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페이지터너스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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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요약]

귀족인 시망 바카마르치 박사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그리고 스페인의 의사 중 최고였다. 그는 이타구아이시에 정작 하여 독서와 치료를 병행하고 습포 요법과 이론을 시연하며 온 힘을 기울여 과학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40세의 나이로 미망인인 25세의 에바리스타와 결혼하게 된다. 어느 날 바카마르치 의사는 미친 사람들을 한데 모아두고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한데 모으는 짓이 훨씬 더 미친 짓이라며 반대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시의회를 설득했고, 법안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대했던 의원이 있었는데 이유는 미친 사람들을 한데 모아둔 이력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개의치 않고 시의회의 허가를 받은 즉시 병원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카자 베르지라는 이름의 병원을 개원하게 됐다. 병원은 개원식 첫날부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벌써부터 수많은 환자들이 수용되었다.


박사가 병원을 차린 진정한 목적은 연구였다. 물론 환자 개인에 대한 자애심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이 인류를 위한 가치 있고 훌륭한 봉사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일인 연구와 치료에만 전념하기 위해 행정직을 고용했다. 약제사 소아리스의 조카 두 명을 고용한 후 한 명은 규정 실행을 다른 한 명은 음식과 물품 분배와 기록하는 일을 맡겼다. 병원 행정의 짐을 벗은 박사는 거의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환자들을 더욱더 세밀하게 분류하고 치료하는 데 애를 썼다.


개원 후 두 달이 지날 무렵 에바리스타 부인은 우울증에 빠졌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고, 결국 남편에게 자신이 다시금 과부가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사는 놀라지도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금속 같은 두 눈으로 리우데자네이루에 다녀오라고 말할 뿐이었다. 물론 아내는 뛸 듯이 기뻐했다. 세 달 후 드디어 여행을 가게 된 아내는 남편을 보며 눈물을 보이지만 의사의 눈에는 아내의 여행 인원 틈에 미치광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소아리스 약제사의 아내도 박사의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살면서 아내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요즘 그는 하인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그때 박사는 소아리스를 불렀고, 소아리스는 여행 간 아내와 관련된 소식인 줄 알고 급하게 병원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소아리스의 바람과는 다르게 과학적인 증명을 한 단계 더 높인 박사의 흥분만이 그 장소를 감돌았다.


어느 날 코스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코스타는 이타구아이시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민 중 한 명이었고, 물려받은 재산도 아주 많았다. 그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편히 살 수 있는 돈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낮은 이자로 여러 사람에게 계속해서 돈을 빌려 주었고, 5년이 지날 무렵 그의 수중에는 단 한 푼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를 보면 모자를 벗으며 땅바닥까지 내려 인사하던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채무자들이 욕설을 내뱉어도 그저 웃으며 방관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이 돈을 받으려고 참는 것이냐고 묻자 그 자리에서 채무자의 빛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나 한 채무자는 그런 코스타를 이용해 계속해서 돈을 빌렸고, 갚지 않았다. 그럼에도 코스타는 계속해서 방관할 뿐이었다. 그렇게 코스타는 돈을 받을 새도 없이 정신병원으로 수감되었다. 이후 찾아온 코스타의 사촌 여인은 코스타가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박사는 이유를 물었고 사촌은 어떤 사람의 저주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박사는 사촌 여인에게 코스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는 척했다. 그것을 믿는 사촌이 병원으로 오자, 박사는 사촌마저 병원에 수감시켜 버렸다.


마테우스는 말안장 제조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그 돈으로 아주 큰 집을 짓고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다. 그의 하루 일과는 집 마당에 대자로 누워 자신의 집을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런 마테우스를 부러워했다. 그 시간에 말안장을 만들었으면 생산적이기도 하고 더 큰 부자가 됐을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그를 흉보기 바빴다.


의사는 다시금 약제사인 소아리스를 찾았다. 바로 마테우스가 석재에 대한 사랑이 광기로 변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아리스는 전혀 아니라며 반박했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집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이지 마테우스는 정상이라고 변호했다. 그러나 결국 마테우스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었고, 병원의 한 의사는 "카자 베르지 병원은 개인 감옥이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은 너무도 빠르게 마을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박사는 병리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수용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곧이어 리우데자네이루로 떠났던 박사의 아내가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녀로 인해 정신병원의 재앙이 수그러들기를 희망했다. 그날밤 에바리스타 부인의 환영회가 열렸다. 사람들은 부인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사는 그러한 말들이 대부분 아첨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한 시인 청년이 조금 더 과하게 부인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청년은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존경받는 인물과, 바람둥이 그리고 서기까지 정신병동에 수감되었고, 몇몇 사람들이 더 수감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공포심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시민들의 인내심은 나날이 떨어져 갔다. 결국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주동자는 어떤 이발사였다. 약 서른 명의 사람들이 이발사를 지지했고, 이발사는 의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시의회는 받아주지 않았다. 이윽고 시민들을 폭력 시위를 주도하게 되었다. 30명이었던 폭도들은 300명으로 늘어났고, 그들은 박사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시위자들은 "박사는 죽어라!"라고 외치며 진군을 하고 있었고, 곧이어 박사의 집 근처까지 다다르게 된다. 에바리스타 부인은 박사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고, 박사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며 유유히 테라스로 향했다. 그리고 박사는 시위자들에게 자신을 잘못이 없고, 정신병자들은 계속해서 수감할 것이라고 아주 당당히 말했다. 그 모습에 놀란 군중들은 일순간 정적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본 이발사의 내면에는 정치적 야망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발사는 다시금 폭도들을 선동했고, 이내 성공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상황이 중단되었다. 바로 기병대가 나타난 것이었다.


기병대의 대장인 대위는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했으나 이발사 '포르피리우'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리고 일장 연설 끝에 기병대마저 시위대를 따르게 되었다. 이내 대위는 항복을 했고 이발사 포르피리우에게 칼을 건넸다. 시위대는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시의회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시의원들의 해산을 명령했다. 그렇게 의원들은 감옥으로 갔고 포르피리우는 마을의 수호자가 되었다. 이어 새로운 행정 당국의 공식 포고문과 왕실에 복종하는 서약서를 부왕에게 보냈다. 이발사는 새로운 권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박사는 두 명의 여인과 이발사의 친척인 한 남자를 포함하여 일고여덟 명을 더 입원시켰다. 사람들은 조만간 박사가 감옥에 갇히길 고대하고 있었다.


약제사는 박사의 대의명분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때문에 더 이상 박사를 지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꼈고, 오히려 이발사를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약제사는 박사가 체포되면 자신에게도 불똥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정부 궁전으로 향했다. 궁전 안의 고위 관리들은 이 새로운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약제사를 점잖게 대했다. 그렇게 약제사는 탁월한 지도자가 된 포르피리우에 대한 찬양을 계속해서 들으며 예, 예 하며 멍청하게 대답만 할 뿐이었다.


어느 날 박사를 찾은 이발사는 이상하게도 박사를 체포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박사의 협조를 원하고 있었다. 함께 힘을 합쳐 주민들은 만족시키자는 것이었다. 그 방법으로 경미한 환자 몇 명을 퇴원시키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발사의 제안을 들은 박사는 어제의 혁명에서 몇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답을 받은 박사는 이발사의 제안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닷새 동안, 박사는 새 행정 당국을 환호하는 약 쉰 명 정도의 사람들을 병원에 수용했다. 그때 또 다른 이발사 주앙 피나는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포르피리우가 박사에게 돈을 받았다고 연설했다. 이 말을 듣고 대중은 주앙 피나에게도 몰려들어 지지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행정 당국은 결국 병원의 폐지와 동시에 박사의 추방 법령을 추진했다. 그러나 주앙 피나는 이런 행동이야말로 교묘한 장치이자 미끼라고 명쾌하고 장황하게 주장했다. 두 시간 후 포르피리우는 실각했고, 주앙 피나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러나 부왕이 보낸 군대가 들어와 마을은 질서를 회복했다. 그와 동시에 박사는 즉각 이발사 포르피리우와 그 무리들을 미치광이들이라고 선언하고 그들 쉰여 명의 인도를 요구했다. 그리고 군대는 반란에 가담한 열아홉 명의 추종자를 더 인도해 주리라 약속했다. 이때부터 박사의 영향력은 최대치에 달했고,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이 그에게 주어졌다. 박사는 병원을 반대했던 의원과 의원장을 병원에 수감했고 시의회는 박사에게 의장직을 아주 쉽게 넘겨주었다. 그때부터 정신병자들의 강제 수감은 고삐 풀린 말처럼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박사는 최 측근이었던 약제사와 자신의 아내마저 병원에 수감시켰고, 사람들은 더 이상 박사를 향했던 추측과 허구 그리고 불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과학 이외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말할 권리가 모두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박사는 모든 환자들을 퇴원시키겠다고 하며 몇 가지 조항을 의회에 발송했다. 그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조항에 따르면 통계적 사실로부터 진정한 이론은 기존의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기능이 불균형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표본으로 여겨야 하며 오히려 그러한 균형이 지속되는 사람들이야 말로 모두 병리학적 가설 사례라고 인정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모든 인원을 퇴원시키고 오히려 입원되지 않았던 나머지 사람들을 병원에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수감됐던 약제사는 여전히 대세를 따르며 박사를 찬양했다. 또한 박사와 아내와의 사이는 예전보다 더욱 돈독해졌다. 그리고 아내를 찬양한 후 수감됐던 젊은 시인은 더욱더 강렬하게 박사를 찬양했고, 박사는 그런 시인에게 당신에게 자유를 돌려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똑같이 찬양으로 대꾸했다.


