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파산 - 장수가 부른 공멸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홍성민 옮김 / 동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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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가 방학이니까..  더운 여름날씨에 함께 집에만 내내 있기는 어렵고 실외에 있기는 더 힘든 요즘같은 나날, 난 오늘도 아이의 손을 잡고 근처 마트의 키즈카페(?같은 공간으)로 향했다.  아이를 넣어준 뒤 아이의 환희에 찬 시간의 뒤에서 난 몰래 커피를 즐기며 자유시간을 즐길 요량으로 그런 날에는 늘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간다.  어제는 소설 <아들>을 읽었고..  오늘은 더 이상 가볍게(?) 들고 나갈 소설이 없어 분량으로(사실 무게로) 따져서 찾아든 것이 이 책이다.  특히 차량 점검으로 일정시간 이상 마트에서 버틸 수 밖에 없는 오늘의 상황을 고려, 띄엄띄엄 또는 쉬엄쉬엄 읽을 수 있도록 약간 지루해보이는 다큐멘터리 책을 약간은 뻔한 속셈으로 집어들었다. 

 

 

열대야 속에 전기세를 걱정하며 잠을 청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선풍기만한 효자상품은 없다는 건 아마 웬만한 집에서는 다 공통된 의견일 것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라서 선풍기를 밤새 고정해놓고 잠들다보니 "오뉴월에는(음력 얘기일 것이다) 개도 안 걸리다"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던 차라, 약국도 갖추고 있는 대형마트는 이래저래 훌륭한 방문지가 되어준다.  오늘도 아이를 넣어두고 볼 일을 보고 물건을 들고 아이가 놀고 있는 키즈카페 앞으로 와서 그 앞에 놓인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그 누구에게 방해가 될 일도 또 그 누군가에게 방해를 받을 일도 없는 그 완벽한 공간에서 나는 가끔, 약간은 지루함으로 멍하니 신나게 놀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도 얻을 것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펴들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틀렸다.  보통은 이렇게 책에 대해 틀린 예상은 소박한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이 책의 경우는 그것도 아니었다.

 

 

우선,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NHK에서 일본의 초고령사회에 대한 탐구를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따라서 그 나라의 현실이요 아마 불행하게도 이 나라의 미래일 것이다.  이 책에서 촛점을 맞추는 세대는 3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개발의 한창 때에 태어나 거품시기의 절정 때에 풍요로운 청장년을 보낸 노년세대, 거품붕괴로 제대로 된 직장을 못 잡고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다가(프리타족이라고 부른단다) 경제적 고난과 수입급감 및 노부모의 병세로 인해 노부모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 장년층 자녀세대, 그리고 매일이란 시간을 하루살이마냥 전투적으로 견뎌내야하는(이 얼마나 역설적인 내용인가? 지구 상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치안상 안전하며 국민의 공공의식이 높은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 총성 하나 들리지 않고 앞으로도 들릴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그 나라에서 그 국민의 일부는 매일의 삶을 전투적으로 지켜나가야한다는 현실이..) 조부모와 부모 아래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밑바닥 없는 가난을 유일한 資産으로 물려받아야 할 손주들인 청소년세대.

 

 

이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은 좀 된 얘기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이미 이런 사회구성원들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문제로(물론 정치인들의 눈에는 아니고 일부 사회학자들과 지극히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공무원 눈에 말이다) 浮上한지도 좀 되었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상식을 갖고 첫 페이지를 열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실제 인터뷰를 했던 가족의 사례를 들어 촘촘히 추적한 내용을 볼 수 있을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 했었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에서 낯선 이름의 그 누군가들의 사례를 읽는 동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내게도 친정과 시댁 양쪽으로 간병인의 도움없이는 더 이상 하루도 정상적인 생활의 영위가 불가능한 노년의 친척들이 계시다.  다행히 정부의 보조금과 착한 자식들의 출연금으로 그 분들은 주택담보대출이 0인 自家에서 간병인 사용에 따른 비용에 대한 걱정없이 매일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감성적으로는 그 분들의 매일의 삶이 스스로에게는 전투일지언정, 사회적으로는 매우 안정된 형태란 얘기다.  그럼에도 그 자녀들에게는 그러한 노년의 부모 모습이 참으로 심적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한치 건너 두치 사이인 내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혹여 내 부모와 나의 모습 또는 나와 내 아들의 모습으로 대치되게 될까봐서 은연 중에 두려움을 품고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두려움이 현실화된 가족들이 부족한 경제력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여과없이 드러나있다.

