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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파산 - 장수가 부른 공멸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홍성민 옮김 / 동녘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아이가 방학이니까.. 더운 여름날씨에 함께 집에만 내내 있기는 어렵고 실외에 있기는 더 힘든 요즘같은 나날, 난 오늘도 아이의 손을 잡고 근처 마트의 키즈카페(?같은 공간으)로 향했다. 아이를 넣어준 뒤 아이의 환희에 찬 시간의 뒤에서 난 몰래 커피를 즐기며 자유시간을 즐길 요량으로 그런 날에는 늘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간다. 어제는 소설 <아들>을 읽었고.. 오늘은 더 이상 가볍게(?) 들고 나갈 소설이 없어 분량으로(사실 무게로) 따져서 찾아든 것이 이 책이다. 특히 차량 점검으로 일정시간 이상 마트에서 버틸 수 밖에 없는 오늘의 상황을 고려, 띄엄띄엄 또는 쉬엄쉬엄 읽을 수 있도록 약간 지루해보이는 다큐멘터리 책을 약간은 뻔한 속셈으로 집어들었다.
열대야 속에 전기세를 걱정하며 잠을 청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선풍기만한 효자상품은 없다는 건 아마 웬만한 집에서는 다 공통된 의견일 것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라서 선풍기를 밤새 고정해놓고 잠들다보니 "오뉴월에는(음력 얘기일 것이다) 개도 안 걸리다"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던 차라, 약국도 갖추고 있는 대형마트는 이래저래 훌륭한 방문지가 되어준다. 오늘도 아이를 넣어두고 볼 일을 보고 물건을 들고 아이가 놀고 있는 키즈카페 앞으로 와서 그 앞에 놓인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그 누구에게 방해가 될 일도 또 그 누군가에게 방해를 받을 일도 없는 그 완벽한 공간에서 나는 가끔, 약간은 지루함으로 멍하니 신나게 놀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도 얻을 것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펴들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틀렸다. 보통은 이렇게 책에 대해 틀린 예상은 소박한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이 책의 경우는 그것도 아니었다.
우선,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NHK에서 일본의 초고령사회에 대한 탐구를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따라서 그 나라의 현실이요 아마 불행하게도 이 나라의 미래일 것이다. 이 책에서 촛점을 맞추는 세대는 3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개발의 한창 때에 태어나 거품시기의 절정 때에 풍요로운 청장년을 보낸 노년세대, 거품붕괴로 제대로 된 직장을 못 잡고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다가(프리타족이라고 부른단다) 경제적 고난과 수입급감 및 노부모의 병세로 인해 노부모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 장년층 자녀세대, 그리고 매일이란 시간을 하루살이마냥 전투적으로 견뎌내야하는(이 얼마나 역설적인 내용인가? 지구 상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치안상 안전하며 국민의 공공의식이 높은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 총성 하나 들리지 않고 앞으로도 들릴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그 나라에서 그 국민의 일부는 매일의 삶을 전투적으로 지켜나가야한다는 현실이..) 조부모와 부모 아래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밑바닥 없는 가난을 유일한 資産으로 물려받아야 할 손주들인 청소년세대.
이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은 좀 된 얘기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이미 이런 사회구성원들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문제로(물론 정치인들의 눈에는 아니고 일부 사회학자들과 지극히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공무원 눈에 말이다) 浮上한지도 좀 되었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상식을 갖고 첫 페이지를 열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실제 인터뷰를 했던 가족의 사례를 들어 촘촘히 추적한 내용을 볼 수 있을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 했었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에서 낯선 이름의 그 누군가들의 사례를 읽는 동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내게도 친정과 시댁 양쪽으로 간병인의 도움없이는 더 이상 하루도 정상적인 생활의 영위가 불가능한 노년의 친척들이 계시다. 다행히 정부의 보조금과 착한 자식들의 출연금으로 그 분들은 주택담보대출이 0인 自家에서 간병인 사용에 따른 비용에 대한 걱정없이 매일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감성적으로는 그 분들의 매일의 삶이 스스로에게는 전투일지언정, 사회적으로는 매우 안정된 형태란 얘기다. 그럼에도 그 자녀들에게는 그러한 노년의 부모 모습이 참으로 심적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한치 건너 두치 사이인 내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혹여 내 부모와 나의 모습 또는 나와 내 아들의 모습으로 대치되게 될까봐서 은연 중에 두려움을 품고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두려움이 현실화된 가족들이 부족한 경제력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여과없이 드러나있다.
사례로 나온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못 해 살고 있고 죽은 자들은 그걸 끝까지 못 해내서 죽었다. 아 공통점이 또 있구나. 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며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생이었고 어디서 위법 한 번 제대로(그러니까 제대로 말하자, 노상방뇨 수준이 아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나 도의원들이 해대는 수준의 초법적 행위들이나 탈세 말이다) 안 해본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가족들은 서로를 걱정하며 아끼고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고 주위사람들을 배려하며 누군가에게 폐를 끼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조심할 줄 아는 아주 예의바르고 훌륭한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일정수입이 없는 자녀세대가 이혼이나 실직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고 노화로 인하여 몸의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부모를 돕고자 부모의 집으로 合家한 순간부터, 그 선량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참 아이러니지만.. 이게 바로 법의 엉성한 점이다. 세금을 거둬들이고 쥐어짜서 또 거둬들이고 탈탈 털어서 다 거둬드려가도 뿌려야 할 곳에 제대로 공급되도록 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 한 결국 응달은 영원히 응달일 뿐. 바꿔말하면 결코 현재의 稅收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落水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와 부모를 생각하는 효자 아들이 함께 하게 되며 불규칙적으로 아들이 벌어오는 돈이 하필이면 어느 달에 초과수입으로 잡혀서 그 부모는 더 이상 정부의 경제적 원조를 못 받게 된다. 이렇게 부정기적으로 일하는 가정에 대해서 수입을 계산할 때는 최소 미국 등이 이런 제도를 시행할 때 집어넣는 "연속 몇개월간의 평균치"란 단서를 달아야하는 것 아닌가? 답답한 것은 우리나라도 일본의 이런 탁상공론에서 비롯된 행정편의만 고려한 정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베껴다 써서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시키는 덜 떨어진 정치인들과 補身 위주의 공무원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황당하기 그지없는 시행령이 결코 그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지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그런 자들의 존재는 단순한 답답함을 넘어서 노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년의 내 입장에서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요 말년에 내가 유일하게 간직하고싶어 하는 인간의 존엄권 사수에 대한 공격이 되는 셈이다.
