 에세이라는 잡지사에 내 글이 게시되긴 했지만 어쩐지 행복한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닌 남에게 나를 보이기 위한 글에는 어떤 애정이 생성되기 어려웠다. 심지어 그들은 나의 증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상 내가 100만 부를 판매한 유명작가가 된다고 해도 그들은 나를 싫어할 것이 분명했다. 그저 남을 욕하고 험담하길 좋아하는 협잡꾼들에게 증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02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198p] 심리학적으로 보면 고정관념이 생기는 이유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편견에 따라 쉽게 믿어 버리니 생각이 닫히는 것이다.

편견에 자주 노출되는 나조차도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도 타투가 있으면서 '이레즈미'장르의 타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편견이 생겼다. 흔히들 말하는 문신 돼지 국밥 육수들과 나는 다르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타투가 없는 사람들에게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몸에 그림이 있는 사람'일뿐이고 그런 사람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타투는 선택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감을 한다. 사회를 바꿀 수 없으면 나를 바꾸고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때문에 내 주변에는 편견이 없고 개성적이며 독창적인 사람들만 남았다. 타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게 아니다.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굳이 내가 그들의 입맛에 맞춰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내 경험에서 나온 나름의 이유니까.


[03 집단 무의식에서 해방되기]

[203p] 누군가 옳은 길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그 길을 따라가면 우리는 사유할 필요가 없다. 당연하게도 편리하니까. 그런데 거기에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바로 성장과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몸이 편할 수 있는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자유가 없다. 반대로 독립을 하면 몸은 좀 불편하더라도 모든 것이 자유가 된다. 혼자 살면 아침, 점심, 저녁 전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 잔소리 없이 자유롭기도 하다. 다만 삼시 세 끼를 모두 내가 차려 먹어야 하고, 뒷정리도 스스로 해야만 한다. 그런데, 평생을 부모님이 해주는 음식을 먹고,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일생을 우리에게 온 힘을 다 하신 부모님들을 위해서라도 독립을 해야만 한다. 당신들의 삼십 년을 포기하고 우리를 보살핀 사람들도 쉴 권리가 있지 않은가. 힘들고 어렵겠지만, 이제는 성장의 길로 접어들 때다.


[04 세상의 모든 이분법]

[204p] 너와 내가 감정이 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사람을 미워하게 만든다. 나중에는 저 사람이 왜 미웠는지 그 이유조차 잊게 된다. 그저 모든 행동이, 그 사람 자체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오류가 바로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가 아닐까 싶다. 서로에게 존중이 있고, 그 사람의 의견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인격이 싫어지는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고 서로 다은 명도와 다른 회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면 극단(極端)이 얼마나 소수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앎을 인지하면 세상은 점차 아름다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05 선과 악의 세계]

[214p] 우리에게 끼워진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을 벗기는 과정과 비슷하다. 세상이 주입한 그림자, 아니무스, 아니마 등의 알을 깨고 우리는 진정한 자기로 나아가야 한다.

고정관념은 분명 다양성을 억제하지만, 때로는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성별의 제약 없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부분 사실이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은 강한 사람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현장직이라면 더 할 말도 없다. 공익을 위해 사람과 대면을 하는 공무는 남녀의 구분이 아닌 강한 사람이 필요하다. 시민은 남자 소방, 경찰대원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강한 소방, 경찰대원을 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는 것이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신체는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의 성별을 가진 경찰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범인 또는 취객과 다투는 현장직에 적합하지 않다 뿐이지, 여성 피해자의 초동 조치는 같은 여자가 하는 게 피해자에게 더 적절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항상 물리적인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무적인 일도 할 것이도, 그에 따른 인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나, 고정관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할당제는 결국 '여자는 할 수 없다'의 방증이 되기도 한다. '할당제' 없이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똑같은 신체검사와, 똑같은 시험을 보고 당당하게 합격한 사람에게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행태가 있다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아주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당장에 미국의 경찰만 해도 그렇다. 모두가 똑같은 실기 시험을 본다. 애초에 남자와 여자가 다른 실기 시험을 보는 것 자체가 여자는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아닐까?


[06 명상의 가르침]

[217p]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기도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가르침이 필요하다.