박사는 이제 멀쩡한 사람들은 병원에 수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위협을 하겠다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준 사람도 수감시키고 정의로운 의원도 수감시켰다. 그것을 보다 못한 몇몇 마을 주요 인사들을 다시금 이발사 포르피리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그가 시의회와 박사에게 반대하는 또 다른 시위 운동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발사는 거절했고, 영원한 후회가 남았다고 말하며 시위라는 방식을 쓰지 말 것을 조언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사는 이발사 포르피리우를 병원에 수용시켰다.


박사는 본격적인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박사는 우세한 특질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그와 반대되는 감정을 심어주는 약을 투약했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뒤틀린 사람으로 만들었다. 박사는 그것을 치유라고 말했다. 박사는 이타구아이시의 모든 인월을 치료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해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다른 가설이 없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박사는 어떤 결론을 내린 후 스스로 병원이 입원한다. 그리고 그는 어떤 치료도 하지 못한 채 17개월 만에 생을 마감한다.






[인용문]

[74p] 아주 포악하게 미친 자들은 자신의 집 작은 방에 갇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음이 삶의 은총을 망가뜨릴 때까지 방치되어 지내고 있었으며, 덜 미친 자들은 멋대로 거리에 나돌아 다니곤 했다.
[78p] "소아리스 씨. 확실하게도 자비심이 나의 의료 행위와 처신에서 중요한 바탕이 되지만, 그것은 소금처럼 양념과도 같은 것이지요. 가자 베르지 병원에서의 가장 주된 나의 작업은 정신병의 다양한 형태를 심도 있게 연구하는 것이고, 그것을 등급화하여 마지막에 그 원인과 완전한 치료 약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인류를 위한 가치 있고 훌륭한 봉사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80p] 질투심은 복수의 뜻을 이루었지만, 그는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그는 도망자를 추적하며 세상 끝까지 가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85p] '영혼의 아픔에 대해서는 특별한 약이 없는 법이오.'
[87p] 한 사람은 눈물과 그리움을 지니고 현재를 응시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오로라의 광채를 지니고 미래를 바라본다.
[91p] "나는 인간의 영혼이 커다란 조개 같다고 상상하는데 말이오, 소아리스 씨. 내 목적은 진주, 즉 올바른 이성을 뽑아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이성과 광기의 경계를 명확하게 짓는 것입니다. 이성은 모든 기능의 완벽한 균형이고, 그것에서 벗어난 것은 단지 광기일 뿐입니다."
[92p] 과학은 그저 신학에 손을 내미는 것이 만족했다. 그러한 과학의 자기 확신에, 신학은 결국 스스로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이타구아이시는 이제 혁명의 목전에 놓여 있었다.
[93p] 불행은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아주 풍요로움에서 충족함으로, 충족함에서 평범함으로, 평범함에서 가난으로 그리고 가난에서 아주 빈곤함으로 점진적으로 다가섰다.
[112p] "나는 과학과 아무 관련이 없소. 하지만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추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미쳤다는 이유로 격리되고 감금된다면, 그 박사가 미친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113p] "인간 이성을 마비시키는 바스티유 감옥"
[119p] "우리는 해산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들이 우리의 죽음을 원한다면, 우리의 시신을 밟아도 좋소. 하지만 우리의 시신만 밟는 것이지, 우리의 명예와 우리의 신념, 우리의 권리 그리고 이타구아이시의 구원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요."
[126p] 하나의 생각은 다른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법. 그는 염증이 곪기 전에 먼저 조치를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27p] 이는 상상과 환상일지라도 도덕적 판단의 힘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130p] "열한 명의 사망자와 스물다섯 명의 부상자라... 그것은 뇌 질환의 두 가지 아름다운 사례이구나. 이발사의 이중성과 뻔뻔스러움의 징후가 그 명확한 증거지. 그를 환호하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관해서는, 열한 명의 사망자와 스물다섯 명의 부상자보다 더 적확한 증거는 없다. 진정 두 가지 아름다운 사례이군!" 박사는 이발사를 문까지 배웅하고 난 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131p] "... 내가 늘 깨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꼭 믿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질서야말로 행정 당국의 근본입니다..."
[134p] 이 세상 그 누구도,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사람들조차도, 아주 단순하고 조그만 거짓말마저 지어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137p] 이 저명한 박사의 희생은 신부에게 아주 큰 감명을 주었다. 박사가 그토록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느 자신의 부인을 카자 베르지 병원에 수용했다는 사실을 통해, 박사를 향했던 그 모든 추측과 허구, 불신이 무너져 내렸다. 그 누구도 그에게 저항할 권리가 없었고, 그에게 과학 이외의 의도가 있을 거라 말할 권리 또한 없었다. 박사는 말 그대로 엄격한 사람이었으며, 로마 군인카토의 옷을 입은 히포크라테스였다.
[138p] 셋째, 이러한 조사와 통계적 사실로부터, 진정한 이론은 기존의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기능이 불균형한 사람들을 정상적인 표본으로 여겨야 하며 오히려 그러한 균형이 지속되는 사람들이야 말로 모두 병리학적 가설 사례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138p] 넷째, 이를 고려해 카자 베르지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자들을 퇴원시키고, 현재 위의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을 병원에 수용할 것을 시의회에 주장했다.
[140p] "도둑을 훔친 도둑은 100년 동안 용서를 받는다"가 생겨났다고 한다. 비도덕적인 격언인 것은 맞지만 동시에 매우 유용한 격언이기도 하다.
[142p] 가우방 의원의 주된 주장은, 시의회가 과학적 실험에 관한 법을 만들면서 법의 결과로부터 의회 구성원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며, 예외를 둔다는 것은 극히 혐오스럽고 유치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146p] 병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적, 도덕적 상태에 따라 각각 수용되었다. 도덕적 완전성이 우월한 정신병자들을 위한, 즉 겸손한 자들의 회랑이 만들어졌으면 또 다른 회랑에는 관대한 자들의, 진실한 자들의, 순수한 자들의, 충실한 자들의, 도량이 넓은 자들의, 똑똑한 자들의, 그리고 성실한 자들의 회랑 등이 각각 만들어졌다.
[148p] "개를 키우면 기웠다고, 안 키우면 안 키웠다고 체포하는구나!" 불쌍한 이발사가 탄식하듯 소리쳤다.
[150p] 모든 도덕적 또는 정신적 아름다움은 가장 완벽해 보이는 지점에서 공격을 받았으며, 그 효과는 확실했다. 물론 항상 확실한 건 아니었다. 우세한 특성이 모든 조치에 저항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러면 박사는 다른 요새를 먼저 공격하면서 나머지 요새들을 하나씩 정복하는 군사 전략을 사용했다.
[154p] 박사의 고통은 마치 인간을 파괴해 온 가장 무시무시한 도덕적 폭풍 중 하나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폭풍은 다만 허약한 자들만 무너뜨릴 뿐, 강한 자들은 폭풍에 대항해 견호해지고 또 두 눈 부릅뜨고 천둥을 응시하는 법이다.
[157p] 그것은 문학은 꿈이요, 그 꿈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김현 선생님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말씀하신 대로, 문학은 불가능성에 대한 싸움이요,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꿈꿀 수 있어, 인간만이 억압하지 않는 몽상 속에 잠길 수 있다는 말을 늘 되뇌어 왔다. 그렇다, 문학은 인간의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은 그 거리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억압되어 있는가를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일 것이다. 그래서 불가능한 꿈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삶은 그만큼 비천하고 추한 것일지도 모른다.
[159p] 그의 아이러니와 해학은 고통과 억눌린 영혼의 배출구이며, 그 고통과 억눌린 영혼은 불공평한 삶과 인간의 악, 정신적, 육체적 고통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세상사를 겪으면서 누적된 것으로, 아이러니와 해학은 바로 우스꽝스러운 인간 군상을 비웃으로써 삶 자체의 비천함을 슬쩍 덮어 가리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서평]

