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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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아이에게 휴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 손을 잡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편이다.  성격상 정해진 시간과 루트에 따라 다니는 패키지보다는 자유여행족이다보니, 여행지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1) 치안상태, 2) 말이 통하는가, 3) 여행기간 대비 이동거리가(해외의 경우는 항공시간이 될 듯) 적절한가이다.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 2박3일 또는 일주일 미만의 여행일 경우 주로 낙점되는 곳이 일본이다.  그러다보니, 아이와 함께 다니는 곳으로는 최근 몇년간 매년 일본만 4~5번은 되는 것 같다. 

 

도시에서 살며 또 도시로 떠나는 것이 싫어서 대부분의 경우는 시골 구석진 곳으로 찾아가서 기차로 이동하며 자연풍광과 트래킹, 온천을 즐기고 온다.  간혹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서 대도시로 갈 경우에는 아이를 위해서는 딱 미국산 놀이동산이,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서는 서점이 목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도시 안에서는 주변에 신경쓰지 않고 그 도심 안의 그림자처럼 잰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편이다.  그래도 간혹(그러니까 요즘 들어서는 좀 더 자주라고 해야하나) 극우세력들의 험악한 구호와 플랜카드들이 나부끼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특정국가의 "정부"를 좋아하지 않고 또 특정국가의 "국민성"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굳이 개인에 대한 혐오로 발산할 생각은 안 해봤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여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그런 수준의 무차별적 혐오와 증오를 대로변에서 쏟아내는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그 삶이 과연 만족스럽고 평안한 자들이었을까.  불특정다수에 대해 그런 정도의 증오를 쏟아내려면 본인들은 얼마나 굴곡지고 왜곡된 일생을 살아왔을까.  그런 생각에 미치면 오히려 그들이 안쓰러울 정도이고, 단지 그들로 인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재일교포들의 일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일본이란 국가의, 국민들에게 퍼져있는 특유의 무관심과 大勢에 대해 감히 큰 소리를 내지 못 하는 특성 상 저런 소리가 비록 크게 들리지만 그것이 그들 다수의 의견은 아닐 뿐더러 또 언젠가는 知性이 그 사회를 지배할 날이 돌아오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내 생각이 너무 안일했었나 싶다.

 

日本國人들의 특정국가나 민족에 대한 왜곡된 생각 또는 편협한 감상은 어쩌면 대도시에서 스피커를 켜고 검정색 밴을 몰며 험악한 욕설과 구호를 외치는 자들과 그 단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도 한 장 들고 시골마을을 슬슬 걸으며, "이 곳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을 때 자전거를 끌고서라도 함께 걸어가며 길을 알려주는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어쩌면, 낯선 이에게는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일상의 가르침을 실천하느라 마음 속의 혐오를 억지로 숨기고 있었던 이들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日本國人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흐르는, 外國人이 그 언어를 좀 공부하고 책을 읽을 수준이 되었다고 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뿌리깊은 문화의 장벽을 보여준다.  증발하는 이유가, 그 사회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붕어빵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었을 때 그 수치심을 견딜 수 없어서 또는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는 잉여인간이 되는 것이 싫어서 나온 길을 그대로 걸어서 떠나버린 자들이 이 책에서 든 예의 절반 이상이란 부분.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 同流의 행렬에서 이탈했을 때의 충격은 자신의 삶을 통채로 부정해버릴 정도의 무게로 다가온다는 것.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과는 달리, 일본의 제국주의는 한 시대의 지도자가 집단광기를 이용해서 誤導해서 끌고 간 선택이 아닌, 그 나라사람들의 피 속에 흐르는 유전형질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글을 읽는 내내, 행렬의 한 부분도 흐트러짐없이 똑같은 속도로 행진하며 똑같은 각도로 팔을 들어올려 경례를 하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과시용인 대규모 군단행렬이 떠올라 섬뜩할 정도였다.  지금의 日本國人들은 정신적으로 그런 행진을 쉬지않고 해온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모르게 세뇌된 그들은 무엇인가 비난해야할 상대를 찾고싶을 때 그 자리에 적절한 대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북한이다.  일본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납북자들은 17명.  물론 그보다 조금은 더 많을지 몰라도 日本國人들 중 "인간증발"로 가족을 잃어버린 자들 중에서는 그 가족의 자발적 증발로 남은 자신들이 패배자이자 도망자의 가족이란 굴레를 덮어쓰는게 싫은 나머지 북한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들이 수천명이란다.  그러니까 정부의 발표와 달리 그 가족에 의하여, 북한에 납북되어서 자국에서 증발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되어지는 도망자들이 수천명이란 얘기이다.  그리고 그 한 예로 나온 도망자가 실종 당시 20대 초반의 키 178, 몸무게 77~8킬로그램의 권투를 프로급으로 했던 건장한 청년이었다.  