[07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

[221p] 나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면 무아 상태를 경험하면 세계와의 일체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것은 곧 사랑이다. 너와 나는 하나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하나다. 이렇게 동시성을 느끼면 타인이라는 개념이 생길 수 없다. 이것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사람에게 평안함을 선사한다. 남이 미워질 때 법륜스님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 불순한 마음이 조금씩 정화됨을 느낀다. 내가 독서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무아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와의 일체감을 느꼈던 경험이지만 그것이 정말 무아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의 나는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 가족과 함께 간 고깃집에서 나는 어떤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은 살짝 누런 색이었고,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활자를 읽기만 했다. 자음과 모음을 이해하고, 단어와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심오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읽는다는 행위가 즐거웠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기억은 내 유년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당시의 기분을 다시금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독서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필로그 - 당신의 삶을 만끽하기를]

[222p] 목표를 이뤄도 남들이 인정해도 곧바로 공허함이 따라왔다. 이 공허함은 내가 별로인 사람이기 때문에 느낀다고 믿었다. 그래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다.

지금도 사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가 너무도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스스로를 폄하하고,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매질하는 것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급히 먹으면 체하듯 과한 채찍질은 나의 성장을 일순간 멈추게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제는 부정적인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해도, 억누르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계속해서 노력할 게 분명하니까. 쉬는 것에 자책감을 가지지 않고, 푹 쉬어보려고 한다. 좋아하는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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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
변진서 지음 / 부크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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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01 사랑하면 알게 됩니다]

[14p] 진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욕망은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뚜렷한 꿈이 있다. 그러나 그 꿈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타자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어떤 사람은 꿈은, 돈이 되지 않으니 허상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게 꿈이 없다. 꿈이 없는 사람은 실속이 없다는 뜻이고, 실속이 없다는 것은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아가 없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자신이 살아갈 동력을 얻고자 하고, 그 방법으로 남의 꿈을 폄하하는 것을 채택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대적하는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다. 자아가 없는 사람들과 다투는 것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랑 싸우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전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02 왜 나는 나를 모를까]

[21p] 만약 당신이 목표를 이루고 업무를 하면서 샘솟는 에너지와 희열, 행복감을 지속하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원하던 걸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샘솟는 에너지 덕분에 어려운 일도 잘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목표를 이룬 순간에는 기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따분함이나 환멸, 무기력을 느낀다면 그건 아직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하기 싫은 회사의 업무를 하면서도 성취감을 얻어낸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쨌든 사회인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 현재의 업무이고,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큰 착각이었다. 회사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사원 개개인을 그저 부품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비이상적인 구조 속에서 부품들끼리 다투는 현상이 심화됐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평소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새롭지만 익숙한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회사를 다닐 때와는 다른 고난과 역경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부정이 있지만, 그것을 이겨낼 원초적인 긍정이 내면 깊은 곳에서 대들보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앞날이 어둡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요즘이 더 행복하다.


[03 자신을 잃었다는 증거]

[28p] 탁월함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유독 잘하거나, 유독 재미를 느끼거나, 유독 마음 가는 방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한 가지를 압도적으로 잘하는 것에는 무조건 천재적인 재능이 필요하다. 그것도 그냥 천재적인 재능이 아닌, 천재들의 천재 느낌으로 말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김연아와, 손흥민 그리고 정찬성, 봉준호, 방시혁 같은 사람들이 아마도 천재적인 재능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고 성공할 수 없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한 가지로 안된다면 두 가지, 세 가지를 접목시키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읽고 쓰는 것에 조금의 재능이 있다. 그런데 하루에 몇 권씩 읽어버리는 다독 가들 만큼 많이 읽지는 못하고, 김영하 작가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는 문장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때문에 나는 많이 읽는 것보다는 깊게 읽는 것과 잘 쓰는 것보다는 일단은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게 자신만의 재능을 발현하는 것이 천재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04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법]

[45p] 별 고민 없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대로 살면 편하다. 문제가 생겨도 세상 탓, 남 탓을 하며 책임 회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나다움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삶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고귀하다. 이 고귀함은 분명 삶에 밑거름이 된다. 도전의 결과가 실패이든 성공이든 상관없이 도전해다는 자체가 나를 고귀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두려워 말자. 나를 잃은 삶보다, 안주하는 삶보다 훨씬 멋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니.