 

 

사례로 나온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못 해 살고 있고 죽은 자들은 그걸 끝까지 못 해내서 죽었다.  아 공통점이 또 있구나.  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며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생이었고 어디서 위법 한 번 제대로(그러니까 제대로 말하자, 노상방뇨 수준이 아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나 도의원들이 해대는 수준의 초법적 행위들이나 탈세 말이다) 안 해본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가족들은 서로를 걱정하며 아끼고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고 주위사람들을 배려하며 누군가에게 폐를 끼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조심할 줄 아는 아주 예의바르고 훌륭한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일정수입이 없는 자녀세대가 이혼이나 실직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고 노화로 인하여 몸의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부모를 돕고자 부모의 집으로 合家한 순간부터, 그 선량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참 아이러니지만..  이게 바로 법의 엉성한 점이다.  세금을 거둬들이고 쥐어짜서 또 거둬들이고 탈탈 털어서 다 거둬드려가도 뿌려야 할 곳에 제대로 공급되도록 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 한 결국 응달은 영원히 응달일 뿐.  바꿔말하면 결코 현재의 稅收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落水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와 부모를 생각하는 효자 아들이 함께 하게 되며 불규칙적으로 아들이 벌어오는 돈이 하필이면 어느 달에 초과수입으로 잡혀서 그 부모는 더 이상 정부의 경제적 원조를 못 받게 된다.  이렇게 부정기적으로 일하는 가정에 대해서 수입을 계산할 때는 최소 미국 등이 이런 제도를 시행할 때 집어넣는 "연속 몇개월간의 평균치"란 단서를 달아야하는 것 아닌가?  답답한 것은 우리나라도 일본의 이런 탁상공론에서 비롯된 행정편의만 고려한 정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베껴다 써서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시키는 덜 떨어진 정치인들과 補身 위주의 공무원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황당하기 그지없는 시행령이 결코 그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지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그런 자들의 존재는 단순한 답답함을 넘어서 노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년의 내 입장에서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요 말년에 내가 유일하게 간직하고싶어 하는 인간의 존엄권 사수에 대한 공격이 되는 셈이다.

 

 

책의 내용은 구성 상, 각 가정이 어떻게 "가족이기에 파산"에 이르게 되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의 나이 상 어쩔 수 없이 경제적 파산은 곧 "삶의 파산"으로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  안타까운 것은, 전자의 경우는 NHK 다큐팀의 의도였지만 후자의 경우는 취재를 하는 가운데 겹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취재팀도 당황하게 되었던 부분이었다.  사례에 사례가 겹쳐나갈수록 그 가족들이 겪어온 그리고 겪어나갈 곤궁함과 그로 인한 당혹감이 여실히 느껴져서 나 역시 숨쉬기가 어려웠다.  특히 나중에 나오는 노년의 병상 위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집에서 어머니의 연금에 의지하여 생활하며 경제적 곤궁을 극심한 절약으로 메꿔보고자 그 어머니를 홀로 돌보느라 자신의 몸도 못 돌 본 장년의 아들이 함께 死者로 발견된 사례는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당혹스러웠다.  편의점에서 점심도시락으로 김밥을 사며 천원대나 2천원대가 다 팔려서 3천원에 조금 못 미치는 김밥을 사야한다고 당혹해하는 모습에(그러니 그 나라돈으로는 289엔 정도나 할까), 아니 그것이 그 풍요로운 사회에서 연명해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 설명에 더 마음이 아팠던 듯 하다.  이것이 어찌 비단 우리가 아닌 그들만의 모습이며 내가 아닌 남의 모습이기만 할 수 있겠는가.

 

 

감기기운으로 인해 코로 숨 쉬기 어려워 눈물을 막고자 입을 벌려 크게 숨을 쉬어보려니, 지난 주부터 무리한 등근육이 격통을 일으켜 갈비뼈의 확장을 막는다.  가슴이 뻐근하도록 느껴진 고통은 내 육신의 상황에서 온 고통인지 책 속에서 접한 實在하는 그 가족들에 대한 슬픔인지 나로서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만일 후자라면, 그것은 아마 그들의 삶에 현실적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 대국에서 엄청난 세금을 긁어모으며 비상식적인 언변으로 국민을 농락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지켜나가는 이들에게는, 그런 일부 버려진 자들에 대해 시선을 돌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은 한 때 그 나라를 일으켜 세웠던 일꾼들이었고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이었단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결코 오늘과 같은 노년을 예측해본 일이 꿈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볼 때에도 그 타락한 국회의원들이 틀린 것은, 그들이 결코 그 나라의 "일부"에 불과한 수치로 조만간 사라질 그래프 상의 미미한 데이터 수준이 아니란 것이다.