 

북한이 일본인을 납북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길에서 산책하는 자들을 끌고가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물색할 때 북한땅 안에서 재생산의 여력이 되며 저항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10대 여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또는 특정기술이 필요할 경우-가령 엔지니어나 교사 등- 특정직업군을 선택해서 성인을 납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용직 근로자로 한 때 권투로 시합에까지 나섰던 2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의 청년을?  그 가족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그 청년의 효용가치 대비 위험도가 현격히 높아지는 그런 대상을 굳이 고생해서 끌고 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럼에도 그 가족들은 이미 자신들의 가설이 진실인 양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아버지는 북한을 상대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서 어떻게든 전파를 송신하려고 8년여 째 애쓰고 있단 부분, 그렇게 믿는 자들끼리 함께 만든 단체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힘껏 활동중이란 부분,  그리고 그 청년이 어째서 북한의 타겟이 되었을까요 하는 질문에 전에 살던 곳이 "한인타운" 근처라서 거기서 잘못된 만남이 있었을 거라 망설임없이 대답한 부분을 읽으며..  정말 이들의 비겁함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탄식하게 만들었다.

 

일본이란 나라 안에서 日本國人들끼리 만들어낸 同流라는 虛像에서 낙오된 자들은 그 자만의 실패가 아닌 그 자를 배출해낸 가문과 가족의 수치가 된다.  그러니 남은 자들까지 또 다시 사회로부터 매도당하고 밑바닥에 갈아앉아있는 끈질긴 비웃음과 무시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낙오자가 그 집안의 수치이자 실패에 대한 생생한 증거로 남아있으면 안 된다.  그들은 결코 자발적으로 증발을 선택해서는 안 되는 자들이었으며 차라리 자살을 할지언정 하루아침에 소식을 두절하고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남은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그 이유를, 즉 타인에게 전가할 수 있는 원인을 찾아 제공하고자 애쓴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북한이란 카드인 것이다.  그 나라의 폐쇄성과 지구 위에서 인정받는 공공연한 깡패국가란 점이 이 때만큼은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할 뿐이다.  글을 읽다보면 실제 활자가 씌여있는 검은 부분보다 그 사이에 남아있는 흰 종이 부분, 즉 行間에서 더 많은 것이 읽혀질 때가 있다.  자신들의 수치심, 자괴감을 덮기 위해서 악착같이 붙든 한 올의 지푸라기가 그렇게 그 나라 안에서 뿌리를 박고 자라나 그 곳에 살고 있는 또다른 사람들에게 큰 상처로 일상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다가올지언정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집단"에서의 이탈은 결코 본인들의 의지가 아니라고 주변에게 부르짖어야만 하는 그 이기심, 그 무지함.  그것들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불쾌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사고방식이 아닌 것처럼 또한 결코 몇백년 안에 풀어질 편협함도 아니란 것이 이해됨과 동시에, 과연 이 나라가 어린이와 여자로 구성된 우리 母子에게 안전한 나라라고 내가 분류해도 되는 곳일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 다가온 또 한가지의 사실.  토요타의 재건에서 부럽게 바라봤던 그 "토요티즘"이 사실은 전체주의의 또 다른 형태로 포장된 개념이고 그로 인해 개개인의 직원들은 개별적 인격이 말살되며 회사의 한 부품으로 재개발되어 사용되고 버려진다는 내용.  "좋은 직원은 사장(회사도 아니다!)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세뇌시키고 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을 구성함이 그 성장동력의 원천이었다는 내용.  "토요타를 본받으려는 사람들은 뭔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라는 구절.  나 역시 전에 읽었던 책에서 감탄을 금치 못 했던 그 성공의 뒤에는 이런 개성말살과 집단화 시스템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나니, 日本國人은 그 나라에 태어나고 그 나라에서 성장함으로써 태생적으로 전체주의자, 또는 그 旗幟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제국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因子를 몸 속에 낙인처럼 갖고 사는구나 싶어 솔직히 충격이었다.  물론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 마냥 음지와 양지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쪽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日本國人의 속성이 감탄과 경이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실험과 연구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보다 日本國人이란 사람들에 대해 나 역시 저도 모르게 갖고 있었던 왜곡된 또는 안일한 생각을 벗어버리게 해준 것으로는 고마우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大義도 없이 그저 증발된 자들 또는 그 자들의 주변인들을 인터뷰해서 올린 수준의 책 구성은 솔직히 프로라기보다는 아마추어급 저술인지라 이 책 자체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줄 수가 없다.  다만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읽어나가며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이 상당히 놀라왔던지라 그런 부분을 깨우쳐준 것에 대해서는 별 2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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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여단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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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 이후 2번째로 접한 존 스칼지의 저서. 이번에는 묵중한 느낌으로 전개, 그리고 약간의 안타까움으로 결말을 맺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만들어진 인간으로부터 더 참된 인간성을 접하면서.. 주인공의 결말이 그대로가 좋은걸까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한 부분도,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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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수학 부모가 가르쳐라! - 부모가 먼저 이해하고 알려 주는 초등 수학 비법!
일본 마루코사 편집부 기획.구성, 김소영 옮김 / 그린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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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개념과 공식을 이렇게 알기쉽게 엑기스만 뽑아 정리해놓다니! 미분•적분 등 고등수학 과정을 빼고는(하긴 요즘 교과과정은 모르겠지만) 중등수학까지는 그대로 다 커버된 느낌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도형방정식 수업시간에 딴 생각하다가 그 부분을 결코 따라잡지 못 한 경험이 있다. 당시 수학교사에게 따로 찾아가 설명도 요청해보고, 그녀의 설명으로는 전혀 못 알아듣겠기에 해법과 정석으로 재도전도 해봤지만 개념에 대한 이해없이 무조건 어려운 문제로 바로 들어가는 통에 끝까지 그 내용을 이해 못 했었다. 