나는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것도 존중한다. 그것은 입증이 끝난 안정된 삶으로 향하는 길이 맞으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그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길에서 엇나간 사람들을 나무란다. 패배자라는 말도 안 되는 틀에 가두려고 한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폄하하면 자신의 불행한 삶이 사라지는 줄 착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패배자는 그들일지도 모르겠다.


[05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 구별하기]

[55p] 자아실현의 욕구를 따르면 인생의 목표는 내부에 있게 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고 즐기다 보면 누구를 따라 하고 부러워할 시간이 없다. 자아실현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삶이 바로 주체적인 삶이다.

타인들은 진정한 나를 알 수 없다. 특히 깊은 관계를 유지한 적 없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가족도 나를 잘 모르고 나도 가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친하지도 않은 '그냥 아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건 개소리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기준은 자신의 기분과 상황 태도에 따라 편차가 크다. 내가 기분 좋은 날은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덜 무례하게 느낄 것이고,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상대방은 적의가 없어도 자신의 내면에서 적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걷고자 하는 길을 타자의 기준에 맞춰서 변경할 필요가 없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훨씬 지혜롭다.

현대의 사람들은 100세 시대를 논한다. 30대라면 70년이나 남았다. 그 시간을 모두 타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살아야 하나? 절대 아니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가정해도 답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숨이 24시간 후 멈춘다는데도 불구하고 타인의 입방아에 주눅 들어야 하나? 당연히 절대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


[06 열어줘, 마음의 귀를]

[67p] 장미는 피어야 할 시기가 오면 핀다. 꽃이 활짝 필 때까지 잘 가꾸기만 하면 되니까. 활짝 피지 않은 봉오리 상태도 장미는 장미다. 아직 필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스스로 참 많은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떤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열심히 썼던 단편소설도 쓰디쓴 고배를 마셨다. 느낌이 좋았고, 참 열심히 쓴 글인데도 불구하고 당선되지 못했다. 이후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회의감에 깊게 빠지는 순간이었다.

때문일까, 그때부터 독서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독서를 하면 무조건 산문도 같이 쓴다. 그런데 글이 쓰기 싫어진 탓에 읽지도 않았다. 타고나길 읽기만 하는 건 아주 어렵다. 좋은 글을 읽으면서 쓰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밥상에 매일매일 진수성찬이 올라오는데, 반찬은 먹지 말고 밥만 먹으라고 하면 누가 그것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나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구분되지 않았다. 읽기는 쓰기의 전조이고 쓰기는 읽기의 시초라고 생각했으니까. 나에게 읽기와 쓰기는 한 단어와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읽고 쓰기를 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하루 8시간씩 읽고 쓰는 게 가능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의 문구를 보고 조금을 위안을 얻었다. 나에게도 피어야 할 시기가 올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는 등단할 것이고, 언젠가는 내 책이 눈앞에 현현할 것이다. 그전까지는 쉬지 않고 읽고 쓰기를 반복해야겠다.


[07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69p] 아무리 생각해도 독서라는 취미에는 장점밖에 없다.

독서가 고차원적인 취미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냐며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한 책을 붙들고 오랫동안 읽고 있으면 핵심을 읽으라는 건방진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독서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한 책을 깊게 읽는 방법도 있고, 자신에게 필요한 핵심만 뽑아내 빠르게 독파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책은 참 많은 종류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방법만으로 읽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책을 꼭 효율적이게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읽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

물론 조금 더 나은 방법, 괜찮은 읽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취미이지 않나? 내가 이렇게 읽는 게 좋고, 느리더라도 깊게 읽고 싶다고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나. 핵심이 아니더라도 그 활자 자체가 좋을 수도 있고, 남들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장이 내게는 엄청난 열의를 불태우게 만드는 문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독서에도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그리고 자신이 읽는 방법이 맞다고 강요하기도 한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아닐까 싶다. 한 권의 책에서 몇 백가지의 서평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독자들이 모두 다르게 사유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꼭 한 가지로 집약될 필요는 없다.


[STEP 2 매일을 당당하게 가치 있게 용기 있게]

[01 두려워 말고 일단 도전해]

[78p] 내가 삶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사실 실패란 없다. 삶이 지속되는 한 모든 경험은 그저 과정일 뿐이다.