읽는 내내 박사가 정신병자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고 어쩐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읽은 후유증일 수도 있겠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놀라웠지만 정신과 의사는 달랐다. 대부분의 단편 모음집에서 선정한 제목은 '왜 이것으로 했을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고, 몇몇 개의 단편작 들은 대표된 것보다 다른 것이 더 재밌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는 다르다. 중편정도 되는 애매한 분량의 소설인 정신과 의사는, 다른 단편작을 제외하고 출간해도 충분히 영향력이 있을만한 소설이다. 단순하게 오락적인 측면으로만 다가가도 근래에 읽었던 소설 중 가장 재밌었다.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금 상기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현대에도 미친 사람들이 참 많다. 근래에는 아무 이유 없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자주 보도된다. 어떤 이는 기분이 나쁘다고 너클로 사람을 때려 실명시키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이 비관적이라며 길거리에서 칼을 들고 사람을 해한다. 이처럼 '미친' 사람들에게는 약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무조건 격리시켜야 하며 강제로라도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소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세상에 미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그 미친 사람의 기준에서 안전할지도 의문이다. 아마 누구도 확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범죄자들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감옥에서 죗값을 철저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신병이라는 이 모호한 개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모든 정신병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정신병이 없는 모든 사람들이 선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들도 이기심에 살인을 저지른다. 정신병이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게 아닌 듯하다. 그리고 시대별로 정신병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니 뒤틀리고 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며 깊게 사유하면 할수록 더 알 수가 없어졌다. 과연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나. 그리고 당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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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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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 비렐라의 아내와 내연관계인 카밀루는 어느 날 편지를 한 통 받는다. 그 편지는 카밀루와 히타의 부도덕한 관계에 대한 편지였다. 그리고 얼마 후 카밀루는 비렐라의 다급한 연락을 받게 된다. 아주 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카밀루는 혹시라도 비렐라가 자신과 히타의 관계를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두려움이 엄습한 카밀루는 마차를 타고 비렐라의 집으로 가던 도중 멈춰 섰다. 그리고 히타가 갔다고 했던 점쟁이를 찾기에 이른다. 점쟁이는 제삼자는 모르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끓어오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했다. 카밀루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당장에 비렐라가 모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카밀루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다시금 빠른 속도로 비렐라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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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p] 무언가를 두려워할 때, 최고의 점쟁이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신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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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p] 그는 모든 것을 부정했다. 부정한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여전히 긍정한다는 걸 뜻하기도 했으니, 그는 자신의 불신을 드러내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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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p]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과 그 후에 다가올 또 다른 행복한 시간을 생각하며, 마음이 즐거우면서도 조급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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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루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비렐라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말이다. 그럼에도 카밀루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점쟁이에게 거금을 들여 현재 상황을 묻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행동이자, 헛된 희망인지를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렐라의 급한 부름에 카밀루는 위협을 알아챘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무언가를 두려워할 때 최고의 점쟁이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그렇게 카밀루는 다시금 행복한 미래를 그린다. 멍청하고도 무지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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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여러 가지의 잘못이 있지만, 죽어 마땅한 잘못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남을 해한 자는 죽어 마땅하며, 남의 사람을 탐욕한 자 또한 죽어 마땅하다. 그것에 대한 벌은 달게 받으면 그만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럴 것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비질란테'식의 응징을 쉽게 할 수 없다. 나 또한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분노한 한 마리의 양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때문에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사상을 지닌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나라는 늘 정상적인 기능을 해왔다. 모두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지만 실제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자극적인 일은 오직 드라마와 영화에서만 일어난다. 그렇기에 나라도 결심할 수밖에 없다. 내 사람을 해한 사람은 평생 숨 쉴 수 없게 만들겠다는 다짐을 말이다. 남의 행복을 앗아갈 땐 자신의 생도 마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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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앙은 신학교에서 도망치고 만다. 정처 없이 떠돌던 그는 시냐 히타를 찾게 된다. 시냐는 노예들의 주인마님이라는 뜻이다. 놀란 시냐 히타는 다미앙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다미앙은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며 시냐 히타를 안심시킨다. 이어서 다미앙은 자신은 신부가 될 수 없고, 다시금 학교로 보낸다면 자신은 자살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히타는 다미앙을 설득해 보지만 잘 되지 않자 어째서 대부에게 찾아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다미앙은 대부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악질이라며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그 말을 들은 히타는 놀라며 하인 하나를 시켜 대부를 모셔오라고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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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시타는 익살스러운 농담을 하며 다미앙을 안심시켰다. 다미앙에게는 천사 같은 시타는 하인들에는 악마같이 돌변했다. 열한 살쯤 되어 보이는 심히 마른 흑인 여자 아이가 시타와 다미앙의 농담을 듣고 웃자 그녀는 회초리를 집어 들고, 아이를 위협했다. 그 모습을 본 다미앙은 자신 때문에 혼날뻔한 어린 노예를 지켜주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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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도착한 대부는 예상대로 다미앙을 다시금 신학교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히타는 그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한다. "당신 대자가 신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하세요" 히타는 다미앙의 아버지에게 전하라며 대부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다미앙의 아버지에게 그 말을 전했다간 자신의 얼굴에 꽃병이 날아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히타의 단호한 어조에 대부는 결국 발걸음을 돌려 다미앙의 아버지에게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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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미앙은 안심할 수 없었다. 히타는 그런 다미앙을 안심시켰으나, 상황은 더욱 어렵게 돌아갔다. 다미앙의 아버지는 당장 그 자식을 신학교에 집어넣던지, 아니면 감옥으로 보내라며 호통을 쳤다. 그럼에도 히타는 자신만 믿으라며 호언장담을 하며 다미앙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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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히타는 노예들 중 일을 끝내지 못한 흑인 소녀를 질책하기 시작한다. 흑인 소녀는 애원했지만 히타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히타는 흑인 소녀를 과격하게 붙잡고 다미앙에게 회초리를 가져다 달라며 부탁하기 시작한다. 다미앙은 아까 지켜주겠다던 생각을 뒤로한 채 어쩔 수 없이 히타에게 회초리를 가져다준다. 자신도 신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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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p] "못된 년! 성모님은 게으름뱅이는 지켜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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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급박한 일과, 타인의 급박한 일은 절대로 동일선에 둘 수 없다. 또는 자신에게 끼치는 아주 미약한 부정이 타인의 죽음보다 더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덕심, 인류애 등 모든 게 평범하다. 아니 좀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나 또한 다수의 남보다는 소수의 우리 가족이 훨씬 소중하니까. 그런데 만약 나 하나의 고통을 위해 다수의 타인을 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무조건 나 하나의 고통을 택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숭고한 도덕심 때문이 아닌, 그 다수에 내 가족이 포함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 하나면 피해 보면 될 일을 무수한 어린아이들의 부모를 희생시키는 것은 결국 나의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가족을 위한 선택이다. 인간이라면 자신만을 위한 선택은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해야만 한다. 그것이 싫다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인지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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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노게이라는 공증인인 메네지스 씨의 집에서 머물렀다. 메네지스 씨는 일주일에 한 번 극장을 갔는데, 노게이라는 극장에 가본 적이 없어 자신도 데려가라고 졸랐지만 메네지스 씨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메네지스 씨는 자신의 정부를 만나러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콘세이상 부인은 그런 일이 매우 옳은 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성녀라고 불렀다. 그녀는 남을 욕할 줄 몰랐으면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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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노게이라는 자정미사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다르게 콘세이상 부인이 자정 미사를 가는데 잠시도 눈을 붙이지 않는 게 대단하다며 노게이라의 방으로 들어왔다.