그래서 도형방정식, 특히 삼각형 하나를 주고 그걸로 원뿔을 만들 때 겉면적과 부피를 구하란 문제는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 책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어차피 수학은 내가 커버해줄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간혹 물어올 때, 내 과거의 실패경험에 비추어 최소한 그 개념을 설명해줄 정도의 얕은 지식 수준은 탑재해두고파서 제목만 보고 구매했다. 그런데 이게 보물단지였을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내 고등학교 시절 수학교사는 그녀부터 수리문제 외에 학문으로서의 수학에 대한 개념이해가 전무했던 듯 하다.(명색이 수학교육과 출신일 텐데, 그런 걸 보면 교사임용시험의 문제출제 방향을 근본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교무실에 다녀온 친구들 말로는 "휴식시간 때마다 해법을 같이 풀고 있더라"였다. 그러니까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공식만 간신히 외워 무조건 어려운 문제부터 풀어보는, 기초력 부족인 상태에서 탑을 쌓아보려 애쓰다 모래탑이 되어버린 결과는 학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어째서 원기둥과 원뿔의 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공식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개념을 정립해주며 공식을 설명해준다. 개념이해의 바탕 위에 세워진 공식 주입은, 문제가 아무리 뒤틀려 나와도 적절한 공식을 찾아 대입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주리라 기대하게 된다. 따라서 초중등수학에 대해 학부모에게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는 설명서로, 교사에게는 수업보조서로, 그리고 학생에게는 요약집으로 활용될 수 있다. "수의 정석"이란 책에서 그 "정석" 단어가 어떤 특정 저서의 고유명사화하였지만, 그 단어의 뜻을 생각해본다면 일반명사로서는 이 책에게 그 명칭을 양보하라 하고 싶다. 그만큼 내게는 무릎을 탁 치게 할 정도의 접근방식을 선보여줬다. 내 학창시절, 그 정석이 아닌 이 "정석"이 있었다면 난 아마 내가 원하던 학교의 학과에 원서를 접수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지금의 내 모습도 또한 다른 행보로 달라져있지는 않았을까, 이 한가한 토요일 오전에 조금은 나른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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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기는 사람들의 비밀 - 불공평한 세상에서 발견한 10가지 성공 법칙
리웨이원 지음 / 갤리온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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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저자란 것을 보고 처음에 좀 망설였었다.  하지만 출판사의 선전문구가 요란해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샀는데.. 펼쳐서 조금 읽다가 덮었다.  이런 류의 책들은 그 대다수가 보통 두가지로 방향을 나뉘는데, 한 편은 다독이며 사랑으로 가득 찬 느낌으로 얘기한다면 다른 편은 독한 느낌으로 공격적으로 몰아부치는 느낌으로 얘기를 풀어간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 중 좋은 느낌을 받는 건 그런 2가지의 편향된 논조의 중간을 취하며 적절한 균형감각으로 풀어나갈 때이다.  불행히도 그런 균형잡힌 저자들의 저술은 내가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읽어본 자기계발책들 중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이 책도 직접 그 내용을 살짝 읽어보지 못 한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려다 보니, 중국이란 나라의 특성이 있어서 후자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지만 출판사가 적극적으로 올려둔 선전문구들이 워낙 좋아서 일단 저지르고 봤다.  그런데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특히 52페이지, 캘리포니아 주의원 엘가란 사람의 얘기를 띄우는 부분까지 간 뒤에는 더 읽을 가치를 못 느껴 그냥 덮어버리게 되었다. 