모든 좌절의 순간은 결국 지나간다. 그리고 그것들은 질 좋은 경험이 된다. 최악의 상황은 전부 심지만 굳건하게 유지한다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 물론 그 고통의 시간에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시간도 우리를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독서를 한다고 해서 당장 내 인생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독서를 하는 모두가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독서를 했다.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만 하고 있는다면 절대로 나아지는 것이 없을 테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딱 한 장이라도 읽어보자.


[02 두려움이라는 허상]

[83p] 나는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하라고 말한다. 뭔가 해보려 할 때 느껴지는 걱정과 두려움은 허상이니까. 당신이 하는 걱정의 95%는 일어나지 않을 문제이니 부디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 보라고.

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두렵지 않았을 때 인생이 잘 풀렸다. 사소한 문제로 전전긍긍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렵더라도 일단 실행에 옮긴 모든 것들은 긍정으로 다가왔다.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행동을 하며 후회하는 게 더 값진 경험이었으니까. 하지 않았을 땐 후회만 남았고, 경험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두렵더라도 실행에 옮겼다. 그것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03 시작이 반이야]

[85p]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그게 진리라고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적으로 규정했다. 세상을 적으로 만들 것인가, 내 편으로 만들 것인가. 이것은 내가 정하면 된다. 아주 쉽다. 그냥 세상은 '원래'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자연의 이치라는 걸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왜 이렇게 나에게만 가혹할까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세상은 모두에게 냉정하고 가혹했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강하게 살아남을지, 도태되어 한 줌의 재로 사라질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였다. 세상은 절대로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고, 결국에는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에 대항할 시간에 책이라도 한 권 더 읽고 글이라도 한자 더 쓰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임을 직시했다. 세상은, 모두는, 나의 적이 아니다. 내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허상에 불과했다.


[04 세상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

[93p]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미련을 버리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무엇이든 통제해 보려고 했던 시기가 있다. 사람도, 일도, 상황도, 내 마음도. 그러나 무엇 하나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통제하면 안 되는 것까지 통제하려고 했던 탓일까, 그 제약들은 대부분 구속처럼 보였고 보이지 않는 수갑이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감독과 관리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몰아세울수록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유약했던 시기에 몸까지 아프게 되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그 시기에 나는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체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제로 미련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미련이 사라질 때마다 편안함은 배로 증폭되었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은 멀리 했고, 일은 그만두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보다는 지금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현재의 상황은 불안정한데, 마음은 점차 안정적이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우선시하게 되었고, 할 수 없는 일은 보지 않았다. 해야 할 일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붙들고 있기엔 내 체력이 좋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항상 탕진했던 체력이 조금씩 비축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평범한 작은 행복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05 성장을 위한 최고의 비법]

[96p] 의미를 찾으니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원하는 일, 의미를 찾는 게 쉽지 않지만 한번 찾으면 삶에 생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생동감 있는 삶의 맛을 당신도 느껴 봤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독서와 작문을 잘하니까, 읽고 쓰는 것이 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쓰는 것을 반복했다. 이것은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읽고 쓰는 것은 생각만 한다고 해서 능력이 발전하진 않는다. 결국은 읽어야 하고 써야 했다. 그 부분에서는 참 큰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에는 걸림돌이 되었다. 나의 글에는 목표가 없으니 색이 없었고, 어떤 의미도 내포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서 쓰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저 계속해서 읽고 쓰기만 했으니 내 글에는 어떤 생동감도, 영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나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만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독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깊어진 고민 끝에 목표 하나를 정할 수 있었다. 나를 찾고 싶은 사람을 위한 소설, 남이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소설을 쓰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글에 크게 공명할 수 있는 독자 한 분을 찾는 게 지금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쓰다 보면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06 너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99p] 편도체가 '고장' 났다는 표현은 고치면 제기능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건 노력하면 느낄 수 있다는 뜻이며 감정이 '희미하다'는 건 뚜렷해질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유독 남에게 하는 공감이 인색하다. 완전한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에 힘을 쏟는 게 너무도 아까웠다. 하루에 할 수 있는 공감의 총량도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공감은 타인을 만나야 하는 것이고, 나에게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많은 체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행위였다. 그곳에 체력을 낭비할 만큼 나는 건강하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와 책을 보며 공감을 배웠다. 사람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는 게 가장 좋았다. 그리고 작품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서사는 대부분 거짓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은둔형 외톨이 같은 방식의 공부법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후 영화 속 인물처럼 최대한 담백한 사람들만이 곁에 남게 되었다. 어머니도, 누나도, 연인도, 친구도 모두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억지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공감이 되었다. 그들과의 공명은 어떤 피로감도 불러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내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서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어쩌면 표현이 서툰 것일 수도 있다. 진심으로 공감은 하나,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어려울 뿐이다. 그러나 표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내 사람에 대해서는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미숙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다.