 

 

나는 이 나라가 잿더미에서 일어날 때 힘을 보탠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더! 더!" 하며 열심히 쥐어짜가는 이 나라 정부의 노력과 열성 대비 실제 매일의 내 삶은 오히려 점점 더 팍팍해져감을 느끼고있고 그래서 다가올 노년에 대해서 일말의 공포심을 갖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그 모습들이 결코 낯설게 보이지가 않았다. 

 

 

내게도 90대의 조모가 계시고 70대의 노부모가 계시다.  그리고 중년층으로 그 사이에 낀 우리 부부 아래에는 이제 자라나기 시작하는 어린 세대가 있다.  지금처럼 정부는 정부대로 쥐어짜고 노후대책은 스스로 알아서 준비하라는 식의 사회구조 속에서 나는 솔직히 노후에 지금의 중산층인 양 하는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내 유일한 바램이자 소심한 계획은, 이후 아프면 진통제 정도만 구입할 수준의 자산을 남겨두고 통증만 다스리다가 갈 때를 늦추지 않고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자신과 내 아들 세대를 위한 유일한 선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 부모에 대해서는 다르다.  더 오래, 무조건 오래 살아계시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당신들이 갖고 계신 자산으로(그것이 집이든 연금이든 무엇이든) 그 노년을 채워나가며 그저 옆에 계셔주시기만 하면 좋겠다.  내 자신이 심각히 이기적인 것이겠지.  그런데 딱 그런 수준의 그 정도의 욕심으로 함께 그저 가족이기에 같이 버텨나간 사람들이, 딱 그런 수준의 그 정도의 욕심이 만들어낸 덫에 걸려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그렇게 덧없이 함께 스러져간 사례들을 읽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결코 남의 일같지가 않기에..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느꼈던 통증이 내 등의 통증이었는지 마음의 통증이었는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사회의 가치가 무너져가는 이 때에,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맡겨두지 말고, 바로 그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의무란 것을..  부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이 책을 읽고 깨달아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느낀 내 통증이 20년 뒤 헛된 망상이었음으로 알게 되면 좋겠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단 느낌이 들어 두렵기만 하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쉬엄쉬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겠단 단순한 계획은 무산되었다.  난 이런 저런 이유로 결코 책 위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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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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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작품은 이것이 처음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추운 북쪽의 나라에서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든 인물들이 활약하는 소설은 선뜻 손이 안 가게 되어 있다.  하긴 그건 이미 저자의 이름부터 그렇지만..

 

이 책의 존재를 접한 것은 다른 정보를 통해서였다.  작년에 이어 또 한 번의 대단한 폭염이 예상되는 여름의 초입 무렵, 휴가계획을 돕기 위해 사방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정보의 홍수들 중에는 여행지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여름날의 무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제시하는 책들도 끼어있었다.  당연히 그런 책들의 주된 장르는 미스테리물이나 추리물.  추리물일 경우에도 보통은 심리전이 대단한 납량특집급.  이 책은 그 중 하나로 거론되었던 저서다. - 그런데 다 읽고난 지금으로서는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정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드보일드 형사물이라고 하기엔 주인공이 형사도 아니고.  하지만 경찰들이 내용 전개상 주된 인물들로 나오기는 한다.   

 