 

주의원 엘가가 정계에 입문하기 전의 얘기이니 꽤 오래 된 얘기일 듯 하다.  그런데 52페이지 서두에 이렇게 나온다: 그의 수입은 매년 100만 달러를 넘지 않았다.  이는 "당시 미국 서민의 평균 수준"이었다.(따옴표 부분은 내가 강조하기 위해 넣었다.) 

 

미화 백만불이 넘지 않는다는 얘기는 바꿔말하면 미화 10달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낌 상 백만불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일 때 저렇게 표현한다는 걸 고려하면, 이는 저자의 오류이든지 아니면 역자의 능력부족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100만불은 예전에도 큰 돈이었고 지금도 큰 돈이다. 오늘날의 환율로 따져도 한화로 12억이 넘는 금액이다.  그 정도의 금액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서민 수준인 나라라면 나도 당장 모든 걸 다 팔아치우고 거리에서 껌을 팔더라도 가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불행히도, 연간 미화 백만불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이 서민 수준인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지구 상에는 없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집어넣은 일화(인 양 거짓)인지는 모르겠으나 51페이지까지 읽어오며 올라왔던 신물까지 쌓인 상태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저자의 수준에 그대로 책을 덮었다.  누구에게도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물론 총 327페이지 중 딸랑 51페이지+한 단락 읽은 걸로 책 전체에 대해 판단을 하는 것은 심한 오류를 범하는 일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는 하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제대로 판단하겠지, 일단 나는 아닌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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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파산 - 장수가 부른 공멸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홍성민 옮김 / 동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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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방학이니까..  더운 여름날씨에 함께 집에만 내내 있기는 어렵고 실외에 있기는 더 힘든 요즘같은 나날, 난 오늘도 아이의 손을 잡고 근처 마트의 키즈카페(?같은 공간으)로 향했다.  아이를 넣어준 뒤 아이의 환희에 찬 시간의 뒤에서 난 몰래 커피를 즐기며 자유시간을 즐길 요량으로 그런 날에는 늘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간다.  어제는 소설 <아들>을 읽었고..  오늘은 더 이상 가볍게(?) 들고 나갈 소설이 없어 분량으로(사실 무게로) 따져서 찾아든 것이 이 책이다.  특히 차량 점검으로 일정시간 이상 마트에서 버틸 수 밖에 없는 오늘의 상황을 고려, 띄엄띄엄 또는 쉬엄쉬엄 읽을 수 있도록 약간 지루해보이는 다큐멘터리 책을 약간은 뻔한 속셈으로 집어들었다. 

 

 

열대야 속에 전기세를 걱정하며 잠을 청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선풍기만한 효자상품은 없다는 건 아마 웬만한 집에서는 다 공통된 의견일 것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라서 선풍기를 밤새 고정해놓고 잠들다보니 "오뉴월에는(음력 얘기일 것이다) 개도 안 걸리다"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던 차라, 약국도 갖추고 있는 대형마트는 이래저래 훌륭한 방문지가 되어준다.  오늘도 아이를 넣어두고 볼 일을 보고 물건을 들고 아이가 놀고 있는 키즈카페 앞으로 와서 그 앞에 놓인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그 누구에게 방해가 될 일도 또 그 누군가에게 방해를 받을 일도 없는 그 완벽한 공간에서 나는 가끔, 약간은 지루함으로 멍하니 신나게 놀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도 얻을 것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펴들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틀렸다.  보통은 이렇게 책에 대해 틀린 예상은 소박한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이 책의 경우는 그것도 아니었다.

 

 

우선,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NHK에서 일본의 초고령사회에 대한 탐구를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따라서 그 나라의 현실이요 아마 불행하게도 이 나라의 미래일 것이다.  이 책에서 촛점을 맞추는 세대는 3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개발의 한창 때에 태어나 거품시기의 절정 때에 풍요로운 청장년을 보낸 노년세대, 거품붕괴로 제대로 된 직장을 못 잡고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다가(프리타족이라고 부른단다) 경제적 고난과 수입급감 및 노부모의 병세로 인해 노부모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 장년층 자녀세대, 그리고 매일이란 시간을 하루살이마냥 전투적으로 견뎌내야하는(이 얼마나 역설적인 내용인가? 지구 상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치안상 안전하며 국민의 공공의식이 높은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 총성 하나 들리지 않고 앞으로도 들릴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그 나라에서 그 국민의 일부는 매일의 삶을 전투적으로 지켜나가야한다는 현실이..) 조부모와 부모 아래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밑바닥 없는 가난을 유일한 資産으로 물려받아야 할 손주들인 청소년세대.