[07 공감에도 노력이 필요해]

[104p] 슬픔을 풀어 주기 위해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건 공감적 배려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민', 상대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고자 하는 '자비'와 비슷한 개념이다.

책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소위 말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T의 성향이라고 치부하고 '너 T야?'라는 부정적인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그들은 공감 능력에 과하게 집착한다. 자신의 인생 최대 업적이 '공감능력'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공감능력도 지능이다'라는 말은, 그 능력이 부족하면 전체적인 지능이 낮다는 것을 표명하진 않는다. 오히려 무분별한 공감은 정서적 지능이 높은 게 아니라 변별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변별력이 과하게 부족한 사람들을 우리는 백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공감하는 것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타인에게 지능이 낮다는 악담은 과연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편협한 틀에 가두는 것은 아주 멍청한 행동이다. 그것이야 말로 인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한다.

공감능력은 계륵과도 같다. 너무 없으면 반사회적 인격장애인이 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높아도 인권단체처럼 범죄자들에게도 인권을 부여하고, 군인의 훈련을 무슨 어린이 놀이방으로 만들어버리는 참사로 이어진다. 이것 또한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진배없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한쪽으로 치우친 능력은 필요 없다. 지금이야말로 중용이 가장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공감능력에도 중용이 절실히 필요하다.


[08 상대를 이해하는 법, 그럴 수도 있지]

[108p] 나의 마음에 평화가 오면 나에게 좋다. 내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타인에게도 여유롭게 대할 수 있다. 그러면 관계도 좋아진다.

타인을 생각하는 게 우선인 것은 좋지 않다. 우선 내 마음을 돌아보고, 정말 괜찮은지 여러 번 확인해야 한다. 내가 건강해야 상대에게도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 나를 돌보지 않고, 건강을 해치며 상대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괜히 억울한 마음만 커진다. 자신은 상대를 이렇게 많이 생각하는데, 돌아오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억울함이 커지고, 관계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는 것을 타인이 무조건 충족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땡땡이 애인 생겼다고 우리들한테 소홀하잖아'라고 하는 말은 피해자는 자신이고, 가해자는 연인이 생긴 친구이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이며 대단히 멍청한 생각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내 친구가 연인이 생겨서 많이 바쁘구나,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네'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공감일 테다.


[09 마음은 넓게 이해는 여유롭게]

[117p] 마음이 편해진다는 건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다. 더 이상 내 가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은 조금 더 살 만해진다.

작가는 이 장에서 절대라는 가치 판단의 위험성을 알렸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외도는 절대 안 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부분에 절대를 대입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성친구와 만나는 것은 싫지만, 내가 막아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외도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흡연자들의 흡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도에서 대놓고 담배를 태우는 행동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어떤 부분에서는 절대라는 단어를 대입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절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든 부분에서 절대를 대입할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부분에서 절대를 외치는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꽉 막힌 사람이다. 또한 모든 부분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아가 없고, 주체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절대라는 말을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말도 절대를 대입하는 일이다. 여기서 또 말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중용이 중요하다.


[10 나의 생각 알아차리기]

[123p] 생각하는 나를 인지하는 순간 많은 게 달라진다.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리면 곧 그 생각을 하지 않는 결정도 할 수 있다.

생각이 많아지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자기 직전의 그 고요함은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생각하면 안 된다는 고민을 하면서 다시금 사에 빠진다. 그 근심의 늪은 언제나 그렇듯 긍정적이지 않다. 겨우겨우 잠에 든다고 해도, 부정적인 관념이 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기 때문에 숙면이 어렵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린다. 심리적으로 너무도 위태한 상태가 된다. 그럴 때마다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자세로 앉아서 하는 명상이든, 왼발 오른발을 되뇌며 걷는 산책 명상이든 뭐든 좋다. 생각을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명상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든 좋은 행위임이 분명하다.