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노게이라는 이유 없이 콘세이상 부인을 웃겨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주야장천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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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둘은 얼굴을 아주 가까이 맞대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은 속삭이고 있었고, 자정 미사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린 채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노게이라는 콘세이상 부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의 사소한 행동들이 신경 쓰였고, 대화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둘 사이에 침묵이 나타났고, 둘은 비몽사몽 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문 두들기는 소리와 자정 미사에 가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콘세이상 부인은 노게이라에게 어서 자정 미사에 가라며 부추겼고, 노게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노게이라는 미사 내내 콘세이상 부인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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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p] 그녀는 또한 그 누구의 뒤에서도 험담하지 않았고 모든 것에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미워하는 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법까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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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p] 그날 밤 나를 잠식했던 것은 뭔가가 내게서 잘려나간 듯한 느낌, 혼란스러운 바르 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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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평가가 꼭 옳은 판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처럼 성녀라고 표현된 콘세이상 부인은 누가 뭐라 해도, 결국에는 노게이라를 유혹하려 했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단 하루의 충동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콘세이상 부인은 남편의 정부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미망인 보다 더 큰 아픔을 안고 있다. 그 부인이 자정이 가까운 시간 젊은 사내의 방에 들어가 단 둘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눈을 마주 보고, 목소리를 점점 낮추며, 몸을 가까이했다. 만약 자정 미사가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무엇인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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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린 노게이라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저 잠에 들지 못한 부인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노게이라를 찾았을 수도 있다. 어린 나이의 남자들은 종종 심각한 착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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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미망인의 사교장에 초대받은 페스타나는 쉼 없이 피아노를 쳤다. 그에 지친 페스타나는 타인의 질문에 역정을 내며 대답했고, 곧이어 그 사교장을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한 페스타나는 하인에게 커피를 부탁했고, 하인은 커피 몇 잔을 대령한다. 페스타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피아노 앞에 앉아 베토벤의 소나타 한곡을 반복해서 연주하고 잠시 멈춘 후 창밖을 응시한다. 이후 다시 피아노로 돌아와 모차르트를 연주하고 자정이 되어서는 하이든의 곡을 연주했으며 그다음 두 번째 커피를 마셨다. 페스타나는 밤새 창작을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무엇인가 떠오를 만하면 잊혔고, 엄청난 작곡을 한 것 같았을 땐 이미 누군가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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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타나는 새벽 4시에 겨우 잠에 들었지만 수업을 위해 7시에 일어나야 했다. 하인은 지팡이와 우산을 건네며 무엇을 가지고 나가겠냐고 물었다. 페스타나는 지팡이라 달라고 했지만, 하인은 날씨를 보니 밖에 비가 올 것 같다고 언질 한다. 그 말을 들은 페스타나는 당장에 피아노가 있은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우산을 들고 있는 하인도,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제자들도 잊은 채 짧은 시간 만에 훌륭한 폴카를 작곡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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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신의 곡을 30개 넘게 출간한 출판인에게 그 곡을 선보이자, 아주 훌륭한 곡이라며 대성공을 할 것이라 호언장담 한다. 그때 페스타나는 자신의 곡의 제목을 출판인에게 알렸지만 출판인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이유는 제목은 대중적 이어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발표한 곡들도 전부 출판인이 선정했다. 한 날은 출판인이 선정한 제목이 무슨 뜻인지 묻자 출판인은 아무 의미 없고 그저 많은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페스타나는 출판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중성을 선택한 그는 결국 8일 만에 유명해졌다. 그는 한동안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좋아했으나, 이내 싫증을 느꼈다. 다시금 바흐와 슈만에 필적할 수 있는 고전적 느낌의 뭔가를 단 한 페이지라도 작곡하고자 하는 열망이 밀려든 것이다. 그렇게 그는 다시금 낡은 영감의 샘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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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그는 노래를 잘하는 폐결핵을 앓는 스물일곱 살의 미망인과 결혼했다. 아내 마리아는 그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앞길을 밝혀주었다. 페스타나는 그런 아내에게 아베 마리아라는 야상곡을 선물하고 싶었다. 어느 날 그는 아내를 불러 야상곡을 연주했다. 그러자 아내는 놀라며 쇼팽의 야상곡이 아니냐고 물었다. 페스타나는 슬픔과 절망을 느끼며 집을 뛰쳐나왔다. 며칠 후 그는 가명으로 몇 개의 폴카곡을 발표했다. 아내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어느 날 밤, 그녀는 겁에 질린 남편의 품에 안긴 채 심하게 기침을 하며 죽어갔다. 아내의 장례가 끝난 후 홀아비가 된 페스타나는 아내를 위한 레퀴엠을 작곡하기로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은 레퀴엠은 결국 더 이상 작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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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출판인이 페스타나를 찾아왔다. 돈이 필요했던 페스타나는 2년 만에 다시금 대중성이 짙은 폴카곡을 작곡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폴카곡을 작곡했고, 그것을 제외하면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다. 다시금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폴카 작곡가 중 최고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브라질이라는 나라에서 1등보다는 로마에서의 100들을 더욱 선호했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 해 그는 심각한 열병에 걸렸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 농담을 뒤로하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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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p] 별들은 하늘에 고정되어, 마치 누군가가 떼어내 주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음표와도 같았다. 하늘이 빈 시간이 오겠지만 그때 지구는 수많은 악보의 별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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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p] 왜 그는 불멸할 작품을 단 한 페이지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때때로 마치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오로라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는 피아노로 달려가 그 생각을 펼쳐놓고 소리로 옮겨 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무런 결실 없이 영감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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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p] 정말 어떠한 영감도 떠오르지 않았고 상상은 잠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름답고 결정적인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하면, 그것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또한 그가 작곡했다고 상상한 다른 누군가의 작품의 메아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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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p] 결국 자신의 낡은 영감의 샘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그 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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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p] 페스타나는 그것들을 오래된 배신의 도시, 어두운 기억의 골목에서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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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p] 그는 음악에 대한 야망과 소명 사이를 오가는 끝없는 셔틀콕처럼, 환상과 번민에 사로잡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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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음악을 만드는 것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페스타나의 삶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를 향한 세간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에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결국에는 질려했다. 페스타나는 그러한 곡이 아닌, 모차르트나 바흐 그리고 베토벤이나 하이든처럼 평생토록 화자 되는 예술성이 짙은 작곡을 하고 싶어 했다. 모든 예술가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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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대중적인 소설보다는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고, 남들은 쓰지 않은 그런 독창적인 소설을 창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대중성도 작품성도 낮은 가품 같은 소설만을 창작했다. 예술을 하겠다고 대중성을 포기한 사람의 소설에 작품성이 없다면, 아예 안 쓴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 좋아하는 소설을 일 년째 단 한 장도 쓰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평생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글 쓰는 것은 멈추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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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꿈 - 에드거 앨런 포 시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공진호 옮김, 황인찬 해설 / 아티초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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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p] 사랑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말로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습과 방식 그 자체를 가리킨다. 사랑에 빠졌다는 말은, 말 그대로 한 존재가 완전히 내던져져 깊이를 모르는 수렁에 빠지고야 말았다는 말이고, 존재 자체가 더 이상 홀로 성립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근래에는 잘못된 사랑들이 너무도 많다. 그것 또한 사랑의 한 가지 방식이고,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모양이 너무도 기괴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우울증은 없다'라고 망발을 하는 용찬우(박찬우)나 남성성에 미친 듯이 집착하며, 앤드류 테이트에 자신을 대입하는 레드필코리아(장민서)의 사랑법은 어딘가 뒤틀려있다. 사실 장민서의 연애학 강의를 사는 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며, 그런 것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사람들이 호감을 갖지 못하고, 연애를 하지 못하며,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저런 사기꾼들의 강의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이 단단하지 않고, 어떤 문제들을 계속해서 외부에서 찾으려는 도피적인 관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은 결국 남에게 배우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존재가 제삼자의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다. 나와 네가 우리가 되는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런 이상한 강의들을 사서 시청할 필요가 있을까? 인터넷 전사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맡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목숨을 연명하다가는 평생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에드거의 사랑은 다르다. 사랑과 진실 그리고 소신을 중시했던 에드거는 어떤 자극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았다. 남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감을 믿었고, 그 사랑을 쟁취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모두를 진심으로 연모했고, 애도했다. 일평생 외도는 없었으며, 범죄기록 또한 전무했다. 이 단편 소설가이자 시인의 인생은 참으로 짧고, 아름다웠다.