 

 

이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은 좀 된 얘기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이미 이런 사회구성원들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문제로(물론 정치인들의 눈에는 아니고 일부 사회학자들과 지극히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공무원 눈에 말이다) 浮上한지도 좀 되었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상식을 갖고 첫 페이지를 열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실제 인터뷰를 했던 가족의 사례를 들어 촘촘히 추적한 내용을 볼 수 있을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 했었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에서 낯선 이름의 그 누군가들의 사례를 읽는 동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내게도 친정과 시댁 양쪽으로 간병인의 도움없이는 더 이상 하루도 정상적인 생활의 영위가 불가능한 노년의 친척들이 계시다.  다행히 정부의 보조금과 착한 자식들의 출연금으로 그 분들은 주택담보대출이 0인 自家에서 간병인 사용에 따른 비용에 대한 걱정없이 매일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감성적으로는 그 분들의 매일의 삶이 스스로에게는 전투일지언정, 사회적으로는 매우 안정된 형태란 얘기다.  그럼에도 그 자녀들에게는 그러한 노년의 부모 모습이 참으로 심적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한치 건너 두치 사이인 내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혹여 내 부모와 나의 모습 또는 나와 내 아들의 모습으로 대치되게 될까봐서 은연 중에 두려움을 품고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두려움이 현실화된 가족들이 부족한 경제력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여과없이 드러나있다.

 

 

사례로 나온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못 해 살고 있고 죽은 자들은 그걸 끝까지 못 해내서 죽었다.  아 공통점이 또 있구나.  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며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생이었고 어디서 위법 한 번 제대로(그러니까 제대로 말하자, 노상방뇨 수준이 아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나 도의원들이 해대는 수준의 초법적 행위들이나 탈세 말이다) 안 해본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가족들은 서로를 걱정하며 아끼고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고 주위사람들을 배려하며 누군가에게 폐를 끼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조심할 줄 아는 아주 예의바르고 훌륭한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일정수입이 없는 자녀세대가 이혼이나 실직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고 노화로 인하여 몸의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부모를 돕고자 부모의 집으로 合家한 순간부터, 그 선량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참 아이러니지만..  이게 바로 법의 엉성한 점이다.  세금을 거둬들이고 쥐어짜서 또 거둬들이고 탈탈 털어서 다 거둬드려가도 뿌려야 할 곳에 제대로 공급되도록 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 한 결국 응달은 영원히 응달일 뿐.  바꿔말하면 결코 현재의 稅收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落水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와 부모를 생각하는 효자 아들이 함께 하게 되며 불규칙적으로 아들이 벌어오는 돈이 하필이면 어느 달에 초과수입으로 잡혀서 그 부모는 더 이상 정부의 경제적 원조를 못 받게 된다.  이렇게 부정기적으로 일하는 가정에 대해서 수입을 계산할 때는 최소 미국 등이 이런 제도를 시행할 때 집어넣는 "연속 몇개월간의 평균치"란 단서를 달아야하는 것 아닌가?  답답한 것은 우리나라도 일본의 이런 탁상공론에서 비롯된 행정편의만 고려한 정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베껴다 써서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시키는 덜 떨어진 정치인들과 補身 위주의 공무원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황당하기 그지없는 시행령이 결코 그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지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그런 자들의 존재는 단순한 답답함을 넘어서 노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년의 내 입장에서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요 말년에 내가 유일하게 간직하고싶어 하는 인간의 존엄권 사수에 대한 공격이 되는 셈이다.

 

 

책의 내용은 구성 상, 각 가정이 어떻게 "가족이기에 파산"에 이르게 되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의 나이 상 어쩔 수 없이 경제적 파산은 곧 "삶의 파산"으로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  안타까운 것은, 전자의 경우는 NHK 다큐팀의 의도였지만 후자의 경우는 취재를 하는 가운데 겹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취재팀도 당황하게 되었던 부분이었다.  사례에 사례가 겹쳐나갈수록 그 가족들이 겪어온 그리고 겪어나갈 곤궁함과 그로 인한 당혹감이 여실히 느껴져서 나 역시 숨쉬기가 어려웠다.  특히 나중에 나오는 노년의 병상 위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집에서 어머니의 연금에 의지하여 생활하며 경제적 곤궁을 극심한 절약으로 메꿔보고자 그 어머니를 홀로 돌보느라 자신의 몸도 못 돌 본 장년의 아들이 함께 死者로 발견된 사례는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당혹스러웠다.  편의점에서 점심도시락으로 김밥을 사며 천원대나 2천원대가 다 팔려서 3천원에 조금 못 미치는 김밥을 사야한다고 당혹해하는 모습에(그러니 그 나라돈으로는 289엔 정도나 할까), 아니 그것이 그 풍요로운 사회에서 연명해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 설명에 더 마음이 아팠던 듯 하다.  이것이 어찌 비단 우리가 아닌 그들만의 모습이며 내가 아닌 남의 모습이기만 할 수 있겠는가.