[11 때로는 흘려보내도 좋을 감정]

[129p] 짜증이 올라오는 걸 인지하면 혼자 심호흡 세 번 정도 한 후 그 짜증을 흘려보낸다. 그렇게 우리는 30년 이상 쌓였던 애증을 조금씩 풀어 가고 있었다.

가족은 떨어질수록 더욱 소중해진다. 같이 살면 가장 소중한 존재의 의미를 잊게 된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잦아진다. 그 상태로 소중한 존재가 영면에 든다면 엄청난 고통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가족에게 했던 나쁜 말들이 떠오르고 극심한 고통이 아주 오랫동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이 가장 좋지만, 같이 살아야만 한다면 나쁜 말을 하는 자신을 직시하는 게 현명하다.

깊게 고민했을 때 가족에게 죄가 없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미 화가 나 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있던 불화에 대한 화풀이, 몸이 아픈 것에 대한 화풀이 등 가족은 잘못이 없는데, 외부에서 온 그 악감정을 가족에게 풀어내서는 안 된다. 그 행위를 평생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직시할 수는 있다. 내가 오늘 화를 낸 것은 순전히 나의 책임이고, 그것에 대한 사과를 해야겠다는 성찰을 할 수 있다. 성찰이 되지 않고 사과도 하기 어렵다면, 가족과의 관계는 평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 풀어내야 하고, 가족은 그 부정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12 온실에서 탈출할 용기]

[136p] 당당하고, 자신감 있고, 자존감이 높고, 자아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내가 말한 이 모든 조건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그냥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이 보물은 타인의 기대, 세상의 기준 뒤에 가려져 있다.

평범함에는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안정적인 결혼생활의 끝이 이혼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이혼을 아주 쉽게 하기도 한다. 그들이 잘못된 삶을 살아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이혼한 사람들은 멀쩡한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은 듯 보인다. 학력과 관계없이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들도 이혼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정의 필수 요건이 평범한 가정과, 높은 학력이 아니라는 소리다. 행복도의 주요 관점은 개인의 높은 월급이 아니다. 자아실현 욕구가 채워진 사람일수록 행복도가 높아졌고, 그런 사람에게는 금전운도 따랐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금전이 아니다. 돈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사람의 행복도는 점차 낮아졌고, 자신의 꿈을 향에 천천히 걸어온 사람의 행복도는 점진적으로 높아졌다. 금전은 부가적인 가치일 뿐이다.

모두가 원하고, 모두가 걷는 길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 길도 나쁘지 않다. 유재석 조차도 꿈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한 번쯤은 재고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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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신발 신은 비둘기 상상 동시집 22
오순택 지음, 이지희 그림 / 상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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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달팽이에게]

<덤이라는 말>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덤이라는 말

해님은 빛을 주고 덤으로 따뜻함도 주지요

꽃은 향기만 주는 것이 아니에요 덤으로 꿀도 줘요

재래시장엔 마음을 데워 주는 덤이 많아요

생선 서너 마리만 사도 덤으로 새끼 한 마리 따라오고

콩 한 됫박에도 덤으로 꾹꾹 눌러 줘요

재래시장에선 사람 냄새도 덤이에요

[사람 냄새보다, 자연 냄새.]

어릴 땐 어머니와 함께 노각을 사기 위해 자주 시장으로 향했다. 당시의 나는 '노각'을 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장을 가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어른들이 말하는 시장의 사람 냄새는 맡을 수 없었으니까. 사람으로 미어터진 시장 안 상인들의 표정은 항상 굳어 있었고, 어쩐지 심통이 나 보이기도 했다. 말투도 살갑지 않았고, 카드는 절대 받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집 앞 마트를 가지 않고 굳이 그 시장까지 간 이유는, 시장의 인심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노각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곳에 덤은 없었다.

그러나 자연은 다르다. 작은 풀과 꽃, 커다란 나무와 바위 그리고 웅장한 숲은 우리에게 늘 덤을 준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데, 덤으로 싱그러운 풀내음과 향기로운 꽃내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나무는 공기정화, 종이, 땔감 등 너무 많은 덤을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나는 사람보다는 자연이 편안하다. 힘들고 그리울 땐 사람보다는 자연이 필요할 때가 있다.