[48p] 르노어

아아! 금 그릇이 깨졌다!

영혼이 영영 날아가 버렸다!

조종을 울려라! 거룩한 영혼이

스르르 삼도천을 건넌다.

그런데 기 드 베레여,

너는 눈물도 없는가?

지금 울지 않으려면 영영 울지 말라!

보라! 저기 저 비참하고

딱딱한 관에 네가 사랑한 르노어

그녀가 초라하게 누워 있다!

어서 오라! 영결사를 읊으라,

장송곡을 부르라!

그리도 젊은 나이에 죽은

여왕 같은 망자를 위한 성가를.

그리도 젊은 나이에 죽어 곱절로 죽은 르노어

그녀를 위한 애가를!

"비열하구나! 너희들은 돈을 보고 그녀를 사랑했고

거만하다고 미워했으며

그녀가 병약해져 몸져눕자

너희들은 그녀를 저주했다, 죽었으면 하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영결사를 읊으랴,

어떻게 진혼곡을 부르랴?

그녀가 그리도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은

너희들, 너희들의 사악한 눈,

너희들의 비방하는 혀 때문이었다고 할까?"


우리가 죄를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미친 듯 떠들지 말라!

하느님께 올리는 안식의 노래를

그렇게 엄숙하게 부르지 말라,

그러면 망자가 자책하지 않겠는가!

그 사랑스러운 르노어

그녀가 '먼저 갔다'

희망과 더불어 날아갔다,

지금 너는 네 신부가 되었을 그 소중한 아이,

아름답고 상냥한 르노어

그녀가 보고 싶어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녀는 초라하게 누워 있다,

금발 머리에만 생기가 있다,

머리칼에는 아직 생기가 있지만

눈에는 죽음이 있다


"물러가라! 오늘밤

나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애가를 높이 부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옛 찬가를 불러 그 소리에

천사를 둥실 실어 보낼 것이다.

조종을 울리지 말라!

저주받은 세상에서 하늘로 오른

그녀의 사랑스러운 영혼이

성스러운 환희에 둘러싸여 떠가는 중에

그 소리를 듣지 않게 하라.

그녀의 분한 혼이 이 땅의 사악한 자들에게서

분리되어 하늘로 갔다, 지옥에서

분리되어 천국 높은 곳으로 갔다,

슬픔과 신음에서 분리되어 천국의 왕

그의 곁, 황금 보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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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
변진서 지음 / 부크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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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3 감정의 주인이 되기]

[01 마음과 직면한다는 것]

[143p]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거. 내가 변화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나쁜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것은 어릴 때나 가능한 방법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나잇값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각 나이별로 해야만 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게 서른 살이 넘어가면 적어도 부모님에게 과하게 의지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인생은 부모님이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의 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혼자 살며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완전한 독립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혼자 살 집에 대한 전세자금, 결혼, 집 매매도 모두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경우는 완전한 자주적 독립이라고 보진 않는다. 소위 손 벌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쯤 우리는 독립을 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이다.


[02 내 안에 상처받은 아이 마주 보기]

[146p] 우리는 어떤 결정을 본인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 의식적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결정은 무의식에 의해 내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에는 상처로 가득한 '내면 아이'가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입 밖으로 뱉어낼 수 없는 상처를 품에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는 가족에게도, 연인에게도, 심지어는 신에게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상처를 목도하고, 치유받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상처가 곪고 썩기 시작하면 치료받기도 어려워진다.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내면의 아픈 나를 직시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믿을만한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가장 현명할 테다.


[03 그림자 인정하기]

[149p] 우리는 평소 인식하던 자아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한가운데 존재하는 자기로 나아가야 한다. 자아를 걷어 내고 자기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 곧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이다.

진짜 나를 찾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 쓰는 것을 사랑했다. 밤새 책을 읽기도 했고, 낮에는 글을 쓰고 싶어서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는 운동을 하고 되었고, 또 어쩌다 보니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나는 시간만 나면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을 직업으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물론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는 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꿈이 하나일 필요는 없이 않은가. 나는 아직도 소설가가 되고 싶고, 산문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서평가가 되고 싶기도 하다.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있든 사회에서 어떤 직업으로 불리든 관계없이 결국에는 읽고, 쓰는 일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04 NOT SORRY]

[156p] 나답게 살아도 괜찮다. 철없게 살아도 괜찮다. 남들과 좀 달라도 괜찮다. 칭찬받지 않아도 괜찮고, 욕 좀 먹어도 괜찮다.

나는 스스로를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돈이 많은 사람을 욕보이는 것이 아니다. 부자도 부자 나름의 행복이 있듯이 나도, 내 나름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개개인의 행복은 단 하나의 물질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돈에 맹목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쨰서인지 항상 부자와 거지를 논한다. 꼭 그렇게 극단으로 치우쳐야만 속이 후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거지가 되고 싶지도 않다. 금전도 중용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넉넉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다. 넉넉하면 저축을 해두고, 부족하면 더 노력을 하는 것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천 원 한 장도 가지고 있을 필요 없다는 극단적인 무소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임금을 바라지 않는데, 어째서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거지를 논하는 것일까. 내 옅은 지식으로는 그러한 궤변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때문에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남들과 좀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대로 살아도 충분히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05 스스로를 상처 주지 않는 방법]

[160p] 알베르 카뮈 '세계의 악은 거의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며, 또 선의도 총명한 지혜 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는 법이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멍청한 신념이 가득한 사람은 대화를 거부한다. 보통은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일단은 수긍을 한다. 일단은 인정을 하고난 후 '더 공부해서 그 말에 반박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한다거나,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군요'라는 말을 하는 게 정상인의 범주일테다. 그러나 자신이 선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은 타인이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을 때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분명 앞에서 내 말을 듣고 있고 눈을 뜨고 있음에도 정신은 어딘가로 향해 있다. 자신과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은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것이다. 타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 본인의 사상만을 관철하려고 하는 사람은 가까이하기 대단히 어렵다. 그럼에도 나 또한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런 이들 조차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염원한다. 나는 무지하고, 또 무지하고, 더 무지한 사람이니까.


[06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구분하기]

[166p] 지혜라는 건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의연함, 통제 가능한 부분에서 용감성, 또는 그 둘을 구분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 둘을 잘 구분해서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자존감도 높다.

대부분의 모든 상황에서 무던한 아버지와, 모든 상황에서 불안을 안고 사는 어머니 사이의 나는 어떤 상황에서는 심각하게 무던했고, 어떤 상황에서는 과하게 불안을 표출했다. 혼돈이라는 말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해야 할 상황에서는 의연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공감하지 못한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칭한다고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서 이제는 좀 바뀌어 보려고 한다.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통제가 가능한 상황만을 보며 살아가고 싶다. 통제가 되지 않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넘기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하면서 말이다.


[07 틀 깨부수기]

[175p]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

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의 주된 내용이 아닐까 싶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여러가지의 사랑 중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듯하다. 나 또한 스스로를 사랑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항상 자신감 있어 보이는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가끔씩은 내가 너무도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지금 잠시 쉬어가는 중이라고.


[08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181p]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부코스키도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애쓰지 말고 기다리라고. 글을 수 있는 마음,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유독 글을 쓰는 것에 조급함을 느낀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타인에게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조급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왜 조급함이 생기는지 적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급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다 의미가 없었다. 언젠가 내 글을 원하는 시기가 올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그런 시기가 오기 전까지 열심히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09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다면]

[191p] 돈이 내 꿈, 내 존재를 이루는 수단이기에 중요한 건지, 아니면 돈이 내 인생의 목표, 꿈이기에 중요한 건지. 결정은 당신의 몫이다.