 

 

감기기운으로 인해 코로 숨 쉬기 어려워 눈물을 막고자 입을 벌려 크게 숨을 쉬어보려니, 지난 주부터 무리한 등근육이 격통을 일으켜 갈비뼈의 확장을 막는다.  가슴이 뻐근하도록 느껴진 고통은 내 육신의 상황에서 온 고통인지 책 속에서 접한 實在하는 그 가족들에 대한 슬픔인지 나로서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만일 후자라면, 그것은 아마 그들의 삶에 현실적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 대국에서 엄청난 세금을 긁어모으며 비상식적인 언변으로 국민을 농락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지켜나가는 이들에게는, 그런 일부 버려진 자들에 대해 시선을 돌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은 한 때 그 나라를 일으켜 세웠던 일꾼들이었고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이었단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결코 오늘과 같은 노년을 예측해본 일이 꿈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볼 때에도 그 타락한 국회의원들이 틀린 것은, 그들이 결코 그 나라의 "일부"에 불과한 수치로 조만간 사라질 그래프 상의 미미한 데이터 수준이 아니란 것이다.

 

 

나는 이 나라가 잿더미에서 일어날 때 힘을 보탠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더! 더!" 하며 열심히 쥐어짜가는 이 나라 정부의 노력과 열성 대비 실제 매일의 내 삶은 오히려 점점 더 팍팍해져감을 느끼고있고 그래서 다가올 노년에 대해서 일말의 공포심을 갖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그 모습들이 결코 낯설게 보이지가 않았다. 

 

 

내게도 90대의 조모가 계시고 70대의 노부모가 계시다.  그리고 중년층으로 그 사이에 낀 우리 부부 아래에는 이제 자라나기 시작하는 어린 세대가 있다.  지금처럼 정부는 정부대로 쥐어짜고 노후대책은 스스로 알아서 준비하라는 식의 사회구조 속에서 나는 솔직히 노후에 지금의 중산층인 양 하는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내 유일한 바램이자 소심한 계획은, 이후 아프면 진통제 정도만 구입할 수준의 자산을 남겨두고 통증만 다스리다가 갈 때를 늦추지 않고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자신과 내 아들 세대를 위한 유일한 선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 부모에 대해서는 다르다.  더 오래, 무조건 오래 살아계시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당신들이 갖고 계신 자산으로(그것이 집이든 연금이든 무엇이든) 그 노년을 채워나가며 그저 옆에 계셔주시기만 하면 좋겠다.  내 자신이 심각히 이기적인 것이겠지.  그런데 딱 그런 수준의 그 정도의 욕심으로 함께 그저 가족이기에 같이 버텨나간 사람들이, 딱 그런 수준의 그 정도의 욕심이 만들어낸 덫에 걸려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그렇게 덧없이 함께 스러져간 사례들을 읽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결코 남의 일같지가 않기에..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느꼈던 통증이 내 등의 통증이었는지 마음의 통증이었는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사회의 가치가 무너져가는 이 때에,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맡겨두지 말고, 바로 그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의무란 것을..  부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이 책을 읽고 깨달아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느낀 내 통증이 20년 뒤 헛된 망상이었음으로 알게 되면 좋겠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단 느낌이 들어 두렵기만 하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쉬엄쉬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겠단 단순한 계획은 무산되었다.  난 이런 저런 이유로 결코 책 위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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