[2부 세상을 보는 법]

<성냥개비 하나가>

쪼그만 성냥개비 하나

파르르 불꽃을 피워

초의 심지에 불을 댕기면 방이 환해진다

작아도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험담하지 않는 사람들]

남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특성상 타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 없는 사실까지 들먹이며 상대를 비하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자들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도 별 다를 것 없는 한심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절대로 누군가를 폄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눈에 띄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기저가 되고 있다. 한 나라로 보면 아주 작은 한 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세상은 지금보다 몇 곱절은 더 나아질 것이 분명하다.


[3부 돌에도 귀가 있다]

<꽃을 피우기 위해>

박태기나무는 봄이 오면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햇살이 콕콕 쪼아 좁쌀만 한 생채기가 돋은 박태기나무는 상처를 꽃으로 피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도 아픔을 참아야 하나 보다

[성장에는 아픔이 동반된다]

23년 7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500만 원의 거금을 들여 목공 수업을 받았다. 왕복 4시간이 넘는 등하원 시간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면접을 보러 다니며 현업의 현실을 깨닫고 목공은 그저 취미로 남겨두기로 했다. 아직도 책장 밑 서랍에는 목재와 조각칼들이 수북이 쌓여 아쉬움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은 또다시 교육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심지어 완전히 다른 출판, 편집자 일을 배우려 한다. 성인이 된 후 처음 겪는 백수 생활은 너무도 힘들고, 아프지만 이 또한 꽃을 피우기 위해 겪는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하련다.


[4부 아기 염소가 웃었어]

<구두는 알고 있다>

현관에 벗어 놓은 아빠 구두를 보면

아빠가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알 수 있다

뒤축이 닳은 건 비탈길을 걸으셨다는 거고

진흙이 묻은 건 비 오는 날 철벅철벅 황톳길을 걸어오신 거다

[아버지]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자주 거닐었다. 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를 제외하면 큰 건물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일 이층 정도 되는 상가건물이 즐비했는데, 그중 우뚝 솟아있는 칠 층 이상의 건물들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그곳을 지나치며 무심하게 말씀하셨다.

"저거 아빠가 지은 거야."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다 다른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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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n't Burned All the Bright (Hardcover) - 2023년 칼데콧 아너상
제이슨 레이놀즈 / Atheneum Books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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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하나]

그리고 난 여기에 앉아
엄마가 왜 채널을 바꾸지 않는지

왜 뉴스는 주제를 바꾸지 않는지
왜 주제가 다른 것으로 바뀌지 않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느니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나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단 말만 하는지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한창일 때 가계는 대부분 색을 잃었다. 모든 매체에서 총 확진자 수와 신규 확진자 수를 보도했고, 그것들의 내용은 도무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틀어도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지긋지긋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나는, 우리는, 어른들은 출근을 했다. 코로나가 성행해도 지하철은 숨쉴틈 없이 가득 찼다. 코로나가 유행해도 번화가의 밤거리는 늘 반짝였다. 그 밤거리의 빛을 법으로 막았을 땐 자영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통곡을 하며 울부짖었다. 백화점도, 영화관도, 밀폐된 모든 공간은 백신을 맞지 않으면 이용이 불가능했다. 전 세계적으로 처음 겪는 이 전염병에 대한 방역은 완벽하지 않았다. 사인 이상 모임 금지이지만 예외가 너무 많았다. 우리는 그런 이상한 예외들 속에서 하루하루 똑같이 일을 하며 점점 지쳐갔다. 주변에도 하나, 둘 확진자들이 늘어갔다. 그들은 병을 이겨내고도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그럼에도 출근은 해야 했다.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하는 아이들의 세상은 집안이 되었다. 놀이터에서도 놀 수 없었고, 각종 시설 또한 이용이 불가했다. 모든 부모들은 제 아이가 코로나에 걸려 빛이 사그라들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불안한 하루를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마스크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몰상식한 사람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었을 때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흉보는 일도 생겨났다. 심지어 지하철에서는 해제고 뭐고 마스크를 쓰라며 분기탱천하는 아저씨도 계셨다. 


코로나 시기에는 전철에서 잡담을 하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음에 그 방송은 들리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에는 버스의 창문을 열어두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창문을 닫으라며 화를 내기 일쑤였다.


전체주의적인 정책이 만연했으나,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갔다. 바이러스 때문인지, 정책 때문인지, 사람의 본성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사람들은 그저 마스크 없이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뱉어내고 싶을 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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