꿈을 우선시한다고 해서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돈은 내 꿈을 쟁취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니까. 그러나 요지는 거기에 있지 않다. 돈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넘치게 필요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의 액수는 사람마도 너무도 다르다. 모두가 동일한 금액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설령 타인이 돈이 일절 필요 없고 무소유로 살겠다는 태도를 취해도 그것을 인정해 주는 자세이다. 결국 남이지 않은가. 그가 돈을 벌지 않는다고 나에게 피해를 주진 않는다. 그가 목적이 돈에 있는 사람을 험담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를 나무랄 수 없다. 타자의 인생 목표에 감을 놓고 배를 놓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STEP 4 나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01 편견으로부터의 자유]

[196p] 사람들의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색안경을 낀 자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색안경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에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색안경이 있음을 인정하면 상대의 편견 어린 판단에 의연할 수 있다. 판단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소리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예체능 쪽에 재능이 있었다. 운동을 잘했고, 특이한 그림도 잘 그렸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고, 작문도 꾸준히 하다 보니 누군가 내게 소설가나 시인이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도 평범한 회사원이 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때문일까, 내 겉모습은 책을 읽을 것 같은 모양새 하고는 거리가 멀다. 얼굴도 무표정에, 무뚝뚝하게 생겼고, 키는 작지만 몸은 다부지다. 더해서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왼쪽 팔 전체에는 '올드 스쿨'이라는 장르의 검은색 타투가 꽉 들어차있다. 이런 나는 한국 사회에서 뒷 말하기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런 나는 남들보다 더 스스로를 증명하기가 어려웠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과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누군가에게 쫓기듯 글을 썼다. 그러다보니 나를 위해 썼던 글들이 결국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로 변모되었다. 물론 덕분에 월간 에세이라는 잡지사에 내 글이 게시되긴 했지만 어쩐지 행복한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닌 남에게 나를 보이기 위한 글에는 어떤 애정이 생성되기 어려웠다. 심지어 그들은 나의 증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상 내가 100만 부를 판매한 유명작가가 된다고 해도 그들은 나를 싫어할 것이 분명했다. 그저 남을 욕하고 험담하길 좋아하는 협잡꾼들에게 증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02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198p] 심리학적으로 보면 고정관념이 생기는 이유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편견에 따라 쉽게 믿어 버리니 생각이 닫히는 것이다.

편견에 자주 노출되는 나조차도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도 타투가 있으면서 '이레즈미'장르의 타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편견이 생겼다. 흔히들 말하는 문신 돼지 국밥 육수들과 나는 다르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타투가 없는 사람들에게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몸에 그림이 있는 사람'일뿐이고 그런 사람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타투는 선택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감을 한다. 사회를 바꿀 수 없으면 나를 바꾸고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때문에 내 주변에는 편견이 없고 개성적이며 독창적인 사람들만 남았다. 타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게 아니다.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굳이 내가 그들의 입맛에 맞춰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내 경험에서 나온 나름의 이유니까.


[03 집단 무의식에서 해방되기]

[203p] 누군가 옳은 길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그 길을 따라가면 우리는 사유할 필요가 없다. 당연하게도 편리하니까. 그런데 거기에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바로 성장과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몸이 편할 수 있는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자유가 없다. 반대로 독립을 하면 몸은 좀 불편하더라도 모든 것이 자유가 된다. 혼자 살면 아침, 점심, 저녁 전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 잔소리 없이 자유롭기도 하다. 다만 삼시 세 끼를 모두 내가 차려 먹어야 하고, 뒷정리도 스스로 해야만 한다. 그런데, 평생을 부모님이 해주는 음식을 먹고,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일생을 우리에게 온 힘을 다 하신 부모님들을 위해서라도 독립을 해야만 한다. 당신들의 삼십 년을 포기하고 우리를 보살핀 사람들도 쉴 권리가 있지 않은가. 힘들고 어렵겠지만, 이제는 성장의 길로 접어들 때다.


[04 세상의 모든 이분법]

[204p] 너와 내가 감정이 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사람을 미워하게 만든다. 나중에는 저 사람이 왜 미웠는지 그 이유조차 잊게 된다. 그저 모든 행동이, 그 사람 자체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오류가 바로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가 아닐까 싶다. 서로에게 존중이 있고, 그 사람의 의견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인격이 싫어지는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고 서로 다은 명도와 다른 회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면 극단(極端)이 얼마나 소수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앎을 인지하면 세상은 점차 아름다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05 선과 악의 세계]

[214p] 우리에게 끼워진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을 벗기는 과정과 비슷하다. 세상이 주입한 그림자, 아니무스, 아니마 등의 알을 깨고 우리는 진정한 자기로 나아가야 한다.

고정관념은 분명 다양성을 억제하지만, 때로는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성별의 제약 없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부분 사실이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은 강한 사람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현장직이라면 더 할 말도 없다. 공익을 위해 사람과 대면을 하는 공무는 남녀의 구분이 아닌 강한 사람이 필요하다. 시민은 남자 소방, 경찰대원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강한 소방, 경찰대원을 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는 것이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신체는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의 성별을 가진 경찰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범인 또는 취객과 다투는 현장직에 적합하지 않다 뿐이지, 여성 피해자의 초동 조치는 같은 여자가 하는 게 피해자에게 더 적절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항상 물리적인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무적인 일도 할 것이도, 그에 따른 인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나, 고정관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할당제는 결국 '여자는 할 수 없다'의 방증이 되기도 한다. '할당제' 없이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똑같은 신체검사와, 똑같은 시험을 보고 당당하게 합격한 사람에게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행태가 있다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아주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당장에 미국의 경찰만 해도 그렇다. 모두가 똑같은 실기 시험을 본다. 애초에 남자와 여자가 다른 실기 시험을 보는 것 자체가 여자는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아닐까?


[06 명상의 가르침]

[217p]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기도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가르침이 필요하다.

[07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

[221p] 나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면 무아 상태를 경험하면 세계와의 일체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것은 곧 사랑이다. 너와 나는 하나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하나다. 이렇게 동시성을 느끼면 타인이라는 개념이 생길 수 없다. 이것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사람에게 평안함을 선사한다. 남이 미워질 때 법륜스님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 불순한 마음이 조금씩 정화됨을 느낀다. 내가 독서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무아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와의 일체감을 느꼈던 경험이지만 그것이 정말 무아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의 나는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 가족과 함께 간 고깃집에서 나는 어떤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은 살짝 누런 색이었고,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활자를 읽기만 했다. 자음과 모음을 이해하고, 단어와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심오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읽는다는 행위가 즐거웠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기억은 내 유년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당시의 기분을 다시금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독서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필로그 - 당신의 삶을 만끽하기를]

[222p] 목표를 이뤄도 남들이 인정해도 곧바로 공허함이 따라왔다. 이 공허함은 내가 별로인 사람이기 때문에 느낀다고 믿었다. 그래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다.

지금도 사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가 너무도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스스로를 폄하하고,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매질하는 것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급히 먹으면 체하듯 과한 채찍질은 나의 성장을 일순간 멈추게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제는 부정적인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해도, 억누르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계속해서 노력할 게 분명하니까. 쉬는 것에 자책감을 가지지 않고, 푹 쉬어보려고 한다. 좋아하는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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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
변진서 지음 / 부크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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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01 사랑하면 알게 됩니다]

[14p] 진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욕망은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뚜렷한 꿈이 있다. 그러나 그 꿈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타자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어떤 사람은 꿈은, 돈이 되지 않으니 허상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게 꿈이 없다. 꿈이 없는 사람은 실속이 없다는 뜻이고, 실속이 없다는 것은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아가 없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자신이 살아갈 동력을 얻고자 하고, 그 방법으로 남의 꿈을 폄하하는 것을 채택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대적하는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다. 자아가 없는 사람들과 다투는 것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랑 싸우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전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02 왜 나는 나를 모를까]

[21p] 만약 당신이 목표를 이루고 업무를 하면서 샘솟는 에너지와 희열, 행복감을 지속하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원하던 걸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샘솟는 에너지 덕분에 어려운 일도 잘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목표를 이룬 순간에는 기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따분함이나 환멸, 무기력을 느낀다면 그건 아직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하기 싫은 회사의 업무를 하면서도 성취감을 얻어낸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쨌든 사회인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 현재의 업무이고,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큰 착각이었다. 회사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사원 개개인을 그저 부품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비이상적인 구조 속에서 부품들끼리 다투는 현상이 심화됐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평소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새롭지만 익숙한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회사를 다닐 때와는 다른 고난과 역경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부정이 있지만, 그것을 이겨낼 원초적인 긍정이 내면 깊은 곳에서 대들보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앞날이 어둡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요즘이 더 행복하다.