책의 내용은 구성 상, 각 가정이 어떻게 "가족이기에 파산"에 이르게 되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의 나이 상 어쩔 수 없이 경제적 파산은 곧 "삶의 파산"으로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 안타까운 것은, 전자의 경우는 NHK 다큐팀의 의도였지만 후자의 경우는 취재를 하는 가운데 겹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취재팀도 당황하게 되었던 부분이었다. 사례에 사례가 겹쳐나갈수록 그 가족들이 겪어온 그리고 겪어나갈 곤궁함과 그로 인한 당혹감이 여실히 느껴져서 나 역시 숨쉬기가 어려웠다. 특히 나중에 나오는 노년의 병상 위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집에서 어머니의 연금에 의지하여 생활하며 경제적 곤궁을 극심한 절약으로 메꿔보고자 그 어머니를 홀로 돌보느라 자신의 몸도 못 돌 본 장년의 아들이 함께 死者로 발견된 사례는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당혹스러웠다. 편의점에서 점심도시락으로 김밥을 사며 천원대나 2천원대가 다 팔려서 3천원에 조금 못 미치는 김밥을 사야한다고 당혹해하는 모습에(그러니 그 나라돈으로는 289엔 정도나 할까), 아니 그것이 그 풍요로운 사회에서 연명해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 설명에 더 마음이 아팠던 듯 하다. 이것이 어찌 비단 우리가 아닌 그들만의 모습이며 내가 아닌 남의 모습이기만 할 수 있겠는가.
감기기운으로 인해 코로 숨 쉬기 어려워 눈물을 막고자 입을 벌려 크게 숨을 쉬어보려니, 지난 주부터 무리한 등근육이 격통을 일으켜 갈비뼈의 확장을 막는다. 가슴이 뻐근하도록 느껴진 고통은 내 육신의 상황에서 온 고통인지 책 속에서 접한 實在하는 그 가족들에 대한 슬픔인지 나로서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만일 후자라면, 그것은 아마 그들의 삶에 현실적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 대국에서 엄청난 세금을 긁어모으며 비상식적인 언변으로 국민을 농락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지켜나가는 이들에게는, 그런 일부 버려진 자들에 대해 시선을 돌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은 한 때 그 나라를 일으켜 세웠던 일꾼들이었고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이었단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결코 오늘과 같은 노년을 예측해본 일이 꿈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볼 때에도 그 타락한 국회의원들이 틀린 것은, 그들이 결코 그 나라의 "일부"에 불과한 수치로 조만간 사라질 그래프 상의 미미한 데이터 수준이 아니란 것이다.
나는 이 나라가 잿더미에서 일어날 때 힘을 보탠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더! 더!" 하며 열심히 쥐어짜가는 이 나라 정부의 노력과 열성 대비 실제 매일의 내 삶은 오히려 점점 더 팍팍해져감을 느끼고있고 그래서 다가올 노년에 대해서 일말의 공포심을 갖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그 모습들이 결코 낯설게 보이지가 않았다.
내게도 90대의 조모가 계시고 70대의 노부모가 계시다. 그리고 중년층으로 그 사이에 낀 우리 부부 아래에는 이제 자라나기 시작하는 어린 세대가 있다. 지금처럼 정부는 정부대로 쥐어짜고 노후대책은 스스로 알아서 준비하라는 식의 사회구조 속에서 나는 솔직히 노후에 지금의 중산층인 양 하는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내 유일한 바램이자 소심한 계획은, 이후 아프면 진통제 정도만 구입할 수준의 자산을 남겨두고 통증만 다스리다가 갈 때를 늦추지 않고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자신과 내 아들 세대를 위한 유일한 선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 부모에 대해서는 다르다. 더 오래, 무조건 오래 살아계시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당신들이 갖고 계신 자산으로(그것이 집이든 연금이든 무엇이든) 그 노년을 채워나가며 그저 옆에 계셔주시기만 하면 좋겠다. 내 자신이 심각히 이기적인 것이겠지. 그런데 딱 그런 수준의 그 정도의 욕심으로 함께 그저 가족이기에 같이 버텨나간 사람들이, 딱 그런 수준의 그 정도의 욕심이 만들어낸 덫에 걸려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그렇게 덧없이 함께 스러져간 사례들을 읽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결코 남의 일같지가 않기에..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느꼈던 통증이 내 등의 통증이었는지 마음의 통증이었는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사회의 가치가 무너져가는 이 때에,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맡겨두지 말고, 바로 그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의무란 것을.. 부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이 책을 읽고 깨달아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느낀 내 통증이 20년 뒤 헛된 망상이었음으로 알게 되면 좋겠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단 느낌이 들어 두렵기만 하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쉬엄쉬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겠단 단순한 계획은 무산되었다. 난 이런 저런 이유로 결코 책 위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