"소년"이라고 지칭되며 나타난 주인공은 사실 이미 더 이상 소년의 나이는 아닌 인물이다.  하지만 저자는 대단히 흡입력이 강한 필력으로 빠른 전개를 통해 이 "소년"이 어떻게 소년일 때 이 곳으로(그러니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쏟아내간다.  일방적으로 휘몰아치는 소년의 과거는 갑작스러운 계기로 소년의 각성과 미래로 뻗어나간다.  그리고 시작된다, 소년의 연민에 찬 복수가.  알고보면 정의를 위한 복수도 아니다, 어차피 이 책에 나오는 그 어떤 인물도 정의로운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어쩌다 한 두명 있을까? 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직까지 타락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 한 잔챙이거나 젊음으로 인해 아직 어둠의 제안을 받아보지 못 했을 뿐이다.  읽으면서 내내 섬뜩하게 느낀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권력의 부패.  권력과 금력의 조화로 싹튼 부패에서 피어난 어둠이 점차 그 밝음을 덮어가는 구조.  그러한 구조가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진 만화가 바로,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어했던 배트맨의 고담시티라는 엄연한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은 인류가 권력이란 것을 만들어낸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어진 적도 앞으로도 없어질 예정이 없다는 당연하나 그렇기에 슬픈 진실.  그 진실이 이 소설의 배경에 가장 중요한 파편이기 때문이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의적 임꺽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슈퍼맨도 아니지만 적절하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며 감춰진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소년을 따라서 같이 궁금해진다, 이 소설 내의 도시 오슬로에서는 누가 그 어둠의 싹을 틔웠고 키워가고 있는 인물들인지.  그리고 누가 그 배신자였는지를.  소년의 원래 목표는 그 자들에 대한 복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끝에 가서 발견한 어떤 진실로 소년은 그 복수의 원동력을 잃고 포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나타난 누군가가 어쩌다 보니 그 모든 복수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읽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소년의 생명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기를 그리고 小惡에 비해 大惡을 저지른 자들이 제대로 된 응징을 받을 수 있기를 - 그러니까 그에 걸맞은 고통 속에 그 죄값을 치룰 수 있기를 - 응원 중인 것을 깨달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기는 해봤어도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그 주인공을 제3자 입장에서 응원해보는 감정은 참 오랜 만에 접해본 듯 하다.  보통은 잘 짜여진 플롯을 가진 추리물이나 미스테리물에서 느끼는 감정인데, 이 책을 읽으며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도시의 풍광이 활자를 통해 머리 속에 생생히 그려지면서 오랜 만에 그런 느낌에 빠져들어봤다.  그래서인가, 마지막의 작은 반전이라고 할까..  로빈후드마냥 끝까지 마무리를 짓고 가는 한 건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이 주인공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부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얼핏 생각해봤다.

 

아들..  아들이기에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성장했고, 아들이기에 아버지보다 더 커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영원히 소년이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원한 보호자요 라이벌일 수 밖에 없다.  그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이 아들이 선택한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하지만 아들의 상대들이 애시당초 그런 정의로운 잣대를 들이댈 가치나 있는 자들인가 생각해보면, 이런 "아들"이 우리 사회에도 좀 존재해주면 좋겠다는 헛된 바램을 살짝 가져보게 된다.  물론 그 방법은 실생활에서 접하기에는 참 많이 과격하지만.  여하튼, 이런 폭염이 몰려오기 전에 올해의 무더위를 예상했던 그래서 이 책을 여름휴가용으로 권했던 그(들)의 선택은 옳았다고 본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일어났으니까.  자주 접하면 식상한 플롯이지만..  가끔은 읽을 만 하고 그 "가끔"이 여름이면 확실히 좋을 법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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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마마로 살아가기 -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그녀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가야마 리카 지음, 안혜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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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참 바람직한 얘기. 난 아들이 있다, 따라서 이후 아들이 가정을 꾸릴 경우 상대여성이 누구일진 모른다. 하지만 그 가정에 아이가 없기로 했다면 적극 지지할 예정. 안 태어난 아이들보단 이미 태어나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고 사람들에 대해 더 신경쓰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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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2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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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사 볼 생각은 못 했었다.  이후 영화로 나왔고 영화도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단 얘기를 들었지만 역시 굳이 볼 생각은 못 했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 Hidden Figures를 보다가 그 곳에 나온 주인공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들의 필모를 찾아보다 보니 그들 중 한 명이 이 영화에 나왔다고 되어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봤다.  줄거리 외에는 아무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였는데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 배우들이 모두 약방의 감초처럼 여기저기서 감칠나게 연기를 해내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바로 알아본 나는 정말 기쁘게 영화에 빠져들었다.  생각 외로 잘 만든 영화였고, 그 영화에 대한 평을 다시 찾아 읽자니 소설이 더 좋다는 글들에 책도 주문해서 읽게 되었다.