[03 자신을 잃었다는 증거]

[28p] 탁월함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유독 잘하거나, 유독 재미를 느끼거나, 유독 마음 가는 방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한 가지를 압도적으로 잘하는 것에는 무조건 천재적인 재능이 필요하다. 그것도 그냥 천재적인 재능이 아닌, 천재들의 천재 느낌으로 말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김연아와, 손흥민 그리고 정찬성, 봉준호, 방시혁 같은 사람들이 아마도 천재적인 재능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고 성공할 수 없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한 가지로 안된다면 두 가지, 세 가지를 접목시키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읽고 쓰는 것에 조금의 재능이 있다. 그런데 하루에 몇 권씩 읽어버리는 다독 가들 만큼 많이 읽지는 못하고, 김영하 작가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는 문장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때문에 나는 많이 읽는 것보다는 깊게 읽는 것과 잘 쓰는 것보다는 일단은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게 자신만의 재능을 발현하는 것이 천재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04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법]

[45p] 별 고민 없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대로 살면 편하다. 문제가 생겨도 세상 탓, 남 탓을 하며 책임 회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나다움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삶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고귀하다. 이 고귀함은 분명 삶에 밑거름이 된다. 도전의 결과가 실패이든 성공이든 상관없이 도전해다는 자체가 나를 고귀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두려워 말자. 나를 잃은 삶보다, 안주하는 삶보다 훨씬 멋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니.

나는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것도 존중한다. 그것은 입증이 끝난 안정된 삶으로 향하는 길이 맞으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그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길에서 엇나간 사람들을 나무란다. 패배자라는 말도 안 되는 틀에 가두려고 한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폄하하면 자신의 불행한 삶이 사라지는 줄 착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패배자는 그들일지도 모르겠다.


[05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 구별하기]

[55p] 자아실현의 욕구를 따르면 인생의 목표는 내부에 있게 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고 즐기다 보면 누구를 따라 하고 부러워할 시간이 없다. 자아실현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삶이 바로 주체적인 삶이다.

타인들은 진정한 나를 알 수 없다. 특히 깊은 관계를 유지한 적 없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가족도 나를 잘 모르고 나도 가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친하지도 않은 '그냥 아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건 개소리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기준은 자신의 기분과 상황 태도에 따라 편차가 크다. 내가 기분 좋은 날은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덜 무례하게 느낄 것이고,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상대방은 적의가 없어도 자신의 내면에서 적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걷고자 하는 길을 타자의 기준에 맞춰서 변경할 필요가 없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훨씬 지혜롭다.

현대의 사람들은 100세 시대를 논한다. 30대라면 70년이나 남았다. 그 시간을 모두 타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살아야 하나? 절대 아니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가정해도 답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숨이 24시간 후 멈춘다는데도 불구하고 타인의 입방아에 주눅 들어야 하나? 당연히 절대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


[06 열어줘, 마음의 귀를]

[67p] 장미는 피어야 할 시기가 오면 핀다. 꽃이 활짝 필 때까지 잘 가꾸기만 하면 되니까. 활짝 피지 않은 봉오리 상태도 장미는 장미다. 아직 필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스스로 참 많은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떤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열심히 썼던 단편소설도 쓰디쓴 고배를 마셨다. 느낌이 좋았고, 참 열심히 쓴 글인데도 불구하고 당선되지 못했다. 이후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회의감에 깊게 빠지는 순간이었다.

때문일까, 그때부터 독서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독서를 하면 무조건 산문도 같이 쓴다. 그런데 글이 쓰기 싫어진 탓에 읽지도 않았다. 타고나길 읽기만 하는 건 아주 어렵다. 좋은 글을 읽으면서 쓰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밥상에 매일매일 진수성찬이 올라오는데, 반찬은 먹지 말고 밥만 먹으라고 하면 누가 그것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나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구분되지 않았다. 읽기는 쓰기의 전조이고 쓰기는 읽기의 시초라고 생각했으니까. 나에게 읽기와 쓰기는 한 단어와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읽고 쓰기를 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하루 8시간씩 읽고 쓰는 게 가능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의 문구를 보고 조금을 위안을 얻었다. 나에게도 피어야 할 시기가 올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는 등단할 것이고, 언젠가는 내 책이 눈앞에 현현할 것이다. 그전까지는 쉬지 않고 읽고 쓰기를 반복해야겠다.


[07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69p] 아무리 생각해도 독서라는 취미에는 장점밖에 없다.

독서가 고차원적인 취미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냐며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한 책을 붙들고 오랫동안 읽고 있으면 핵심을 읽으라는 건방진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독서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한 책을 깊게 읽는 방법도 있고, 자신에게 필요한 핵심만 뽑아내 빠르게 독파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책은 참 많은 종류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방법만으로 읽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책을 꼭 효율적이게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읽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

물론 조금 더 나은 방법, 괜찮은 읽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취미이지 않나? 내가 이렇게 읽는 게 좋고, 느리더라도 깊게 읽고 싶다고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나. 핵심이 아니더라도 그 활자 자체가 좋을 수도 있고, 남들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장이 내게는 엄청난 열의를 불태우게 만드는 문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독서에도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그리고 자신이 읽는 방법이 맞다고 강요하기도 한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아닐까 싶다. 한 권의 책에서 몇 백가지의 서평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독자들이 모두 다르게 사유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꼭 한 가지로 집약될 필요는 없다.


[STEP 2 매일을 당당하게 가치 있게 용기 있게]

[01 두려워 말고 일단 도전해]

[78p] 내가 삶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사실 실패란 없다. 삶이 지속되는 한 모든 경험은 그저 과정일 뿐이다.

모든 좌절의 순간은 결국 지나간다. 그리고 그것들은 질 좋은 경험이 된다. 최악의 상황은 전부 심지만 굳건하게 유지한다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 물론 그 고통의 시간에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시간도 우리를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독서를 한다고 해서 당장 내 인생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독서를 하는 모두가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독서를 했다.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만 하고 있는다면 절대로 나아지는 것이 없을 테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딱 한 장이라도 읽어보자.


[02 두려움이라는 허상]

[83p] 나는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하라고 말한다. 뭔가 해보려 할 때 느껴지는 걱정과 두려움은 허상이니까. 당신이 하는 걱정의 95%는 일어나지 않을 문제이니 부디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 보라고.

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두렵지 않았을 때 인생이 잘 풀렸다. 사소한 문제로 전전긍긍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렵더라도 일단 실행에 옮긴 모든 것들은 긍정으로 다가왔다.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행동을 하며 후회하는 게 더 값진 경험이었으니까. 하지 않았을 땐 후회만 남았고, 경험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두렵더라도 실행에 옮겼다. 그것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03 시작이 반이야]

[85p]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그게 진리라고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적으로 규정했다. 세상을 적으로 만들 것인가, 내 편으로 만들 것인가. 이것은 내가 정하면 된다. 아주 쉽다. 그냥 세상은 '원래'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자연의 이치라는 걸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왜 이렇게 나에게만 가혹할까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세상은 모두에게 냉정하고 가혹했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강하게 살아남을지, 도태되어 한 줌의 재로 사라질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였다. 세상은 절대로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고, 결국에는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에 대항할 시간에 책이라도 한 권 더 읽고 글이라도 한자 더 쓰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임을 직시했다. 세상은, 모두는, 나의 적이 아니다. 내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허상에 불과했다.


