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남에게 하는 공감이 인색하다. 완전한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에 힘을 쏟는 게 너무도 아까웠다. 하루에 할 수 있는 공감의 총량도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공감은 타인을 만나야 하는 것이고, 나에게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많은 체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행위였다. 그곳에 체력을 낭비할 만큼 나는 건강하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와 책을 보며 공감을 배웠다. 사람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는 게 가장 좋았다. 그리고 작품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서사는 대부분 거짓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은둔형 외톨이 같은 방식의 공부법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후 영화 속 인물처럼 최대한 담백한 사람들만이 곁에 남게 되었다. 어머니도, 누나도, 연인도, 친구도 모두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억지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공감이 되었다. 그들과의 공명은 어떤 피로감도 불러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내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서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어쩌면 표현이 서툰 것일 수도 있다. 진심으로 공감은 하나,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어려울 뿐이다. 그러나 표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내 사람에 대해서는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미숙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