 

읽다보니 영화에는 미처 다 담지 못 했던 내용들이 책에 더 나와있었고, 책에서는 주인공들이 흑인가정부들 쪽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에서 봤던 배우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더 마음 따뜻하게 친근하게 다가온 이는, 소설 속의 소설인 가정부를 실제로 집필한 아이빌린이었다.  잠든 어린 아들 옆에서 스탠드를 켜고 읽다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미시시피주가 어디인가 생각해봤다.  

 

 

잊고 있었던 미시시피, 뉴올리안즈의 습기찬 여름, 그 더위. 지열에 바로 녹아내릴 것 같은 그 뜨거운 여름날 3주, 잊고 있었다.  나는 1998년 여름 그 곳에 있는 로욜라 대학이란 곳에서 3주를 보냈었다.  기숙사에 방을 신청하고 대학원생들 숙소이기에 방은 각자 따로 쓰되 샤워실과 거실을 공유하는 일종의 아파트 형태의 숙소를 다른 여학생 3명 포함 총 4명이 함께 쓰기로 한다는 것만 알고 트렁크를 끌고 찾아갔던 그 곳의 첫 인상은 내게는 너무나 힘든 느낌이었다.  아는 이도 알고싶은 이도 아무도 없는 그 곳에 제일 처음 도착한 사람은 나였고,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서 그 황량한 방 풍경에 트렁크를 옆에 놓고 혼자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 침대 위에 그냥 잠시동안 아무 말 못 하고 홀로 앉아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 후 얼추 짐정리를 끝냈을 때쯤 방 밖에서 들린 새로 도착한 룸메이트의 소리에, 내 딴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 곳에서 얼른 누군가와 알고 지내고픈 마음에 최선을 다해 문을 열고나가 반갑게 인사했더랬다.  그렇게 처음 용기를 내어 마주한 아이가 반갑게 인사받으며 돌아선 순간 내 얼굴을 보고(그러니까 내 인종을 보고) 바로 굳이 감추려도 하지 않았던 헉?하는 소리에서 느낀 그 아이의 놀라움과 실망감.  그리고 이름을 묻는 내게 좀 전의 반가운 인사목소리와는 다르게 냉랭하게 누구라고 얘기했던 모습.  거기에서 충격받고 내 용기는 다시 자라가 목을 집어넣듯 껍데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뒤에 새로 더 온 2명의 백인여학생들은 모두 상냥하고 친절하고 편견도 없어보였지만..  이미 내 입장에서는 더 이상 다가갈 이들이 아니게 되었다.  그 원인이 되었던 첫번째 아이도 그 이유를 분명 알았을 것이고 굳이 미안해하지도 않고 있음을 역시 나도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 회상이 되고나니 문득, 그 첫번째 아이는 분명 남부 어느 지역 출신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머지 2명 중 한 명은 나더러 시카고에서 왔다고 했었고 또 한 명은 별로 말은 안 해봤지만 대도시까지는 아니라도 그렇게 인종차별이 만연한 지역출신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떠나는 날, 공항으로 태워다 줄 택시를 부르고 트렁크를 끌고나와 기숙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그제서야) 처음 본 제복을 입은 젊은 흑인여성 청소부.  그런 그녀가 내게 처음으로 걸어온 말, 너 여기 떠나는구나? 나도 떠나고 싶은데.. 난 못 가. 하고 멀리 바라본 그 눈길 속에서 나도 역시 멀리서 피어오르는 아지랭이를 바라보며 순진하게 속으로 되물었던 질문들.. 왜 못 떠나? 너희 나라는 이렇게 넓은데..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때 그 질문을 내가 입 밖에 내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가를.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충격과 외로움으로 매번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입 안에서 씹어삼키며 본의 아니게 과묵했던 그 시절의 내가 그 때 혹 그 질문을 입 밖에 냈더라면 그녀에게 많은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몰랐던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큰 축복과 자유가 없음을.

 

 

이 책은 소설이다.  배경은 1964년, 미시시피주 어느 가공의 작은 시골 마을, 잭슨 카운티.  하지만 그 안에 흘러내리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혐오감은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현실 속의 미시시피주의 대도시, 1998년의 뉴 올리안즈에서는 여전히 끈끈히 살아남아 있었음을,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지난 2017년의 오늘 소설 한 권을 덮고나서야 깨달았다.  책에서 나온 힐리와 엘리자베스, 미나와 아이빌린을 난 20년 전 이미 뉴 올리안즈에서 만났었다.  그리고 나도 잠시 그들의 입장에서 당혹감을 느껴봤었다.  그 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 볼 기회도 없이 그대로 뭔지 모를 그래서 다시 들춰 볼 이유도 없는 기억의 파편으로 내 안에 흩어져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뒤 곰곰히 생각하다가 깨닫게 된 것이다. 