[04 세상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

[93p]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미련을 버리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무엇이든 통제해 보려고 했던 시기가 있다. 사람도, 일도, 상황도, 내 마음도. 그러나 무엇 하나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통제하면 안 되는 것까지 통제하려고 했던 탓일까, 그 제약들은 대부분 구속처럼 보였고 보이지 않는 수갑이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감독과 관리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몰아세울수록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유약했던 시기에 몸까지 아프게 되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그 시기에 나는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체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제로 미련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미련이 사라질 때마다 편안함은 배로 증폭되었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은 멀리 했고, 일은 그만두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보다는 지금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현재의 상황은 불안정한데, 마음은 점차 안정적이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우선시하게 되었고, 할 수 없는 일은 보지 않았다. 해야 할 일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붙들고 있기엔 내 체력이 좋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항상 탕진했던 체력이 조금씩 비축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평범한 작은 행복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05 성장을 위한 최고의 비법]

[96p] 의미를 찾으니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원하는 일, 의미를 찾는 게 쉽지 않지만 한번 찾으면 삶에 생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생동감 있는 삶의 맛을 당신도 느껴 봤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독서와 작문을 잘하니까, 읽고 쓰는 것이 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쓰는 것을 반복했다. 이것은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읽고 쓰는 것은 생각만 한다고 해서 능력이 발전하진 않는다. 결국은 읽어야 하고 써야 했다. 그 부분에서는 참 큰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에는 걸림돌이 되었다. 나의 글에는 목표가 없으니 색이 없었고, 어떤 의미도 내포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서 쓰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저 계속해서 읽고 쓰기만 했으니 내 글에는 어떤 생동감도, 영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나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만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독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깊어진 고민 끝에 목표 하나를 정할 수 있었다. 나를 찾고 싶은 사람을 위한 소설, 남이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소설을 쓰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글에 크게 공명할 수 있는 독자 한 분을 찾는 게 지금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쓰다 보면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06 너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99p] 편도체가 '고장' 났다는 표현은 고치면 제기능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건 노력하면 느낄 수 있다는 뜻이며 감정이 '희미하다'는 건 뚜렷해질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유독 남에게 하는 공감이 인색하다. 완전한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에 힘을 쏟는 게 너무도 아까웠다. 하루에 할 수 있는 공감의 총량도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공감은 타인을 만나야 하는 것이고, 나에게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많은 체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행위였다. 그곳에 체력을 낭비할 만큼 나는 건강하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와 책을 보며 공감을 배웠다. 사람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는 게 가장 좋았다. 그리고 작품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서사는 대부분 거짓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은둔형 외톨이 같은 방식의 공부법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후 영화 속 인물처럼 최대한 담백한 사람들만이 곁에 남게 되었다. 어머니도, 누나도, 연인도, 친구도 모두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억지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공감이 되었다. 그들과의 공명은 어떤 피로감도 불러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내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서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어쩌면 표현이 서툰 것일 수도 있다. 진심으로 공감은 하나,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어려울 뿐이다. 그러나 표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내 사람에 대해서는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미숙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다.


[07 공감에도 노력이 필요해]

[104p] 슬픔을 풀어 주기 위해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건 공감적 배려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민', 상대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고자 하는 '자비'와 비슷한 개념이다.

책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소위 말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T의 성향이라고 치부하고 '너 T야?'라는 부정적인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그들은 공감 능력에 과하게 집착한다. 자신의 인생 최대 업적이 '공감능력'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공감능력도 지능이다'라는 말은, 그 능력이 부족하면 전체적인 지능이 낮다는 것을 표명하진 않는다. 오히려 무분별한 공감은 정서적 지능이 높은 게 아니라 변별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변별력이 과하게 부족한 사람들을 우리는 백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공감하는 것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타인에게 지능이 낮다는 악담은 과연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편협한 틀에 가두는 것은 아주 멍청한 행동이다. 그것이야 말로 인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한다.

공감능력은 계륵과도 같다. 너무 없으면 반사회적 인격장애인이 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높아도 인권단체처럼 범죄자들에게도 인권을 부여하고, 군인의 훈련을 무슨 어린이 놀이방으로 만들어버리는 참사로 이어진다. 이것 또한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진배없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한쪽으로 치우친 능력은 필요 없다. 지금이야말로 중용이 가장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공감능력에도 중용이 절실히 필요하다.


[08 상대를 이해하는 법, 그럴 수도 있지]

[108p] 나의 마음에 평화가 오면 나에게 좋다. 내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타인에게도 여유롭게 대할 수 있다. 그러면 관계도 좋아진다.

타인을 생각하는 게 우선인 것은 좋지 않다. 우선 내 마음을 돌아보고, 정말 괜찮은지 여러 번 확인해야 한다. 내가 건강해야 상대에게도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 나를 돌보지 않고, 건강을 해치며 상대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괜히 억울한 마음만 커진다. 자신은 상대를 이렇게 많이 생각하는데, 돌아오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억울함이 커지고, 관계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는 것을 타인이 무조건 충족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땡땡이 애인 생겼다고 우리들한테 소홀하잖아'라고 하는 말은 피해자는 자신이고, 가해자는 연인이 생긴 친구이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이며 대단히 멍청한 생각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내 친구가 연인이 생겨서 많이 바쁘구나,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네'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공감일 테다.


[09 마음은 넓게 이해는 여유롭게]

[117p] 마음이 편해진다는 건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다. 더 이상 내 가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은 조금 더 살 만해진다.

작가는 이 장에서 절대라는 가치 판단의 위험성을 알렸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외도는 절대 안 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부분에 절대를 대입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성친구와 만나는 것은 싫지만, 내가 막아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외도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흡연자들의 흡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도에서 대놓고 담배를 태우는 행동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어떤 부분에서는 절대라는 단어를 대입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절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든 부분에서 절대를 대입할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부분에서 절대를 외치는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꽉 막힌 사람이다. 또한 모든 부분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아가 없고, 주체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절대라는 말을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말도 절대를 대입하는 일이다. 여기서 또 말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중용이 중요하다.


[10 나의 생각 알아차리기]

[123p] 생각하는 나를 인지하는 순간 많은 게 달라진다.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리면 곧 그 생각을 하지 않는 결정도 할 수 있다.

생각이 많아지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자기 직전의 그 고요함은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생각하면 안 된다는 고민을 하면서 다시금 사에 빠진다. 그 근심의 늪은 언제나 그렇듯 긍정적이지 않다. 겨우겨우 잠에 든다고 해도, 부정적인 관념이 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기 때문에 숙면이 어렵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린다. 심리적으로 너무도 위태한 상태가 된다. 그럴 때마다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자세로 앉아서 하는 명상이든, 왼발 오른발을 되뇌며 걷는 산책 명상이든 뭐든 좋다. 생각을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명상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든 좋은 행위임이 분명하다.


[11 때로는 흘려보내도 좋을 감정]

[129p] 짜증이 올라오는 걸 인지하면 혼자 심호흡 세 번 정도 한 후 그 짜증을 흘려보낸다. 그렇게 우리는 30년 이상 쌓였던 애증을 조금씩 풀어 가고 있었다.

가족은 떨어질수록 더욱 소중해진다. 같이 살면 가장 소중한 존재의 의미를 잊게 된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잦아진다. 그 상태로 소중한 존재가 영면에 든다면 엄청난 고통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가족에게 했던 나쁜 말들이 떠오르고 극심한 고통이 아주 오랫동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이 가장 좋지만, 같이 살아야만 한다면 나쁜 말을 하는 자신을 직시하는 게 현명하다.

깊게 고민했을 때 가족에게 죄가 없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미 화가 나 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있던 불화에 대한 화풀이, 몸이 아픈 것에 대한 화풀이 등 가족은 잘못이 없는데, 외부에서 온 그 악감정을 가족에게 풀어내서는 안 된다. 그 행위를 평생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직시할 수는 있다. 내가 오늘 화를 낸 것은 순전히 나의 책임이고, 그것에 대한 사과를 해야겠다는 성찰을 할 수 있다. 성찰이 되지 않고 사과도 하기 어렵다면, 가족과의 관계는 평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 풀어내야 하고, 가족은 그 부정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12 온실에서 탈출할 용기]

[136p] 당당하고, 자신감 있고, 자존감이 높고, 자아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내가 말한 이 모든 조건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그냥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이 보물은 타인의 기대, 세상의 기준 뒤에 가려져 있다.

평범함에는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안정적인 결혼생활의 끝이 이혼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이혼을 아주 쉽게 하기도 한다. 그들이 잘못된 삶을 살아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이혼한 사람들은 멀쩡한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은 듯 보인다. 학력과 관계없이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들도 이혼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정의 필수 요건이 평범한 가정과, 높은 학력이 아니라는 소리다. 행복도의 주요 관점은 개인의 높은 월급이 아니다. 자아실현 욕구가 채워진 사람일수록 행복도가 높아졌고, 그런 사람에게는 금전운도 따랐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금전이 아니다. 돈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사람의 행복도는 점차 낮아졌고, 자신의 꿈을 향에 천천히 걸어온 사람의 행복도는 점진적으로 높아졌다. 금전은 부가적인 가치일 뿐이다.

모두가 원하고, 모두가 걷는 길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 길도 나쁘지 않다. 유재석 조차도 꿈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한 번쯤은 재고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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