 

 

이상한 건, 내가 거기서 보냈던 그 3주란 시간을 정말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완벽히 봉인해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창 밖의 기온과 창 안의 기온의 높은 차이로 창문은 습기가 거의 물처럼 타고 흘러내려서 마치 누군가가 호스로 창에 대고 물줄기를 틀어대는 것 같은 느낌에 낮에는 창 밖이 아예 안 보였던 곳.  더위에 지쳐서 흐느적대며 혹 허클베리 핀의 흔적이라도 찾아볼까 하고 주말에 나가본 시내에서 마주한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중절모를 쓰고 더위에 지쳐 퍼져있는 사람들과 저녁에 오픈 할 술집에서 한참 연습 중인 재즈음악 뿐이었다.  거기서 본 나폴레옹의 데드 마스크, 그리고 마크 트웨인을 팔아서 띄워놓은 미시시피강 위의 큰 유람선.  그 모든 파편들은 조각조각 기억하면서 정작 내가 어느 해 여름 그 곳에 왜 있었는지, 그리고 그 때 내가 머물렀던 로욜라 대학의 기숙사에서 부딪히고 스쳐갔던 인연들에 대해서는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단 3주 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거기에 대해 그렇게까지 봉인을 해야만 했을까.  그런데 떠나는 날 아침, 얼굴 가득히 부러움을 담고 "넌 떠나는구나? 하루도 더 있기 싫은 거지? 나도 그래.." 하며 멀리 바라보던 그 젊은 검은 얼굴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말릴 새도 없이 내 기억 속에서 또렷이 되살아나다니.. 

 

 

이제서야 그 때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간단히 응..하고 고개만 주억거릴 것이 아니라 한 마디 물어봤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그 때 너무 지치고 힘들고 슬픈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이름을 묻고 손이라도 한 번 잡고 인사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 주변을 돌아볼 기운이 없었을 때 스쳤던 사람들, 그리고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그 시선들, 그 모든 것이 이 책 안의 주인공들이 현실에 걸어나왔던 모습들이란 것을 그 때 이미 알았다면.  그 때 그 손을 한 번 잡고 우리 그래도 같이 기운내자고 했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10여 년 전에 되돌아온 내 고향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 원래 가족과 친구들 틈 속에 섞여서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누구에게 차별이란 것을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연 하며 살아간다.  내가 그러하듯, 그녀는 그녀의 고향에서 그렇게 자신의 가족과 또 어쩌면 꾸렸을 새로운 가족과 함께 그렇게 별 일 없이 살아가고 있을까.  

 

 

언제고 한 번쯤은 다시 가봐야할 곳 같다, 뉴 올리안즈는.  그 때는 그런 환경과 인간관계에 무지했기에 모르고 넘겼던 그 시절이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한지 꼭 확인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젊은 시절의 얼굴로만 기억에 남은 그녀가 20년을 통해 어떻게 변했든, 그녀의 소망대로 그 곳을 떠났기를 바란다.  아니라면 그녀가 원했기에 그 곳에 정착했기를 바란다.  어차피 20년 전의 그녀를 내가 알아볼 일은 없다,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그녀 역시 나를 알아볼 일은 없다, 우린 20년 전 더운 여름날 그 허허벌판같은 곳에 덩그라니 서있던 기숙사 정문 앞에서 더위에 힘들어하며 택시를 기다리는 때에 2,3분 스쳐간 인연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혹 내가 다시 찾아간 그 곳에서 그녀와 비슷한 얼굴의 청년이 보인다면 나도 모르게 그 청년의 표정을 살피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청년의 표정이 밝고 자신감에 차있지 않다면 내 마음이 헛헛할 것 같아서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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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 ㅣ 그리스인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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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처음엔 감탄하나 후일 다른 역저를 접하고 얼마나 조잡한 저술인가를 알았다. 언론이 띄워준 노작가, 딱 편의점 수준의 저자인데. 실제 저서 수준보다 특이한 이력이 먹혔던 90년대의 마지막 유물인 셈. 또 번역서가 나왔길래 저술이 아닌 저자에 대해 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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